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한국보훈포럼회장·영남이공대 교수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은 일제의 조선 강제 침탈,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단발령 사건 등이 있으나 그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일제에 항거한 대규모 국민저항운동인 3·1운동으로 전국 각지에서 나라 잃은 슬픔에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제의 서슬 퍼런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걸고 들불처럼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전국적으로 확산된 비폭력 국민저항운동이었다.
의성지역도 3·1운동의 여세를 몰아 안평면 3·15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거세게 도리원 등 인근 지역으로 확산됐는데 그 중심에 본동 이수원 선생이 있었다. 본동 선생은 1874년 3월4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에서 출생했다.
본동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살펴보면 그 당시 45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의성 3·15 독립만세운동 당시 핵심 주동자로 독립운동에 대한 확산성 측면에서 기여도가 실로 적지 않은 인물이다. 특히 700여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끄는 핵심 리더자로 활동했으며 그 역할을 면밀히 살펴볼 때 독립운동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 상징성이 매우 큰 인물이다.
국가보훈부, 국가기록원 판결문 등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선생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먼저 생각해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투철한 구국정신과 일제의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던 국민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훈학적 관점에서 만기 옥고를 치른 이후 일제로부터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혀 요주의 시찰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감시와 협박 속에서도 일제 밀정 역할이나 친일로 전향하지 않은 그 지조와 결기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애국심이 매우 인물로 높이 평가된다.
한편 본동 선생은 72세의 초고령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1943년경 만주 서간도로 가다 일제 검문에 막혀 신의주 광성면에 정착해 수년간 음지에서 광복 전까지 독립운동을 했다는 후손의 추가 자료에 근거해 보훈학적 관점에서 신의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내용을 중심으로 국가보훈부 공훈발굴과에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 서훈 상향 등급 조정 신청과 함께 국가보훈부, 경북 독립운동기념관 등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해 후세들의 애국심 함양과 보훈문화 확산 및 명예 선양이 필요하다.
세부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면 일차적으로 의성군 안평 3·15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으로 주요 근거지인 대사리 마을회관에 본동 선생을 위시해 그 당시 같이 독립운동 주동자로 활동한 이종출, 이양준, 김옥돈, 정갑이, 배세태, 이리경, 김길도, 정만업, 정부석, 이북술, 이원춘, 이만준, 이맹준 선생 등 독립운동가 사진, 유품 및 공훈록 전시와 함께 가족사진 및 아카이브 형태로 보존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현재 방치돼 있는 생가 복원 및 대사리기념관 설립 현장 탐방 견학 장소로 찾아올 수 있도록 전국적인 명소로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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