[천자춘추] 다양한 가족과 미군 기지촌 여성

배우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을 계기로 ‘윤며들다’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윤여정의 유쾌한 말솜씨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코로나19 이후 직면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나 또한 윤여정의 오스카상을 기뻐하며 저녁마다 배우의 이전 작품들에 몰두하는 중이다.

놀라웠던 것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가 흔히 사회에서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전형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혈연은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가족을 이뤄 살아가면서 부모, 형제, 남매가 된 가족들, 가족을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서로 상처를 위로해주고 밥을 나누는 이들이 있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지만 법과 제도가 ‘비정상’으로 낙인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배우는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죽여주는 여자’의 소영이라는 캐릭터에 주목하게 됐는데 소영은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이며 젊은 시절 동두천 미군 클럽에서 일했던 여성이다. 한때 미군과 동거하면서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입양 보냈다. 그래서인지 위험상황에 놓인 낯선 아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또래 미군 청년을 만나면 자신의 아이가 아닐까 돌아봤다. 지난해 재단에서 경기도에 거주하는 고령의 기지촌 여성 137명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정혜원 외, 2020), 기지촌 여성 중에서 미군과 동거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86.1%이고,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의 48.9%는 주변의 강요와 생활고 등으로 인해 자녀를 국외로 입양 보냈다. 자녀를 직접 키우는 경우에도 혼혈이라는 또 다른 차별과 냉대, 소외의 고통을 경험했다. 현재 그분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족의 도움을 받는 이는 10.6%에 그치며 75.6%는 기지촌 여성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대부분 나이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으며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

오스카상에 빛나는 윤여정의 배우 인생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 그가 연기한 다양한 가족들이 소외, 낙인, 차별을 받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진일보해야 한다. 그리고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제정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지렛대 삼아 국가적으로 기지촌 여성 지원을 위한 법 제정과 명예회복이 이뤄져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고령의 기지촌 여성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공동체가 행복하면 좋겠다.

임혜경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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