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가슴 아픈 瀋陽의 ‘삼학사’ 碑

10여년 전 계룡장학재단 이인구 이사장과 함께 중국 심양(瀋陽) 일대의 우리 역사 유적을 답사하던중, 놀라운 사실(史實) 하나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것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인질로 잡혀간 오달제, 윤집, 홍익환 등 소위 ‘삼학사’를 기리는 비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 삼학사는 심양에 끌려와서도 청나라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여 죽임을 당했는데 청 태종은 비록 자신을 거부한 그들이지만 그 절개는 높이 기린다며 ‘삼한산두(三韓山斗)’라고 새긴 비를 세웠다. 삼학사의 절의가 태산 같고 북두칠성처럼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1960년대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이 비가 부서졌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을 조선족이 다니는 발해대학 학장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현장에 도착하니 과연 눈 속에 누워있는 비는 조국 땅에서 찾아온 우리 일행을 반기는 듯 했다. 이인구이사장은 그 후 사비를 들여 조각난 비를 복원시키고 민족의 귀감이 되도록 발해대학 후원에 이를 세웠다. 이 비를 보며 도대체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기에 우리 역사에 이토록 통절한 기록을 남겼는가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왜 백제를 멸망시켰고, 수(隨)나라에서 당나라까지 6명의 황제가 비록 실패는 했지만 왜 우리 땅 고구려를 정벌하려 했을까?어찌하여 그들은 조선말기 대원군을 압송해 4년간 유폐시키는 무례를 저지르고도 그를 이용하여 일본과의 파워게임을 벌였을까? 또 6ㆍ25 전쟁 때는 북한을 도와 그들 군대가 압록강을 건넘으로써 남북 통일의 기회를 짓밟지 않았는가? 봄이면 어김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 바람처럼 중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가? 중국의 예비역 중장이라는 사람이 3년전 공산당 기관지에 ‘한반도는 지금껏 중국에 위협이 되어왔다’는 글을 발표했는데 우리의 한 언론이 그 내용을 요약해 보도했다. 글쓴이는 전 난징(南京)군구 왕홍광(王洪光) 부사령관. 그는 수당 황제들이 끈질기게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나섰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오히려 그로인해 농민반란 등 국력이 소진됐으며 당태종은 52세에 죽었다고 지적했다. 임진왜란 때 명(明)이 조선에 파병하여 급속한 재정 압박으로 멸망을 재촉했고, 청나라가 일본과 한반도에서 벌인 청일전쟁은 중국의 식민지화를 앞당겼다고도 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1950년 중국 공산당 정권이 서자마자 625 한국전쟁에 개임함으로써 대만과의 통일 기회를 놓쳤다는 것. 또한 이 전쟁에 발목이 잡히면서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국의 국가 통일과 발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이어 그의 결론은 북한의 핵 보유 결심을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한 것. 중국 군사전문가로서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는 매우 민감하고 불길한 예고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지적한 대로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다. 지금에 와서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하려는 사드를 가지고 우리에게 모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병자호란 때 우리가 당한 뼈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다음 정권을 어쩌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대원군 시대처럼 우리를 속국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뜨거워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정치인들 가운데 우리 국가 안보를 두고 중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사대주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기고] ‘전세버스 교통안전 강화대책’ 제도화로 이어져야

