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버려지는 반려동물

반려(伴侶)는 짝이 되는 동무다. 보통 배우자를 반려자라고 하는데, 요즘은 개나 고양이가 반려자 역할을 한다.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기 위해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다.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고 즐거움을 줘서 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을 썼으나, 동물이 장난감 같은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반려자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려동물이라 부르고 있다. 반려동물 인구 1천만 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면서 쓰다 버리는 물건처럼 마구 버려지는 동물들도 많다. 새끼였을 때는 한없이 귀엽던 동물이 키우다 보니 싫증 나거나 늙고 병들었다고 휴가지 등에 버리는 경우가 적잖다.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고 동물을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누군가 대신 키워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와 맞물려 유기로 이어지고 있다. 휴가철뿐 아니라 명절 연휴에도 버려지는 동물이 많다. 반려동물을 전용 호텔에 맡겨 놓았다가 찾지 않거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리고 온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유기동물이 더 늘었다. 반려동물 유기는 동물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다. 반려동물을 짝이고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유기동물은 2016년 8만9천732마리, 2017년 10만2천593마리, 2018년 12만1천77마리, 2019년 13만5천791마리로 해마다 늘고 있다. 5년 새 67%가 급증했다. 주로 개와 고양이로, 버려진 동물의 절반은 자연사 또는 안락사를 맞게 된다. 반려동물 학대 문제도 심각하다. 때문에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동물 학대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정부가 반려동물의 유기유실을 막기 위해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를 시행하지만 실효를 못 거두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을 버리면 3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리게 돼있지만 지자체의 동물보호 전담인력 부족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 유기동물이 늘어나는 건 공장제품 찍어내듯 무차별 공급되는 실태도 한몫한다. 누구라도 돈만 있으면 충동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버리는 것도 쉽게 생각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이들은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다. 동물유기는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경기만평] 남북간 거리두기 1단계로…?

WSJ “이재명, 재난기본소득으로 대선 여론 조사 주도”

미국 경제전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역점 정책인 기본소득과 지역화폐를 집중 조명했다. WSJ은 지난 9일(현지시간) 경기부양을 위한 한국의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영상을 게재하며 이재명 지사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의 성공을 발판 삼아 현재 대선 여론 조사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WSJ은 이재명 지사가 추진한 청년기본소득,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정책을 소개하며 그 효과를 분석했다. 먼저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에 대해 WSJ은 경기도에서 만 24세 청년 20만명을 대상으로 3개월마다 30만원을 지급해 그들이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실제로 수혜를 받은 한 청년은 청년기본소득 덕분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학사 학위를 마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WSJ은 경기지역화폐와 연계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국가 차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고 전했다. WSJ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경기도는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경제방역정책을 목적으로 신생아를 포함한 1천300여만명의 경기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동네 상권에서만 돈을 쓰도록 제한했다면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의 인기는 코로나19 기간 더욱 커지며 국가 차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고 했다. 또 WSJ은 지역화폐와 연계된 재난기본소득이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에 낙수 효과를 불러왔다는 상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인터뷰에 나선 시장 상인은 어떤 시장들은 매출이 90%까지 떨어진 곳도 있었지만 재난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덕분에 매출이 향상돼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지사는 액수는 크지 않지만 골목상권과 영세자영업자 매출이 늘어나는데 도움을 주면서 전통시장이 부활하는 실적을 냈다고 설명했다. WSJ은 이 지사가 전 국민 월 5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 계획이 있으며, 이를 위해 로봇세 등 기본소득용 목적세신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WSJ은 연 50만원 기본소득 지급에는 연간 300조원의 예산이 드는데, 이 지사는 이를 로봇세 등 신규 재원 신설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며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는 만큼 납세자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전 국민에게 지급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 역시 인터뷰에서 이건 복지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다. 따라서 국가의 경제정책에 따른 이익과 관련해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WSJ은 지난 6월 조사결과에서 한국인의 약 50%가 국가 차원의 보편적 기본 소득 프로그램에 찬성하고 있다며 이들이 차기 대선 때 정부에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광희기자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전통농업 뿌리까지 파괴한 ‘日 식민지 지주제’

