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사이 노른자땅…'軍 유휴지' 개발 깜깜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①]

남양주 퇴계원 24만여㎡ 군부대, 7년 전 성주 사드 부지와 맞교환
군 철수 후 개발사업 기대했지만…변화 없이 도심 흉물로 방치 중
지역경제 보이지 않는 누수, 도시계획 공백…"지역 균형발전에 중요"

군 떠난 자리, 버려진 땅 도심 속 잠든 軍 유휴지

①개발 뒤편에 남겨진 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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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곳곳의 군 유휴지가 여전히 지역 개발의 걸림돌로 남아 있는 가운데 경기 북부 균형발전을 위해 이들 부지의 실질적 활용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경기 북부에 방치된 군 유휴지. 윤원규기자

 

경기도 균형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 하나가 ‘분도’다. 지역을 남·북으로 나눠 경기북부 재정자립도를 높이자는 건데 이재명 대통령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그 대신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는 ‘미군 공여부지 개발’이었다. 경기도 역시 곧바로 호응했다. 그런데 이처럼 적극적 활용책이 논의되는 미군 공여부지와 달리, 우리 국군이 머물다 떠난 땅은 도심 속에 잠들어있기만 하다. 경기α팀은 수도권 안보의 최전선이었던 ‘군(軍) 유휴지’를 조명하며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해법을 모색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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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퇴계원리 133번지 일원. 군부대가 떠나고 남은 군 유휴지 너머로 별내신도시에 줄지어 들어선 고층 아파트가 대비돼 보인다. 윤원규기자

 

‘낯선 곳’에 왔다.

 

회색 벽돌로 만들어진 높은 담벼락이 ‘의문의 내부 공간’을 가리고 있었다. 출입문을 찾는 데에만 도보로 20여분은 족히 걸릴 정도로 드넓은 부지다. 구슬땀을 흘리며 걷다 보니 벽면에 새겨진 숫자 ‘2’ 로고와 ‘군부대 시설용이도로’, ‘○동실현 보급지원’ 등 문패가 눈에 띈다. 이가 나가고 칠이 벗겨져 뚜렷한 내용은 파악되지 않는다.

 

마침내 강판 펜스와 입구가 나왔다. 안팎으로 덤프트럭 몇 대가 오가고 경비 인력 1명이 ‘낯선 이’를 예민하게 쳐다보는 것 외엔 행인 하나 없이 고요하다. 여기는 남양주시 퇴계원리 133번지 일대, 제2군수지원사령부 예하 15보급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7년 전까지는 말이다.

 

지난 2016년 국방부는 사드(THAAD) 체계 배치 계획에 따라 이 부지와 경북 성주의 성주골프장 부지를 교환했다. 그렇게 15보급대가 철수(2018년)해 퇴계원을 떠나게 됐고, 지금까지 이 땅은 ‘놀게’ 됐다. 규모는 자그마치 24만2천㎡(약 7만3천200평)에 달한다. 퇴계원읍 전체 면적(327만㎡)의 7.3% 수준인데 ‘쓰임새’를 못 찾고 있다.

 

20년 넘게 퇴계원에서 살고 있다는 김희자씨(59)는 부대 담벼락 너머 보이는 고층 아파트단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게 이렇게 가만히 썩힐 땅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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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퇴계원리 133번지 일원에 별내신도시가 펼쳐져 있고, 그 옆 드넓은 군 유휴지가 남아 있다. 윤원규기자

 

그가 가리킨 곳은 ‘별내신도시’다. 불과 2.8㎞ 떨어져 승용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서울과도 2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왕숙 등 3기 신도시 개발과 함께 ‘미래형 자족도시’로 수도권 신흥 중심지를 이끌고 있지만, 그 가운데 ‘이곳’만이 시간을 잃어버린 공간처럼 잠들어 있었다.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풍경. 그 중심엔 ‘군(軍) 유휴지’가 있다.

 

이곳은 지난 2019년 ‘국유재산 토지개발 선도 사업지’로 선정됐고, 별내와 다산·왕숙신도시를 연결하는 중심축으로 재탄생이 약속됐지만 변화는 없었다.

