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산길과 같아서 자주 오가지 않으면 그 길은 없어진다’ 금광산성에서 길을 찾으며 문득 떠오른 말이다.아무리 소중한 역사유적이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금광마을 어귀에 있는 금광리노인정 문을 열었다.80대의 할머니 네 분이 계셨는데 마침 그 중 한 분이 산성의 존재를 알고 계셨다. 옛날 학창 시절에 산성터로 소풍을 다녔다고 하신다.“어릴 적 아버지께 산성에 있던 군사들이 물이 부족해 전쟁에서 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러한 전설은 아마도 1728년 3월에 일어난 ‘무신난’ 혹은 ‘이인좌의 난’이 배경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흙과 돌로 축조한 테뫼식 산성금광마을을 품고 있는 금광산 7~9부 능선을 따라서 흙과 돌로 축조한 테뫼식 산성으로 길이 1천342m에 이르며 높이 1∼3m, 폭 4m로 축조됐다. 안성시 향토유적 1호로 지정된 곳이다. 산성 정상에 서면 금광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남동쪽 10km지점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계남 장군이 활약했던 서운산성, 북서쪽 5km 지점에 비봉산성이 마주 보고 있다. 이처럼 금광산성은 서운·비봉산성과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루고 있어 일찍부터 삼남(三南)을 방어하는 요충이자 한성 방어의 전초기지로서 활용됐다. 특히 1728년 3월, 사로도순무사 오명항의 관군이 이인좌의 반란군을 이 부근에서 대파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금광산성이 언제 축조됐는지에 대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남하하는 청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과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도순무사 오명항이 주민을 동원해 쌓았다는 두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믿기 어렵다. 영조실록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쌓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조선보물고적조사료에 금광산성은 “안성읍의 동남쪽 1리 금광산 위에 있는 2단의 토성으로 둘레가 700간”이라 했으며 문화유적총람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을 뿐이다.금광산성 안에는 금광마을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산제당터가 남아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이 산에서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 1728년, 금광산성에서 벌어진 안성전투조선 제19대 국왕 숙종은 ‘환국(換局)’을 통해 절대왕권을 구축했다. 환국이란 동서, 노소로 갈라진 정치권의 대립을 활용한 왕권 강화책이다.집권세력이던 남인을 실각 시키고 서인을 등용한 경신환국(1680), 남인의 후원을 받는 희빈 장씨를 총애해 다시 서인을 실각하고 남인을 등용한 기사환국(1689), 장희빈을 폐비 시키고 서인을 다시 입각한 갑술환국(1694) 등 환국이 벌어질 때마다 조정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허적, 윤휴, 류혁연, 송시열 같은 대학자와 정치가, 장수들도 이때 죽임을 당했다.숙종의 환국정치는 병자호란의 패배로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며 실추됐던 왕실의 권위를 되찾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폐해 또한 엄청났다. 따지고 보면 조선 최대의 비극이라 할 사도세자의 죽음도 환국정치가 잉태한 것이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蕩平)을 정책의 중심으로 내세운 것도 환국정치로 인한 당파간의 뿌리 깊은 원한과 보복이 재현되지 않도록 조치한 정치적 결단이었다.영조가 즉위한 지 4년 되던 1728년 3월, 조선은 내란에 휩싸였다. 이인좌가 주도했다고 해 ‘이인좌의 난’ 혹은 무신년에 일어난 반란이라고 해 ‘무신난’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인(西人)에서 갈라져 나온 소론(少論)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그러나 1724년,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죽고 세제인 연잉군(영조)이 왕위를 계승하자, 신임사화의 옥사를 문책하면서 노론의 지위가 회복됐다.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를 위협받게 된 소론 과격파들은 갑술환국(1694) 이후 정권에서 완전히 배제된 남인들을 포섭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는 군사반란을 계획했다.병란의 주모자인 이인좌는 세종대왕의 아들 임영대군의 8대손이며 정희량은 척화대신으로 유명한 정온의 후손이다. 