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면수심의 만행을 저지르는 ‘친족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도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피해 사실을 알리기조차 어려운 만큼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보호망이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7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청주 여중생 사망사건’에 이어 경기도에서 친부가 어린 딸을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5월 충북 청주에선 성폭행에 시달리던 여중생과 그 친구가 함께 세상을 등진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여중생의 계부는 의붓딸과 친구에게 술을 먹인 뒤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현재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성 기능 장애를 주장하며 대부분의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는 친족 성폭력 사건은 해마다 수백건씩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수사 기관을 통해 드러난 범죄의 수치가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친족 강간ㆍ강제추행 발생 건수는 지난 2016년 438건, 2017년 422건, 2018년 465건, 2019년 400건, 2020년 418건으로 집계됐다. 다만 같은 기간 대검찰청 친족 강간ㆍ강제추행 범죄접수 현황을 보면 2016년 500건, 2017년 535건, 2018년 578건, 2019년 525건이 처리됐다.
경찰이 조사를 마친 뒤 검찰에 송치하는 수사 과정을 고려할 때, 경찰 단계에서 인지하는 범죄의 수보다 검찰에서 처리하는 수가 더 많이 나왔다는 건 친족 성폭력 범죄의 ‘높은 암수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신고하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초 밝힌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친족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해 상담을 요청했던 피해자 87명 중 48명(55.2%)은 피해를 외부에 알리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대부분 적절한 대응방법을 찾지 못해 고충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87명 중 46명(52.9%)은 대리인을 통해 상담을 시도했다. 친족 성폭력은 피해를 당해도 가족에게 알리기 어려운 데다 말하더라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탓으로 분석됐다. 본인이 직접 상담에 나선 41명 중에서도 22명은 피해 이후 주변에 알렸으나 지지를 받지 못했고, 17명은 아예 대응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친족 성폭력은 피해자가 어린 시절 이뤄지고 발굴은 성장한 뒤에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며 “이 때문에 피해자가 어릴수록 피해 기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양육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것이니 죄책이 대단히 무거운 범죄”라며 “가중처벌이 이뤄져야 할 범행인데도 처벌이 가볍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부연했다.
양휘모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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