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의 날…“드디어 만난다”vs“도대체 언제 만나나”

▲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20일, 남측 이산가족 89명은 북측의 ‘헤어졌던’ 가족 혹은 ‘새로운’ 가족과 첫 인사를 나누며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

 

반면 89명에 들지 못한 전국 5만 7천여 명의 이산가족들은 아쉽고도 부러운 감정을 전하며 희비가 엇갈린 하루를 맞아야만 했다.

 

강원도 철원 인근 북쪽 산골 마을에서 자란 정학순 할머니(81)는 6ㆍ25전쟁 때 부모님과 피난길에 오르면서 오빠와 헤어지게 됐다. 부지런하고 웃음이 많던 오빠는 당시 16살로, 마을 청년들 소집에 따라나섰다가 이후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이날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정 할머니는 “오빠가 전쟁에 소집된 사이 가족이 피난길에 오르게 됐다. 전쟁이 끝나고 오빠가 혼자 텅 빈 집으로 돌아갔을 모습을 상상하면 항상 가슴이 먹먹하다”며 “이제 오빠는 세상에 없지만 오빠의 흔적을 기억하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니 이번 상봉은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정 할머니는 오빠의 아내(74)와 아들(45)을 만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올해로 92세가 된 이금섬 할머니 역시 피난길에서 남편, 아들과 헤어져 생이별을 견뎌왔다. 이 할머니는 아들 리상철씨(71)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오자마자 아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들 리씨도 어머니와 함께 울다가, 문득 한 장의 사진을 건네며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고 말하곤 다시 오열했다.

 

이러한 이산가족 상봉을 ‘TV로만’ 지켜보는 또 다른 이산가족들은 눈시울만 적셔야 했다.

 

온종일 TV 앞을 떠나지 못한 박찬종 할아버지(82ㆍ수원)는 ‘이산가족’ 네 글자를 듣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함경남도 장진군 북산(北山) 아래 살던 박 할아버지는 1952년 8월 그믐날 캄캄한 어둠을 뚫고 아버지를 따라 걷던 중 아버지가 낯선 이에게 자신을 맡겨 그대로 혼자 남쪽으로 오게 됐다.

▲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선택되지 못한 황해도 출신 이산가족 박찬종 옹(81)이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모습을 시청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 옹은
▲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선택되지 못한 황해도 출신 이산가족 박찬종 옹(81)이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모습을 시청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 옹은 "전쟁통에 부모님과 여동생 3명을 두고 내려왔다" 라며 "제발 가족들 생사라도 알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김시범기자

 

그는 “당시 폭격 맞은 마을엔 인민군, 중공군만 가득했다. 아버지는 제가 군부에 끌려가지 않도록 몰래 남한으로 보냈던 것”이라며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애써 울음을 삼켰다. 그러면서 “헤어진 부모·형제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중국 연변을 찾아 북녘을 향해 계속 이름을 소리친 적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북한 쪽으로 발을 내딛자 두만강물이 발목에 닿았고, 그때 ‘이대로 북한까지 건너가자’는 생각도 했다”며 “어느덧 여든이 넘었지만 하루빨리 통일이 돼 이 땅의 모든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길 학수고대한다”고 말했다.

 

1ㆍ4 후퇴 때 한 살 터울 여동생과 헤어진 강영숙 할머니(84ㆍ수원) 역시 “2주 후에 만나자고 인사했는데 60년이 훌쩍 흘렀다”며 “지난해 102세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북에 두고 온 여동생(이모)과 막내딸(동생)을 보는 게 소원이라 하셨는데 끝내 이루지 못해 참 속상하다. 이산가족 만남이 정례화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연우기자 관련기사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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