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지만 투명한 청회색 마음’…전원길 ‘풍경’展 20일 개최

넓은 들, 푸른 하늘과 우뚝 선 나무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느 풍경화가 아니다. 어두운 배경에 흐드러지듯 피어난 흰 풍경, 알 수 없는 사람의 모습은 전원길 작가가 만들어낸 그의 ‘풍경’이다. 전 작가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색을 찾아 풍경을 만들어냈다. 오는 20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안성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진행되는 전원길 작가의 <풍경>展에서 그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사이언스월든 과학예술 융합프로젝트 전원길 작가의 연구작업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에는 300호 연작 5점이 전시된다. 전원길 작가는 “공학적 연구성과에 예술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깊이를 더해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전 작가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에 공감했다고 한다. 전원길 작가가 선보인 작품의 짙은 청회색 배경은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깊고 무연한 공간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색을 작품으로 옮긴 것이다. 그는 자신의 풍경을 만들어 내기위해 작품 속 공간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어둡지만 마음 속을 잘 비출 수 있는 색을 만들어 내기위해 여러 번 색을 올려 작품의 깊이를 만들었다. 전원길 작가는 “한 작품당 30회 이상 색을 올렸다. 수십 차례의 붓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러나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색을 펼쳐냈다”고 말했다. 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보는 사람을 그림 안으로 불러들이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전 작가는 그것을 ‘형상화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안내자를 따라 작품 안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의미를 둔다. 관객들은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또 다른 풍경을 완성할 수 있다. 전원길 작가는 “내가 보여주는 풍경은 낯설지만 우리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담겨 있던 풍경일지도 모른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각기 다른 자신의 풍경을 탐험해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은진기자

광주 상수원보호구역서 축구장 3개 넓이 불법 성토 물의

2천600만 수도권 시민들의 젖줄인 식수원 근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15일 오전 11시30분께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492번지. 이곳에서 만난 주민 A씨(50)는 말을 잇지 못했다. 퇴촌면과 경계지점인 이곳을 통과하는 국도45호선에서 야산쪽으로 이어진 좁은길로 최근까지 덤프트럭 수십대가 드나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길에서 600여m를 오르니 3만㎡로 보이는 토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는 최근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포크레인도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는 외부에서 반입돼 성토된 것으로 보이는 황토색 흙들이 덮여 있었다. 흙 위로 평탄화작업을 위해 동원된 포크레인 등 중장비 바퀴자국도 선명했다. 토지 하단부에서 본 토지높이는 10m 정도였다. 회색빛 하단 토지와 구분되는 새롭게 성토된 색의 흙높이만도 아파트 한층 높이인 5~6m이었다. 이곳의 지목은 밭이다. 현행법상 농지를 50㎝ 이상 높이로 성토하려면 당국으로부터 개발행위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이곳은 팔당상수원이 위치했다. 수질오염을 막기 위해 자연보전권역과 팔당특별대책지역, 상수원보호구역 등으로 규제받는다. 하지만 해당 농지는 개발행위허가 등 제대로 된 행정절차도 밟지 않은 체 성토해오다 최근 시에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팔당상수원 인근 농지에서 무분별한 성토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에 따르면 토지주 A씨는 지난 6월 시에 영농을 목적으로 복토(높이 50㎝ 미만)를 신청했다. 신청 면적은 6천여㎡다. 시는 실제 성토가 이뤄진 건 2만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려 축구장 3개 크기다. 주민 B씨는 지난 9월부터 덤프트럭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규제가 많은 곳인데 엄청난 양의 성토가 이뤄진 것을 보니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시는 지난 13일까지 성토행위에 대한 원상복구를 명령했지만 아직까지 복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광범위하게 성토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면적이 3만여㎡이지만 전체 면적에 걸쳐 성토가 이뤄진 건 아니다. 측량해봐야 정확한 면적을 알 수 있다며 지난달 민원이 접수됐고 현장점검을 통해 원상복구명령 등 행정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말했다. 광주=한상훈기자

