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국가들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이 국산 과일들의 가격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FTA로 직격탄을 받은 국산 포도는 재배면적이 줄면서 값이 오히려 오르지만, FTA 영향이 덜한 복숭아와 사과는 재배면적 증가로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 2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여름철 대표 과일인 복숭아는 올해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4% 안팎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인해 올여름 복숭아 가격은 특별한 재해가 없는 한 지난해보다 5~10% 추가로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7월 복숭아 백도 상품 4.5㎏ 기준 가격은 1만8천원선이었지만, 올해는 1만6천~1만7천원선에 형성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재배 면적이 2%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과는 평년보다 30% 이상 가격이 내려갔던 지난해보다 더 낮은 가격에 시세가 형성될 전망이다. 특히 심은 지 3~4년 후부터 과실을 맺기 시작하는 유목(어린나무) 면적이 지난해보다 5% 증가해 사과 가격은 중장기적으로도 하락이 예상된다. 복숭아와 사과의 재배 면적 증가는 FTA의 타격을 피하려는 농가들이 비교적 안전한 사과와 복숭아로 작목을 전환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월 포도 폐업농가를 대상으로 작목전환 의향조사를 한 결과, 복숭아(35%)로 작목을 전환하겠다는 농가가 가장 많았고, 이어 자두(22.2%), 사과(13.9%) 등으로 조사됐다. FTA 체결로 수입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는 포도는 올해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7% 감소할 전망이다. 상당수 포도 농가가 재배 면적을 줄이거나 포기한 것에 따른 것으로 올여름 포도 가격은 지난해 대비 10~15%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자연기자
업무상 재해.
1786년 가을, 두 명의 청년이 북한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들의 목표지는 바로 비봉(碑峰)이었다. 비봉이라는 지명은 봉우리 정상부에 석비가 있었기 때문이다.그 비는 무학대사가조선을 건국하면서 풍수에 관한 신묘한 이야기를 새겨 놓은 비라는 소문이 오랫동안 전해졌다. 두 명의 젊은이들은 마침내 비에 올라 탁본을 하고 비문을 해석했다.그리고는 이 비가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 아니라 553년(진흥왕 14) 신라의 국왕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이 땅이 고구려의 땅이 아닌 신라의 땅임을 선언한 비였음을 밝혀냈다.이 두 젊은이는 바로 훗날 학예일치(學藝一致)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추사 김정희였고 또 한명은 당시 세자빈의 오라버니이자 훗날 조선 정계의 거물인 조인영이었다.북한산 순수비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지난 역사의 복원이었다.그 역사의 복원으로 알게 된 것은 바로 북한산과 그 일대의 전략적 중요성과 왜 북한산성이 축성되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지역은 삼국 쟁패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고 따라서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그 험준한 북한산에 산성을 쌓은 것이기 때문이다.한반도의 중심부인 한성 일대는 단지 한반도의 중심부라서 중요한 지역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 다른 그 어떤 지역보다도 중요한 곳이다. 한강을 통해 수상 교통이 원활하고 강을 통해 다양한 어로(漁撈) 활동을 할 수 있다.또한 한강 일대는 너른 평야가 존재하여 토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통해 안정적 경제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멀리 압록강 건너 요동땅에서 소서노가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포함한 자신들의 세력을 거느리고 고구려에서 분리하여 한강 유역으로 정착한 것이다.한강 유역에서 백제를 건국하고 점차 영토를 넓히고 제도를 정비하여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고구려와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북한산성의 축조백제인들은 수도 한성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선택하고 그곳에 성곽을 축조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서기 132년 백제 개루왕은 북한산에 성곽을 쌓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고구려에 대항하는 의미가 강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세종실록’ 지리지의 양주도호부 조에 보면 북한산성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데 이 지역의 고구려 점령시 명칭이 ‘남평양성(南平壤城)’ 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의 북쪽 땅을 매우 중요시여겼고 그래서 평양성의 남쪽에 있는 제2의 평양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이는 다시 말해 고구려가 북한산 일대의 영토를 다시 찾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고 백제는 자신들에게 매우 소중한 영토를 고구려에게 빼앗길 수 없기 때문에 이 일대를 방어할 수 있는 성곽을 쌓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산성의 첫 축성이다.