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용관선생 딸 김혜경 할머니 아버지 업적 어렵게 알게됐지만
정부 독립유공자 거절에 눈물 이제라도 인정받아 만감 교차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의 한 작은 빌라. 이곳 반지하 방에서 사는 김혜경 할머니(90ㆍ여)는 지난 15일 TV로 제72주년 광복절 기념행사 방송을 시청하다 깜짝 놀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신의 아버지, 故 김용관 선생의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故 김용관 선생과 함께 의사 이태준 선생과 기자 장덕준 선생,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로 불렸던 남자현 여사,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등 5명을 호명하며,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5인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다 아버지 이름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며 “수십 년 동안 쌓여 있던 억울한 감정이 해소되는 듯한 기분에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하나였다. 수십 년 동안 아버지의 업적을 몰랐던 자신과, 인정해 주지 않았던 나라에 대한 설움이 교차한 것. 김 할머니는 어린 시절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았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 할머니가 갖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인식은 ‘집안 말아먹은 사람’일 뿐이었다. 김 할머니는 “그때는 ‘왜 우리 아버지는 집에 안 오실까’ 하는 원망밖에 없었다”고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다.
그런 김 할머니가 아버지의 업적을 알게 된 것은 손녀 사위 최성현씨(48) 덕분이다. 최씨가 가족 앨범을 보다 김용관 선생에 대한 신문기사를 발견했고, 국가기록원 등을 뒤져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까지 하게 된 것. 이런 과정 속에 김 할머니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바깥 활동을 해야만 했는지 모든 연유를 알게 됐다.
어느 가을날, 어머니 손을 잡고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수의를 입은 아버지를 만나 펑펑 울어야 했던 이유도 수십 년 만에 알게 됐다. 김 할머니는 “그렇게 대단한 분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 너무 한스러웠다”며 “손녀 사위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아갔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기적적으로 아버지의 업적을 알게 됐지만, 이후 정부의 태도에 김 할머니는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국가보훈처가 갖가지 이유로 아버지에 대한 독립유공자 인정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광복이 있었고, 한국전쟁이 있었다”면서 “그런 난리통에 사라지고 불탄 문서가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수감 기록이, 재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아버지께 죄송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다”면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 드리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할머니는 정부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김용관 선생과 같이 억울하게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줬으면 한다는 바람이었다. 김 할머니는 “나만 해도 평생을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면서 “나라가 나서서 훌륭한 업적을 이뤄내신 분들을 발굴해 그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마쳤다.
김규태ㆍ유병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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