[지키자! 미래유산] ①수원 ‘영신연와’, 국내 마지막 남은 호프만 가마식 벽돌공장

현재 경기도의 근대건축물은 어느 정도 있을까. 경기연구원에서 2015년 조사한 경기도 근대건조물 조사 및 관리방안에 따르면 당시 547개의 근대건축물이 존재했다. 시설별로 살펴보면 교육시설 54개, 군사유산 35개, 산업기반시설 29개, 산업시설 44개, 상업시설 47개, 업무시설 44개, 종교시설 107개, 주거시설 59개 등이다. 이후 경기도에서2018년조사한 경기도 건축자산 목록 총괄표 및 기초조사 자료에는 근대건축물이 총 430개로 집계됐다. 조사기관은 다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근대건축물이 사라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두 보고서의 책장을 넘기며 현존하는 건축물을 추려봤다. 시간이 많이 지난 상황이라 이들의 현존 파악이 다소 불명확했지만, 멸실된 건축물 외에도 우수건축자산으로 꼽힌 것도 꽤 많다. 이 중 건축물의 용도, 원형 보존 상태, 역사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을 찾아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소개한다. 시작은 서수원의 산업문화유산으로 빼놓을 수 없는 벽돌공장 영신연와다. 칼바람이 부는 궂은 날,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에 위치한 영신연와를 찾아갔다. 도착하니 아파트 15층 높이(약 40m)의 기다란 굴뚝이 한눈에 들어왔다. 196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 생산 공장 영신연와의 굴뚝이다. 산업화 당시에는 이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지 않을 정도로 성업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루 5만 장이 넘는 벽돌을 생산할 정도로. 여기서 만들어낸 그 많은 벽돌은 그 시절 주택학교공공기관 등 다양한 건물에 두루 쓰였다.지역의 건축사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자재였던 것이다. 공장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봤다. 1992년 문을 닫았으나 현재 5천775㎡ 면적(건축물 1천902㎡)에 가마터, 출하 창고, 무연탄 야적장, 초벌 야적장, 점토 채취장, 노동자 숙소 등 당시의 시설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여러 업체가 공장 터를 임대해 쓰고 있어 어수선했다. 부지 한쪽은 건설회사가 건설장비를 두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고물상이 자리 잡았다. 벽돌 출하 창고로 쓰이던 공터는 중고 자동차 회사가 차량의 적치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공장이 자리한 일대는 진흙투성이다. 군데군데 얼음이 녹아 흙탕물이 고였고 신발에는 진흙이 가득 묻었다. 점토 채취장이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니 그럴 만도 하다. 벽돌의 주재료가 되는 진흙이 풍부해 이곳에 공장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공장에서 점토 채취부터 생산까지 한 번에 이루어진 걸 실감케 했다. 신발을 털며 공장 뒤편으로 가니 가마터 입구가 나온다. 가까이서 보니 굴뚝을 제외한 공장 건물은 세월의 풍파를 맞은 듯 낡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험해 보였다. 살이 에일 듯 세찬 바람에 녹슬고 허물어진 슬레이트 지붕이 들썩이며 삐거덕~ 덜그럭~ 스산한 소리까지 낸다. 멈춘 지 오래인 가마의 쇠잔한 모습도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이 가마는 1858년 독일의 화학자가 개발한 호프만 가마다. 연료비 절감, 대량 생산 등의 특징으로 소성기술의 혁신을 일으켰다. 현재국내 유일하게 남은 것이어서 역사적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현정 수원과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호프만 가마는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설비다. 근대 시대를 대표한 건축 재료 생산으로 건설 기술을 알 수 있다. 또 현대 공장과 다른 외관으로 60년대 조형 미학이 있어 문화유산으로 희소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가마 주변으로 각종 적치물과 폐기물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어 전체적인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아마 벽돌공장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본다면 그저 낡은 흉물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루속히 건물 보존을 위한 조치와 주변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내부도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모든 문이 막혀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외벽에 사다리를 놓고 가마 상부로 올라갔다. 놀랍게도 석탄함과 투탄구, 댐퍼 조절장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당시 벽돌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명불허전, 미래유산답다. ◆ 노동자의 삶이 깃든 숙소에 아직 3가구 거주 공장 건물에서 나와, 영신연와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숙소로 가봤다. 팔 뻗으면 지붕에 닿을 듯 야트막한 가옥이다.공장에서 생산한 적벽돌로 지어졌다고 한다. 총 4개의 동이 종렬로 배치돼 있는 형태다. 