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특집-선생님 이야기] 낙서(樂書)

6년 전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인해 학교를 떠나 있던 적이 있다. 어느덧 주변에서 나를 향한 호칭은 선생님이 아닌 애기엄마가 되어 있었다. 생애 처음 듣는 이름이 조금은 어색하였고, 조금은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이라고 듣지 못하는 게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관리비 청구서 정도만 꽂혀 있곤 하던 우편함에 우표도 없는 편지와 초콜릿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으로 진로를 선택했던 남자 아이가 꾹꾹 눌러쓴 글은, 처음이었어요. 교과서에 낙서를 할 때면 늘 혼나기만 했었는데, 낙서라해서 미안하다고 말한 선생님이....라고 시작하고 있었다. 함께 한 고등학교 2학년, 1년간의 고마움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천천히 읽으며, 사실 많이 부끄러웠다. 다들 문제집 풀던 아침자습 시간에 선생님 눈치 보며 연습장에 그림 그리던 그 녀석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어서 그냥 허락을 했던 것뿐인데, 그걸 고마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발령받은 지 겨우 2년차에 의욕만 넘쳤지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는, 아니 헤아려야 하는 지도 몰랐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는데 그런 새내기 교사가 우연히 잘한 걸 칭찬해주는 학생이라니. 올해 초, 청년이 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복직하고 내내 나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침이 되는 그 편지를 남겨놓고서는 그런 자기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말을 꺼내고 있다. 이번에는 그 친구의 편지가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나누는 대화를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때,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해 즉흥적으로 지어냈는데 창의적인 답변이라고 존중해주셨던 국어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못한 게 떠오른다. 그 선생님 덕택에 지금 나 역시 이렇게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음을 용기 내어 한번 감사드려야겠다. 김혜빈 시흥 장곡중 교사

[스승의 날 특집-선생님 이야기] 말썽쟁이가 선생님으로 사는 법

어린시절 모범생이었던 사람은 절대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의 엉뚱하고 잘못된 행동을 선생님으로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어렸던 시절, 나의 어머니께서는 장난기가 너무 심한 딸을 두고, 너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릴 때면 내가 절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나는 교실에서 굉장히 많이 떠드는 학생이었다. 하루를 마칠 때면 어김없이 칠판에는 떠든 학생으로 이름이 적혀 있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유치한 행동을 많이 했던 말썽꾸러기였지만, 결코 나쁜 학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누군가 내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기를 바라는,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약한 아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교사로서, 학생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돌발행동을 할 때면, 아이들의 약한 마음을 감싸주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주먹다짐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쟁이였다. 친구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면 종종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싸우곤 했다. 당시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대화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친구를 울게 하면 나의 의견이 옳은 것이 되고,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후회가 남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나와 같은 학생들을 볼 때면 나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격려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말썽쟁이였던 데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나는 숙제를 거의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숙제습관을 고쳐주시려고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으셨다고 한다. 내가 숙제를 가지고 집에 올 때마다 5분만 더 있다가요라고 미루기 일쑤였고, 아주 간단한 숙제라도 이를 완성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한 글씨 또한 엉망이라 알아보기 힘들었다. 왜 나는 그렇게 행동을 했을까? 그 당시 매일 너무나 많은 숙제가 있었으며, 대부분 굉장히 지루한 숙제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숙제보다 재미있는 다른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교사로서 그때를 떠올리며 불필요한 숙제는 내어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일 숙제를 내어주어야 할 때는 최대한 그 양이 적게 그리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내주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어린시절 선생님이 너 때문에 학교 오기가 싫어!라고 말씀하실 정도의 말썽쟁이였다.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수많은 과거의 조각들로 이뤄진다는 말처럼 비록 나의 선생님에게는 말썽쟁이였지만, 그때 내가 말썽쟁이였기에 교사로서 더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다독거려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오늘도 그 말썽쟁이는 선생님으로 산다. 멋진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며! 김효진 화성 화산초 교사

쌤튜버·래퍼·웹툰작가… 도교육청 홍보대사 이색 경력 눈에 띄네

경기도교육청 홍보대사는 특별하다. 쌤튜버부터 고등래퍼, 그리고 웹툰작가까지 그야말로 끼와 능력으로 똘똘 뭉친 학생들과 교원들이 포진해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4월 26일 교사, 학생 등 경기교육가족 6명을 경기교육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최근 일명 쌤튜버로 부각되고 있는 교사 김차명(시흥 배곧초, 웹툰 작가), 허준석(부천 범박고, EBS 영어 강사), 이현지(광명 빛가온초, 래퍼)가 이번 홍보대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예명 달지로 활동하는 이현지 교사는 유튜브 구독자 수만 24만 명에 달하며, 최근 학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잔소리라는 제목의 신곡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현지 교사는 학생과 선생님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 나가는 경기도 교육청 홍보대사로 활동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며 더욱 행복한 교육과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호진, 최보배 학생과 타악기 연주자 정건영 교수도 경기도교육청 홍보대사가 됐다. 김호진(군포고 3학년)은 랩스쿨 경기꿈의학교를 이수하고 음악전문채널 고등래퍼 프로그램3에 출연했으며 현재 구독자 수가 12만 명인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김호진군은 처음에 음악을 시작하게 도움을 준 친구들, 진로선생님처럼 저도 다른 친구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홍보대사로서 재미있고 즐거운 활동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보배(수원 광교중 2학년)는 빌보드차트 32위를 기록한 노래 상어가족을 직접 부르고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와 콩순이에 성우로 활동했다. 정건영(세한대, 경기꿈의학교 활동) 교수도 발달장애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지도하며 각종 청소년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보배양은 제가 경기도교육청의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것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며 앞으로 활동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홍보대사로 위촉된 6명은 뛰어난 실력으로 각자 영역에서 두드러진 활동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경기교육에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경기교육가족이라는 점에서 위촉의 의미가 크다. 이들은 1년 간 재능기부를 통해 학생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각종 교육 관련 캠페인 활동에 참여해 학생들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이재정 교육감은 경기교육 홍보대사로서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생활하며 무엇이든 하고 싶도록 의욕과 동기를 만들어 달라며, 교육으로 학생 삶 바꾸는 것은 대한민국 미래 역사를 바꾸는 것이니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해 줄 것을 당부했다. 미디어경청종합

