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까지 삼켜버린 폭우… 여주의 저주

‘300㎜ 물폭탄’ 여주 전쟁터 방불

산사태로 중국교포 사망 토사에 떠밀린 차량은

찌그러진 채 나뒹굴고 제방 붕괴 농경지 침수도

하룻사이에 240~300mm의 물폭탄을 맞은 여주군 일대는 그야말로 폭탄을 맞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차량이 이동하는 도로마다 물에 잠기고 토사가 유실되는 등 곳곳이 상처투성이었다.

흙탕물에 잠긴 농경지에는 농부의 한해 꿈도 잠겨있는 듯 그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22일 오전 2시께 찾은 여주군 북내면 S숯가마 주변은 이날 오전까지 퍼부은 기습 폭우의 처참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야산 초입에 위치한 숯가마 뒤편으로 10여m를 훌쩍 넘는 나무 수십 그루가 부러지고 뿌리째 뽑혀나간 채 마구잡이로 누워 있었고, 정상에서부터 흘러온 흙탕물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흙 바닥이 계단처럼 군데군데 깎여 있었다.

여러 동으로 이뤄진 숯가마 건물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쓸려 내려온 토사와 나무가 건물 내부까지 들이닥치면서 떨어져 나간 문짝 안으로 나무 기둥이 꽂혀 있는가 하면 숯 굽는 시설은 천정까지 흙탕물에 잠겨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숯가마 진입로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7m여 폭의 다리가 절반 가까이 떨어져 나간 채 무너져 내리면서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가 개울에 잠겨 있었고, 토사에 떠밀려온 1t 트럭과 승용차량이 범퍼가 떨어져 나가고 문짝이 찌그러진 채 길 한복판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 곳 S숯가마의 참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낮 12시 기준 242㎜의 기습폭우가 내리면서 발생한 산사태는 끝내 안타까운 목숨까지 앗아갔다. 이 곳에서 일하던 중국교포 L씨(75)가 밀려온 토사를 제거하다 재차 밀려온 흙더미에 매몰돼 숨졌다.

비슷한 시각 북내면 현암리 42번 국도 주변은 도로 70여m 구간이 침수돼 트럭과 승용차량이 오도 가도 못한 채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반쯤 깎아낸 인근 야산에서 흙탕물이 흘러들어 도로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인근 전원주택단지 예정부지도 깎아낸 산에서 붉은 흙탕물이 무서운 기세로 흘러내리면서 토사로 뒤덮혔다.

주민 박종은씨(67)는 “밤새 내린 비는 무서울 정도였다”며 “적지 않은 피해를 보겠구나 생각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며 아연실색해 했다.

대신면에서는 옥촌저수지의 제방이 붕괴해 농경지 10㏊가 침수됐고, 국도 37호 도로변에서는 산사태로 차량 1대가 파손, 양방향 차선이 통제됐다. 아울러 금사면의 국지도 88호 전북교 교각이 유실돼 차량이 통제되기도 했다.

여주에는 이날 하루 동안 오후 5시 현재 기준 240㎜의 비가 내리고 흥천ㆍ금사ㆍ대신면 등 일부 지역은 300㎜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군내에서는 산사태 30곳, 건물침수 68개소, 도로 유실 39곳, 하천 및 저수지 피해 2건 등 총 163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류진동ㆍ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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