한동마다 방 1칸, 부엌 1칸이 전부인 5평 남짓의 여러 세대가 좁고 긴 골목을 끼고 일자형으로 붙어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나가야 주택과 유사하다. 1930년대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대륙 진출을 위한 병참 기지로 사용할 계획에 대규모 공장과 산업시설을 건설했고, 그에 따른 노동자를 수용하려 지은 일본식 다세대 노무자 주택이 나가야다. 따라서 영신연와 노동자 숙소는 구조나 시공방법이 근대 한국 노동자 주택의 역사와 직결되어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숙소는 황폐화된 모습이다. 부서지고 깨지고 폐기물이 나뒹군다. 그 누구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없다. 당연히 아무도 살지 않겠거니 하고 들어갔는데, 몇몇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교적 멀쩡한 문 앞에 무언가를 담아 보관 중인 고무대야가 있고, 줄에 걸어 말리고 있는 나물도 보였다. 또 어느 집 입구에는 텃밭과 오토바이도 서 있었다. 텃밭을 서성대니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이곳에 묵고 있는 영신연와 노동자 이영식씨(70)다. 숙소에 홀로 살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공장 폐쇄 후 다 떠나고 여기에 나랑 집사람, 그리고 다른 동에 두 세대가 더 살고 있다. 자녀들은 다 출가했다. 우린 이곳이 삶의 터전이고 갈 곳도 없다. 가능하다면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본래 이곳 노동자 숙소에는 50세대가 살았다고 한다. 비록 부엌 하나에 방 하나로 된 좁은 공간이었지만 부모님을 모시거나 자녀들과 함께 사는 세대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살던 숙소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새 돈벌이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은 세월이 가져다준 무게를 짊어지다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3가구만 남았다. 노후된 건물에서 여름엔 선풍기 하나에, 겨울엔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하며. 남은 이들에게 영신연와 숙소는 어려운 형편에 맞춰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집인 셈이다. ◆ 도시개발 논리에 철거위기...'풍전등화' 신세 영신연와 같은 형태의 벽돌공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전국적으로 수십 개 가량 있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영신연와 조차 존폐 위기에 놓였다. 2010년 민간이 추진하는 도시개발사업구역 내 포함돼 철거 대상물로 지정된 것. 사람들 머릿속에서는 몇 년째 수 백번, 수 천번 부쉈다, 말기를 반복한다. 그야말로 풍전등화 신세다. 수원시도 시민 의견에 공감해 보존 방안을 찾고자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보존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영신연와 건축물이 있는 부지가 사유지라 소유주가 건물을 헐어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수원시 관계자는 영신연와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해도 될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문제는 현재 민간인 소유라서 사유재산인 만큼 동의 없이 함부로 지정할 수가 없다. 이미 가치 조사, 기록화 사업을 해놓고, 도시개발 조합 측을 설득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막연히 보존하자는 목소리만으로는 설득력을 얻기란 어려워 보인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벽돌공장 부지를 활용할 방안을 함께 고민하면 수원지역 도시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주민들은 영신연와 보존이 재개발에 마이너스 영향이 없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을 가치 있게 만든다는 확신이 서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수원시가 도시 계획을 수립할 때 주민들에게 손해 가지 않도록 용적률을 보장해주는 방법이 있다. 공익을 위해 보존하는 만큼 벽돌공장 부지를 제외하더라도 주민들이 원하는 아파트 세대 수를 지을 수 있는 방침을 정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고색동 일대 재개발 시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녹지를 지금 그려진 방식이 아니라 영신연와를 포함하는 쪽으로 대체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영신연와 부지를 공원으로 몰아주게 되면 보존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익도 추구하면서 도시개발사업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수원시 도시계획 위원회의 역할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침 했다.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 영신연와. 산업화시대 대표적인 가옥 양식에서 외장재로 주로 사용하던 빨간 벽돌을 굽던 가마터는 후손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보존만 된다면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도심 재생 사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개발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의지가 남았을 뿐이다.

