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예술에서 노동의 존엄성
[천자춘추] 예술에서 노동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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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노동을 한다. 그것은 생명의 ‘존재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끊임없는 물올림을 마다하지 않는 이름 모를 풀에서부터 작은 곤충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숙명적으로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갈 수밖에 없으며, 사물이 갖는 정체성의 형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문화라고 명명하고 반복과 변화를 통해 진화의 로드맵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예술인들의 창작행위 또한 엄격한 의미에서 노동행위에 해당한다. 그 행위를 통해 세상과 호흡하고 소통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인간관계 또한 확산돼가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등으로 예술생태계(노동생산성)의 교란과 변화는 그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힘겹게 만들어진 창조적 행위와 결과물들은 발표할 공간의 제약과 부재에 방향을 잃고 있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관심과 지원이 중앙과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는 있으나 그것은 현상에 대한 극소 처방이다. 잠시의 효력은 있을지 모르나 위기극복을 위한 본질의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지원주체와 예술인의 입장은 명백하다. 전자는 예술인들 스스로 창작(노동)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영위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과 지원계획수립 그리고 공급이라는 본질적인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한다. 후자들 또한 현실을 회피하고 지원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창작활동을 통한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담금질하고 고심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술가도 노동이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 문제를 고민하고 성찰하고자 하는 이유는 표층적인 지원이 아니어야 하고, 현장과 현실의 절박한 목소리가 담긴 쓰임이 있는 지원을 통한 노동생산성(창작활동)이 담보되는 확고한 지원 틀의 마련에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예술계의 현실을 관통하는 올바른 패러다임의 인식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이유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오늘 문화예술계가 긴 가뭄의 끝에서 감미로운 단비를 묵묵히 기다리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숫자와 문자로 평가하는 보여주기식 지원보다는 생산성이 담보되는 현실성 있는 소낙비와 같은 지원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또 예술을 장식적 그릇에 담아두고 인식하고 평가하는 행위가 아닌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필연적인 노동임을 함께 인지하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자 함이다.

이영길 수원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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