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밥상을 차리는 일에 동참했다. 연수구 청학동, 시민 공간 ‘지금여기’에서 이틀 동안 점심 준비를 거들었다. ‘2025 여름 SOS-야호 여름방학이다!’는 이주 배경 학생들과 밥 먹고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첫날은 ‘방학돌봄마을학교’라고 써 붙였는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의견이 있어 둘째 날부터 이름을 바꿨다. 점심 밥상을 차려 놓으면 12시에 맞춰 아이들이 모여든다. 다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나눠 먹은 후 발효빵이나 컵케이크를 만든다. 커피박 공예와 북아트, 악기와 그림을 이용한 놀이 등 노는 프로그램이 열흘간 이어진다. ‘재미공작소’라는 과목명처럼 신나게 어울리도록 준비하고 운영하는 특별한 마을학교다.
인상 깊은 건 밥상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주방이 붙어 있는 공간에서 학생과 어른 합쳐 서른 명 남짓 식구가 먹을 식탁을 차리려면 음식량 예측부터가 난관이다. 이 각별한 식탁은 교실 앞에 붙은 다섯 나라 인사말이 보여주듯 다양한 음식문화를 고려한다.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들에겐 할랄 음식을 준비한다. 야채로만 맛을 낸 음식도 마련해 둔다. 어떤 음식에 손이 더 갈지 모르는 상태여서 모든 메뉴가 넉넉해진다. ‘수플레’는 계란 흰자로 거품을 내 팬케이크처럼 구워낸 빵이다. 시제품부터 하나 만들어 봉사자들 입에 넣어준다. 학생들이 좋아할 맛인지 묻는다. 당도와 폭신한 식감, 노릇노릇 구우려다 태우고야 만 빛깔에 대해 한마디씩 거든다. 준비해 온 메뉴에 감탄하면서 서로서로 솜씨를 보완한다.
감자를 깎으며 강판에 갈아 부친 감자전과 채를 썬 감자채전을 비교 품평한다. 보들보들하고 쫀득하게 씹히는 맛과 고소하고 바삭한 튀긴 맛을 견준다. 어느 맛이 아이들에게 더 잘 먹힐까 끝 간 데 없이 논의가 오간다. 어떤 말도 겉돌지 않고 최선의 맛으로 서로를 수렴한다. 기름진 잔칫집 냄새가 식당 겸 교실에 가득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밥상을 차리는 일이 누군가를 그리는 일이 된다. 그가 와서 음식을 보며 반색하고 식탁에 앉아 호호 하하 맛있게 먹을 장면을 상상한다. 이솝우화 속 두루미와 여우는 자기 맛에 상대방을 맞추려 들지만 지금 여기 식탁은 두루미와 여우는 물론이고 다람쥐, 토끼 취향까지 배려한다.
훌륭한 운동팀은 선수들끼리 소리를 내며 소통한다. 히딩크는 위계를 없애고 수평적인 의사소통문화로 한국 축구를 바꿨다. 식탁을 준비하는 매순간이 음식이 익어가는 숙성 시간을 닮아 일손들을 뒤섞는다. 별칭을 부르며 대등하게 주문하고 해 놓은 성과를 칭찬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버섯을 씻자고 하고 당근을 잘게 다지고 나면 닭가슴살을 결 따라 찢자고 한다. 지시는 없고 당부만 있다. ‘집에서 평소에도 잘 하시나 봐요.’, ‘어쩜 아이들 씹기 딱 좋은 크기예요.’ 으쓱하게 힘나는 말들이 공간에 넘실댄다. 고슬밥이라서 주먹밥 맛이 어떨까 싶어요. 이번 밥은 질척해서 부드럽게 먹히겠어요. 하트 모양 주먹밥은 시간이 너무 걸려요. 한 입에 먹기엔 이 정도 크기가 좋겠어요. 야채 주먹밥은 여기 따로 챙겨 둘게요. 말의 성찬이 음식에 앞서 공간에 가득하다.
드디어 취향 따라 골라 담은 음식 접시가 식탁에 나란하다. 아이들은 누구도 먼저 수저를 들지 않는다. 마지막 학생이 자리에 앉자 자연스레 노래를 부른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가 환대라면 여기야말로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환대하는 식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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