수원성실장학회, 수원고 수능 우수자에 장학금 전달

재단법인 수원성실장학회(이사장 이순국)가 수원고등학교 수능 성적 우수학생에게 장학금 100만원을 전달했다. 17일 오전 수원고에서 열린 수여식에서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단 1개의 문제만 틀린 3학년 유형주군(19)이 장학금을 받는 영예의 주인공이 됐다. 유군은 우수한 수능 성적으로 경기도와 수원고의 명성을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장학생에 선정됐다. 그는 “우선 시험이 끝난 것에 기뻤고 점수가 잘 나와 좋았는데 장학금까지 받게 돼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면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수능이라는 지금까지의 여정에 힘이 돼 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대학에 가서도 앞으로의 꿈과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탐구하고 공부하겠다”고 밝혔다. 유형주군은 지난 16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수시전형에 합격해 내년 3월 입학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받은 장학금을 대학 등록금에 사용할 것이라며 주변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순국 성실장학회 이사장은 “앞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고 수원고와 지역의 자부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며 유군을 격려했다. 윤지윤 수원고 이사장도 “대학 진학 후에도 모교에서 응원할 것”이라며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박문기기자

[공연리뷰]장르ㆍ경계 허문 ‘신명나는 굿판’…경기도무용단 ‘본(本)’을 보고

경기도무용단이 2021 레퍼토리 시즌 작품 <본(本)>을 설명하면서 ‘장르와 경계를 허물었다’는 표현을 썼다. 이보다 더 적확한 문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공연이었다. 이달 16일부터 18일까지 경기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본(本)>을 만나봤다. 1부 ‘제(祭)’에선 ‘백의민족’이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한다. 무용수들은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는 듯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는데, 누군가의 기도가 곧 나의 기도가 되고 또 우리의 기도가 된다. 각도와 속도에 무딘 춤꾼이 얼마나 있겠느냐 만은 유독 그 부분들을 철저하게 신경 쓴듯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조명 등으로 무대 전체를 꼼꼼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혜원 신윤복의 ‘무녀신무’ 그림에서 한 여인이 무언가를 비는 듯한 모습처럼, 무용수들은 절실한 기도가 하늘에 닿기까지 춤을 계속한다. 이때 출연하는 소리꾼 고영열은 “흘러가는 세월에 나는 홀로 선 채로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처절한 소망을 전한다. 한바탕 의식이 끝나면 모두가 정면을 바라보고 멈춘다. 변화무쌍하면서도 일사불란한 군무들을 통해 관객들도 무용수와 함께 호흡을 나눴다. 특히 곱게 머리칼을 묶었던 여성 무용수들이 한순간 머리를 풀고 제의에 동참하는 장면에서 신나게 벌어지는 ‘굿판’을 보며 강렬함을 느꼈다. 뒤이어 펼쳐지는 2부 ‘흥(興)’에선 분위기가 반전된다. 슬픔과 고통이 진해질수록 잠재된 흥이 살아난다는 시놉시스처럼 곳곳에 흩어졌던 우리네 흥이 모여든다. 이땐 경기도극단 배우 강성해ㆍ육세진과 함께 특별출연하는 ‘뮤지컬 디바’ 배우 홍지민의 목소리와 몸짓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무대 위 뿌려진 ‘꽃가루’를 치우기 위해 빗자루를 집어들고, 이 빗자루 막대가 이내 무용수들의 춤 도구가 된다. 이 장대는 관객과 무용수들 사이에 세워져 때로는 시선을 통제하는 대상이 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 장대를 이용해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무대를 쿵쿵 칠 때 관객들의 어깨도 들썩였다. 또 2부에선 꽹과리, 명상주발, 바라 등 다양한 금속 악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뜻한다. 차가운 악기로 따뜻한 소리가 나온다는 메시지처럼 삶도 고충 속에서 흥을 잃지 말자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지난 9월부터 경기도무용단을 이끈 김상덕 예술감독은 취임 당시 “예술가가 원하는 작품보단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해야 한다”며 “남녀노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세우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그 말마따나 이번 신작 <본(本)>에선 전통춤의 깊은 정서와 현대 무용의 대중성이 불편하지 않게 컬래버레이션됐다. 내년 경기도무용단의 새 작품들도 기대되는 공연 <본(本)>이었다. 이연우기자

오색딱따구리의 겨울나기[포토뉴스]

사진기자들이 전하는 메시지 '2021 경기지역 보도사진전' 20일부터

코로나19의 모임 제한 해제를 촉구하는 자영업자의 절규, 고용 한파 시대 일용직 노동자의 쓸쓸한 뒷모습,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청년을 보낸 가족의 비애, 잠시나마 코로나19의 끝을 기대하게 했던 백신 접종의 행렬 등 2021년 우리 사회 역사적인 순간을 생생히 전달하는 전시가 열린다. 한국사진기자협회 경기지회는 오는 20일부터 내년 1월19일까지 2021 경기지역 보도사진전을 지회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연다. 올해로 25회를 맞은 이번 전시에는 본보를 비롯한 한국사진기자협회 경기지부 회원 언론사 소속 15명의 사진기자가 참여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온라인으로 선보이며 내년 1월19일 이후 상설전시로 전환한다. 뉴스의 현장을 찾아 진실을 담은 보도 사진에는 사진기자들의 땀과 열정, 강렬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고현장의 생생한 포착부터, 현시대를 통찰하는 날카로운 시선, 기자의 창의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사진, 자연의 아름다운 찰나, 예술스포츠 분야의 아름답고 역동적인 순간 등 다양하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 택배노조원들의 단체 삭발은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며 일하는 종사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잊혀진 원폭 피해자의 고통은 잊지 않아야 하나 잊고 있었던 이들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폭염과 사투벌이는 의료진, 코로나19 여파로 늘어난 일회용품 쓰레기, 외국인도 예외없는 코로나19는 코로나19 시대에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담았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주변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도 느껴진다. 열악한 곰 사육장은 반달가슴곰들이 비좁은 녹슨 철장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화마로 연기 치솟는 이천 덕평물류창고는 화재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유채꽃밭 사이에서 만난 친구, 적과의 황당한 키스, 험난한 출근길, KT위즈 창단 첫 우승 등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일상의 즐거움, 환희를 생생하게 전한다. 보도사진전 작품집 표지의 QR코드를 통해서도 온라인 전시를 바로 볼 수 있다. 김시범 한국사진기자협회 경기지회장은 경기지역 사진기자들이 1년간 열정으로 취재한 보도사진들을 선별해 온라인 전시의 장점을 살려 많은 작품을 준비했다면서 많은 분들이 전시를 관람하며 연말연시를 잘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자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