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1치는 왜 타구를 덮었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치는 화성 방어 시설물 중 기본 시설물이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치는 화성 방어 시설물 중 기본 시설물이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성 시설물과 치성 중에서 가장 위계가 낮은 기본 시설물은 치(雉)다. 의궤에 “적이 성벽에 붙게 되면 우리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을 쏠 수도 없고 적군은 갈고리나 몽둥이로 성의 밑바탕을 허물 것이다. 그러나 좌우로 마주하는 치에서 적의 양 옆구리로 탄환과 화살을 쏘면 비루나 운제를 어찌 설치할 수 있겠는가”라고 치의 역할을 설명한다. 비루(飛樓)는 트로이 목마이고 운제(雲梯)는 성을 오르는 사다리를 말한다.

 

이처럼 치의 주 기능은 적의 양 측면을 좌우 두 군데서 공격함으로써 적이 성으로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다. 치의 기능에 충실하려면 좌우 방어시설 간의 유효거리 결정과 치의 돌출길이 결정이 전략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화성에는 치가 여덟 곳 있다. 북동치, 서1·2·3치, 남치, 동1·2·3치다.

 

의궤에는 치 전체에 대해 공통으로 설명한 후 하나하나의 치에 대해서는 특이한 점이 있는 경우에만 개별로 기록했다. 특이 내용을 보면 북동치 경우 북동적대와 붙어 있는 점, 서1치는 타구의 위를 덮은 점, 서3치와 남치는 여장이 성안으로 들어온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오늘은 “서1치는 타구의 위를 벽돌로 덮었다”는 특이한 설계에 대해 살펴본다.

 

‘타구(垜口)’란 여장의 한 단위인 타와 타가 만나는 부분의 열린 공간을 말한다. 3개의 총안 구멍이 있는 한 단위를 타로 보면 된다. 타구의 기능은 적으로부터 몸을 피하면서 동시에 열린 부분으로 적을 엿보거나 사격을 하는 공간이다. 타구는 매우 좁은 틈이므로 우리 병사가 몸을 숨길 공간이 넓다. 반면에 양쪽이 모두 날카로운 각을 이루고 있어 감시할 수 있는 범위는 크게 확장된다. 은폐와 감시, 공격을 주 임무로 한다. 매우 과학적이며 신묘한 설계다. 수원화성의 큰 자랑거리다. 이래서 타구가 없는 여장은 상상할 수 없다.

 

서1치에서 남쪽을 보면 팔달산 능선 높이가 서1치 여장보다 높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서1치에서 남쪽을 보면 팔달산 능선 높이가 서1치 여장보다 높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복원된 현재 서1치는 여장이 평여장이고 총안만 뚫려 있다. 의궤에 언급된 타구는 없다. 복원이 원형과 너무 다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지금의 서1치는 모양만 치다. 원래 기능을 할 수 없는 치라는 말이다. 현재의 모습이 원형과 얼마나 다를까.

 

복원된 서1치에는 총안 9개, 타구는 없고 현안 1개가 있다. 원형은 총안 15개, 타구 6개, 현안 1개가 배치돼야 한다. 복원이 원형보다 총안 6개가 적고 타구는 아예 없다. 복원을 너무 잘못했다. 여장에는 과학적이며 전략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위계가 가장 낮은 하찮은 시설물이지만 복원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타구를 없앤 것은 치의 2대 장점인 자기 몸을 숨기기 잘하고 적을 엿보기 잘하는 두 기능뿐만 아니라 공격 기능도 아예 없앤 것과 마찬가지다. 타구는 5치의 좁은 틈이지만 양쪽 여장에 날카로운 각도를 안팎으로 줘 몸을 충분히 감추고 시야를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신묘한 구조다. 너무나 아쉬운 복원 오류다.

 

서1치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기록 “서1치는 타구의 위를 벽돌로 덮었다”란 무슨 말일까. 서1치 여장은 원성에 설치된 여장과 원래 같은 모양인데 다만 타구 위를 벽돌로 덮었다는 점이 특별하다는 의미다. 타구 위에 지붕을 한 형태다. 왜 타구의 위를 모두 벽돌로 덮었을까.

