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 앞길 막막 계약 해지 등 피해액 눈덩이
“대출·세금유예 근본대책 안돼 새로운 생산라인 확보 급하다”
개성공단 운영이 전면 중단된 지 5일째 된 14일. 경기지역 소재 언더웨어 OEM 제조업체 A사에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비상근무에 돌입한 직원 10여명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개성공단에만 생산 라인이 있는 A사는 지난 11일 개성공단에 보관하고 있던 11t 트럭 한 대, 3억원 어치 분량인 600여 박스의 제품만을 간신히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도 북쪽에는 11t 트럭 7대 분량, 35억원 상당의 물품이 남아 있는 상황. 그나마 가져온 물건들도 사실상 반제품에 지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됐다. 팬티 5장, 브래지어 5장을 묶어 1세트로 원청업체에 납품해야 하는데 일부 팬티 종류만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출근한 직원들은 창고에 쌓아놓은 물품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창고에 있던 한 직원은 “가져온 물품을 묶음 포장을 해서 납품해야 하는데 어렵게 가져온 제품마저 무용지물이 됐다”면서 “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도가 없다. 상표 라벨 다 떼서 ‘땡처리’라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답답해했다.
지난 2008년 설립된 A사는 개성공단과 함께 성장해왔다. 유명 패션ㆍ스포츠 브랜드 OEM은 물론, 지난해부터는 개성공단 공동 브랜드 ‘시스브로’에 동참하며 연매출 60억여원의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번 개성공단 폐쇄로 당장의 손실금은 물론 3천개의 홈쇼핑 입점 물량도 맞출 수 없게 됐고 원청업체의 클레임, 바이어와의 계약 해지, 직원들의 고용 유지 등 걱정거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다. 이제 A사의 당면 과제는 새로운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일. 국내 타 지역은 물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까지 생산 라인을 물색하고 있지만 녹록지는 않다.
이런 가운데 잇단 정부의 행보는 아쉽기만 하다. A사 대표 B씨는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선언 당시 기업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B씨는 “정부에서 전면 중단 선언 후 직원 1명과 트럭 1대만 개성공단 입경을 허용해 제대로 물품을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있는 제품이라도 더 가져올 수 있었다면 그나마 피해를 줄였을 텐데 정부에서 막은 꼴이 돼버렸다”고 성토했다.
정부에서 마련한 긴급 지원책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난 12일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대출원리금 상환 유예, 세금 납부기한 연장 및 체납액 징수 유예, 대출금리 인하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현재 제품 생산이 불가능한 입주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지원책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의견이다.
B씨는 “개성공단에만 생산라인을 갖춘 기업들이 상당수인데 근본적으로 당장 생산을 재개할 라인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면서 “그러나 이에 대한 지원이나 보상은 정부 대책에서 전혀 언급이 없었다. 생산 라인을 새로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라도 보전해줘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정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만큼 입주기업에 대한 피해 지원이 아닌 피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대출과 세금유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는 만큼 보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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