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득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입주자대표회의회장 및 동대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사건에서 채무자인 동대표 회장(A)이 관리소장과 공모해 담당 재판부에 입주자들의 동의를 받지 아니한 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보관 중이던 세대주, 직업, 차량번호, 가족 사항, 세대원 생년월일, 전화번호 및 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기재된 입주자카드 총 584장을 제출한 사건이 있었다.
검사는 아파트 동대표 회장이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함과 동시에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해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A를 기소했다. A는 처벌받아야 할까.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거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등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하는 예외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으며(제17, 18조),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는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행위 등을 해서는 아니 된다(제59조).
그러나 위 규정은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예컨대 재판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범죄혐의에 대한 방어권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소송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있다. 고소·고발 또는 수사절차에서 범죄혐의의 소명이나 방어권의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증거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형법 제20조에 따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 인정받아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원칙과 예외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위에 제시한 사례에서 원심은, 피고인과 개인정보처리자인 관리소장이 재판부로부터 석명을 받아 입주자카드를 증거로 제출했더라도 그 행위는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및 ‘누설’에 해당하며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허용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보아 A의 행위가 죄가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2025년 7월18일 선고 2023도3673 판결)의 판단은 원심과 전혀 달랐다. 즉, 대법원은 ①입주자카드를 담당 재판부에 제출하는 행위는 소송행위의 일환으로 평가되고 ②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삭제함으로써 침해의 위험성이 큰 정보에 대해는 어느 정도의 보호조치를 취했으며 ③관리소장은 입주자의 관리를 위해 적법하게 입주자카드를 작성·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고 ④입주자카드의 취득 과정에서 다른 법익을 침해했다는 사정은 기록상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해, 입주자카드를 담당 재판부에 제출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하다고 보아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개인정보는 전자상거래, 금융거래 등 사회의 구성, 유지,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데이터경제 시대를 맞이해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위 판결은 개인정보의 제공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판단기준의 하나를 제시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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