■ 농업침탈과 식민지 지주제의 강화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강탈하여 농업침탈을 본격화하면서 농업연구기관을 이 땅에 세웠다. 경기도 교통의 요충지이자 행정의 중심 역할을 했던 수원 서호 옆에 1906년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을 세웠다. 수원은 조선후기 정조 임금 때 농업진흥을 위한 수리(水利)시설로 만석거(萬石渠)와 축만제(祝萬堤, 西湖)가 만들어지고 국영농장의 형태인 둔전(屯田)이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농업 기반 시설을 빼앗아 투자비용의 절감과 1905년 경부선 철도 부설에 따른 교통의 편의(물류운송)로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다. 권업모범장의 기능은 식민지 경영을 위한 새로운 농법의 실험과 연구였다. 권업모범장은 새로운 농업기술과 품종개량 등의 영농조건을 내세워 일본농법을 조선에 이식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수원에서 일본 볍씨를 우리 농민에게 재배시켜 그 결과를 고찰하여 식민지 농업 진흥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 수원에서는 권업모범장을 통해 여러 종류의 일본 개량종이 일본인 지주들에게 적극적으로 보급 되었다. 또한 개량종 우선배급, 농업기술관 파견 등의 각종 편의를 제공하여 개량종 재배자에 대해 특혜를 주기도 했다. 일본 품종들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다수확 우량품종으로 상품성과 가격이 보장된 것들이었다. 이 품종들은 일본인 지주회사를 매개로하여 상품화가 확대되었고, 미곡 무역상이나 농산물 유통업자를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수원에서는 일본인 지주회사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일제 농업정책의 충실한 수행자였던 일본인 지주들은 1906년부터 권업모범장 주변에 대규모 농장을 설치하여 경영하기 시작했다. 1906년 국무합명회사(國武合名會社)가 수원군 남부면(南部面)에 본부를 설치했고, 1907년에는 동산농사주식회사(東山農事株式會社)가 수원군 북부면(北部面)에 설치되어 본격적인 쌀농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의 동척농장도 설치되었다. 동척농장은 전국적 규모의 국책농장으로 수원에서 1910년부터 수원출장소를 두고 농장을 운영했다. 동척은 수원출장소 사무실을 수원역 앞에 두었는데, 창고를 만들어 수확한 벼를 적재했다가 경부선을 통하여 전량 부산으로 운반한 뒤 일본으로 반출시켰다. ■ 수리조합사업과 「수룡수리조합기념비」 일제강점기 지주를 정책적으로 성장시키며 식민지 지주제를 강화시켰던 대표적인 사업 중의 하나가 수리조합사업이었다. 1920년부터 조선총독부의 주관 하에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이 실시되었다. 조선총독부 및 각 도(道)에서는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인 토지개량사업의 연도별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수리조합사업은 전통적인 농업구조를 붕괴시키고 식민지 지주제를 강화시켰다. 그 결과 중소지주층이 몰락하고 대부분의 소작농의 처지에 있던 지역민들의 삶은 더욱 열악해졌다. 일제는 전통적인 수리조직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수리조합사업을 시행했다. 일제는 수리조합사업의 추진과 운용 과정에서 강제적인 설립과 배타적이고 반관적(半官的)인 운영방식, 과중한 조합비 부담 등으로 토지겸병과 농민층 몰락을 야기 시켰다. 수원과 용인에서도 1920년대 수리조합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대표적인 수리조합사업으로 1927년 수룡수리조합(水龍水利組合)이 인가되었는데, 그 결과 여천(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두 개의 큰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저수지 축조 후 「수룡수리조합기념비(水龍水利組合紀念碑)」가 세워졌다. 금석문의 경우는 대개 어떠한 사업이나 인물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기념비 역시 일제의 식민지 경제정책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비문에서 보여 지고 있는 그 찬양의 내용을 떠나 비문의 내용에 담긴 사업들이 일제가 주장하는 것처럼 시혜(施惠)적 측면으로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일이다. 일제는 자신들의 치적(治積)을 자랑하고 조선인들에게 새로운 문명(文明)을 선전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선전활동의 진정한 목적은 일제의 침략성과 수탈성을 숨겨 조선인의 저항을 무마하고 식민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수룡수리조합기념비」에 기록된 설립자는 중옥요준(中屋堯駿, 동산농사주식회사 대표), 가등준평(加藤俊平, 동양척식주식회사 대표), 곡희치(谷羲治, 국무합명회사 대표), 홍민섭(洪敏燮), 오덕영(吳悳泳), 오성선(吳性善), 강대련(姜大蓮, 용주사 주지)이다. 평의원으로는 고목덕치(高木德治), 곡희치(谷羲治), 고광업(高光業), 김현묵(金顯), 중옥요준(中屋堯駿), 오덕영(吳悳泳), 가등준평(加藤俊平), 오성선(吳性善), 차유순(車裕舜), 양성관(梁聖寬)들로 일제강점기 수원의 대표적인 친일 지주로 알려진 차유순, 양성관 등과 친일불교에 앞장섰던 용주사 주지 강대련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일본인 지주의 성장과 「치산치수지비」 일제강점기 식민지 경제 성장을 가속하던 일본인 지주들은 식민지 지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이러한 모습은 1941년 세워진 「치산치수지비(治山治水之碑」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비석은 사면비로 원수형의 비신에 2단 비좌로 되어 있다. 전면의 치산치수지비의 큰 글씨가 행서로 새겨져 있는데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일본인 칸죠 요시쿠니[甘蔗義邦]가 썼다. 그리고 비문의 내용은 일본어로 쓰여 있다. 이 글은 1939년 장두병(張斗柄)이 쓰고 1941년 세웠는데, 원래 어디에 세워놓았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31년 4월부터 시작된 사방사업(砂防事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광교산 일대의 삼림이 벌목으로 인하여 황폐해지자 토사가 유출되어 매년 하천 바닥이 높아짐에 따라 수로가 막히고 난류가 유발되어 홍수 피해가 잦아지자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34년까지 4개년에 걸쳐 수원읍, 일왕면, 반월면에서 행해졌음을 알리고 있다. 치산치수지비를 통해 보면 이 비석을 세우는데 참여한 기관 및 사람들은 수원군 일왕면장 광길수준(廣吉秀俊), 이석래(李奭來), 수원읍장 매원정웅(梅原靜雄), 일왕사방임시업조합장(日旺砂防林施業組合長) 이필상(李弼商), 동산농사주식회사 조선지점과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 윤태정(尹泰貞), 차태익(車泰益), 이봉래(李鳳來), 양근환(梁根煥)이 있다. 수원의 대지주였던 일본인 지주회사들과 조선인 관리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앞의 수리조합사업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들 우리의 지난 역사를 잠시 되돌려 보면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이었다.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던 그 시절 침략자는 농업침탈을 가속화하였고, 그 잔재들은 아직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일제강점기 부일협력을 하며 살아갔던 친일 지주들의 과오를 묻지 못했고, 그들의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변명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젠 유형의 친일잔재들은 없앨 것이 아니라 식민지 침략을 보여주는 역사적 산물로서 남겨 정확한 역사적 고증과 그에 따른 설명,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수원박물관에서는 지난 2013년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가 광교신도시 개발로 광교호수공원으로 탈바꿈 할 때, 버려졌던 수룡수리조합기념비를 박물관 야외 전시 공간 한편으로 옮겨왔다. 그것은 두 저수지가 일제강점기 축조되었던 이유, 해방 이후 수원 시민들의 추억의 공간이 되었던 원천유원지에 대한 역사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함으로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식민지의 유산은 없애서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남겨서 보고, 분명한 역사적 진실을 후대에 알려 잘못된 것을 반성하고 각인시켜 주는데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친일청산과 올바른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동근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천자춘추] 예술이란?

