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공간 제한… 무늬만 ‘무더위 쉼터’ [집중취재]

1천698곳 중 ‘경로당 쉼터’... 대부분 회원만 이용 가능
업무시간만 오고가 제약 커... 市 “공간 한계, 점검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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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인천 구월동 ‘무더위 쉼터’ 지정 경로당에 비회원이라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한 노인들이 경로당 앞과 주변 공원에서 36도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날 선풍기가 한 대뿐인 미추홀구의 한 야외 ‘무더위 쉼터’는 찜통 더위에 아예 찾는 주민이 없다. 조병석기자

 

“말만 무더위 쉼터지, 들어가지도 못하는데요 뭐.”

 

8일 정오께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공원 앞 경로당. 이곳은 인천시가 지정한 ‘무더위 쉼터’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외부인 출입금지’가 붙어 있다. 이 때문에 기온 36도(℃)를 훌쩍 넘긴 푹푹찌는 더위 속, 나무 그늘 아래 앉은 60~70대 어르신 수십여명이 부채질을 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이 경로당은 연회비 2만5천원을 낸 정식 회원만 드나들 수 있고, 일반 주민은 더워도 들어가 쉴 수가 없다.

 

이 곳에서 만난 전홍의씨(66)는 “인근에 무더위 쉼터는 이 곳 뿐인데, 경로당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림에 떡일 뿐”이라며 “물이라도 마셨으면 좋겠는데, 못들어가게 막는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떨어진 곳에 은행이나 주민센터가 있지만,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눈치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미추홀구의 무더위 쉼터인 한 정자. 10여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아무도 찾는 주민이 없다. 유리창으로 외부와 차단이 가능한 정자지만 내부에 선풍기 1개만 있어 덥기는 밖이나 마찬가지인 탓이다. 박후자씨(55)는 “안에 들어가봤자 바람도 잘 안통해 선풍기가 뜨거운 바람만 쏟아낸다”며 “되레 밖이 더 살만할 정도”라고 말했다.

 

인천의 무더위 쉼터가 ‘무늬만 쉼터’로 전락했다. 실내 무더위 쉼터는 일반 주민들이 이용하지 못하거나 업무시간에만 오가는 등 제약이 크고, 실외 무더위 쉼터는 사실상 그늘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에 따르면 현재 인천에는 실내 쉼터는 997곳과, 실외 쉼터 320곳 등 총 1천698곳의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실내 쉼터는 경로당 664곳을 비롯해 도서관·행정복지센터(공공시설) 209곳, 은행·마트(생활민간시설) 449곳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 경로당은 회원 등 고정 이용자만 들어가 쉴 수 있는데다, 행정복지센터나 은행 등은 업무 시간에만 오갈 수 있는 등의 제약이 크다. 만약 무더위를 피해 들어가 쉰다해도 눈치가 보이는 것은 덤이다. 더욱이 경로당을 제외한 나머지 무더위 쉼터는 고통스러운 열대야를 피해 야간에 이용하거나, 주말 및 공휴일에는 이용할 수 없다.

 

여기에 실외 무더위 쉼터는 더욱 열악하다. 그늘막이나 벤치 정도만 있는 곳이 대부분이고 냉방 기기나 냉수 등도 찾아볼 수 없다.

 

전용호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누구나 무더위에 지치면 잠시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무더위 쉼터로 지정만 해 놨을 뿐, 운영 실태 등을 파악하지 않아 무늬만 쉼터로 전락한 것”고 지적했다. 이어 “무더위 쉼터 지정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제대로 쉴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무더위 쉼터의 운영시간이나 공간 특성상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무더위 쉼터 지정 때 운영 방식 등을 민간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이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운영 실태 점검 등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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