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얻는 것과 잃는 것

중국 역사서 사기에는 사목지신(徙木之信)이란 말이 있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정부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일깨워 주는 고사다. 간단히 살펴보자.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재상인 공손앙은 부국강병을 위한 새로운 법을 만들었으나 새 법을 공포해도 백성이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을 걱정했다. 이에 그는 법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성문 앞에 약 9m 크기의 나무를 세우고, 이를 옮기는 자에게 십금(十金)이라는 큰 상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금과 비교하면 너무 간단한 일이라 아무도 나무를 옮기려 하지 않자, 상금을 5배로 올렸고 백성이 나무를 옮기자 즉시 상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는 나라의 약속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높이는 큰 계기와 함께 진나라가 강국이 되는 기틀이 됐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여당의 부동산 특별위원회가 ‘주택시장안정을 위한 공급·금융·세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임대의무기간이 만료되면 사업자가 자동 폐지되며, 지난해 7월 이전 등록한 사업자에 대해선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시한을 6개월로 축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간 양도세 중과배제 기간을 너무 오래 줘 임대사업자가 가진 주택이 매물로 나오지 않았고, 이것이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이 됐으니 매입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 및 혜택을 축소하면 그들이 가진 주택이 시장에 매물로 나와 주택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문재인 정부 초기의 주택정책을 되짚어 보면 이번 부동산 특별위원회가 내놓은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든 정책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지난 2017년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세입자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세입자에게 전·월세 및 이사 걱정을 덜어주는 집주인에게는 상응하는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지속적으로 종용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순응하며 주택임대사업에 등록한 다주택자가 많아짐에도 집값 급등 현상이 가라앉지 않자 정부는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를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몰며 임대사업자에게 내걸었던 혜택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단기임대와 아파트 장기매입임대 사업을 폐지하고, 이번에는 양도세 중과배제 기간 축소 등 기존 임대사업자에게 줬던 혜택을 대폭 축소하며 임대사업자 제도 자체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다주택자의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한지 불과 4년 만에 말이다.

부동산 특별위원회가 내놓는 이번 정책으로 주택가격이 일시적으로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이 원안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사회는 많은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임대인은 임대사업 만료 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주택을 팔아야 하므로 시장에는 주택매물이 증가하며 일시적이나마 주택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또한 6개월이라는 짧은 매도 기간 내 주택을 처분하지 못한 임대인에게는 보유세 등 세금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이다. 더불어 급매로 나온 주택 매물이 소진된 후에는 임차 주택의 감소로 임차인의 주거 부담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 감소로 향후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의 합의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25번이 넘는 주택정책의 변경도 모자라, 이번에는 임대주택 공급의 대가로 기존 임대사업자에게 약속한 혜택을 일방적으로 폐지한다는 정책을 만들려는 정부를 어느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는가. 국가의 정책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입안되고 실행돼야 한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조삼모사’ 식의 정책을 내놓는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국민이 국가의 정책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선진 복지국가의 기본이 됨을 정책 입안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임기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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