지난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발생한 5중 추돌 사고로 20대 여성 4명이 사망하는 등 총 4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사고는 1차로를 운행하던 관광버스 운전자가 졸음운전으로 추정되는 전방주시 태만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서 진행하던 승용차를 추돌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5개 분야, 15개 부문, 36개 세부과제로 구성된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수년전부터 전세버스의 높은 사고 치사율 문제로 인해 각종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정책이 있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 다시 봉평터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왜 이와 같은 전세버스 대형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 첫째는, 사업용자동차 운수종사자의 자격기준과 운수회사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 운전자는 과거에 음주운전 등으로 인해 3번이나 면허가 취소된 전력이 있으며, 사고 운수회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고작 800만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낮은 운전자 자격기준과 운수회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사고를 초래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제라도 운수종사자와 운수회사에 대한 합리적인 자격기준과 벌칙수준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전세버스에 대한 교통안전점검의 내실 저하를 들 수 있다. 전세버스는 전국을 사업범위로 하는 관계로 대부분 등록지역을 벗어나 운행하는 관계로 최고속도 제한장치 해제 및 불법 구조변경 등 차량에 대한 점검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 전세버스 점검은 주사무소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업소와 영업소에 등록된 차량은 점검의 사각지대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전세버스에 대한 교통안전점검의 사각지대를 해소하여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시급히 추진해야 하겠다. 셋째로는, 운수종사자에 대한 적정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못한 문제를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세버스를 비롯한 사업용자동차 운수종사자만을 대상으로 특별히 준수해야 할 법정 근로시간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에 반해 미국, 영국, EU, 일본, 호주 등 선진국의 경우에는 별도의 근로시간 제한규정을 두어 최소 휴식시간과 최대 운전시간 등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임을 되새겨서 평균수면시간과 운전시간 등을 제한하는 합리적인 규정 마련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전세버스 등 사업용자동차 교통안전점검과 관련하여 비효율적인 행정체계 문제를 들 수 있다. 운수회사 등에 대한 교통안전점검은 ‘교통안전법’에 의거 인면허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토록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는 교통안전보다는 인면허 업무에 치중하고 있고, 대신에 교통안전공단이 지자체의 운수회사 점검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수회사 점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체계의 조정이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많은 운전자들이 대형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봉평터널 중대사고에 따른 정부의 전세버스 교통안전 강화대책은 이제부터가 시작임을 인식해야 한다. 일회성 판박이 대책에 머물지 않고 실효성과 지속성을 갖도록 지적한 문제들에 대한 관련 법령의 규정을 현실적으로 개정하는 후속 조치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철기 아주대 교수교통안전공단 자문위원

[천자춘추] 체감하는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

최근 지방자치제 실시 이래, 체감하는 정책에 대한 요구와 이를 실행하려는 집행부의 관심이 증대되어가고 있다.정책의 집행이 일방적으로 공급자의 입장에서 시달되어지는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정책의 수혜를 받는 시민의 입장에서 보다 생활에 밀착된 정책 또는 수요자 맞춤형 정책으로까지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의 관심은 보다 진화되어가고 있다. 이에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공급자와 수요자 주요 주체간의 협업이 강조되고 있고 그 방법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시도되고 있다. 경제적 용어로 사용되는 ‘프로슈머’라는 단어는 영어로 생산자의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 컨슈머(consumer)의 합성어이다. 즉 생산자가 소비자이고, 소비자가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의미로, 소비자의 요구를 생산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의지를 담은 단어이기도 하다. 이 단어는 정책에도 적용되어지고 있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 정책의 수혜자인 시민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지난달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재단에서는 각계각층의 시민들을 관객으로 인천시장과 함께 ‘인천여성의 삶과 희망’을 주제로 토크쇼를 진행했다. 섬에서의 삶, 인천에서 싱글맘으로 산다는 것은, 또 아이를 키우며 사는 워킹맘의 고충,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여성의 삶 등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인천시에는 이와 관련하여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고 앞으로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다. 시민이 체감하는 정책의 출발은 아마도 삶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접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천시는 300만 시대를 준비하면서 ‘혁신’과 ‘소통’, ‘성과’를 핵심가치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과 소통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투영하고자 시도 중에 있다. 최근 재단에서 받은 종합감사의 경우, 기본적 접근에서 ‘문제점의 지적’이라는 감사의 틀을 깨고, ‘문제점을 해결’해 주기 위한 컨설팅 감사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우리기관 직원의 업무진행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검토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도 않고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체감하는 정책의 출발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자세에서 출발하며,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이 체감하는 정책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문은영 인천여성가족재단 정책연구실장

