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군대 내 성폭력 대응 부실, 신뢰 잃은 군

남성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해 여러 차례 신고했으나 묵살되고 급기야 2차 가해까지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은,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대응이 얼마나 부실하고 안일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사전 예방은 물론이거니와 사후조치에서도 군(軍)이 강조하는 시스템은 없었다. 피해자를 극단적인 고통에 노출 시켰고, 피해자는 혼인신고를 한 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군 내에서 성폭력에 시달리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데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 전우인 여군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고, 군이란 조직은 오히려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매번 지적받는 군의 폐쇄성이 성범죄에도 이어진 셈이다.

지난해 인권위를 통해 발표된 ‘2019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 같은 사건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최근 1년간 부대 내 성희롱·성폭력 관련 고충이 제기됐을 때 공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는 문항에 긍정적으로 답한 여군 비율이 48.9%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2012년 실태조사(75.8%) 때보다 크게 감소한 수준으로, 우리 군의 성범죄와 관련한 인권상황은 오히려 후퇴한 셈이다.

당시 연구용역을 맡은 백석대 산학협력단 연구팀은 “성폭력 고충처리의 공정성과 사후 처리가 미흡하고 2차 피해도 일어났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군은 성범죄에 대해 아직도 너그러워, 민간의 세상과도 괴리를 보인다. 2015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각 군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1천708건 가운데 실형 선고 사건은 175건(10.2%)으로 집계됐는데, 같은 기간 민간인들이 성범죄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25.2%였다.

여군은 이제 군에서 당당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1950년 491명의 여자 의용군으로 시작한 여군은 지난해 기준 1만3천449명으로 늘었다. 장교 9%, 부사관 6.4% 등 전체 군 간부의 7.3%를 차지한다. 단순히 양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주력 병과 등에서도 금녀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이제는 군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국방부는 지난해 여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군 간부 중 여군의 비중을 2022년까지 8.8%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군 보직규정을 남군과 동일하게 하고, 임신·출산·육아 여건을 보장하되 이를 이유로 한 인사상 불이익을 금지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이러한 청사진에 대한 믿음도,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잃게 됐다. 양적으로 늘리는 것만이 여군을 육성하는 길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범죄 피해자가 되면 즉시 보호받아야 한다. 또 가해자는 절차에 따라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국가를 지키는 군이라면 이런 기준은 더욱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젠더 문제로 여성징병제까지 거론되는 시기다. 그토록 강조하는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려면, 우선 ‘상식’이 통해야 한다는 점을 군은 잊지 말아야 한다.

최영은 행동하는 여성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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