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가르강튀아와 넷플릭스의 상상력

지승학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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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하는 블랙홀의 이름은 가르강튀아다. 이 이름은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가 1532년에서 1564년 사이에 발표한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등장하는 이른바 엄청난 대식가이자 그만큼 배설하는 거인 ‘가르강튀아’에서 유래했다. 가르강튀아는 삼키는 행위를 강조하듯 목구멍이나 식도를 뜻하는 ‘가르간타(garganta)’에서 파생했으며 이 단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가글(gargle)과 뿌리가 같다. 놀런 감독은 무엇이든 삼켜 버리는 이 거대한 블랙홀에 인간의 삶과 희생을 투사했다. 이때 가르강튀아는 물리적 덩치만큼이나 시간, 공간, 기억, 사랑을 초월적으로 은유하는 상징이 됐다. 여기서 가르강튀아는 단지 거인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연결하는 거대한 은유적 장치였다.

 

가르강튀아는 본래 라블레가 창조한 존재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방에서 오랫동안 구전돼온 거인 전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민속학자 폴 세비요는 그의 책 가르강튀아와 민속전통에서 가르강튀아가 프랑스 여러 지역에 구전 전승돼온 자연 창조 설화와 밀접한 거인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예를 들어 기암괴석이 많은 브르타뉴 지역에는 이른바 가르강튀아의 바위, 가르강튀아의 발자국 등으로 명명된 바위 등이 실재하며 여기에는 여지없이 거인이 바위를 던진 것이라거나 음식을 먹다 토한 흔적이라거나 아니면 거인의 발자국이 언덕을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신체를 통해 풍경을 형성하는 거인의 존재는 기암괴석의 시작을 설명할 길 없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연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샤먼이자 민족적 상상력의 구현체였다.

 

한편 라블레가 소설을 쓸 당시 브르타뉴 지방은 켈트문화와 그 민족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가르강튀아는 이 지역의 민속적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라블레는 가르강튀아를 그런 전통적 설화 속 거인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통해 중세적 질서와 권위, 교회 권력을 비판하고 이성과 유희, 자유와 새로운 인간상을 재구성했다. 더 나아가 라블레는 가르강튀아를 자율성과 평등이 함께하는 즐거운 공동체적 실체로 그리고자 노력했다.

 

1532년 프랑스 왕정은 결국 브르타뉴 공국을 공식적으로 프랑스 왕국으로 합병했다. 이 연도의 맥락 속에서 보면 라블레의 가르강튀아는 통일된 국가의 상상적 도구로도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라블레는 브르타뉴의 토착 거인을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문학을 통해 당시 절대왕정 수립에 기여한 셈이 됐다. 결국 가르강튀아는 단지 한 시대의 신화적 캐릭터가 아니라 설화에서 공감으로, 민속의 특수성에서 전체의 보편성으로 확장되는 인간 상상력의 거대한 포털이 됐다.

 

1998년 3월 공교롭게도 지극히 신화적 캐릭터를 앞세운 팀버튼 감독의 영화 비틀쥬스를 첫 번째로 배송하며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이제 전 세계의 설화와 전통, 특수와 보편을 끝없이 삼켜 하나의 영상 속에 녹여내고 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가 바위에 얽혀 있는 설화를 지역색의 초석으로 삼았다면 넷플릭스는 지금 전 세계의 설화와 지역색을 영상 언어로 재구성해 새로운 서사적 응집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유라기보다 세계를 향한 공진화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제 이야기의 고유성을 지우기보다는 그것을 공감 가능한 형태로 삼켜 버리는 그야말로 거인 가르강튀아가 됐기 때문이다. 단점보다 장점을 생각해 볼 때 의외로 이 전략은 일종의 포용력으로 승화돼 다양한 인종에게 하나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그 첫 번째 긍정적인 반향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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