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남한산초’를 꿈꾸며

2009년 민선교육감의 당선과 함께 시작한 혁신교육 10년은 대한민국 교육개혁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특히 경기도 혁신학교는 그간 좌절감에 휩싸여 있던 공교육 혁신에 대한 상징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혁신교육이 확산되는 길잡이가 됐다. 그간 시대적사회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 학교개혁이 관료주의에 의존하는 하향식 교육개혁을 시도해 왔으나 성공적인 학교 개혁을 이끌지 못했다. 이에 반해 혁신학교 정책은 현장교사의 자생적인 학교 개혁 운동을 경기도교육청 단위의 혁신학교 제도로 발전시킴으로써 한국 교육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경기도에서 혁신학교 제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진보적인 민선교육감 탄생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2000년 초부터 시작되었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과 새로운 학교운동 등 교사중심의 아래로부터의 자생적인 학교개혁 운동이 참교육 실천 운동으로 1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왔기에 혁신학교 제도로 발전될 수 있었다. 이는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렸던 남한산초등학교와 같은 학교혁신의 성공적인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교 내부로부터 변화 동력을 형성한 선도적인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고 성공적인 모델을 창출하고 확산해 나아갔다. 혁신학교는 무엇보다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환경과 개인주의가 강한 교직문화를 민주적이고 역동적인 문화로 바꾸어 내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개별 교사의 실천과 교실 장학에서 학교 단위로 하는 교사 공동체의 실천 활동으로 바꾸어 냄으로써 여론의 지지와 학교 현장의 혁신동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제 혁신교육 또한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함께 다양한 교육적 상상과 새로운 도전으로 미래사회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간 혁신교육이 운동과 제도의 만남을 통한 학교를 단위로 하는 개혁이었다면 혁신교육 3.0은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개별 학교 단위의 접근을 넘어 지역적 교육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 지역의 교육자원을 학교와 공유할 수 있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 초중고 학교 간 개방과 협력을 통한 학교 간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미래를 열어갈 제2의 남한산초등학교와 같은 실험적인 미래 학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창의적인 학사운영과 학교 다양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강력한 학교 자율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간 혁신교육의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미래교육을 촉진하기 위한 인사제도, 교육행정, 교육환경 등 총체적이고 파격적인 행정 혁신을 통해 경기 혁신교육 또한 새로운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서길원 도교육청 미래교육국장

3·1운동 100주년… 우리 학교도 ‘100살’

올해는 3ㆍ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 1919년 개교한 도내 학교는 수원 태장초, 용인 백암초, 용인 송전초, 김포 양곡초, 여주 북내초, 여주 이포초, 남양주 금곡초, 가평 미원초 등 총 8개교다. 각 학교들은 100년의 자부심을 갖고 각자의 꿈을 실현해 또 다른 100년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개교 100주년 기념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가평 미원초등학교(교장 김명희)는 100년의 기억ㆍ100년의 약속, 함께 가는 미원 가족이라는 주제로 재학생과 졸업생, 동문회,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100주년 기념 행사를 4월 중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미원초교는 이창식(1858~1940) 선생이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재 미양초등학교 부지 1천650㎡를 기증했고, 그 자리에 1919년 4월 18일 미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18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 가평 미원초등학교를 방문해 3ㆍ1운동이 일어난 해에 설립된 미원초등학교 학생으로서, 독립정신을 이어가는 학교임을 자랑스러워 하자는 말로 개교 100주년 기념식 축사를 시작했다. 이어 오늘은 여러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 정신을 이어 받아,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결심을 하는 날이라면서, 여러분이 3ㆍ1독립정신과 임시정부 수립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좋은 학교, 더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용인 백암초등학교(교장 최인실)도 지난 20일 개교 100주년 기념식 및 총동문 한마당 행사를 열고 100년간의 역사를 담은 백암초등학교 100년사를 출간했다. 백암초교는 3ㆍ1운동의 역사가 시작되던 해인 1919년 4월 29일 백암 공립 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이어 1923년 4월 6년제 5학급 편성 보통학교로 승격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만 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날 행사는 학교의 100년 역사가 담긴 사진 영상 시청으로 시작됐다. 영상이 끝난 후, 재학생들이 준비한 축하공연이 열렸다. 뒤이어 열린 기념식에서는 학교와 총동문회 발전에 기여한 동문 등에 대한 감사패 및 공로패 전달, 재학생에 대한 장학금 전달 등이 진행됐다. 홍성기 총동문회장은 100년간 꿋꿋하게 지켜온 백암지역 교육 터전으로서의 가치를 깊이 새기고 앞으로 이어갈 100년의 역사를 함께 하자며 이를 위해 지역주민, 학생, 학부모와 교원들이 모두 함께 지금처럼 노력하자고 말했다. 최인실 교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 100년간 교육 활동에 대한 지역 주민들과 동문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백암 교육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백암지역의 특성을 살린 창의적이고 혁신적 교육 활동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난 후 운동장에서는 100주년 기념비 제막 행사가 열렸다. 백암초교 100주년 기념비에는 함께한 100년, 함께할 100년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미디어경청종합