[현장] 안심하고 놀아야 할 ‘어린이 공원’, 안전사고 도사린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아야 할 ‘어린이 공원’이 시설 개·보수는커녕 방치되면서 오히려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30일 오전 10시께 수원시 장안구 꽃뫼어린이공원. 맑은 날씨에 엄마 손을 잡고 공원으로 나온 어린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때 놀이기구 옆 농구코트 위를 뛰어놀던 한 아이가 바닥의 장애물에 발이 걸려 ‘쿵’하고 넘어졌다. 바닥은 곳곳이 뜯기고, 부서졌고 이를 가리고자 덧댄 부분마저 뜯어져 있었다.심지어 일부는 장판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인데다 잠깐 내린 비가 스며들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넘어진 아들을 일으켜 세우던 J씨(40·여)는 “아이가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해 이곳을 자주 찾는데 올 때마다 다칠까봐 걱정스럽다”면서 “오늘도 노심초사했는데 결국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났다”고 안타까워했다.이날 오후 1시께 군포시 하늘어린이공원 바닥도 이음매마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갈라지면서 발이 작은 아이들이 넘어지기 충분했다. 해당 부분은 틈이 생긴지 상당시간이 지난 듯 보였지만 주변에는 주의를 요구하는 안내판 등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또 일부 어린이공원은 아이들이 즐겁게 타고 놀아야 할 놀이기구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수원시 선재미어린이공원에는 그네를 지탱하는 기둥의 연결고리가 헐렁해져 있었다.더욱이 제때 수리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된 탓에 그네 기둥은 아이들이 탈 때마다 흔들거려 자칫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K군(8)은 “그네를 탈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나고 흔들거려 부서질 것 같아 무섭다”면서 “빨리 고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경기도 등에 따르면 도내 각 지자체마다 어린이들의 건강과 놀이공간 제공 등을 위해 ‘어린이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어린이 공원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와 비슷한 형태로 놀이시설과 농구장 등 체육시설이 함께 꾸며져 있다. 현재 수원시 196개, 군포시 94개, 의왕시 22개 등 도내 총 1천844개가 운영 중이다.그러나 공원 조성 이후 지자체마다 인력과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체계적인 관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설 개·보수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군포시 관계자는 “담당 부서 직원이 한 명당 많게는 50여개의 공원을 관리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면서 “내년에는 예산을 더 확보하고 직원들과의 협의를 거쳐 시급한 순서대로 시설 보수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선엽기자

[사설] 정부의 한진해운 몰락 방치, 과연 옳았나

한진해운이 몰락했다. 채권단이 결국 버렸다. 남은 길은 법정관리다. 해운사에게 법정 관리는 곧 청산이다. 당장 해외 채권자들이 선박 압류와 화물 운송계약 해지에 들어간다. 용선 선박 회수, 해운동맹체 퇴출 등의 조치도 줄을 잇게 된다. 사실상 모든 영업이 정지되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있긴 하다. 다른 기업으로 인수합병되거나 제3자 M&A가 이뤄지는 경우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진해운은 국내 해운사 1위 회사다. 대한민국 수출입 거래의 발이다. 선주협회는 최근 한진해운이 사라지면 대량해고는 물론 국내 철강 등 다른 업종으로까지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도 “한진해운이 쓰러지면 부산항의 연매출이 7조~8조 원 줄고 선용품과 물류시장 등 부산항만 관련 산업에도 연쇄 타격을 줄 것”이라며 회생을 소원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외면했고 결국 최악으로 갔다. 1주일여간 한진해운의 운명은 칼날 위를 걸었다. 조양호 회장이 5천억원의 자구책을 제출했다.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은 부족한 1조2천억원에 턱도 없다며 거부했다. 법정관리가 기정사실처럼 얘기됐다. 회사 측은 다시 해외 채권자들로부터 상환 유예 의사를 확보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꿈쩍도 안 했다. 30일에는 대한항공 유상증자 기일 확정 계획 등이 제출됐다.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마저 외면했다. 주목되는 건 이 과정에서의 정부 역할이다. 외면이라 보일 정도로 냉정했다. 경제계 최대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계자 누구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되레 법정관리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뉘앙스가 감지됐다. 업계에서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의 입은 곧 정부의 의견이라 여겨진다. 그런 그가 29일 “해운업이 악영향을 받는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 게 구조조정의 원칙”이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서 궁금해지는 게 항간에 들리는 정치일정 연관설이다. 국회에서는 이른바 ‘서별관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추가로 부실기업 지원이라는 빌미 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추측이 애초부터 나돌았었다. 그리고 결과가 그렇게 됐다. 정부는 부실기업인 한진해운에 지원하지 않았고, 한진해운은 스스로 책임지고 몰락했다. 우리가 한진 경영의 부도덕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부실기업 지원에 따른 혈세 부담도 당연히 인정한다. 정부가 이런 측면에서 한진해운 몰락을 지켜본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항간의 추측처럼 ‘서별관 청문회’라는 정치적 일정이 작용한 불가피한 외면이었다면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가 경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정부가 정치 앞에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경제가 힘들어진다면 그 책임은 정치와 정부에 있다. 한진해운 퇴출 1주일간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이 부작위(不作爲)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우려스럽게 지켜보고자 한다.

