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표심 잡아야 승리한다… 한동훈·이재명 ‘사활’ [총선 관전포인트]

4·10 총선 20여일 앞두고 여아 지도부가 주말 동안 경기도에서 이른바 ‘대표전’을 치른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모두 팬덤을 형성한 만큼 이들의 메시지가 주목된다. 14일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한동훈 위원장은 오는 16일 오산시와 평택시를 각각 찾는다. 오산은 민주당 5선의 안민석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무주공산이 됐기에 자당 김효은 예비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평택의 경우 선거구 분구에 따라 기존 2석에서 3석으로 늘어난 만큼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평택행을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평택갑·을(선거구 개편 전) 중 평택을(유의동) 한 곳만 차지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7일 양평에 이어 오는 17일에는 동탄호수공원을 찾아 민심 행보에 나선다. 4개 선거구로 분구된 이번 총선과 달리 21대에선 화성갑·을·병 선거구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경우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화성을로 출마하고 화성을이었던 이원욱 국회의원이 화성정을 선택했다. 이처럼 표 분산이 전망되면서 화성 선거구가 안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재명 대표가 이곳을 행선지로 정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지역 정가에선 지도부 방문 시 많은 인파가 몰리는 만큼 이들의 행보를 반기고 있다. 더욱이 총선은 지방선거와 달리 지역 현안을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에 인물론보다 정당의 바람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팬덤을 형성한 한 위원장과 이 대표 등 지도부의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분석되는 이유다. 다만 지역 정가에선 여야 대진표가 거의 마무리되는 지금이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잇따라 터지는 예비후보들의 막말 논란이 이유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도부가 잇따라 경기도를 찾는다는 것은 지역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라며 “공천이 마무리되는 이 무렵의 경우 막말 논란이 터지면 민심을 한 번에 잃을 수 있다. 이는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 모두 통용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여야, 경기·인천 후보 공천 마지막 퍼즐 맞추기

여야는 4·10 총선 후보등록을 일주일 앞둔 14일 경기·인천 후보 공천의 마지막 퍼즐 맞추기에 속도를 냈다. 국민의힘은 이날 하남을 경선에서 이창근 전 하남 당협위원장이 김도식 전 서울시 부시장을 누르고 본선에 진 승리를 거뒀다고 밝혔다. 하남은 인구가 늘어나 22대 총선에서 갑·을로 분구가 됐으며, 이 전 위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더불어민주당 김용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와 정면대결을 펼치게 됐다. 5인이 경쟁한 포천·가평 경선에서는 권신일 전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 기획위원과 김용태 전 청년최고위원이 결선을 한다고 발표했다. 김성기 전 가평군수와 김용호 변호사, 허청회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탈락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경기도 60곳 중 포천·가평 1곳만 남기고 모두 후보를 결정했다. 인천은 14곳의 후보를 모두 공천한 상태다. 민주당도 이날 오후 안산을·병 통합경선 결과를 공개했다.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전략선거구인 안산을과 안산병 통합경선 개표결과 김철민 국회의원과 김현 당 대표 언론특보가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고영인 국회의원은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3일 안산갑, 평택갑 등 경기·인천지역 선거구 7곳의 후보자 경선 결과도 발표했다. 안산갑은 친명(친이재명)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친문(친문재인) 3선 전해철 의원을 꺾고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평택갑에서는 친문 홍기원 의원이 임승근 전 평택갑 지역위원장에게 승리했다. 부천갑은 서영석 의원과 유정주 의원(비례)이 결선 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 부천을은 김기표 변호사가 서진웅 전 경기도의원을, 부천병은 친명계 이건태 민주당 당대표 특보가 4선 비명(비이재명) 김상희 의원을 눌렀다. 전략선거구인 인천 남동구을은 이훈기 전 기자가 이병래 전 인천시의원을, 서구병은 모경종 전 당대표실 차장이 신동근 의원과 허숙정 의원(비례)을 각각 이기고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한편 민주당은 오는 16~17일 양일간 진보당, 새진보연합과 함께 성남 중원·의정부을·파주갑·평택갑·하남을·화성갑 선거구 6곳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을 진행한다.