금군별장 남태징, 평안병사 이사성 같은 현역 장수들도 반란에 동참했다. 이들은 영조가 선왕 경종을 독살했으며 영조는 숙종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명분을 내세워 동조세력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영조를 몰아내고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이탄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기로 합의했다.이인좌는 충청도와 경기도의 명화적 300여 명을 괴산에 모아놓고 정희량이 이끄는 영남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영남군은 충청도군과 합류해 서울로 진격하고 호남군은 경기의 안성지역의 군사들과 연합해 서울로 진격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영남군을 기다리던 이인좌는 참지 못하고 서둘러 행동을 개시했다. 상두꾼으로 가장한 반란군은 상여 안에 무기를 숨기고 청주성 밖에 대기했다. 일부 군사들은 행인 차림을 하고 청주성 안으로 잠입했다.3월15일 새벽 반란군은 일제히 청주 병영으로 돌입했다. 때맞춰 성안의 내응 세력이 성문을 활짝 열었다. 반란군은 병영으로 밀고 들어가 칼을 빼들고 막아서는 병마절도사 이봉상을 죽였다. 반란군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청주성 인근의 상당산성까지 접수해 버렸다. 산성 안에 비축돼 있던 양곡을 군량으로 삼고 무기로 무장한 반란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이인좌는 스스로 ‘삼남대원수’라 부르며 창고를 열어 군사와 빈민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청주목사를 비롯해 점령한 지방의 수령을 새로 임명했다. 이인좌는 안성으로 군대를 이동시켜 청룡산 자락에 주둔했다. 이곳이 금광산성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영남군의 합세를 기다리며 장막을 치고 양곡을 비축해 장기전에 대비했다. ■ 소론이 일으킨 난은 소론이 다스리라반란 소식을 들은 영조는 소론 출신인 병조판서 오명항을 도순무사, 박문수를 종사관에 임명했다. 이들은 소론출신이다. 소론이 일으킨 반란이니 소론이 평정하라는 것이다. 반란군 토벌의 총책임자인 도순무사 오명항은 지혜로웠다. 양민을 보호하기 위해 지혜를 발휘했다. “적을 사로잡은 자는 상을 주겠으나 참수해 바친 자는 논상(論賞)하지 않겠다” 억울한 죽음일을 막았던 것이다.오명항은 종사관 박문수에게 명을 내려 철저히 조사해 뚜렷한 혐의가 없는 포로를 석방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인좌가 지휘하는 반란군과 벌인 안성전투에서는 반란군 수백 명이 사살됐다. 이인좌는 500여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청룡산 자락으로 물러가 진을 치고 죽산의 군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토벌군도 반군이 둔을 친 곳을 알지 못했다. 적의 첩자를 사로잡아 적병이 위치를 알아냈다. 영조실록에는 반군이 있던 산을 이렇게 묘사했다. “청룡산 한 줄기가 수백 보 정도로 길게 구부러져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산 아래로 5, 60호의 마을이 있었으며 앞은 평야였다” 오명항은 중군 박찬신에게 보군 3초(哨, 약 360명)와 마군 1초(약 120명)를 나누어 적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아울러 안성 군사를 풀어 적의 도주로를 막도록 지시했다. 적이 토벌군을 보고 산으로 올라가 진을 치고 대응하자 관군이 올려다만 볼뿐 다가가지 못했다. 3월23일 마침내 토벌군은 반란군이 있는 산으로 진격했다.반란군은 산마루로 올라가 토벌군을 내려다보며 에워싸는 진형인 곡진(曲陣)으로 대응했다. 이인좌는 산마루에서 말을 타고 백기를 휘날리며 군사들을 독려했으나 마침내 전세가 기울어졌다. 반란군의 조총이 대부분 비에 젖어 격발되지 않고 바람마저 역풍이 불었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이인좌는 겨우 목숨을 건져 도주했으나 결국 백성들에게 사로잡혔다. 반란을 진압한 영조의 결단이 돋보인다. ■ 금광산성에서 탕평을 떠 올리다 “조정에서 붕당을 일삼아서 재주 있는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도리어 색목으로 따져 추천하였다. ……그리하여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연달아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죽을 지경인데도 그들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당쟁을 일삼았다. 그래서 우리 백성들이 조정을 업신여긴 지 오래됐다. 그 와해의 형상과 도둑에게 몸을 던지는 일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 실로 조정의 허물이다” 이처럼 영조는 반란의 원인을 권력을 독점하는 관료들과 당쟁 탓으로 돌렸다. 이후 영조는 화합하는 정책을 힘차게 펼쳤다. 바로 탕평이다. 영조는 탕평책이라는 새로운 정책으로 사색당파로 분열된 정치권을 화합하도록 힘을 쏟았다. 환국 대신 탕평이라는 대안을 제시해 당쟁을 줄여나간 영조의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을 우리시대의 정치인들도 배우면 어떨까. 금광산성을 둘러보며 품었던 소망의 하나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
