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을미년, 을(乙)들을 위한 제언

이선호 문화부장 lshg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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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갑(甲)과 을(乙)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 화두가 되고 있다. 계약서상에 나오는 갑과 을을 사회 전반 현상에 대입해 해석하는 분위기다.

농담을 하든 진담을 하든 또는 가십거리 대화를 할 때도 늘 등장하는 소재가 갑과 을이 돼 버렸다. ‘내가 을이라서’, ‘네가 갑이다’ 등 사회 인간관계를 이야기할 때 요즘 같아선 갑을 관계만 있는 듯하다.

회사나 조직 내에서, 기관 대 기관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등 혈연관계도 모두 갑을 관계에 비유된다.

이 같은 현상은 요즘의 각박한 현실의 반영이고 계산에 민감하고 을 일수밖에 없는 인간군상들의 심리가 반영된 듯싶다.

최근 재벌 3세의 갑질이 대한민국 사회의 공분을 사며 들썩이게 했듯이 이제는 을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 시대다.

땅콩 봉지를 뜯었는지 안 뜯었는지 그것이 규정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편적인 상식상 재벌 3세가 갑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을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갑들은 마음속으로 뜨끔했으리라.

이렇게 을미년은 정초부터 뒤숭숭하게 출발했다. 연말 혼란스럽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13월의 보너스라는 애칭이 붙었던 연말정산은 어느새 13월의 세금 폭탄으로 바뀌어 을들이 한숨 쉬게 하고 있다. 연말정산을 앞둔 을들의 불안감은 너나없다. 원망은 결국 갑질을 한 정부로 향하고 있다. 그야말로 을들의 아우성으로 값질한 정부와 정치권이 진땀을 흘리는 격이다.

과거에는 허용됐던 갑질이 이제는 잘 먹히지 않는다. 갑질에 대한 을들의 비난에 눈치를 보거나 주춤하는 때도 나타났다. 을들에 세금 폭탄을 안겨준 정부가 그렇고 땅콩 회항한 재벌 3세가 그렇다.

누군가 ‘을미년’을 재미있게 해석하는 것을 들었다. ‘을(乙)’-을(乙)들의, ‘미(美)’-아름다운, ‘년(年)’-한해를 위하여. 요즘 을들은 과거 침묵하던 을들과 다르다. 요구할 줄도 알고 소신을 주장하기도 한다.

‘갑’이 ‘을’ 되기도 하고 ‘을’이 ‘갑’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나왔을 법하다.

최근 경기도내 지역문화재단 대표들을 만날 기회를 만들었다. 지역문화재단 대표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다들 나름의 비전을 갖고 의욕적으로 일하려는 모습에 지역 문화 발전이 기대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도 받았다. 거의 100% 지자체에서 예산을 받다 보니 문화기관 특유의 창의성 등을 저해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지자체에서 관리하기 번거로운 사업을 지역재단에 떠넘기듯이 위탁하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지역문화재단. 태생적 한계다. 그렇다 보니 조직의 유연성이 사라지고 관료화돼 버릴 수 있다. 사업의 내용과 질보다는 감사 등이 무서워 절차를 더 중요시하는 부적절한 조직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형식과 절차만 중요시하는 기관에서 하는 사업들은 말 그대로 형식적인 사업들만 나올 수도 있다.

지역 문화예술 융성에 이바지할 대표 기관들이 단순히 문화 시설을 유지 관리하는 역할만 해서야 되겠는가.

지역문화기관들은 지자체와 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시대는 을들이 주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상하 갑을 관계가 아닌 지역문화창달, 융성이라는 목표를 갖고 동반자적 관계가 유지될 때 그 시너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에는 문화 전문가들이 많다. 공연, 전시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포진돼 있다. 그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제대로 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을미년. 지역문화재단들이 당당히 목소리를 내 지역문화융성의 중심에 서길 기대해 본다.

이선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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