 

현재 사방이 신도시로 둘러싸인 이 땅은 마치 도넛의 구멍처럼 텅 빈 채 수도권 개발의 뒷켠에 남겨져 있다. 군 기밀처럼,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퇴계원 군부대 개발 사업 시행자는 시가 아닌 국방부이기 때문에 우리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축구장 375개 ‘미지의 땅’... 年 3천억대 경제가치 ‘누수’

모두가 삽을 뜨고 싶어하는 땅, 그러나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땅,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군 유휴지’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당장이라도 개발하고 싶다”는데, 어디까지나 국가의 재산이기 때문에 누구도 섣불리 용도와 방향을 정할 수 없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개발 인허가 절차, 대규모 땅을 매입·관리하는 데 투입되는 천문학적 예산 부담까지, 현실적으로 버거운 조건들이 첩첩산중이다. 도심 가까이 수백만㎡의 땅이 허허벌판인 채 놀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땅의 가치는 오르질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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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유동수 화백

 

■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땅 ‘군 유휴지’

 

13일 국방부의 ‘2024 국방통계연보’에 명시된 ‘미활용 군용지 보유 현황’을 보면 2022년 기준 전국 군 유휴지는 1천317만㎡ 규모에 달한다. 이 중 수도권내 군 유휴지는 절반에 이르는 650만㎡(48%)로 파악된다.

 

국방부가 표현하는 ‘미활용 군용지’는 흔히 ‘군 유휴지’로 불리는 곳이다. 군(軍)이 사용하다 통폐합 및 이전으로 공터가 됐지만 개발 제한 등 규제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는 땅을 의미한다. 경기α팀은 해당 기사에서 이 땅을 ‘군 유휴지’로 표기하기로 했다.

 

군 유휴지에 대한 명확한 규모나 위치 등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앞선 통계도 ‘수도권’으로 한정돼 있어 어느 시·도, 시·군에 분포됐는진 알 수 없다. 대개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재산이라 보안 등을 이유로 비공개 되기 때문이다.

 

지자체도 본인들의 시·군에 있는 군 유휴지 현황 파악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세부적으로 경기도 어디에 어느 정도의 군 유휴지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다만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자료들에 따라 경기도에만 한정해 보면, 도내 군 유휴지 면적은 2022년 659만㎡에서 2023년 8월 473만5천㎡로 줄은 것으로 보인다.

 

국방연보통계로는 2022년 수도권 군 유휴지가 650만㎡인데, 같은 시기 경기도내 군 유휴지가 659만㎡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져도 명확한 실태는 알기 어려운 데다가 신뢰도 또한 떨어진다.

 

국방시설사업법 등에 따라 국방부는 2년 주기로 군 유휴지를 파악하고 있다. 경기α팀은 ‘현재 경기도’의 군 유휴지만이라도 확인하고자 했다.

 

이에 국방부는 “현재(올해 5월 기준) 경기도내 미활용 군용지는 268만㎡ 규모”라고 간략히 답변했다. 결국 2022년 659만㎡부터 매년 약 200만㎡씩(약 60만평씩) 줄어드는 수준이다. 이렇게 줄어든 부지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마찬가지로 ‘기밀’이라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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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보충대대가 있던 의정부시 용현동 산 45-1번지 일원의 부대 입구. 부대가 해체하며 이곳은 군 유휴지로 남아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박채령기자

 

■ 경기도 군 유휴지 90% ‘북부’ 밀집…연천>포천>동두천 순

 

경기α팀이 경기도 내 군 유휴지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적이었다. 기존 군사시설 중 일부가 장기간 방치되거나 출입이 통제돼 온 만큼 정확한 현황 파악이 어려운 데다 국방부와 지자체 간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거나 군사적 보안을 이유로 대부분의 정보는 비공개였기 때문이다.

 

공신력 있는, 그리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자료를 찾던 중 지난 2022년 10월 경기도의회에서 실시한 ‘민관군 상생협력 방안 모색 토론회’ 자료집에서 경기도내 군 유휴지 현황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도내 군 유휴지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다.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군 유휴지 규모가 대략 파악된 곳은 17곳이라는 내용이다. 해당 17개 지자체 내 5천㎡ 이상 규모의 군 유휴지는 당시(2022년 10월) 기준으로 총 310개소, 면적은 약 453만㎡다. 다만 이 통계에는 5천㎡ 미만의 소규모 유휴지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 전체 면적은 이보다 훨씬 넓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경기도가 분류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해당 지역군(고양·남양주·파주·의정부·양주·포천·동두천·가평·연천 해당, 구리는 자료 미취합 제외)에 위치한 군 유휴지는 총 277개소, 면적으로는 409만9천621㎡에 달한다. 이는 경기도 전체 군 유휴지의 90.4%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도내 군 유휴지 10곳 중 9곳이 경기북부지역에 몰려 있는 셈이다.

