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게 있어 육로로 대륙을 연결하는 것은 최대의 숙원이다. 만약 이 연결이 가능하면 한국은 ‘신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끝점이 되는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거대한 대륙 경제권의 소외지역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륙 연결의 꿈은 남북 철도도 있지만 그간 다양한 구상으로 진행됐다. 중국 옌타이와 한국 인천, 평택 등과 협의된 열차 페리도 있고, 산둥반도와 한반도를 잇는 해저터널도 여전히 이야기되는 사항이다. 100조원 가량이 소요되는 한중 해저터널이 이야기 되는 것은 우리의 대륙 연결이 그 만큼 소중하고, 중국 역시 한국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7월 3일 출발하는 유라시아 철도 횡단은 그런 점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혁명적인 여정이다. 경기 1000년을 맞아 추진되는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평택항이다. 고대부터 중국을 잇는 당항성의 한 부분이었던 평택항은 한중 물류의 핵심 거점 가운데 하나다. 경기도는 물론이고 충청권에 포진한 전자, 자동차, 기계 산업의 중심 거점으로 지금도 한중을 잇는 핵심 항구다. 평택에서 출발한 유라시아 열차 탐사단은 중국 롄윈강에 도착해 긴 철도 대장정을 시작한다.
중국 지앙쑤성의 대표적인 항구인 롄윈강은 중국이 추진하는 중국횡단철도(Trans China Railway, 中國橫斷鐵道)의 공식적인 시작점이다. 중국에서 서방으로 향하는 철도 길은 베이징를 거쳐서 몽골을 통과하는 TMGR, 만주횡단철도인 TMR 등도 있다. 하지만 명실공히 중국을 대표하는 횡단철도는 롄윈강에서 시작해 시안, 우루무치를 거쳐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TCR이다. 그래서 롄윈강 항에 가면 그 뜻을 알리는 그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서 시작한 철로의 서쪽 끝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이다. 그곳까지 전체 길이는 10900킬로미터이다. 중국이 이 구간을 부르는 명칭은 ‘롱하이철로’이지만 원명은 ‘롱친위하이철도’다. 실크로드를 뜻하는 롱과 샨시, 허난, 동해를 경과하는 철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상은 중국이 근대를 시작하던 1905년부터 나왔다.
하지만 이 구상을 가장 강조한 것은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해상과 육상으로 동서를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자신의 정책 아젠다로 제시하고,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신 실크르드’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발족한 AIIB는 물론이고, 실크로드 기금이나 브릭스펀드 등을 통해서 이미 다양하게 투자되고 있다.
시안, 란저우, 둔황, 우루무치 등을 경유한 탐사단은 호르고스를 통해 중국을 나와 카자흐스탄으로 향한다. 호르고스는 중국 정부가 육상의 선전 특구를 표방하며 만든 변경 경제 교류 특구다. 변경을 열어 다양한 혜택을 주는 호르고스는 스탄 국가들이 철도와 도로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여권만 있으면 마음대로 두 나라를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시안에 만들었던 장안(長安)으로 만들어가는 곳이다.사드로 인해 주춤하는 분위기지만 이곳에서 화장품, 의류 등 한국 제품의 인기는 적지 않아, 새로운 동대문과 남대문으로도 가능성을 열어가는 곳이다.
카자흐스탄은 유연한 정치적 선택으로 동서교역의 새로운 축이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특히 올해는 수도 아스타나에서 엑스포를 개최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6월10일부터 9월10일까지 ‘미래 에너지’를 주제로 열리는 이 엑스포를 통해 동서를 잇는 교역도시로 탄생을 예고한다.
유라시아 철도는 무역이 오가는 공간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철학이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4차 산업을 선도하는 독일과 최근 4차 산업을 국가 핵심 아젠다로 부각하는 중국의 소통에 있어 철로는 물리적, 사상적으로도 가장 소중한 소통 공간이다.
1976년 중국을 만들었다는 마오쩌둥이 죽고, 얼마간의 권력 투쟁 끝에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다. 그가 내세운 경제 발전의 철학은 선부론(先富論)이다. 동남쪽 연해 지역을 먼저 발전시켜 우선 중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바톤을 물려받는 시진핑의 과제는 지역간 경제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축은 서쪽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동쪽에 있는 한국은 투자나 교역에서 소외될 위험성을 충분히 안고 있다.
그 문제를 풀어가는 유일한 해법은 길이고, 대표적인 것이 철도다. 이번 유라시아 철도 탐사단의 여정은 그 해법을 찾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국-카자흐스탄의 국경에 위치한 중-카 협력 호르고스 자유경제지대 개발 프로젝트는 1992년 홍콩기업에 의해 최초로 제안되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중국-카자흐스탄 국경 호르고스 지역에 소규모 국제자유무역도시 건설에 대한 제안으로 1994년 2월 중국측 지방정부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었다. 이후 2003년 중국-카자흐스탄 양국 정상이 국경지대 국제자유무역지대 설립에 합의하여 부활되었다.