 

서1치 정면으로 숙지산이 보인다. 여장보다 높이가 높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서1치 정면으로 숙지산이 보인다. 여장보다 높이가 높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답은 서1치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화성 여덟 곳 치에서 서1치만의 유일한 특징을 찾아야 한다. 바로 서1치가 위치한 입지다. 서1치는 팔달산 북쪽 능선 위에 위치한다. 팔달산 정상 서장대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내려오는 능선 중간쯤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서1치 좌우의 시설물을 살펴보자. 남쪽은 팔달산 정상 쪽으로 경사를 따라 오르면 서포루(대포)가 있다. 북쪽은 아래쪽으로 경사를 따라 내려가면 서북각루가 있다. 다음으로 서1치 세 방향의 지형·지세를 살펴보자. 서1치 여장 너머 성 밖 지형을 보자. 남쪽 서포루 쪽은 팔달산 정상으로 향한 오르막 급경사면이고 북쪽 서북각루 쪽은 완만한 내리막 경사면이다. 정면 서쪽은 맞은편에 높은 숙지산이 있는 형국이다.

 

이런 서1치 지형·지세에서 화성 전체 치와 시설물 중 유일한 점은 무엇일까. 서1치 요해처가 두 곳이 있다는 점이다. 서1치 요해처란 적이 그곳을 점령하면 서1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고 적의 사격 유효거리 안에 있다는 의미다. 또 적이 쉽게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성 밖을 말한다. 서1치 요해처 두 곳은 어디일까.

 

서1치 여장 높이로 수평선을 그어 더 높은 성 밖 장소가 보이면 그곳이 요해처가 된다. 하나는 남쪽 서포루 밖 팔달산 능선이다. 이곳은 서1치 여장 위보다 더 높은 지형이다. 위치는 성 밖이다. 그리고 서1치까지 거리가 120보로 활쏘기 과녁 거리 145보에도 못 미치는 유효사거리 이내다.

 

다른 하나는 서쪽 전면 숙지산 능선이다. 이곳도 유효사거리 이내 거리이고 성 밖이며 서1치 여장 위보다 높은 곳이다. 화성 16개 치성 중에서 오로지 서1치에만 요해처가 있는 셈이다. 성 밖이고, 자기보다 더 높고, 유효사거리 이내인 요해처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병사가 적에게 몸이 노출되고 머리 위에 총탄이 날아들 것을 생각한다면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서1치에 대책이 필요했다. 바로 타구의 위를 덮는 것이다. 비록 타구 위를 덮은 벽돌 덮개는 아주 작은 시설이지만 적에게 노출되는 병사에게는 큰 은폐시설이다. 타구 앞 병사가 머리를 노출한 것과 은폐한 것과는 실질적, 심리적 차이가 크다.

 

현재의 서1치는 원형과 다르게 타구가 전혀 없는 상태로 복원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현재의 서1치는 원형과 다르게 타구가 전혀 없는 상태로 복원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당시에는 높이 자체가 방어와 공격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화성에는 ‘높이’라는 전략적 요소만을 목적으로 설계한 시설물이 있다. 산상서성, 문루, 공심돈, 노대, 적대가 바로 높이 자체로 승부를 거는 시설물이다.

 

타구의 윗면을 벽돌로 덮은 여장은 서1치만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 돈(墩)과 포루(舖樓)는 여장의 타구를 모두 폐쇄형으로 했다. 타구 위를 모두 지붕으로 덮었다. 서1치와 유사한 이유다. 이런 폐쇄형 타구의 전략적 본질과 의미를 알고 복원에 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치는 시설물 중 간단하고 미미한 기본 시설물이나 성으로 접근하는 적에게는 매우 두려운 존재다. 오늘은 서1치 벽돌 덮개(蓋以甓)에서 가성비 최고의 전략시설을 병사에게 선사한 정조의 전략적 의도를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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