미술 교육현장에서 살며 또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필자와, 그림에 취미로 입문하는 사람들과, 또 아동화를 하는 어린이와, 그림전공을 목표로 임하는 청년들의 그림 중 어느 것이 더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구분하여 말하기 어려울 때를 종종 체험하게 된다. 평소 해오던 것처럼 당연한 듯 캔버스 앞에 앉게 되고 평소처럼 당연한 듯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 되듯이, 예술가의 삶이란 그저 희소한 일부분의 시간배정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예술가는 예술가라는 그 호칭에 사로잡힐 뿐이며, 어떠한 관점에서 어떠한 뚜렷한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스페인 출신의 입체주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예술가는 직업적인 면의 예술직종인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직의 예술가들만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특정한 것이 아닌, 모두가 창조할 수 있는 예술이다. 앞선 글의 내용에도 언급되었듯이 아직 사회를 경험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예술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오늘 누군가의 일방적인 예술이 아닌 모두가 함께 만들고 더불어 소비하는 예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술적으로 공평하고 공정한 관계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삶의 누구나가 예술을 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에 다다르게 된다. 예술의 생산하는 사람과 공급받는 사람이 서로에게 다양한 상호작용의 영감을 공유하고, 타인에게 창작에 관심을 유도해 줄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상 속 시간을 예술의 생산과 수요의 틀에서 담담하게 배분할 줄 아는 것이 올바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속 문화를 찾고 문화를 공유하는 것. 그 문화를 누구나 수용할 수 있도록 공평하게 나누는 것. 올바른 가치를 담는 것. 접촉한 문화에 대해 나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예술을 이루고 있다. 삭막한 이 시대에도 긍정적 문화콘텐츠들을 찾아 소비하고 삶의 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여러분이 바로 오늘날의 예술가임이 분명하다. 필자 또한 곳곳에 숨어 있는 일상의 예술가들을 찾아 문화로써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임정민 수원시인문학자문위원서양화가