의대 증원 배분, 수도권 20%·비수도권 80%... 전공의, 국제기구에 개입 요청

의대 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분 80%를 비수도권에 집중시키기로 했다. 이처럼 정부가 의사 증원 배정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 정책에 반발, 국제기구 개입을 요청하면서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14일 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증원된 의과대학 정원을 수도권에 20%, 비수도권에 80% 배분한다는 방침이다. 증원 2천명 중 수도권에 400명, 비수도권에 1천600명의 정원을 늘리는 셈이다. 현재 전국 40개 의대 정원 3천58명 가운데 수도권 정원은 13개교 1천35명(33.8%), 비수도권 정원은 27개교, 2천23명(66.2%)이다. 정부 구상대로 정원이 배정되면 수도권 정원은 13개교 1천435명, 비수도권 정원은 27개교 3천623명이 된다. 이 경우 전체 의대 정원(5천58명) 가운데 수도권 비율은 28.4%로 5.4%포인트 축소된다. 반면 비수도권 정원은 71.6%로 확대된다. 지방 의대와 의대 정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학의 정원을 늘려 경쟁력을 갖게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교육부 주도로 이같이 의료 개혁 작업의 원칙을 정한 뒤 내달 마무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부는 맞춤형 지역수가 등을 도입해 국립대병원을 수도권 '빅5' 대형병원 수준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의료 수요와 의료진 확보 가능성 등 의료 공급 요소를 지표화한 의료 지도를 만들어 지역 상황에 맞게 수가를 책정 및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또 의대 지역인재전형 비율을 현행 40%에서 대폭 올리고, 의대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해 의대생 실습 지원 프로그램 등 '지역·필수의료 교육' 내용도 강화한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들이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이 부당하다며 국제기구에 개입을 요청하고 나섰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ILO에 긴급 개입 요청 서한을 발송했다"며 "정부가 2천명 의대 증원 등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다수의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업무개시명령 등 행정명령을 남발하고 형사고발을 예고했다"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이 요청한 개입이 제소와는 다른 만큼 ILO가 권고 등의 후속 조치를 내리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날 오후 8시 온라인 회의를 열고 전공의 미복귀 사태와 교수들의 집단행동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의과대학 교수들은 15일 사직서 제출 여부를 결정한다. 전국 19개 의대 교수들은 지난 12일 밤 회의를 열고 15일까지 사직서 제출 여부에 대한 논의를 마치기로 한 바 있다.

[경기만평] 끝없는 비명횡사...

[사설] 수원 군공항 공약, ‘안 될 약속’은 걸지도 마라

수원지역 민주당 예비후보들이 공항 공약을 발표했다. 수원 군 공항 이전, 경기국제공항 유치 연계, 군 공항 종전부지 첨단산업 거점화 등이다. 김영진 국회의원(수원병)은 “민주당 후보 모두 수원 군 공항 이전을 통한 첨단 산업 경제 특구 조성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김준혁 예비후보(수원정)도 “공통 공약 제시는 다섯 의원이 합심해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21대에 이어 두 번째 공통 공약 채택이다. 국민의힘도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공항 이전이 장기 과제인 점을 감안했다. 인접 지역 고도 제한 완화와 소음 피해 보상 강화를 약속했다. 방문규 수원병 예비후보는 “시민에게 (화성시와의) 합의 난항에 따른 어려움을 밝히고 주민 재산권 침해, 피해 보상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책임도 거론했다. 박재순 수원무 예비후보는 “민주당이 석권한 10여년간 수원 군 공항 이전 문제는 (정부 공항 계획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1954년 공군 관할이 시작됐다. 1980년대 이후 민원이 시작됐다. 2013년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2015년 국방부의 이전 승인이 있었다. 예비 이전 후보지로 화성 화옹지구가 결정됐다. 매 역사를 따라 정치가 공약했다. 우리 정치사에 이런 공약이 또 있었을까 싶다.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반복됐다. 하나같이 거짓말 공약이 됐다. 그게 또 시작된 것이다. 서로 ‘우리가 현실성 있다’고 한다.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다. 두 정당의 공약이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은 주로 공항 이전의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국민의힘은 현 상태의 피해를 구제하겠다고 약속한다. 각 당 지지자들의 평가는 당연히 편향적이다. 민주당의 공약이 미래를 연다고 평가하거나 국민의힘 공약이 실현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기로 한다. 신뢰도 없고, 기대도 없다. 수없이 스쳐간 공항 공약에서 얻게 된 교훈이다. 어차피 추상같은 판단은 유권자의 권한이다. 작금의 ‘공항 정치’에는 유권자의 책임도 크다. 검증하지 않고 무조건 받았다. 비판하지 않고 무조건 믿었다. 큰 잘못이다. 이 무책임과 무관심의 역사를 이제 끝내야 한다. 과거의 실패 이유를 물어야 한다. 공약이 날아갔다면 따지는 게 당연하다. 미래 공약을 분석하고 추궁해야 한다. 임기 4년에 할 수 있느냐, 얼마를 주겠냐고 따져 물어야 한다. 후보자에겐 공약을 던질 권리가 있다면 유권자에겐 그 공약을 따지고 채점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끈 문제라고 수십 년 끌진 않는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공항 선거’일 수도 있다.