지금으로부터 1900여 년 전의 축성이었으니 축성 기술이 높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북한산성에는 초기 축성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북한산성의 석성을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삼국시대 한강 유역은 삼국 모두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고구려는 이 지역을 남평양성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이 일대를 장악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고구려는 수시로 북한산 일대를 공격했다. 이에 대한 백제의 대응 역시 남달랐다. 백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었던 근초고왕은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했다.그가 군대를 이끌고 평양까지 진격한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북한산성을 자신의 중요한 전략적 군사기지로 확정해 고구려 군사들의 남진을 막았다.‘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남한산에서 북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왕궁과 백제의 중요 관청 모든 것을 옮겼다기 보다는 고구려의 공격을 막기 위한 대규모 군영을 북한산으로 이전하고 그곳에 국왕 자신이 거처하면서 백제를 지키는 일을 하였던 것으로 봐야 한다. 이 기록만으로도 북한산성이 당시 백제를 비롯한 삼국 전체에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진흥왕의 북한산주 설치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장수왕은 한강유역을 확보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았다.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삼국을 통일하려다가 연나라의 공격으로 신라와 백제를 복속하기 위해 파견한 최정예 군사들을 다시 요동으로 배치시키는 바람에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장수왕은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강 유역으로 공격명령을 내렸고 475년에 백제의 왕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 유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로써 북한산성은 다시 고구려의 영토가 됐다. 비록 고구려 군사들의 강력한 힘이 있기는 하였지만 개로왕의 전략과 전술의 부재가 북한산성을 고구려에 빼앗기게 된 것이었다.장수왕에 의해 고구려의 영역이 된 한강 유역은 다시 신라의 진흥왕에 의해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다. 진흥왕은 백제와 동맹을 맺고 한강 유역 일대를 공격하기로 했다. 당시 고구려는 신라가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신라와 백제는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심이 신라의 기습공격으로 한순간에 한강 유역 일대를 빼앗기고 북으로 군사들을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진흥왕은 화랑 제도를 만들며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기까지 하였는데 한강 유역을 다시 빼앗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바로 신라 영토의 최전선인 북한산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이곳에 신라 군대의 최정예를 두고 행정구역도 새로 개편했다. 남한산성 일대는 신주(新州)라고 이름하고, 북한산 일대는 북한산의 고유 명칭을 따서 북한산주(北漢山州)로 이름 했다.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바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 일대를 북한산주라 이름하는 것은 바로 북한산성의 전략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구려 신라의 북한산성 전투한성 일대를 되찾기 위한 고구려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661년 연개소문의 명을 받은 뇌음신은 말갈의 장군 생해(生偕)와 연합해 신라군의 주력 부대가 있는 북한산성으로 진격했다. 당시 북한산성 성주는 동타천으로 대사(大舍) 지위에 있는 장군이었다. 동타천은 성곽 바깥으로 철질려(마름쇠)를 깔아 사람과 말 등이 다니지 못하게 했다. 고구려군이 성곽 근처로 다가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이 작전은 성공해 고구려군의 접근을 차단했다. 하지만 뇌음신은 새로운 공격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포차(抛車)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성곽 바깥에 포차를 설치, 거대한 돌을 산성 안으로 쏘아 보냈다. 고구려군의 20여일 동안의 거친 공세로 드디어 신라군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고구려군의 승리로 끝날 듯한 전투였지만 승리의 여신은 끝내 고구려군을 외면했다. 