2004년 3월 24일 호르고스 중국-카자흐스탄간 국경 협력을 위한 국제센터설립 협정 서명, 2005년 7월 4일 중국카자흐스탄 호르고스 국제 국경협력 센터 관리 협정체결에 따라 프로젝트는 가시화되었다.
이후 중국, 카자흐스탄 양측에서의 건설공사를 거쳐 2012년 4월 호르고스 자유경제지대(the Khorgos Free Economic Zone:FEZ)가 개설되어 카자흐스탄과 중국간 국경협력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으며, 양국간 경제 및 교역 관계 증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내의 경제 및 교역관계 증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에 의해 호르고스 자유경제지대는 중국에서 출발한 물류가 호르고스 국경역을 통과하여 카자흐스탄 및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으로 이어지는 수송효율성이 극대화된 운송루트로 기능하고 있다.
운송루트 이외에도 호르고스 자유무역지대의 발전 측면에서 경제개발구역은 면적이 73㎢로 산업단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호르고스 경제개발구역 프로젝트가 자유무역지대의 경제적인 잠재력 증가, 중국산 제품의 카자흐스탄 및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로의 지속적인 진출, 유럽 시장 진출확대, 중국 서북부의 경제발전, 안보 및 안정성 유지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지대 개발 및 확대와 아울러 철도물류 차원에서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다양한 철도루트들이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설 및 운영되고 있다. 중국 롄윈강 항구에서 시작되는 서중국-서유럽 고속도로 구간 가운데 중국-카자흐스탄 구간은 호르고스를 통과하여 카자흐스탄 영내로 2천639㎞가 지나가고 있다.
2011년 12월 호르고스 자유무역지대를 관통하는 제2 중-카 철도건설을 시작하여 호르고스 국경을 통과하는 새로운 철도를 카자흐스탄 서부 카스피해 악타우항까지 연결함으로서 중국에서 출발한 철도 물류는 호르고스를 거쳐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 및 유럽으로 이어짐에 따라 중국-카자흐스탄의 쌍무 경제 및 교역 협력뿐만 아니라 중국과 여타 유럽 국가들간의 경제 및 무역관계에서의 중요성도 더욱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유럽행 철도물류 측면에서 호르고스 자유무역지대가 가지는 중요성은 중국과 카자흐스탄 양국의 협력에 의해 건설된 철도물류 환적기지인 ‘호르고스 동부게이트’에서 상징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 호르고스-동부관문 특별 경제지역은 2014년 7월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유럽-중국 물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실용주의에서 기인했다.
중국의 유럽행 육상물류는 호르고스 동부게이트 철도물류 환적기지 설치이전에는 물동량 확대에 근원적인 제약이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는 철도 물류는 중국-카자흐스탄 국경 도스틱역에서 철도 궤간 차이에 따른 차대 교환 작업을 실시하거나 화물을 환적해야 했기 때문에 물류의 정체 및 지체는 불가피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카자흐스탄 정부는 철도 차대 교체가 아닌 더 효과적인 극복방안을 제안하였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열차간 컨테이너 환적이 가능한 대형 크레인이 설치된 철도물류 환적기지이다.
철도화물 환적기지 시스템은 상이한 두 철도 지역을 연결해주는 대륙간 화물 운송의 릴레이 시스템 역할을 위해 만들어져 2015년 7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년간 54만 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있으며, 6개 철도선로가 설치되어 동시에 복수의 열차에 실린 컨테이너를 대형크레인을 이용하여 선박의 컨테이너 화물 환적과 동일한 형태로 신속한 대규모 철도 컨테이너 환적을 실현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중-카를 연결하는 새로운 철도연결거점의 부각은 이른바 유라시아 대륙 내부 철도를 통한 한국의 대유럽 진출전략의 재검토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을 통과하여 러시아나 중국으로 연결되는 철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한국의 유럽행 육상물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 치우쳐 있었는데, 호르고스 철도환적기지를 경유하는 새로운 유럽행 철도물류 루트의 출현은 중국횡단철도(TCR)을 통한 한국의 유라시아 철도물류 확대 가능성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는 두 거점 가운데 서해안 거점에 해당되는 평택항은 중국을 통과하여 유럽으로 가는 최단거리 철도물류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경기도 및 한국정부 차원에서 평택과 중국철도물류의 안정적인 연계 구축을 통한 이른바 평택항-중국-카자흐스탄을 통과하는 유럽연결 철도 루트 모색 및 활성화의 필요성과 가시화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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