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경기민예총 이사장
경기 안산에는 특별한 극단이 있다. 이름은 ‘극단 노란리본’.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6명과 생존 학생의 어머니 1명이 함께 연극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극단이다. 7월25, 26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이 극단의 여섯 번째 작품인 ‘노란빛 사람들’ 초연이 무대에 올랐다. 2년에 한 번씩 신작을 제작해 발표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극단에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가득 메우고 호응했다.
2015년 가을 안산의 작은 커피 공방에 모여 ‘커피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세월호 어머니들은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도 흩어지기 싫었다. 왜냐하면 세상과 맞서야 했던 시간, 집 안에서 혼자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던 시간을 함께 견디게 해주는 소중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미 있는 작업을 함께하는 시간은 참사 피해자들에게 무엇보다도 귀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흩어지지 않기 위한 매개로 ‘연극예술’을 선택했다.
시작은 필자가 속한 극단의 희곡을 들고 가서 함께 읽는 일이었다. 일부러 희극을 골라 갔다. 대형 참사를 겪고 웃을 일이 없던 그들에게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웃음’의 힘은 위대했다. 장면이 웃겨서, 대사가 웃겨서, 대사를 읽다 틀리는 서로가 웃겨서, 어머니들은 어느새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장면의 동선을 연습하다가, 약속된 호흡대로 연기하다가, 연기 중인 표정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마구 웃었다.
첫 공연 당시 어머니들의 얼굴에 분장을 해주며 들었던 이야기.
“감독님, 저 화장 정말 오랜만에 해봐요.”
매주 만나면서도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무대를 준비했다. 등장 타이밍이 헷갈려 무대 좌우를 자주 넘실대던 어머니들의 그림자를 보며 관객들은 따뜻한 환호를 보냈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세월호 가족들이 겪은 이야기를 전하고 수학여행 장기 자랑을 준비하며 유쾌하고 해맑았던 소녀들의 모습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이들과 어떤 예쁜 추억을 나눴는지도 관객과 함께 나눴다. 올해 신작에서는 그동안 세월호 가족들의 곁에서 함께 걸어준 소중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예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한 어머니는 아이의 꿈이 뮤지컬 배우였다고 한다. 가고 싶어 하던 예술대학의 엠블럼을 ‘카톡 프사’로 해뒀던 그 아이. 어머니는 아이 대신 무대에 서는 일이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딸의 꿈을 대신 이뤄가며 매일 무대 위에서 딸과 함께한다는 그 어머니의 이야기는 재난 참사 피해자에게 ‘연극예술’이 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극단 노란리본은 연극을 통해 속에 쌓인 이야기를 세상에 통쾌하게 쏟아낸다.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며 자기 긍정의 순간을 마주한다. 관객들로부터 따뜻한 응원과 귀한 에너지를 받는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의 이야기 너머로 세상에 필요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극단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렇게 세월호 어머니들은 연극예술 속에 천천히, 그러나 깊이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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