전투 막바지 별안간 큰 별이 고구려군 진영에 떨어지고 번개와 벼락 등이 치며 큰 비를 퍼붓는 돌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한순간 고구려군과 신라군의 사기는 뒤바뀌고 하늘의 뜻이 고구려에 있지 않고 신라에 있음을 깨달은 뇌음신은 철군을 결정했다.만약 마지막 순간 벼락과 천둥 등이 치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만약 그렇게 됐다면 아마도 북한산성 전투는 고구려군의 승리로 끝나고 한강 유역을 다시 차지한 고구려군은 오히려 신라를 제압하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신라를 택했고 실제 역사 역시 신라군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산성은 함락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고려시대에도 북한산성은 전략적으로 중시됐다. 고려 현종 때 거란이 고려를 침입하자 현종은 태조의 유해를 모신 재궁(梓宮)을 이곳으로 옮기고 건물을 증축했다. 1232년(고종 19)에 고려군은 이곳에서 몽골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1387년(우왕 13)에는 산성을 고쳐 쌓았다. 조선시대에도 산성을 고쳐 쌓는 역사(役事)가 계속 전개됐다.곧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이 연이어 일어나자 북한산성을 도성의 외곽을 지키는 산성으로 쌓자는 의논이 일어났다. 그 결과, 1659년(효종 10)에는 국왕이 송시열에게 명령하여 고쳐 쌓았고, 1711년(숙종 37)에는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여 둘레 7천620보 크기의 돌로 쌓은 성벽을 완성했다.또한 1712년에는 130칸 규모의 행궁(行宮)과 140칸 크기의 군창(軍倉)도 건립됐다. 성 안에는 승군이 머물도록 136칸의 중흥사를 비롯해 사찰 12곳을 두었고 99곳의 우물과 26곳의 저수지가 있었다. 참으로 엄청난 위용이다.이곳에 중앙오군영의 하나인 총융청을 설치하고 한강 북쪽지역의 군사력의 중심지로 삼게 했다. 이만큼 조선시대에서 북한산성은 조선의 가장 중요한 전략기지였던 것이다. 지금도 북한산성을 오르는 것은 다른 그 어떤 산성보다 험난하다. 정말 어떻게 축성했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이러한 천하의 요새는 전 세계 그 어디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는 최근 북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2014년 남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산성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노력을 진행중이다.북한산성이 갖고 있는 가치는 너무도 충분하다. 북한산성의 진정성을 잘 정리해 2020년 안에 반드시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관련자 모든 분들이 노력해주길 바란다.김산 홍재연구소장
22일 새벽 5시35분께 A씨(21ㆍ여)가 의왕시 한 아파트 12층에서 1층 화단으로 추락해 숨졌다.의왕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대학동기인 B씨와 술을 마신 뒤 잠을 자기 위해 B씨 아파트를 방문, 12층 베란다 난간에 걸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악령이 보인다”고 말한 뒤 1층 화단으로 뛰어내렸다. 이에 119구급대가 출동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오전 6시33분께 숨졌다.경찰은 B씨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의왕=임진흥기자
경기도가 개최한 ‘2016년 경기도 규제개혁 우수사례 발표 경진대회’에서 고양시가 ‘고양 자동차서비스 복합단지 조성사업 유치’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도는 지난 19~20일 이틀간 화성 푸르미르호텔에서 황성태 경기도 기획조정실장을 비롯해 이병길 경기도 규제개혁위원장 및 위원, 도내 31개 시ㆍ군 규제개혁부서 담당공무원 등 70여명 참여해 규제개혁 우수사례 발표 경진대회 및 워크숍을 가졌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경진대회에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으며 모두 28개 시ㆍ군에서 지역 내 기업활동과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성과를 거두었던 우수 규제개선사례를 제출했다. 예비심사를 거쳐 선정된 11개 팀이 본선에서 경합했다. 본선에서는 고양시 외에 ▲수원산업단지 규제개선(수원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불합리한 규제개선(성남시) ▲다각적인 규제개선을 통한 투자촉진 및 시민불편해소(의정부시) ▲산업단지 내 주차장 의무비율 완화(파주시) ▲내발적 규제개혁을 통한 지역경제활성화(안성시) ▲자치법규 개선으로 투자기반조성(양평군) 등 모두 11건의 우수사례가 발표됐다. 고양시는 그린밸트에 자동차서비스 복합단지를 조성할 수 없었으나 국토교통부 개발제한구역해제지침 개정을 이끌어냈다. 복합단지가 조성되면 8천억 원의 투자와 5천개 일자리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돼 경제활성화 기여도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수상은 성남시, 파주시가 수상했고, 장려상은 의정부시, 수원시, 양평군, 안성시 등 4개 시ㆍ군이 차지했다. 황성태 실장은 “규제는 공무원들이 체감하는 것보다 규제를 직접 받고 있는 기업체나 소상공인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제에도 찬물을 끼얹는다”면서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공익에 문제가 없는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최원재기자
