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개학과 원격수업… 달라진 교실 풍경
Ⅰ. 갑자기 다가온 미래교육 : 너 어디서 왔니?
2020.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한 해가 될 것이다. 사상 초유의 개학 연기 및 온라인 개학 사태를 온몸으로 받아 부딪치고 느끼며, 아이들이 없는 교실에서 혼자 컴퓨터에 대고 수업을 하고 전화기와 실물 화상기를 들고 주절주절 교과서를 풀어나가는 이런 날이 오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현실적인 교실의 모습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선생님의 모습이다. 이제껏 교직 생활에서 실천해왔던 많은 교육 활동은 이제 더이상 일상적인 교육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 한 해였다. 쏟아지는 공문과 보도자료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한 문구. ‘강제 소환된 미래!’ 그래. 우리는 언젠가 교실의 모습이 바뀔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그날이 이렇게나 빨리 오게 되다니!
Ⅱ. 달라진 교실 모습 : 어떻게 변한 거니?
커다란 전지에 매직으로 글을 써서 사용하던 궤도부터 한글 작업한 것을 필름으로 출력해 사용했던 OHP, 나아가 파워포인트에서 동영상클립 및 유튜브까지. 수업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던 도구들은 지금까지 조금씩 발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라져 버린 교실에서 컴퓨터와 주변 기자재들은 보조적인 수단이 아닌 필수 수단이 됐다. 교사가 아닌 컴퓨터와 와이파이가 수업을 이끌게 된 것이다. 이게 웬 날벼락. 기계에 관심도 많지 않고 다루는 재주는 더욱 없는 내가 온라인 개학 및 원격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학교는 바빴고 나도 동료 교사들도 서로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일이 다반사였다. 우선 급한 대로 e-학습터와 프로그램들을 배우고 날마다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며 어떤 자료를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에도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시간은 무심히 흘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로 끊임없이 고민했다.
Ⅲ. 너의 눈을 보는 순간 : 그래, 결심했어!
6월 3일. 드디어 아이들이 학교에 왔다. 한 반을 홀수, 짝수로 나눠 절반씩, 아이 개인 입장에서는 주 1회씩 오게 된 것이다. 화면 속 전화 넘어 목소리 속의 아이들이 아니라 실물의 아이들을 만나니 마음이 뭉근하게 아려왔다. 다섯 달의 긴 시간 동안 집에서 혼자 공부하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함께 뒹굴고 웃고 떠들어야 하는 너희들이 오롯이 지켜내고 참아내야 하는 시간들은 얼마나 가혹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날부터였다. 우리 동학년은 함께 의논하고 움직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이들을 위한 실재적인 수업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더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Ⅳ. 책으로 시작하는 우리 이야기 : 책상 위의 넓은 세상
자, 이제부터 수업 속에서 아이들과 실제 숨쉬기 시작한다. 온책읽기를 시작으로 교육과정을 촘촘하게 재구성해 1주일에 하루, 학교에 등교한 소중한 시간 동안 부지런히 아이들에게 원격학습을 안내하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진행한다. 아이들은 더이상 원격의 틀 안에서 길을 읽고 방황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손잡고 함께 가 주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서 넓은 세상이 펼쳐졌다. 교육과정 상상 이상의 담대한 도전! 교육청의 지원으로 ‘교육과정 상상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Ⅴ. 미술로 소통하며 마음가꾸기 : 선생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아이들의 눈을 보고 실제 아이들을 만나고 난 선생님들은 용기를 냈다. 이제 직접 영상을 찍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수업을 진행한다. ‘온라인 수업에서는 완전한 아마추어지만 너를 잘 알게 된 너의 담임선생님이야!’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는 쑥스러운 마음에 마스크를 쓰고 영상을 제작했다. 아이들이 과연 우리가 만든 영상을 좋아할까? 영상편집의 기술이 너무 어설퍼서 유튜브나 EBS의 양질의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 부끄러운 영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전화로 이뤄진 학부모 상담에서 학부모님들은 “선생님이 직접 찍어주신 영상을 보니 아이가 더 열심히 한다”고 이야기 해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 등교한 아이들이 영상에 대한 주문도 하나 둘 주기 시작했다. “선생님, 다음에는 제 이름도 보여주세요”,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너무 재밌어요” 등. 그래? 그럼 선생님이 용기를 내기 잘했구나!
Ⅵ. 이제는 프로젝트다!
8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생애전환기 MVP’ 연수는 정말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생애 전환기가 됐다. 올해 우리는 모두 코로나19 신규 1년차이기 때문에 늘 고민하고, 연구해야 했다. 눈을 돌려보면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연수가 정말 많았고 배움에 갈망한 우리 선생님들은 배움이 끝나기 전에 발령 받아버린 신규 1년차의 마음으로 도처의 손길들을 덥석덥석 잡았으며 배운 내용을 옆 동료들과 나누고 더 발전시켜 나갔다. 그렇게 해 우리가 선택한 수업은 교과재구성의 프로젝트 학습이었다. ‘어서와 경기도는 처음이지’를 시작으로 ‘함께하면 더 좋아’, ‘수학몬스터의 얼굴을 찾아줘’, ‘시골쥐와 도시쥐’, ‘교류원정대’, ‘안경제의 경제로운 생활’까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블랜디드 러닝을 실천했다.
Ⅶ. 동료교사에게서 찾은 희망 : 우리의 나아갈 길
‘신께서는 한 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은 열어놓으신다’는 말을 절감한 한 해였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교육 활동을 해야 할지 아이들의 유의미한 배움은 어떻게 하면 일어나게 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 가운데 나와 우리 동료교사들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힘으로 교과재구성 및 온라인상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좌절했으며 때론 의견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였고 화해하고 반목하기도 했다. 정말 힘들었던 지난 한 해였다. 하지만 절망과 좌절, 깊은 무기력 속에서도 이렇게 일어서서 앞으로 나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우리 각자의 힘이 아닌 집단지성의 힘이었다. 한 명 한 명 점처럼 떨어져 있는 선생님들을 모여서 선을 만들고, 그 선이 모이고 모여 면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교육공동체의 힘이었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우리 아이들과 교실에서 함께 호흡하며 뒹굴며 함께 배우며,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과 우리의 사랑을 바라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껏 해 온 것처럼 ‘얘들아! 선생님이 여기 있어!’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실재와 만날 수 있는 노력이 모이고 쌓일 때 동료성에 바탕을 둔 동학년의 힘과 학습공동체의 힘이 모여서 앞으로 나아갈 때 일상이 변해버린 이상한 학교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순아 안양 관양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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