[학생칼럼] 고기없는 고기의 시대 온다

4월 1일 미국 세인트루이스 지역을 중심으로 식물성 고기로 만든 임파서블 와퍼(Impossible Whopper)를 버거킹 59개 매장에서 시험 판매하기 시작했다. 임파서블 와퍼는 진짜 고기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식물성 고기로 대체된 햄버거로, 겉보기에는 기존 버거와 다를 게 없다. 많은 사람은 식물성 패티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 일반 버거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동물성 버거와 유사한 맛과 식감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식물성 고기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임파서블 와퍼는 실리콘 밸리 기업인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로부터 납품받은 패티로 만든 버거다. 임파서블 푸드는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를 만드는 미국의 푸드 테크 기업이다. 임파서블 푸드는 이 대체 고기의 핵심인 헴(Heme)이 고기의 맛을 더 고기처럼 만든다고 설명한다. 살아있는 식물과 동물에서 발견되는 필수 분자인 헴(heme)은 우리 몸에서 산소를 공급하고 피를 붉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임파서블 푸드에서는 콩 뿌리에서 DNA를 채취한 뒤 식물성 헴을 효모 발효를 통해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그 안전성을 검증받아 현재 다양한 식물성 고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버거, 미트볼, 샌드위치, 피자, 타코스 등 이 고기가 사용된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즉, 고기를 줄인다는 것과 이를 대체할 고기가 나온다는 것은 단지 비건들만 환영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장기적으로 전 세계적인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기를 필수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육류소비를 당장에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식물성 고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으며 점점 더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뉴욕, 홍콩, 마카오 등 세계 곳곳에서 임파서블 버거를 맛볼 수 있다고 하니 직접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채식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지구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늘어감에 따라 모두를 위한, 지구를 위한 건강한 식품이 더 많이 세상에 나오길 기대해 본다. 임수완기자(용인 풍덕고 3)

[학생칼럼] 2014년 4월, 그날의 기억을 기록하다

이상하게 먹구름이 짙었던 것 같다. 2014년 4월 16일 집에 와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러나 울상을 짓는 엄마 표정을 보고 덩달아 무섭고 불안했던 것 같다. 이러한 불안은 잠자리에 누웠을 때 배 안에 갇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짖었을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말았을 때야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분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고 겨우 5년이 지났을 뿐이다. 직설적인 가사는 보통 힙합, 아니면 대놓고 웃기는 개그송에 많이 쓰인다. 괴팍하고 과격해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진지하거나 민감한 소재는 은유적인 표현법을 많이 쓴다. 너무나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음악가 몇몇은 2015년 2월 23일 다시, 봄 음반을 발표한다. 앨범은 재즈, 국악, 포크 등 일반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르들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 생소함과 잔잔함이 한국인 그 누구라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변주하다 보니 섣불리 지루하다고 단언할 수가 없다. 담담함 속에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음악은 깊은 곳에서부터 사람을 자극한다. 2014년 4월은 갔고 앨범이 발매된 2015년 2월 또한 갔다. 그러나 그 사건과 음악은 여전히 실감이 나고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기억해낼 수 있다. 필자는 다시, 봄을 만들어준 뮤지션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겉으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음악의 형태로 기록했기 때문에. 윤가을기자(양평 양평고 2)