[사설] 환자 볼모로 극단 치닫는 의•정, 합리적 타협점 찾아야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1만2천여명이 병원을 집단 이탈한 상황에서 의과대학 교수들도 집단 사직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중 서울대, 연세대, 아주대 등 19개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 복귀를 위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이들은 15일까지 학교별로 교수들의 사직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4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동맹 휴학 중인 의대생들의 유급 처리가 임박했다. 전체 의대생의 75%인 1만4천여명의 휴학 신청자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수업일수 부족으로 집단 유급을 당하게 된다. 의대 교육이 파행하고 의사 배출 계획에도 큰 차질이 빚어진다. 이에 의대 교수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의료 공백 사태 해결과 전공의·의대생 보호를 위해 나서고 있다. 의대생 집단 유급은 의료 공백 사태의 장기화를 불러오게 된다. 의대 교수들은 “비대위의 목표는 의대생과 전공의가 무사히 복귀해 교육과 수련을 마치는 것”이라며 정부에 협상을 요청했다. “의대 증원을 1년 늦추고 논의를 계속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 “흔들림 없는” 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의대 증원에 대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대화 의지가 없는 듯하다. 정부는 “어렵고 힘들어도 미래세대를 위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전공의와 의사협회 등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답답한 형국이다. 의사가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전공의가 이탈한 병원에서 중증·응급환자를 보고 있는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나면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의료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환자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부 탓도 크다. 정부도 환자를 볼모로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비상 진료체계는 허술하다.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진료보조(PA) 간호사들이 메우고 있다. 은퇴 의사도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임시방편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정부의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은 해법이 아니다. 의·정 갈등이 심각한데 여야는 총선에 몰두하느라 관심도 없으니 한심하다. 정치의 실종이다. 의·정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기 전에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사협회·여야·국민·교수·전공의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협의체가 의·정 대치의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치킨게임은 안 된다.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김남희의 길 위에서] 파타고니아의 매력에 푹 빠진 이유