[이슈&경제] 서민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올바른 방법

사람들은 은행에 저금할 때 이자가 몇 퍼센트인지 묻는다.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자계산 방식이 복리인지 단리인지도 묻는다. 은행이자가 낮아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은 수익률이 좀 더 높은 투자 상품을 원하기 때문에 주식이나 펀드, 채권 등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은행에 저축하든 아니면 수익률이 높은 투자 상품에 투자하든 결국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투자한 원금에 대한 수익성이다. 즉 내가 가진 자산을 투자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이다.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금리와 거치기간, 투자기간, 자금조달방법 등 너무나도 다양한 요인들을 따져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1천만원을 은행예금으로 예치했을 때 두 배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예를 들어 금리(복리)가 7%라고 하면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약 10년이다. 72를 적용이율 7%로 나누면 10.28이 나오는데, 이 수치가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나는 데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금리가 1%도 유지하기 어렵다면 원금이 두 배가 되는데는 적어도 70년 이상이 걸리게 된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은행예금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러한 계산법을 72 법칙이라고 한다. 내가 투자한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쉽게 계산하는 방법이다. 72 법칙은 복리방식으로 이자를 계산하기 때문에 단리가 적용되는 은행의 예ㆍ적금을 재테크 주요 수단으로 이용하면 72 법칙의 기간 내에 목표 금액을 달성하기 어렵다. 복리계산은 아인슈타인도 극찬했다고 하는 인간의 위대한 수학적 발견으로 회자된다. 복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맨해튼을 단돈 24달러에 팔아버린 인디언의 이야기이다. 1926년에 네덜란드의 서인도 총독 피터 미누이트는 24달러를 주고 미국 인디언들에게서 맨해튼 섬을 구입했다. 이에 대해 24달러를 받았던 인디언들이 매년 8%의 복리로 24달러를 운용했다면 어떠했을까. 380년 동안 복리 8%로 24달러를 운용한다면 그 금액은 약 121조원 달러로서, 맨해튼 섬을 사고도 돈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복리가 아닌 단리로 운용한다면 754달러에 불과하다. 이처럼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복리의 힘이 발휘된다. 복리방식을 이용해 국민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국민의 80% 이상이 집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정부에서 운용하고 있는 강제저축개념의 중앙적립기금(CPF) 때문이다. 싱가포르 국민이라면 모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급여의 37%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달 낸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싱가포르 국민은 집도 사고 교육도 받고 의료비로 충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노후자금도 만들 수 있다. 어떻게 급여 일부만 모아서 가능할까. 복리이자 때문이다. 정부는 가입자가 납입한 적립액에 대한 이자를 복리로 지급하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저축에 대한 금리가 1%도 안 된다. 이래서는 서민들이 목돈을 만들 수가 없다. 국민연금과 청약저축이 있지만, 이것으로는 집도 마련할 수 없고 노후대비를 하기도 버겁다. 사람들이 삶의 안전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일정금액에 대해 정부가 복리이자를 지급하는 상품을 만들고 이를 국민연금, 청약저축과 연계해보면 어떨까. 무조건 나눠주는 복지는 지속적일 수 없다. 상대적 박탈감을 양산하고 불평등을 조장할 수도 있다.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자조적 기반 위에 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오래갈 수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