[교단에서] 나는 특수학급 야구 감독이다

나는 특수학급의 야구감독이다. 나는 특수학급이라는 팀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우리 팀은 팀원 간의 결속력이 떨어져 있고 선수 간의 실력 격차도 많이 나고 경기에 나가면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일들이 번번하고 사사구가 자주 일어나 대량실점으로 연결되며 대패를 하는 일이 많은 팀이다. 내가 이 팀의 감독을 처음 맡을 때에는 내가 선수였던 시절을 떠올리면 선수의 장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가 주장하는 훈련 스타일로 계속 가르쳤다. 그런데 선수가 내 훈련을 못 따라오는 것에 나는 화가 나고 많이 혼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왜냐하면 선수마다 훈련스타일을 다르게 해 선수의 기량을 최대로 뽑아내주는 것이 감독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르쳤던 한 선수는 내가 시켰던 훈련에 흥미를 잃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했다. 훈련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며 훈련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다른 선수에게 훈련시간에 말을 시키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일이 많았다. 나는 이 선수에게 어떤 것이 필요할까 고민했다. 내가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다양한 방법의 훈련 스타일을 적용해보니 이 선수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을 찾아냈다.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캐릭터나 동물을 이용해 훈련을 실시했다. 확실히 다른 때보다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훈련시간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흥미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변화하는 선수를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선수가 크게 다쳐 놀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엄청 당황해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지배해서 나는 제대로 대처 못하고 놀란 마음에 괜찮아라는 말을 수백 번 읊조린 것 같다. 선수가 더 놀랐을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는 나보다 선수가 더 놀랐고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텐데 초보감독 티를 내고 있던 것 같다. 지금은 이러한 상황이 일어난 것을 파악하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감독이 된 것 같다. 경험이 나를 프로야구감독은 아직 멀었지만 2군 리그 야구감독으로 이끌어준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내가 선수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선수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선수들을 잘 살피며 즐겁게 훈련하고 있다. 끝나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미국 프로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한 말입니다. 야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8회까지 지더라도 아직 9회가 나에게 남아있다. 역전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끝까지 포기 않고 이길 각오로 할 것이다. 사실 감독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구단(교육청이나 학교), 선수, 선수지원단(학생의 가족이나 지인 등)의 도움으로 나는 이끌어가는 것이다. 구단의 적절한 지원, 감독에 신뢰를 보내는 선수, 선수들을 향한 아낌없는 지원단 그리고 팬(학생이 속해있는 구성원들, 통합학급친구, 선생님, 전교생, 국민들)이 있기에 이 팀이 이뤄졌고 내가 이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팬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팬들이 하나가 돼 선수들과 경기를 이끌어 갈 때 승리에 더 가까워지고 팬들의 사랑으로 선수는 힘을 내고 성장한다. 물론 팬들의 무관심, 비난 속에 상처도 받지만 팬들과 함께 하는 경기 순간만큼은 팬도 우리 팀이다. 모든 감독들은 쓰라린 역전패를 당하면서 앞으로도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겁니다. 거장이나 명장이 아닌 신임감독들이 펼치는 승부를 보면 감독은 실수도 합니다. 특수학급이라는 팀을 이끌어가는 모든 감독님들(선생님들) 힘내세요. 여러분의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이며 그 선수를 이끈 멋진 명장이 되길 바랍니다. 이지희 포천 영중초 특수교사

달달한 입대

광석은 4월 3주 주간학습안내를 작성하고 있었다. 매주 하던 일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광석은 다음 주에 교실에 없기 때문이다. 4월 3주 월요일에 입대하게 된 광석은 자신이 없을 시간에 대한 안내문을 작성하고 있는 자신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안내문이 나가는 4월 2주 금요일까지는 자신이 2학년 4반의 담임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1교시부터 금요일 4교시까지 한 시간씩 채워가면서 광석은 정작 자신의 다음 주 시간은 자신의 손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방송부 이광석 선생님은 지금 바로 방송실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주간학습안내의 가정통신문란에 담임교사의 입대로 인한 담임 교체라는 문구를 입력하던 광석은 자신을 찾는 방송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송부 업무는 이미 광석의 빈자리를 채울 신규 교사에게 다 인수인계했는데 무슨 일로 자신을 찾을까 생각하며 방송실에 다다르니 방송실 문에 작은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지금 방송부 학생들이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이광석 선생님은 도서관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광석은 포스트잇을 떼며 방송실 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송부장 지혜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호만 갈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싶어 4층 도서관으로 가보니 도서관에는 체육관으로 가시오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부 학생들이 방송실 문을 잠그고, 무엇인가를 꾸밀 시간을 벌기 위해 광석을 여기저기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광석은 체육관에서 급식실로, 급식실에서 운동장으로, 영어 교실과 음악실을 지나 과학실까지 방송부 학생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포스트잇을 떼며 학교를 돌아다녔다. 안 그래도 군대에 가면 온종일 걷는다는데 내가 입대 전에 왜 학교를 걸어야 하나, 그냥 방송실에 가서 마스터키로 문을 열어버릴까, 광석이 슬슬 지쳐갈 무렵 보건실에는 마지막으로 보이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광석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방송실에 방송부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른 내려오세요. 광석이 방송실 문을 열어보니 어둠으로 가득한 방송실에 하나둘씩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방송실 문을 따라 난 풍선 길의 끝에는 방송부 학생들이 케이크를 들고 광석을 향해 웃고 있었다. 선생님, 몸 건강히 군대 잘 다녀오세요! 광석은 방송부 학생들이 내민 케이크의 불을 후- 불어서 끄고, 방송부 학생들과 함께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방송부 활동을 하며 쌓인 추억들을 나누었다. 케이크를 거의 다 먹어갈 무렵, 광석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떼어낸 포스트잇을 방송부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얘들아, 그런데 이 포스트잇은 언제 다 붙인 거야? 방송실 꾸밀 시간 마련하려고 그런 거지? 남은 케이크를 사이좋게 나누던 방송부 학생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한참을 웃었고, 웃음이 잦아들 무렵 방송부장 지혜가 광석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군대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학교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마음에 담아 가시라고 했던 거예요. 광석은 입안 가득한 달달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케이크 한 조각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 이 글은 사성진 선생님이 신규 때 군대를 가기 전에 겪었던 일을 소설 형식으로 쓴 원고입니다 사성진 양주 옥정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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