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새천년 유라시아 통신] 20대 청춘, 유라시아 대륙 기차로 건너다

평범한 카자흐 청년의 놀라운 세계사 지식 글로벌 외치는 우리, 중요한 것 놓치는 듯

누구나 한 번쯤 젊은 시절 기차여행을 꿈꾼다. 여행하며 만날 새로운 인연도 기대한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방학마다 일주일간 전국을 기차로 누빌 수 있는 ‘내일로’가 인기를 끌었고, 시베리아횡단철도는 청춘 여행 코스로 자리잡았다.

 

이번 유라시아 대륙횡단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지난 4일부터 20일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나라의 기차를 탔다. 물론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모든 만남의 시작은 간단한 ‘도움’이었다. 기차 안 사람들은 차장이 표를 검사하면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낑낑대며 무거운 짐을 옮기는 나를 몇 번 씩이나 도와줬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수도 아스타나로 향하는 기차는 총 18시간, 1박을 지내는 야간 열차다. 문을 열고 4인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던 한 청년이 “Help?”라며 말을 건네왔다. 옆에 있던 탐사팀원 이승영 대표와 함께 셋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열차에서 만난 23살 카자흐스탄 청년 노렌은 내가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부터 궁금해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엑스포를 보러 아스타나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역사를 좋아한다며 한국전쟁부터 전 대통령의 탄핵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노렌은 광장으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지킨 한국 시민들의 힘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남북한의 관계에 대한 사견까지 덧붙였다. 깜짝 놀란 것은 나에게 남한과 북한 정부가 공존하는 연방 제도는 어떻겠냐고 물어본 것이다. 외국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노렌은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는 우리나라 아이돌을 이국적인 외모의 청년이 설명해주니 또 한번 놀랐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엑소를 좋아한다고 했다.

 

대화를 더 나누기 위해, 또 매너를 보이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대해 뭐라 말할 거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세계사 책을 읽고 왔는데도 그랬다. 노렌은 자국 대통령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고, 나는 카자흐스탄에 대해 더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

 

짧은 대화였지만 먼 나라인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영어로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노렌에게 감탄했다. 어떻게 한국을 잘 아냐는 질문에 노렌은 “나는 역사를 좋아하며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뿐이다”고 답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역사를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노렌과 대화를 나누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노렌은 세계사를 알기 때문에 다른 나라는 물론, 국제 관계 현황에 저절로 관심이 갔을 것이다. 또 외국인을 만나면서 그들을 적절하게 대할 수 있는 ‘국제 감각’을 자신도 모르게 갖추게 됐을 것이다.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카자흐스탄 언어를 모국어로 쓰면서도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감탄할 만 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렌은 평범한 카자흐스탄의 한 청년이라는 것. 그는 “난 평범하게 코딩을 하는 프로그래머이며, 내 영어 실력은 아직 모자라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우리는 자라면서 세계사를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럴 여유도 없고 과정도 부족하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지만 정작 정말 필요한 것은 빼놓고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그가 추천한 카자흐스탄 전통 요리 ‘베쉬마르막’을 먹지 못한 아쉬움보다 그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안타까움이 짙다.

손의연기자

후원: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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