[기고] ‘유적지 안내판’ 좀 더 시각적으로 바꾸자

파주를 비롯한 경기도에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 중에 비용이나 연구 등의 문제로 아직 복원되지 않은 채 빈터로 남아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또 전문가와 향토연구자들에 의해 위치나 과거 원형에 대한 자료가 충분해도 큰 비용을 들여 복원할 가치가 있는지 또한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조금 방향을 바꾸어서 기존의 단순설명 안내판보다 비용은 저렴하면서 효과는 훨씬 뛰어난 유적지 가상 유리 디스플레이 복원은 어떨까.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처럼 고난도의 그래픽 제작과정이 필요 없으며 구현하는 기계장치나 전기도 필요없이 단지 유리창에 장소나 원래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기능이다. 이런 가상 복원 유리창 디스플레이가 쓰이는 곳은 발칸반도에 있는 세르비아이다. 조선이 건국될 시기와 비슷한 1381년에 라자르 왕자가 세운 크루세바크(krusevac) 성의 무너진 부분을 그대로 두고 관람객의 시각에서 과거 어떤 형태였는지를 보여주는 유리창 가상복원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꽤 효과가 좋아 여행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 방법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이런 가상복원 유리창 디스플레이가 쓰일 곳은 대단히 많다. 임진강변 위에 있는 율곡 선생의 정자인 화석정이 그 예이다. 화석정 정자에서는 선조대왕이 우여곡절 끝에 강을 건너 피난했던 동파역, 임진 팔경의 유래가 된 정자 래소정과 팔경의 옛터들, 강 건너에서 봉화를 올렸던 일월봉터, 왼편으로 멀리 덕진산성, 멀리 장파리의 대궐터 등과 지금은 흔적도 없는 4곳의 나루터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현재 화석정의 유적지 안내지도에는 임진팔경의 위치만 짐작하게 해주는 지도안내판이 있으나 단순하고 평면이라 의미와 위치를 일반시민이 제대로 알기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파주읍 봉서산 정상 등산로에서 보는 옛 의주길과 파주 관아, 파산서원 앞마당에서 보는 파괴 전 파산서원의 원형 모습 등 복원이 안 되더라도 지금의 안내판보다 더욱 체감되는 역사가이드가 될 수 있다. 이는 옛 유적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기념물의 이해를 돕는데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6ㆍ25 전쟁 때 파주 적성 설마리에서는 영국군 글로스터대대의 격전이 있었는데 당시 중공군과의 전투지, 공격과 퇴로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남아 있어 가상복원 유리창 디스플레이를 쓴다면 적은 비용으로 그들의 희생과 당시의 전투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김현국 IT 개발자 파주향토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