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온도 높아 진입 보류해야” 대원들 의견에도 투입
초진 판정도 섣불러…소방 당국 안일한 판단력 도마 위
이천소방서 “내부 진입 어렵다는 내용 전달 못 받았다”
“체감상 300도 이상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온도가 아닙니다. 인력 투입은 무리였습니다.”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소방 당국의 안일한 판단으로 결국 한 소방관이 유명(幽明)을 달리했다는 내부 증언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5시36분께 이천시 마장면에 위치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불이 났다. 이로부터 3시간이 흐른 오전 8시19분께 소방 당국은 ‘초진’ 판정을 내렸고, 진화 작업을 위한 인력을 투입했다.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소속 대원 5명도 오전 11시20분께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고, 대열의 선두에 섰던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김 대장에 앞서 현장에 들어갔던 대원들은 내부 온도가 너무 높아 진입을 보류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화재 당일 오전까지 현장 통제권을 쥐고 있던 이천소방서는 인력 투입을 계속했다. 더구나 초진 이후 불이 다시 커질 때까지 3시간 동안 소방 당국은 펌프차 수십대를 줄줄이 세워놨을 뿐 외부에서 살수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이천소방서 소속 대원은 “김 대장과 대원들이 투입되기 전 화점 부근의 온도는 체감상 300도를 넘나들었다”며 “특수방화복이 400도까지 견딜 수 있다지만 그건 옷의 내열이지 사람이 견딜 상태가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장에 있던 소방경급 소방관은 “당시 건물 내부는 암전 상태였고 보이는 건 치솟는 불길 뿐이었다”며 “열기가 심해 화점까진 가지도 못했고 주변에서 물만 뿌리다 나와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인력 투입으로 효과를 못 내면 외부에서 살수를 더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지휘대는 그러지 않았다”며 “결국 안일하게 판단해서 벌어진 사고”라고 질책했다.
당초 초진 판정부터 섣부르게 내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재현장이 가연물로 가득한 물류창고라는 점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쿠팡 덕평물류센터는 연면적 12만7천㎡로, 축구장 15개 크기와 맞먹는다. 이곳을 가득 채운 물량은 면적으로 따지면 5만3천㎡에 달하는 1천620만개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 밖에도 물류센터에서 주로 쓰이는 박스, 비닐류, 스티커류 등 가연물이 빼곡하게 적재된 탓에 불씨를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와 이천소방서, 현장 지휘대까지 어느 한 곳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당시(17일 오전) 초진 판정이 내려진 건 화점 위치를 발견하고 주변으로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며 “다시 불씨가 커진 건 가연물이 적재된 선반이 무너지며 발생한 사고였고, 이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현장 상황에 대해서는 “온도는 따로 체크하지 못했고 내부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내용도 따로 전달받지 못했다”며 “열기 등 내부 상황을 파악해둔 게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김정오ㆍ김태희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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