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인해 매제(妹弟)와 남동생을 영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남동생은 공사현장에서 일한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머무르는 모가실내체육관은 온통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했다. 일부는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고자 이를 악물었고, 누구는 큰 소리로 오열하기도 했다.
30일 이천의 모가실내체육관에서 만난 A씨(44)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A씨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인지 작은 목소리로 본보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A씨는 “이번 화재로 매제와 남동생, 가족 2명을 볼 수 없게 됐다”며 “남동생은 매제의 소개를 받고 이 공사현장에 작업하러 온 지 불과 2주밖에 안 됐는데…”라고 말을 줄였다.
이어 A씨는 “여동생의 연락을 받고 급히 현장으로 왔는데 아직 남동생은 시신 확인도 하지 못해 DNA 검사를 의뢰해놓은 상태다. 매제는 여동생이 확인했다”며 “지금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오고 계시는데 이미 상처를 많이 받았다. 충격이 커 외삼촌이 모시고 오는 중인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날 2층 실내체육관에는 전날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됐다. 분향소 주변은 유가족을 비롯한 조문객으로 수백여명이 북적였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할 만큼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느껴졌다.
군복을 입고 합동분향소를 찾은 B씨(26)는 전날 늦은 밤 사촌형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부대 내에서 듣고 급하게 휴가를 나왔다고 했다. B씨는 “평소에도 사촌형과 친형제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사촌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휴가를 나왔다”며 “다음 휴가 때 고기도 사주고, 드라이브도 함께 가기로 했는데 더는 사촌형을 볼 수 없다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울먹였다.
평소 희생자와 알고 지내던 동료들 역시 사망 소식이 믿기지 않는 듯 합동분향소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이날 현장을 찾은 C씨(40)는 “과거 공사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신원 확인을 해보니 사실이라 너무 충격적이다”라며 “젊은 나이에 고된 일용직 일을 하며 나중에 자기 가게를 차린다는 꿈을 갖고 있던 녀석이 이렇게 허망하게 갈 수가 있느냐”며 통곡했다.
합동 분향소로 향하는 계단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한 유가족이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슬픔에 잠긴 이들을 지나 분향소에 들어서자, 3단으로 이뤄진 제단에 전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망자들의 사진이 놓일 자리는 38칸이 준비됐지만,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자리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오후 3시50분, 승합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달려온 어머니는 “내 아들, 내 아들아”를 연신 외치다가 쓰러져 가족들의 부축을 받았다. 이어 분향소를 찾은 한 조문객은 “대한민국이 슬픔에 빠진 날인데 오늘 같은 날은 조기를 달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소리치기도 했다.
이내 분향소는 가슴 저린 통곡으로 가득 채워졌다.
세상에 남겨진 가족들은 마지막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망자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쏟아냈다. 몇몇 유가족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잠시 정신을 잃거나 몸에 힘이 빠져 일어서지 못했다. 입구에서 조화를 받던 한 조문객은 차마 제단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가서 형을 보내주고 오라”며 함께 온 가족에게 조화를 건네기도 했다.
아직 영정 사진이 도착하지 않아 조문을 기다리던 한 유족은 뒤늦게 도착한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대성통곡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아이고, 아이고... 어디 갔어, 어디 간 거야”라며 해소할 수 없는 슬픔을 토해냈다. 이제는 안아볼 수 없는 아들 대신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들을 꼭 끌어안을 뿐이었다.
이날 분향소에는 부모님을 따라 나선 어린 아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아직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슬피 우는 엄마와 아빠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한편 경찰과 소방, 국과수 등은 사망 38명 등 총 48명의 인명피해가 야기된 이번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의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고자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채태병ㆍ장희준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