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분 만에 뚝딱… ‘원하는 약’ 처방받았다 [약에 취한 대한민국 ①]

“피곤해요” 한마디에 진단서 내줘... 실비적용 되도록 먼저 제안하기도
남용 위험에도… 같은 날 동시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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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유동수화백

지난 4월 24일 수원역 인근 번화가에서 여중생 2명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경찰이 마약검사를 한 결과 음성. 이들은 일본산 감기약 스무알을 한꺼번에 먹었다고 진술했다. 이 뉴스로 인해 세상은 들썩였다. ‘도대체 어떤 약을 먹었길래’, ‘왜 감기약을 스무알씩이나’, ‘온라인에 여러 약을 섞어 먹으면 환각상태에 빠진다는 데 그래서 아닐까’.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일이 왜 가능했나’다. 

대한민국이 약에 취했다. 1분 진료로 원하는 약을 양껏 얻을 수 있는 약물쇼핑이 등장하는가 하면 ‘오늘 약만 받으러 왔는데요’ 한마디면 의사를 만나지 않고도 손쉽게 약을 손에 쥔다. 온라인을 통한 불법 약물 거래가 성행하고, 유행에 따라 해외에서 약을 사오는가 하면 전혀 다른 용도로 약물을 복용하기도 한다. 

‘마약청정국’ 지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는 대한민국. 마약 뿐 아니라 모든 약물로부터 안전하도록, 약이 독이 되는 일이 없도록 약에 취한 대한민국의 중독 치료법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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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해당 기사와 관련없음) 이미지투데이 제공

 

① 손쉬운 ‘약물쇼핑’

 

“요즘 몸이 좀 피곤해서 왔습니다.”

 

단 한마디였다. 이 한마디로 취재진의 손에는 ‘두통, 어지럼증, 식욕부진, 울렁거림 등 저영양상태 및 탈수상태’라는 진단서가 쥐어졌다. 곧 10만원에 달하는 각종 약물이 처방됐다. 처방된 약물은 모두 의사가 만들어준 증상의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약물이었다. 

 

18일 경기일보 취재진이 지난 1개월 이상 무작위로 경기지역내 병원을 선정해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 내에는 이른바 ‘원하는 약을 잘 처방해주는 병원’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돼 있었다. 허위의 증상을 말해도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약물을 처방해주고, 원하는 특정 약품의 이름을 말하면 그 약을 처방해주기도 한다는 ‘약물쇼핑’ 가능 병원들의 명단이 공유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병원의 경우 의사가 먼저 나서 실비보험을 통해 병원비를 돌려받을 수 있는 증상들로 처방전을 꾸며준 뒤 약물을 처방해줬다. 이 병원 중에는 ‘어차피 실비로 보장 받을 수 있으니, 이번에 나온 좋은 약이 있는데 한 번 맞아보라’며 권하는 곳까지 있었다.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 수면 장애 등을 전혀 겪지 않고 있는 시민을 통해 수면유도제를 처방받도록 해보자 같은 날 여러 병원에서 동시처방을 해줬다. 이들 병원 중에는 ‘수면유도제 처방을 이미 받으셨는데’라며 약물 남용의 위험성을 인지한 듯한 발언을 하고도 약을 처방해주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의사 A씨는 “B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C병원에 방문해 처방을 받으려 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쪽에 자료가 넘어가서 처방할 당시 의사들이 알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결국 ‘천부권’처럼 갖고 있는 의사들의 처방 권한이 문제인데,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인식을 전환할 어떤 대안들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시 장치를 만들고, 적정한 판단없이 이뤄진 처방에 대해 강력한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K-클로즈업팀

 


※ K-클로즈업팀은 경기도 곳곳의 사회적 이슈 중 그동안 보이지 않던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하는 동시에, 소외되고 외면 받는 곳을 크게 조명해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며 개선 방향을 찾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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