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동행의 축복

안동찬 새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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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누가 가장 행복한 인상을 사는 것일까. 비행기 일등석을 타는 인생이라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삼등석 맨 뒷자리에 앉아 가는 인생이라고 다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럼 누가 가장 행복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타고 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가장 편하고 가장 행복한 인생이다.

 

그러니 인생길을 혼자 걸어가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라. 어릴 적 나는 강원도 시골에서 자랐다. 산속의 밤은 도시보다 일찍 시작된다. 산 넘어 옆 동네에 이모 집이 있었다. 종종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밤길을 나서 이모 집에 마실을 가시곤 했다. 낮이라면 혼자서도 갈 수 길이지만 밤길에는 항상 어린 나를 데리고 이모 집에 가서 놀다 오셨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은 어두운 밤에 이모 집을 들어서면 이모가 무척 반기시면서도 “아는 뭐 하러 데리고 왔나”라고 하시면 어머니는 “언니, 밤길에 얘라도 데리고 오면 든든하다”고 하셨다.

 

그렇다. 밤길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고 오히려 짐이 될 것 같은 어린아이 하나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한 것이 인생이다.

 

신학교 다닐 때 종종 삼각산에 올라가 산 기도를 한 적이 있다. 금요일까지 대전에서 공부하고 토요일과 주일은 서울 집에 가서 교회 일을 했다. 토요일 밤에 성가대 연습과 교회학교 교사 훈련까지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서둘러 산 기도를 위해 혼자 삼각산에 올라갔다. 그때 막대기 하나, 돌멩이 하나를 손에 들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목자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 하나면 양 떼는 안전할 수 있다.

 

밤길에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다가오면 손에 있는 돌멩이, 막대기보다 먼저 인사하는 것이 최선이다.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도 당연히 나와 같은 경계심과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인사를 받고 덧붙여 “편안한 길 되세요”라고 축복을 나누게 된다. 인사를 나누기 전에 불편했던 관계가 먼저 인사를 함으로써 동지가 되고 내 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잘하는 것임을 유학 생활 중에 깨달았다. 넓은 땅에 사람이 흔하지 않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면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 먼저 인사를 한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경계를 풀고 그에게도 평화의 시그널을 보내므로 안전한 생활을 할 뿐 아니라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고 전문화되기에 좋은 만남, 좋은 이웃이 더욱 필요하다. 초등학교 1학년 방학을 맞은 손주가 집에 와서 놀다가 “지금은 AI 시대야”라고 하는 말이 신기하게 들려왔다. AI 시대, 첨단과학 다 좋은데 좋은 친구, 좋은 만남이 없다면 그는 불행하게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이 적어도 동행하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임을 늘 기억하고 평생 동행의 축복이 있으면 좋겠다. 죽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혼자 가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조차도 동행하는 인생이 있다. 그리고 죽음 너머에 그를 기다리고 환영하는 동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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