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사실을 드러내기조차 어려운 ‘친족 성폭력’ 사건(경기일보 8일자 6면)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가해자의 형량을 감경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8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제주지법 형사2부는 최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47)에 대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는 지난 2012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둘째 딸을 200회 넘게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혼 후 홀로 두 딸을 키우던 그는 수시로 중학생인 둘째를 불러 강간했고, 피해자는 어린 나이에 임신과 낙태까지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지난 2016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법원은 친딸을 4년간 400회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징역 1천503년을 선고했다. 현행법상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의 경우 7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무거운 죄책에 비해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못하지만, 미국의 경우 같은 혐의에 대한 최저 형량이 징역 25년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친족 강간죄에 징역 30년이 선고된 건 국내 판례들을 살펴볼 때 비교적 중형이다. 더욱이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까지 밝힐 경우 이는 피고인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된다.
일례로 지난 10월 의정부지법 형사11부는 아홉 살짜리 딸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친부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술을 마신 뒤 어린 딸을 수차례 추행했다. 비정한 아버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하다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아내로 착각했다’는 변명을 늘어놨다.
처벌이 가벼워진 건 피해를 당한 친딸이 탄원서를 낸 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9세 아동의 판단에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달린다. 피해를 당해도 주변의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범죄 특성상 피해자는 가정이 망가질 수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다른 가족들의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합의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문가들 역시 친족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합의는 피해 회복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니라 가해자의 형량 감경에 악용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 특히 어린 아이들의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본다”며 “아동은 자기 잘못이 없는데도 다 자기 탓인 줄 아는데, 이를 ‘나쁜 아버지들’이 악용할 우려가 크다”고 꼬집었다. 이어 “촉법소년을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판단력이 흐린 나이대라고 보기 때문인데, 이는 피해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그럼에도 어린 아이들의 처벌불원 의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라고 부연했다.
양휘모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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