[지지대] 색소폰 정치

작은 무대가 마련된 ‘7080’ 술집이다. 들어서자마자 이규택 전 의원이 바빠졌다. 무대에 놓인 악기 가운데 ‘색소폰’을 보고서다. 폭탄주 몇 잔이 돌고 일행이 먼저 노래를 불렀다. 그 틈에도 이 전 의원은 홀로 바빴다. 무대를 오르내리며 무언가를 살폈다. 술도 마시는 둥 마는 둥 했다. 색소폰 연주를 위한 준비였다. 자신의 악기와 무대 기기를 맞춰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날 연주는 이뤄지지 못했다. 단념하고서도 그의 눈은 한참 동안 무대 위 색소폰을 바라봤다. ▶네 번이나 국회의원을 한 관록의 정치인이다. 그런 그의 색소폰 사랑은 유별나다. 정치 행사장에서도 기회만 되면 색소폰을 불었다. 낙선 후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절반 가까이 ‘색소폰 연주하는 이규택 전 의원’이다. 서울종합예술학교 석좌교수 시절엔 학생들 앞에서 연주했고,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시절에는 손님들 앞에서 연주했다. 그에게 색소폰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멤버들 모아지면 그룹을 만들어서 연주 봉사하려고….” 아쉽게도 ‘이규택 밴드’가 결성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색소폰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아칸소 주지사 시절, 군악대에 섞여 색소폰을 불었고, 대통령 선거 유세 때는 쉰 목소리로 연설 대신 색소폰을 불었다. 우리 정치에도 ‘색소폰 정치인’은 많다. 심재철 의원(안양 동안을)은 시민 축제에 참석해 연주실력을 뽐냈다. 정우택 의원(청주 상당)은 연말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현장에서 연주했다. 청중의 반응은 대체로 좋다. 번지르르한 인사말이나 구태의연한 정치구호보다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색소폰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끈적거리는 음색에서 묻어나는 호소력이 있다. 음량이 풍부해 스피커 없이도 야외 연주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협주할 악기가 없어도 독주가 가능한 것도 매력이다. 무엇보다 관객의 시선을 얼굴로 끌어 모으는 악기다. 손으로 하는 연주가 아니라 입으로 하는 연주다. 벅찬 숨을 몰아쉬며 땀을 뻘뻘 흘리는 열정적인 얼굴에 관객의 시선이 꽂힌다. 이런 장점들이 정치인의 차 트렁크에 색소폰을 자리하게 하는 모양이다. ▶경기도의회 정기열 의장(더불어민주당ㆍ안양 4)의 색소폰 사랑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특별한 독주회를 했다.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모시고 했다. 정치인의 방문이라면 이골이 났을법한 할머니들이다. 그 할머니들에게 지방 정치인이 바친 색다른 선물이었다. 보기에 특별했다. 정치인이 보여준 비(非) 정치적 행위가 특별했고, 연정 계산에 바쁜 도의회를 뛰쳐나간 모습이 특별했다. 정치가 색소폰과 만나 봉사로 이어진다는 것. 썩 괜찮은 조합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사설] ‘도가니법 위반’ 사회복지법인 파헤쳐야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 학생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2011년 10월 ‘도가니법’(사회복지시설법)이 만들어졌지만 유사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 곳곳의 복지시설에서 아동ㆍ장애인 성폭력 범죄가 툭하면 터지고 있다. 정부가 법은 만들었지만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고,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그동안 상당수 사회복지시설들이 친인척끼리 운영되거나 폐쇄돼 있어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다. 장애인을 불법 감금하고 굶기고 구타하는 가혹행위가 벌어지기도 하고, 성폭행에 임금 착취, 횡령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도가니법’ 시행과 함께 사회복지법인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 법인 이사회의 3분의 1을 외부이사로 선임하도록 했다. 하지만 경기도내 사회복지법인 67곳이 외부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내 전체 복지법인의 35%에 이른다. 경기도의회 임채호 의원(더민주ㆍ안양3)은 “경기도가 제출한 사회복지시설법 자료(등기부등본) 분석 결과, 사회복지법인 이사회의 3분의 1을 외부이사로 선임토록 한 ‘도가니법’ 위반 사회복지법인이 무려 67곳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중 단 1명의 외부이사도 선임하지 않은 법인이 11곳이나 됐다. 2013년 이후 선임 사유가 발생했는데도 규정을 어기고 선임하지 않은 법인도 56곳으로 확인됐다. 특히 A사회복지법인을 포함한 4곳은 기존이사가 외부이사로 추천돼 선임되는 등 속임수를 썼다. 도가니법 개정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경기도는 최근 사회복지법인인 평택 에바다복지회 임원 11명 전원에게 직무집행정지 및 해임을 명령하고 평택시에 임시이사 파견을 요구했다. 이사 정수의 3분의 1을 외부인사로 선임하지 않아서다. 도가 가혹한 처분을 내렸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법의 엄정함을 보여줘야 한다. 문제는 외부이사를 선임하지 않은 다른 사회복지법인에 대해선 과태료를 부과하고 시정지시만 내렸다는 데 있다. 이는 일관성 없는 행정조치로 형평성에 어긋난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내부 이사로만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은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은밀하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도는 이 참에 시ㆍ군과 함께 사회복지시설 전수 조사에 나서 위법한 곳은 행정처분 하는 등 보다 투명하게 시설이 운영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경제프리즘] 김영란법이 하고 싶은 말