누구에게나 마음에 품은 공간 하나는 있을 것이다. 그 땅에 닿기도 전에 영혼을 사로잡히고, 그 땅에서 돌아온 후에는 지우지 못하는 생채기처럼 그리움이 남는 곳. 내게는 지구 반대편의 멀고도 먼 땅 파타고니아가 그런 곳이다. 구글 검색을 하면 아웃도어 브랜드 이름이 먼저 뜨는 곳이지만 사실 그 브랜드의 창업자도 젊은 시절 파타고니아의 거벽을 오르내리며 그 땅과 사랑에 빠졌다. 한반도의 5배 크기인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에 걸쳐 있다. 안데스 산맥, 고원과 평원, 무수한 빙하와 피오르 해안을 품었고 서쪽으로는 태평양, 동쪽으로는 대서양을 마주한다. 그 옛날 마젤란 원정대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 평균 신장이 180㎝에 이르는 원주민 테우엘체족을 보고 거인(patagon)의 땅이라고 부른 데서 이름이 시작됐다. 사실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에는 명확한 지리적 경계가 없다. 아메리카 대륙 남위 40도 부근을 흐르는 콜로라도강과 네그로강 이남 지역을 말할 뿐. 그 이름이 내 인생에 처음 등장한 건 30대 중반일 때였다.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와 ‘지구 끝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 분야 고전으로 꼽히는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는 내게 별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칠레의 작가가 쓴 책에는 그 땅에 대한 애정과 깊은 이해가 살아있어 나를 흔들었다. 언젠가 그 땅에 가리라. 가서 그 땅의 바람과 햇살을 내 몸에 새기리라. 그런 다짐을 품고 있다가 40대 초반이 돼서야 파타고니아에 다다랐다. 도착하는 것만으로 이미 다 이룬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머나먼 땅이었다. 텐트와 식량을 이고 지고 다니며 혼자 캠핑을 했던 그 석 달은 내가 가장 멀리까지 나아갔던 시간이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단독자로 단단하게 선 듯한 기분이 들던 날들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모든 것을 날릴 듯 불어오는 바람 -실제로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에서 서양 남성이 날아가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루에 사계절을 다 맛볼 수 있는 변덕스러운 날씨-파타고니아의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 금세 다른 날씨를 보여줄 테니-.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환경이 주는 막막한 고립감. 내가 살던 세계에서 이토록 멀리 떨어진 곳에 혼자 서 있다는 자유로움과 달콤한 고독. 그 땅의 모든 것이 기쁘게 내 영혼에 스며들었다. 올해 1월, 함께 여행하는 그룹인 방과후 산책단과 함께 세 번째로 찾은 파타고니아는 여전히 나를 뒤흔들었다. 그 땅의 날씨처럼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이 나를 후려쳤다. 원래도 치안이 불안정한 대륙으로 손꼽히는 곳이 남미다. 수많은 사건 사고를 감당해야 하는 곳이다. 작년에는 페루의 시위로 국경과 공항이 막히는 바람에 일정과 루트를 현지에서 급히 변경해야 했다. 올해는 볼리비아가 시작이었다. 관광비자를 받는 일이 그토록 힘겨울 줄이야. 하루이틀 비자를 발급하다가 인지 소진으로 업무 중단. 인지가 올 때까지 보름 남짓 대기. 발급 업무가 재개되면 이틀 만에 또 소진. 다시 대기. 결국 출국 일주일 전에 오전 5시부터 줄을 선 후에야 겨우 비자를 발급받았다. 달러가 부족한 나라라 비자로 달러 장사를 한다는 말이 돌았다(서울에서 받는 비자는 30달러, 현지 도착 비자는 120달러였다). 무사히 남미에 들어섰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사태가 터졌다. 지난해 11월 당선된 새 대통령이 페소화 가치를 54% 평가절하하면서 호텔비, 투어비, 식사비 모든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미리 해놓은 예약도 아무 소용이 없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가치가 떨어진 돈다발 무게에 휘청이면서 예정에도 없던 긴축 재정을 펴며 다녀야 했다. 치안은 불안정하고, 시차는 정반대고, 멀기는 너무나 먼 남미 대륙. 그런데도 나는 왜 계속 남미로 향하게 되는 걸까. 모든 계획을 무효로 만드는 예측 불가능성이 어쩌면 이곳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인간이 함부로 손대지 못한 장엄한 자연. 통제불능의 냉혹한 자연이 남아있는 이곳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파타고니아의 주인이라고도 할 만한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면 더욱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게 된다. 파타고니아는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드는 땅이다. 우리의 파타고니아 트레킹은 세 곳에서 보름 동안 진행됐다.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아르헨티나의 엘찰텐과 우수아이아. 토레스델파이네의 W 트레킹은 4박5일간 배낭을 메고 산장이나 텐트에 머물면서 걷는다. 그레이 빙하의 푸른 빛도, 프란세스 계곡에서 바라보는 바위 봉우리의 장엄함도 여전했다. 마지막 날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오전 3시 산장을 출발해 라스토레스 전망대로 향했다. 서로의 발자국 소리만이 사위를 채우는 길을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걸었다. 추위와 바람에 덜덜 떨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던 어느 순간,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태양빛을 받은 거대한 바위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새삼 이 행성에 인간으로 태어난 행운에 감사했다. 토레스델파이네가 장엄하다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대표선수 격인 엘찰텐은 화려하다. 여기선 숙소에 짐을 두고 매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어 부담도 적다. 이곳 트레킹의 백미는 라구나데로스트레스 트레킹.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이 길의 끝에는 세 개의 호수 너머 3천m급 바위 봉우리 엘찰텐이 고생을 보상하듯 기다리고 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또 다른 대표선수는 페리토모레노 빙하.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빙하 중 가장 아름답다고 꼽는 빙하다. 아이젠을 차고 빙하 위를 걸으며 얼음의 성벽을 몸으로 껴안아 본 후에는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로 향했다. 남극까지 1천㎞면 다다르는 곳이라 지구 끝까지 내려왔다는 어떤 우수 어린 감상에 젖게 되는 곳이다. 우수아이아 국립공원과 에스메랄다 호수를 걷고 난 후에는 배에 올랐다. 비글해협 투어를 하며 펭귄 무리와 보리고래들, 바다사자 떼와 가마우지를 만났다. 이 모든 트레킹을 하는 내내 자신의 페이스를 포기하고 후미를 챙겨준 분이 있었다. 꽃보다 사람이라고 했나. 혼자 하는 트레킹이 어딘가 비장하고 외로운 대신 세심히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면 여럿이 함께 걷는 길은 유쾌하고 든든했다.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지구의 환경은 날로 망가져 가는데 여행을 하며 밥을 버는 일의 모순도 점점 나를 짓누른다. 토레스델파이네의 계곡이, 비글해협의 펭귄과 고래들이, 페리토모레노 빙하가 조금이라도 오래 남아 있으려면 내 발걸음이 멎어야 하니.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것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음 여행지의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는 나란 존재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삶과 종교] 진정한 독립의 의미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에 우리의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 하는 날이 있다. 바로 3월1일, 3·1 독립운동을 기념해 제정된 삼일절이다. 나라 잃은 슬픔과 치욕을 되새기게 되는 날이며 일제강점기 비폭력으로 저항한 날이다.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그리고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독립운동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오직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중략)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에서 ‘님’은 부처님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님’과 갑자기 이별하게 된다면 깊은 슬픔과 절망과 고통 속에 빠진다. 그런 상황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고자 힘과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다.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즐거운 일 등 많은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수 없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은 다 겪어내고 견뎌야 한다. 우리 인생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또는 장편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볼을 꼬집어본 적도 있지 않은가?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면 안 좋은 일일 수 있고, 안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절망에 빠지거나 상황이 더 나빠져 헤어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스스로 확고하게 마음의 주인이 돼야 한다.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매 순간 깨어 있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있어야 한다. 지혜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눈앞의 작은 이익과 욕심에 눈이 멀지 않고, 분노와 원한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게 된다. 지혜롭게 일을 결정하고 판단해 실행에 옮기면 후회할 일이 적어진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임을 잊지 말고 당당하게 우뚝 서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깊은 내면의 지혜와 자비를 발현해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했으면 좋겠다. 삼일절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면서 지금의 ‘나’가 존재하기까지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나’와 내 주변을 소중히 여기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지대] 백두산이 중국의 세계지질공원?

