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딛고 ‘맛있는 도전’… ‘K 디저트’ 식혜 세계시장 노크
“1년 동안 불편한 제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다행히 두 손, 두 발은 멀쩡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음료인 식혜를 생산하는 문완기 ‘세준푸드 농업회사법인(주)’(광주 곤지암읍 소재) 대표이사(54)는 장애라는 역경을 딛고 식혜를 세계적인 식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1989년 전통과자를 만든 처가 가업에 착안해 세준푸드를 설립한 문 대표는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 의료사고로 인한 장애, 매뉴얼 개발 좌절…고난의 20년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 1996년 몸의 이상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문 대표는 뇌에 물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른 곳도 아닌 뇌라는 의사 말에 곧바로 수술실로 몸을 옮겼다. 그러나 의료사고로 오른쪽 청력을 상실한 데다 한쪽 눈의 시력마저 기능이 떨어지게 됐다. 더구나 안면근육이 마비돼 물도 마실 수 없을 정도였으나, 근육이식수술까지 하고 나서야 일상생활을 하게 됐다.
문 대표는 “회사 대표로서 영업할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장애가 있다 보니 어려움이 많은 데다 시력마저 좋지 않아 운전하기도 힘들었다”면서도 “1년 동안 제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내겐 멀쩡한 두 손, 두 발이 있어 큰 문제가 없다’며 마음을 다졌다”고 회상했다.
심기일전한 문 대표는 지난 2004년 국내 최초로 농축액 제조기술에 대한 특허를 냈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실온에서 1년간 유통이 가능한 식혜를 만든 것이다. 그 해 하늘처럼 맑은 음료라는 뜻인 ‘하늘청’이라는 브랜드명을 등록했다. 초고온으로 제품 용기를 순식간에 멸균한 뒤 식혜를 채워 넣으면 여름철 3일이면 상하는 식혜가 미개봉을 전제로 1년간 보관이 가능해진다. 전통음료에 현대과학을 적용했다는 게 문 대표의 표현이다. 특허의 기쁨도 잠시, 문 대표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각 가정에서 소량의 식혜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지만 대량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주재료인 밥과 엿기름 추출물을 몇 ℃로 삭힐 것인지, 쌀은 어떻게 씻을 것인지 등 공정별 기준이 없었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식혜를 만들 때 쌀 320㎏ 준비했다가 실패해 버리거나 떡을 해먹은 적이 있다. 자본력이 튼튼했다면 문제가 없었으나 실패할 경우 하루 최대 2천만원이 날라갔다”며 “전통적인 방식대로 식혜 생산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옛날 할머니가 해주신 깊은 식혜 맛과는 거리가 멀었었다”고 말했다. 그 뒤 “10년간의 끈질긴 연구 끝에 지난 2015년 드디어 매뉴얼이 완성됐다”며 “당시 속되게 표현하면 ‘이제 다 죽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뉴얼 개발 난항이라는 짙은 안개 속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 10년 만에 매출액 껑충…국내 첫 식혜 명인 및 해외 판로 개척에 분주
제품 보관 특허와 매뉴얼 개발에 성공한 세준푸드는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기온, 일조량 등 환경적 요인으로 전국에서 가장 맛이 좋기로 소문난 경기 지역 쌀을 이용, 식혜를 만들고 있다. 제품을 만드는 주재료의 환경적 요인도 한몫했지만, 지역 농가와 상생하는 것에 대한 문 대표의 애정이 담겨 있다. 특히 세준푸드의 하늘청식혜는 장시간의 당화과정을 거친다는 강점이 자랑이다. 전통방식인 당화과정은 밥과 엿기름 추출물을 60℃로 일정하게 유지해 시간에 따라 삭히는 과정이다. 쌀에 포함된 탄수화물을 자연스레 당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다른 업체의 제품은 첨가물이 들어가 이 과정의 시간이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표는 5시간 당화과정을 거쳐 깊은 맛과 엿기름 향이 진한 식혜를 만들어 차별화를 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늘청식혜는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전국 대형마트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전통 음료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명성으로 지난 2015년부턴 미국, 중국, 호주 등 글로벌화에도 도전, 매년 두자릿수 이상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국내 최초로 베트남 안장성 식혜공장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같은 성장과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인정받은 문 대표는 지난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식혜 분야 국내 첫 식품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0년 전 30억원대 매출액을 기록했던 세준푸드는 지난해 78억원의 매출액을 냈다. 두 배의 성장이다. 올해는 ‘코로나19’에도 매출액 100억원을 목표로 삼았다.
■ 기숙사 제공 및 한글 교습…“장애인과 식혜 세계화 이룰 것”
세준푸드 또 다른 특징은 장애인 고용이다. 임직원 31명 중 13명이 장애인이다. 설립 초창기인 지난 1991년 이미 사업장에는 두 명의 장애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문 대표는 고용 확대를 생각했다. 자신도 몸이 불편하기에 누구보다 그들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적응력, 소통, 업무 이해도 등에서 장애인 고용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으나, 문 대표는 기숙사를 제공하거나 한글을 가르치는 등 그들의 복지 향상에 힘쓰고 있다. 이에 세준푸드는 지난 2013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 표준사업장에 지정됐다.
문 대표는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어려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장애인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모든 구성원이 함께 울고 웃으며 같은 행동을 추구한다’는 경영이념에 따라 장애인들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문 대표의 목표는 식혜의 세계화다.
문 대표는 “비만을 앓는 상당수 서구인들은 상대적으로 날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따라서 식혜가 세계적인 제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식혜로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선두주자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성남=문민석ㆍ이정민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