농업은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큰 근본이라는 뜻을 담은 ‘농자천하지대본’은 농업ㆍ농촌의 근원적인 가치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가는 또 다른 근본인 부정·부패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김영란법과 농업과의 충돌로 세상이 시끄럽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영란법으로 인한 농축산업분야 피해가 최대 2조3천억원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앞다퉈 농업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명절 선물로 인기가 있는 한우선물세트는 98% 이상이, 인삼제품은 70% 이상이 5만원 이상인 점을 감안해 볼 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한우 등과 같은 농축산물의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ㆍ부패 없는 정의로운 사회도 만들고, 농축산물의 소비도 위축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은 없을까?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부패한 관료를 상갓집에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기웃거리는 사람으로 비유한 맹자의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김영란법의 제정 취지나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 볼 때 설득력 있는 대안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농축산물에 한하여 김영란법에서 정하고 있는 선물 허용한도 기준을 상향하자고 한다. 김영란법으로 인한 농업ㆍ농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 합의만 있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안으로도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법치국가에서 똑같은 액수의 선물인데 농산물은 허용되고, 비 농산물은 처벌 받는다는 이중 잣대의 한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농업과 김영란법의 충돌을 조율할 수 있을까? 우선 김영란법이 농업에 전하는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 김영란법이 농업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국민 식탁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이 정당하게 지불할 수 있는 정상적인 소비 범위 내에서 국민에게 사랑받는 농산물이 되어달라는 것이다.일반적인 한우선물세트의 한 귀퉁이에 소고기가 채워져 있는 5만원짜리 한우선물세트를 들고 1인시위하는 한우 생산농가의 절박감 못지않게, 한우선물세트 한번 받아보지 못한 서민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중요한 것이다. 시장개방의 파고를 넘어 어렵게 오늘까지 온 한우, 화훼생산 농가의 어려움을 모른 체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농업인이 소비 위축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와 별도로 이제 농업은 보여주기식 명절 선물이나 경조사용이 아닌 국민의 일상 식탁에서 근본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다.생산에서부터 소비지유통까지 각 단계별로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가족이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한우선물의 양은? 소비자가 먹기 좋아하는 과일의 크기는? 연인들이 SNS에 올리고 싶은 꽃은? 김영란법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가치소비시대에 우리농업이 가야할 갈림길에 서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농업과 김영란법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한영애가 부르는 노랫말처럼 간절히 소망해보자.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박종서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