중국의 백두산 세계지질공원 인증이 현실화된다. 그것도 그들의 호칭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말이다. 오는 27일까지 진행 중인 제219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확정된다. 신청 시기는 지난 2020년이다. 백두산은 4분의 1이 북한, 4분의 3이 중국에 속해 있다. 지리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천지는 약 55%가 북한, 곧 우리의 영토다. 헌법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돼서다. 이 사안을 좀 더 들여다보자. 외신에 따르면 중국이 유네스코에 제출한 백두산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위한 설명 자료에는 북중국강괴 중국 북동쪽 경계와 유라시아 대륙, 환태평양조산대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해 화산 활동으로 수백만 년 동안 독특한 지형으로 형성됐다고 소개됐다. 이어 1천년 전 밀레니엄 분화를 비롯해 다단계 분화가 있었고, 다양한 암종과 복잡한 화산 지형이 형성돼 시간에 따른 지구의 역동적인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자연 실험실이라고 설명돼 있다. 사실 중국은 지난 2006년부터 백두산의 세계지질공원 등재 신청을 준비해 왔다. 앞서 북한도 2019년 백두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이번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인증될 후보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세계지질공원은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명소와 경관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지정된다. 총 48개국에 195곳의 세계지질공원이 있고 한국과 중국에는 각각 5곳과 41곳이 있다. 국내 학계에선 중국의 이번 조치를 백두산의 역사와 가치를 독점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고구려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올리고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규정한 한반도 역사 왜곡 정책의 결정판인 셈이다. 발해를 중국 고대사로 편입하는 데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이 엄중한 사태를 남의 나라 일처럼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