분단의 현장에서 평화를 생각하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 경기 학생 ‘평화선언 캠페인’ 참가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사건 판문점 선언에 대한 뉴스를 학교에서 생중계로 보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인사를 나누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대화하는 모습은 나에게 평화의 의미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늘 먼 곳이고 위협적인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뉴스를 계기로 북한과 우리는 한민족임을 다시 자각하게 되었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판문점 선언 1주년 캠페인 행사에 지원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평소 나는 평화와 통일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군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분단의 현실에 대해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재학 중인 학교도 김포 북부지역으로 서울보다 개성과 거리가 더 가까운 곳이기에 평화와 통일은 학문적 개념이 아닌 생활 속에서 겪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청소년단체 통진고등학교 주니어-ROTC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기에 판문점 1주년 기념행사는 큰 의미가 되었다. 철책선 앞 북한이 보이는 곳에서 평화 파도타기, 평화 노래, 그리고 평화 만세 삼창 등을 하면서 평화에 대한 기원을 빌었다. 그리고 학생 대표로 김포 학생 평화 선언문을 읽으며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평화를 기원하였고 김포뿐만 아니라 서울과 인천 지역에서도 왔기 때문에 학생 대표로서 이 행사에 책임감 또한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이 통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거나 좋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작년 판문점 선언이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했다면 이번 행사를 통해서 참여한 학생들이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적극적인 노력을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온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느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는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알리고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앞장서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년에 2주년 행사가 마련된다면 꼭 다시 참여해서 평화와 통일을 시작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주민서기자(김포 통진고 3)

[학교통신] 수원 일월초 “교장선생님과 점심 먹으며 고민 나눠요”

수원 일월초등학교(교장 이의진)는 지난 2017년부터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교장선생님과 함께 하는 점심 멘토링을 실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학생들에게 교장실은 학교에 있는 여러 공간 중에 가장 궁금하지만 가보지 못하는 곳이다. 이에 학교 측은 학생들과 좀 더 친밀한 상황에서 소통하기 위해 점심 멘토링 시간은 마련해 교장선생님과 도란도란 마주앉아 6학년이 된 소감,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 관계에서 겪는 어려운 점, 미래의 꿈과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하나 둘씩 풀어 놓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과 같이 밥 먹는다고 해서 좋았어요, 교장선생님께서 저희를 위해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예쁜 꽃도 심어주셔서 감사하다, 교장선생님과 담소 나눠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앞으로도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힘써주세요, 안전하게 생활하기를 실천하겠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일월초교 관계자는 교장선생님과의 점심 멘토링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장이 되고, 그 의견을 종합해 학교의 각종 행사 및 교육과정에 반영, 존중과 소통을 기반으로 한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원 일월초 교사 임고운

[항일독립운동 학교 유적지를 찾아서] 2. 안성 양성초등학교

3ㆍ1운동이 일어난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안성에서 일어난 3ㆍ1운동은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4월 1일부터 2일까지 2일간 일제를 몰아내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2일간의 해방을 이뤄어 낸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안성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은 1919년 3월 11일이다. 이날 오전 11시경에 양성공립보통학교(현 양성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양성면 덕봉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다니던 남진우 학생은 같은 마을 출신으로 선린상업학교(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다니던 고원근 학생과 함께 양성공립보통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서울에서 3ㆍ1운동이 일어난 것을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회시간에 한국인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날의 독립만세시위는 이후 안성장터와 안성공립보통학교로 번졌고, 4월 1일 원곡면, 양성면 독립 만세시위의 시작점이 되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양성초등학교에서는 함께 기억하는 100년 전 그날 기념식을 열고, 태극기 만들기 체험프로그램, 만세재현 행사, 독립선언서 낭독을 3월 11일 진행했다. 특히 양성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3ㆍ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르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작년 겨울에는 현매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탐방해 양성초등학교에서 만세운동 흔적을 찾기도 하였다. 현재 양성초등학교에는 비석만 세워져 있을 뿐 만세운동 항쟁지였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남진우 학생의 기록도 마을에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지도교사였던 허영훈(안성 광덕초 교사)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나가면서 잊혀져 있고 망각된 기억들을 함께 콘텐츠화 해나가는 작업을 통해 독립운동의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용한 화성 고정초 교사

사회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