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젠 대선 '등용문'... 중앙정치 에이스 부상 [창간 37주년, 파워 경기]

민주 이재명 vs 국힘 김문수 도지사 출신 맞대결
21대 대통령 배출... 정치 리더십 검증 무대 인증
‘대권 무덤’ 징크스 깨고... 차세대 권력 주무대로

한때 ‘경기도는 대권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었다. 역대 경기도지사들이 대권에 도전했다가 번번이 낙선하면서 경기도는 중앙정치의 변방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경기도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정치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출신, 국회 역시 경기도 기반 인사들이 주도하면서 여야 모두 경기도를 차세대 권력의 주무대로 삼고 있다. 수도권 권력 지형의 중심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동하고 있다. 지방 권력이 중앙을 추월하는 ‘지방 반격의 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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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부터) ①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이재명 대통령. ②6월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성남 야탑광장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③5월26일 오산역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 ④4월28일 민주당 경선 후보 캠프 해단식에 참석한 김동연 경지지사. 경기일보DB·연합뉴스

 

■ 대선 주자의 무덤이었던 경기도

경기도지사 출신 거물급 정치인들은 번번이 대권에서 쓴잔을 들이켰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된 이인제 전 지사는 1997년 제15대 대선에 출마를 선언, 현 국민의힘 계열인 신한국당 경선에 도전했지만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경선 결과에 불복하면서 탈당, 독자 출마를 위해 국민신당을 창당했지만 낙선했다.

 

민선 3기 손학규 전 지사는 세 번 대권 도전에 나섰으나 모두 후보 경선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밀려 탈락했고 2012년에도 민주통합당 경선에 나섰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졌다. 2017년에는 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안철수 후보에게 패해 결국 출마가 무산됐다. 민선 6기 남경필 전 지사도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바른정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유승민 후보에게 밀려 탈락하는 등 계속된 낙마에 지역 사회 및 정치권에는 ‘경기도지사 무덤론’이라는 자조 섞인 하소연이 쏟아졌다.

 

■ 경기도지사 출신 맞대결... ‘대선 등용문’으로

하지만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은 경기도가 정치 전면에 화려하게 복귀한 무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직 경기도지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펼쳤고 경기지역 국회의원인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도 출마해 8%대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경기도는 ‘대선 주자들의 무덤’에서 ‘대선으로 가는 등용문’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단순한 유세 무대를 넘어 국정 비전의 시험장이자 전국 단위 정치 리더십을 검증받을 수 있는 무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권 주자들은 ‘자신의 주무대’였던 경기도에서 비전과 앞으로의 목적을 밝히며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을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기본소득, 지역화폐 정책을 전국적 이슈로 끌어올렸고 김문수 후보는 자유경제구역 조성 등을 통해 보수 진영의 경제 비전을 제시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김동연 현 지사도 청년 기본소득, 지역 혁신 정책을 추진하며 전국적 인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이재명 후보가 최초의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대선은 경기도지사의 무덤이라는 징크스는 완벽하게 깨졌다. 

 

■ 달라진 위상... 경기도 1위는 곧 선거 승리

경기도 출신 정치인들이 잇따라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하는 ‘경기도지사 대권 직행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은 경기도의 달라진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경기도는 2023년 기준 593조원(지역내 총생산)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 광역지자체다. 더 이상 ‘서울의 그림자’가 아닌 농촌과 첨단 산업, 청년층과 고령층, 다문화사회와 중산층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압도적인 체급을 자랑하고 있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최대 표밭’을 갖고 있어 선거의 향방은 경기도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경기도의 총선 지역구는 60석, 지선 지역구는 지난 2022년 기준 △시장·군수 31곳 △도의원 156곳 △시·군 기초의원 463곳 등으로 전국 광역지자체 중 가장 많다. 이미 역대 대선에서 경기도는 사실상 ‘승부처’이자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대 대선을 제외하고 1987년 13대 대선부터 2017년 19대 대선, 그리고 2025년 21대 대선까지 경기지역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모두 대통령에 당선됐다.

 

■ ‘정치 중심지’ 경기도로 집결하는 대권 잠룡들

정치권에서는 ‘정치 중심지’ 경기도를 다뤄본 정치인이 국가 전체를 다룰 수 있다는 신뢰를 얻기 쉽다는 분석과 함께 대권을 준비하려면 경기도가 필수 관문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경기도지사 출신’이라는 새로운 대권 루트가 본격화하면서 대선을 바라보는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경기도는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다. 이미 다가오는 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 잠룡들은 경기도지사 출마를 고려하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에서는 현직 김동연 지사를 비롯해 △추미애(하남갑) △조정식(시흥을) △정성호(동두천·양주·연천갑) △김태년(성남 수정) △윤호중(구리) △윤후덕(파주갑) △김영진(수원병) △이언주(용인정) △박정(파주을) △김병주(남양주을) △염태영(수원무) 등 현역 국회의원들과 박광온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김동연 지사와 맞대결을 벌여 역대 최소 표 차이로 낙선한 김은혜 의원(성남 분당을)의 재출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또 경기도 정무부지사 출신인 원유철 전 의원과 4선인 유승민 전 의원, 현역 김선교 의원(여주·양평)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대선에 뛰어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화성을)도 도지사 하마평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는 “인구가 많고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한 경기도의 수장은 도정 운영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다른 광역지자체장보다 대권 도전에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경기도지사 출신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된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경기도는 중앙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지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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