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Metro] 우리고장 가볼만 한 곳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하나
이태조 행궁지 | 이성계 머물며 죽은 아들 넋기려
오행로를 지나 소요산관광지원센터 앞에 도착하면 이태조 행국지 표석을 만날 수 있다. 이 표석은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가 머물던 별궁이 이곳에 있었다는 표시로, 정확한 행궁터 위치는 기록이 소실돼 알 수 없는 상태다. 태조 이성계는 7남과 8남, 사위인 방번과 방석, 이제가 희생당한 1차 왕자의 난 이후 세속에 관심을 끊고 불사에 매달린다. 태조는 태종이 즉위한 뒤 한동안 한양을 떠나 소요산과 함주에 머물었는데, 태조가 머물던 곳이 당시 소요산에 있던 것으로 전해지는 별궁이었다. 1401년 태조가 소요산에 온 뒤 이듬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별궁은 1405년에 산불로 소실됐다고 한다. 실록에는 태조가 소요산에 머문 것은 주변에 명사에서 죽은 두 아들과 사위의 명복을 빌고자 했을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둘
요석공주 별궁지 | 원효대사와 애틋한 사랑
연리지문과 요석공주 공원을 지나면 야외음악당 근처에서 요석공주 별궁지 표석을 발견할 수 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는 삼국유사 원효불기에서 찾을 수 있다. 요석공주는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의 둘째 딸로 백제와의 전투에서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됐다. 이 즈음 가부가(柯斧歌)를 부르고 있는 원료대사를 본 태종무열왕이 원효대사를 요석궁에 머물게 했고, 3일간 요석공주가 있는 요석궁에 머문 원효대사는 파계한 뒤 스스로를 소성거사, 복성거사로 칭하며 전국에 무애사상을 전파했다. 원효대사가 떠난 뒤 요석공주는 신라 10현중 한명으로 불리는 설총을 낳았다. 후에 원효대사는 소요산에 머물며 지금의 원효대에서 수행을 이어갔는데, 이 시기에 요석공주도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에 들어와 조그만 별궁에서 매일 아침 원효대를 향해 삼배를 드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태조 행궁지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 터가 소실됐지만, 1978년 양주군지에는 지금의 원효폭포 인근(일주문 근처)에 요석궁터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셋
원효폭포 | 유혹하던 여인 관세음보살로 변해
자재암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을 지나 폭포 소리를 따라가면 원효대사가 관음을 친견했다는 설화가 남아있는 원효폭포를 볼 수 있다. 수도를 하고 있는 원효대사에게 길을 잃었다며 묵어가기를 청한 여인이 이 곳에서 원효대사를 유혹했지만, 원효대사는 심생즉종종법생 (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마음이 나면 모든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모든 법이 멸한다는 뜻의 이 말을 들은 여인은 폭포를 타고 올라가 관세음보살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넷
원효대·관음봉 | 투신 하려는 순간 도를 깨우쳐
원효대사가 좌정한 채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원효대에는 도를 구하던 원효대사가 체념하고 스스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는 순간 도를 깨우쳤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관음봉이라는 지명 또한 원효폭포에 전해지는 설화의 영향을 받아 관음봉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자재암 | 완벽한 ‘반야바라밀다심경’ 발견
자재암(自在庵)은 신라 무열왕 1년인 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고찰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기거했다는 전설의 영향으로 무수한 승려들이 수도차 거쳐가고 있다. 974년에 태조의 명으로 중건돼 소요사로 개칭됐다가, 1153년에 화재로 소실됐다. 1872년 원공과 제암이 이 절의 44칸을 모두 중창하고 영원사라고 개칭했으나, 이 역시 1907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됐다. 1909년 성파와 제암이 절을 다시 중창하고 자재암으로 바꿨으나, 6·25전쟁으로 다시 소실돼 1961년부터 대웅전과 요사채 삼성각, 일주문 등이 다시 재건됐다. 1994년 암자의 서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낙장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발견돼 보물 1211호로 지정됐다.
여섯
원효샘 | 마음 더러운 사람이 샘물 마시면 벌레가
원효샘은 원래 굴 안에서 솟아나던 샘이었으나, 굴을 나한전으로 개사하면서 나한전 앞으로 물을 끌어와 용머리 모양의 석조상으로 만들었다. 이 곳은 원효대사의 덕행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식수가 부족하던 차에 원효대사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발견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마음속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물을 마시려 하면 물속에 실그림자 같은 벌레가 꿈틀거리는 형상이 보여 물을 마시지 못한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동두천=이호진기자 hj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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