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의 삶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한 지 닷새째를 맞은 3일. 유가족의 침통한 마음처럼 한껏 흐린 하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오전 8시30분께 찾은 이천 서희청소년문화센터 2층의 합동분향소. 이른 시간부터 이곳을 찾은 조문객들은 희생자의 영정 앞에서 슬픔을 토해냈다. 유족들은 사진 속에서 밝게 웃는 가족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설비공사에 참여했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제단 앞에 주저앉아 “어찌 나를 두고 가니…어떻게 엄마를 두고 먼저 갈 수가 있어”라며 울부짖었다. 남편을 먼저 보낸 젊은 미망인은 새하얀 국화를 손에 꼭 쥔 채 차마 제단에 올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울음을 터뜨렸다. 영정 앞에 꽃을 놓는 순간, 사랑했던 이를 정말 떠나보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빠의 품에 안긴 아기는 영정 사진 속 낯익은 삼촌의 얼굴을 가리키며 해맑은 모습인 반면,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국 카자흐스탄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형제는 수장 작업 중 참변을 당했다. 한국어가 서툰 유족은 화재 발생 당시부터 지원에 나선 경찰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이들 형제는 서로 다른 장례식장에 안치됐다가 이날 유족의 요청으로 한곳에서 잠들게 됐다.
분향소 이곳저곳에 주저앉은 유족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져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제단 곁에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에서는 이따금 망자의 이름을 부르짖는 통곡이 흘러나왔다.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군데군데 빈 곳이 보였던 제단에는 희생자 38명의 영정과 위패가 모두 채워졌다. 경찰은 전날 오후 6시께 마지막 1명까지 유전자 분석으로 신원을 확인, 희생자 전원의 신원을 파악한 상태다.
애초 합동분향소는 희생자 38명의 신원이 모두 확인되면 일반 조문객도 받을 예정이었으나, 아직 유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부와 지자체 인사의 조문도 이어졌다.
오전 10시께 합동분향소를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는 방명록에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안전한 대한민국 꼭 만들겠습니다’라고 적고 헌화했다. 이 자리에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송석준 미래통합당 의원(이천), 엄태준 이천시장 등이 함께했다. 조문을 마친 정 총리에게 유가족들은 “정부는 항상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며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을 아느냐”며 오열했다.
오후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찾아 각각 애도의 시간을 이어갔다. 조문을 마치고 유족과 만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유가족 대표 측은 이날 조문을 왔던 인사들에게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확실한 진상 규명과 함께 유족 동의 없이 이뤄진 부검에 대한 항의가 주를 이뤘다. 한 중국인 노동자의 유족은 숨진 동생이 버린 담배꽁초로 불이 난 것이라는 인터넷 댓글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박종필 유가족 대책위원회 회장에 따르면 사고 현장 인근 모가실내체육관과 합동분향소에 나뉘어 있는 유족들이 4일 오후 2시께 합동분향소 3층으로 모일 예정이다. 박 회장은 “현장에서 안전 수칙 등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등의 진상 규명이 먼저”라며 “보상이나 장례 절차는 이후에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오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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