인기가요 트와이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종합병원만 요양병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 지자체의 지침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22일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 18일 제12회 행정심판위원회를 열고 1월21일 D 의료법인이 남양주시를 상대로 낸 ‘의료기관 개설허가신청 불허가처분 취소청구사건’에 대해 남양주시의 불허가결정이 위법하다며 D 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남양주시는 D 의료법인이 요양병원을 개설하기 위해 의료기관 개설허가신청을 하자, 시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의료법인 설립 및 운영지침’ 상 의료법인은 종합병원만 개설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불허가처분을 했었다. 이에 대해 도행심위는 의료법에는 의료법인이 시설기준을 준수해 의료기관 개설허가신청을 하면 허가를 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의료법상 시설기준을 준수한 의료기관 개설신청을 법에 없는 지침을 근거로 제한할 수 없다고 밝혔다.한편 도행심위는 이날 68건을 심의했으며 인용 30건(일부인용 포함), 기각 28건, 각하·연기 8건을 재결했다. 이호준기자
환경을 보전하고 깨끗한 하천을 만들기 위한 ‘인천환경축제’가 지난 20일 인천 부평구 삼산동 분수공원에서 열렸다. 올해 13회를 맞는 인천환경축제는 ‘제5회 굴포단오제’ 함께 개최됐다. 인천환경지도자연대가 주관하고 굴포천네트워크 등이 주관한 이번 축제는 정유섭 국회의원 당선자와 홍영표 국회의원, 박종혁 인천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25개 단체 1천200여 명이 참여했다. 올해 행사는 청소년들이 백일장과 어린이그림그리기대회를 통해 환경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글과 그림에 담아내는 시간을 가졌다. 본 행사 직전엔 부평역사박물관 뒤 삼각주에서 한국GM환경봉사단과 육군 제3201부대, 부평구 자율환경연합회 회원 등 150여명이 쓰레기와 오물을 치우는 등 환경 정화활동을 벌이고, 굴포천에 미꾸라지를 방류했다. 이밖에 중고물품 장터가 열려 자원 절약과 재활용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수익금은 지역 장애인돕기 후원과 무료급식으로 쓰였다. 또 환경공예체험과 친환경 제품 전시, 먹거리 장터 등 다양한 부스가 마련돼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청소년들의 밴드 공연과 해양경찰관현악단의 연주는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인천환경축제는 시민과 공공기관, 기업들이 모여 환경 보전과 맑은 하천을 만들고자 하천 및 등산로 정화활동, 환경캠페인, 생활환경체험, 환경가요제 등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심상호 인천환경지도자연대 상임대표는 “올해는 굴포단오제와 행사를 함께 개최해 주민들에게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부평의 유일한 젖줄인 굴포천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덕현기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일본 강연을 마치고 22일 귀국하면서 “새 그릇을 만들기 위한 정치권의 각성과 헌신, 또 진정한 노력을 담아내는 새판이 짜여져야 한다”고 말했다.손 전 대표의 이날 ‘새판짜기’ 발언은 지난 18일 5ㆍ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의 언급에 이은 두번째다. 그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정계복귀를 위한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손 전 대표의 복귀와 맞물려 정계개편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손 전 대표는 일본 게이오 대학 강연 등을 위해 지난 18일 출국했다가 귀국한 이날 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4·13 총선에서 분출된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담아낼 그릇에 금이 갔다”며 이같이 밝혔다.그는 지난 18일에도 “새판을 짜는데 앞장 서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손 전 대표의 구체적인 정계 복귀 시점이 주목된다.손 전 대표는 “일본의 경우 많이는 아니지만 청년실업이 별로 없는 등 경제가 조금 극복이 되는 것 같더라”며 “우리나라는 지금 청년실업률이 12%를 넘어서고 가계부채도 1천200조원을 넘어서는 어려운 경제 속에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정부의 올해 3% 경제성장 목표도 제대로 이루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어떻게 하면 경제를 살리고 청년실업을 줄일 수 있을지가 또다른 문제”라며 “국민의 이러한 좌절과 분노를 제대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고 밝혔다.그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쪽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향후 행보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정진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