 

기초자치단체별로 살펴봐도 군 유휴지 규모 상위 3곳인 연천, 포천, 동두천 모두 경기북부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연천군의 경우 무려 163개소의 군 유휴지가 존재했으며 총면적은 197만9천873㎡로 집계됐다. 이어 포천시 74만7천136㎡(41개소), 동두천시 51만1천850㎡(26개소) 순이다.

 

3기 신도시 조성 등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인 남양주시(41만802㎡, 20개소)와 파주시(22만5천893㎡, 8개소) 또한 군 유휴지가 여전히 다수 분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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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격훈련장으로 사용된 양주시 석우리 산 50번지 일대가 개발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이지민기자

 

■ 年3천216억원 ‘누수’…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국토연구원은 도시 인근 유휴지의 경제적 활용 가치를 1㎡당 연평균 12만원 안팎으로 내다본다.

 

아무리 군 유휴지가 줄었대도 단순 환산하면 경기도내 방치된 군 유휴지(현재 268만㎡)는 연 3천216억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역경제 입장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누수이자 도시계획의 공백인 셈이다.

 

앞으로 군 유휴지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기반 무기체계의 도입 등 방위산업의 변화와 인구 감소 같은 사회 구조적 한계가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국방 경영 혁신 기조도 군 유휴지 확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년), 국방개혁 2.0(2018년), 국방혁신 4.0(2023년) 등을 통해 부대 이전과 병력 감축, 주둔지 통폐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오는 2026년까지 전국 주둔지 약 260곳을 줄이겠다는 계획도 공식화된 상태다.

 

하지만 국방부가 공개하지 않는 한 유휴지의 세부 내용은 알기 어렵다.

 

경기도처럼 북한과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강원도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 자료로는 해마다 강원도 군 유휴지가 줄어든다는데 저희는 더 늘어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강원도 역시 군부대 해체 및 이전, 병력 감소 등으로 군(軍) 측 변동이 있는 상황이라 유휴지가 증가하고 있는데 마땅한 활용 방법은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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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 용현동 제306보충대대가 있던 군 유휴지. 쓰레기가 쌓여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박채령기자

 

■ 노른자 땅, 어떻게 써야 할까… “지역개발 자원으로 기능해야”

 

군(軍)도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다. 도심 한복판 ‘노른자 땅’인 군 유휴지가 곳곳에 방치된 만큼 누가, 어떻게 써야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지난 2014년만 해도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전략회의(4월30일)에서 대도시 주변 군 유휴지의 용도를 변경해 매각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단순히 군 부지를 폐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토지 자산을 국토 개발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구상과 달리 군 유휴지를 ‘유휴지’로 간주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있었다. 국방부 입장에선 ‘언젠가 쓸 수 있는’ 잠재적 군사 자산이기 때문에 매각이나 임대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용어도 군 유휴지 대신 ‘미활용 군용지’가 쓰인다.

 

또 실제 개발에 나선다고 해도 토양 정화, 폐기물 처리, 기반 정비 등 기초 공사만 오랜 시일이 걸리고 예산도 수십억원이 투입된다. 이 외 ▲일부 부지는 규모가 너무 작아 실질적 개발이 어려운 점 ▲군 작전 중 사용된 물품이나 불발탄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빈번한 점 ▲군 유휴지를 대책 없이 풀었을 경우 ‘투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보아 국방부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땅을 땅답게’ 쓰는 것이 지역 균형발전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군 유휴지가 지닌 용도의 특수성과 한계를 고려하되,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실효성 있는 활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박정은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군 유휴지는 단순한 유휴 국유지가 아니라, 국방 전략·지역 정책·국유재산 관리가 교차하는 매우 복합적인 영역”이라면서 “특히 지역 간 균형 발전에 있어서 군 유휴지 활용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방부가 유휴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자체와의 협의 구조를 제도화해 지자체가 필요로 하는 시설을 유치하는 등 땅의 활용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 관련기사 : 빈 땅만 남긴 '韓 군부대', 변화의 바람 '美 공여지'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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