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 미래 한국 안보전략 현실 직시 미중 경쟁 구조 속 균형 있는 전략 지향 국민 안전·국가 자율성·평화 원칙 지켜야
최근 한미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외교의 중심축이 다시 안보로 이동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운용 변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등 굵직한 현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중에서도 ‘전략적 유연성’은 단순한 군사 개념을 넘어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과 동맹 운영의 기본 원칙을 시험하는 중대한 과제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어 임무를 넘어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역외 지역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념이다. 이는 200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논의됐고 2006년에는 ‘한반도 방어 우선’과 ‘사전 협의’라는 두 원칙 아래 일정한 틀을 마련한 바 있다. 유연성은 전략의 본질일 수 있으나 그것이 한국의 안보 원칙과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는 매우 예민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이 개념은 9·11 테러 이후 대테러 작전의 세계화 속에서 부각됐으며 최근에는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에 따라 새로운 지정학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 특히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등 동북아의 역외 분쟁에서 주한미군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한국으로서는 자칫 원치 않은 외교적 부담을 떠안을 우려도 있다.
국민 여론 역시 이러한 복합적 딜레마를 인식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8%는 한미동맹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58%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외 개입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동맹을 지지하되 그 운영 방식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이중의 신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는 한미동맹의 미래와 한국 안보전략의 현실을 직시하며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만 정책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첫째, 주한미군의 존재 목적은 철저히 한반도 방어에 있다는 원칙이 재확인돼야 한다. 유연성 확대는 이 원칙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사전 협의와 국민 동의를 바탕으로 제한적으로 수용돼야 한다.
둘째, 전작권 전환은 단순한 지휘권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자주적 방위 역량을 실질적으로 확립하고 동맹 내 역할 균형을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선언적 목표를 넘어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과 전력 강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셋째, 외교·안보 정책은 반드시 국민 참여와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청회, 국회 보고, 전략 문서의 단계적 공개 등을 통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구조적 긴장 속에서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전략을 지향해야 한다. 주한미군 운용 변화가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 소통과 다자 외교를 통해 조율 능력을 키워야 하며 이것이 바로 동맹 관리의 핵심 역량이 돼야 한다.
일본과 호주 등 다른 주요 동맹국들도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자위대의 활동을 헌법적 제약 속에 둬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고 호주 역시 미국과의 군사 협력에 참여하면서 특정 분쟁 개입에 있어선 조건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동맹과 주권 사이의 긴장을 제도적으로 조율하려는 노력이자 실용적 균형의 모범이다.
전략이란 유연한 운용에 앞서 분명한 방향성과 가치에 입각한 선택의 기술이다. 방향 없는 유연성은 결국 흔들리는 외교, 모호한 협력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어디까지 조율할 것인가. 그 해답은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자율성, 그리고 평화를 향한 일관된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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