“제도권 매체에서 다루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부천시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 주민공모사업에 선정된 ‘마을콕’ 발행인 임민아씨(34)는 ‘마을 미디어’ 전도사가 되어 지역 곳곳을 훑고 다니고 있다. ‘마을콕’은 부천 지역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한 개인, 단체 등을 소개하는 마을 미디어이다. 임씨가 마을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4년 수원 행궁동 마을탐방 때 만났던 마을 만들기 활동가와 골목잡지를 접하고서다.임씨는 “생태교통페스티벌을 준비하던 마을 활동가들이 주민의 마음을 열고자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그러나 활동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다가가 닫혀 있던 주민들의 마음이 열리게 됐다는 말에는 소름마저 돋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 활동가들의 이런 경험담을 듣고 만나게 된 게 바로 골목잡지 ‘사이다’였다”며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등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이다를 보고 당시 함께 갔던 멤버들이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합심해 마을콕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마을콕은 부천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일했던 임씨의 경험담 또한 담겨 있다. 임씨는 “제도권 매체는 정치적으로 큰 이슈나 강력범죄가 일어나야만 보도하고 내가 사는 마을 이야기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며 “마을콕은 제도권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지역 주민, 문화예술인, 단체 등 나와 이웃들의 평범한 삶의 모습을 담아 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마을 미디어는 내가 사는 지역과 마을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활동인 것 같다”며 “마을 미디어로 주민과 주민이 서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면 정(精)이 넘쳐나는 마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씨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3년째 마을공모사업에 선정된 마을콕은 최근 통권 7회를 발행했다”며 “이번 호에는 소통촉진가 양성과정, 소사본동 마을 만들기 기획단 활동,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마을콕’에 매료된 여러 지역의 잠재적 마을 미디어 활동가로부터 초청받아 마을 미디어를 어떻게 만들 지를 강의하고 있다. 부산 출신인 임씨는 2006년 남편 직장 때문에 부천시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부천=김현수기자
내 가슴 태운 자리 恨 심고 떠난 이여 봉수당 회갑연에 축수잔 받자오니 아들의 지극한 효성 천만세를 빛내리다 뒤주 속 제 아비를 눈 뜨고 볼 수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발 구르며 애원해도 권력은 가혹하여라 서슬 퍼런 칼날이여 슬퍼서 울어주랴 미쳐서 웃어주랴 골수에 맺힌 원한 녹아내린 슬픔인 걸 울어라 내 아들이여, 엉킨 한을 풀어라 구충회전 경기도교육청 교육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코끼리는 어미를 중심으로 강력한 모계집단을 이루면서 산다. 이 집단에서 어린 코끼리는 특별하다. 어미를 비롯한 집단 전체의 강력한 보호를 받는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는 지뢰를 밟아 장애를 입거나, 서커스단에서 퇴역한 늙고 병든 코끼리 등을 모아서 돌보는 ‘코끼리 자연공원(elephant nature prak)’이 있다. 이곳에서 어린 코끼리가 강을 건널 때, 네 마리의 어른 코끼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서로 밀착하여 보호하고 위협을 느끼면 누군가 트럼펫 비슷한 소리를 아주 크게 낸다. 또 버마국경 밀림에서 지뢰를 밟아서 왼쪽 앞발이 성치 않은 코끼리의 경우 네 발이 성한 다른 코끼리들이 늘 자매처럼 따라 다니며 서로를 돌보면서 살아간다. 코끼리 집단이 반드시 혈연으로 묶이지 않았지만 서로가 어미 이상의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을 보면, 가족이란 혈통보다는 사회적 유대를 본질로 하는 것인가 싶다. 운남성과 사천성 경계를 이루는 호수 ‘루구호’ 둘레에 사는 소수민족 ‘모서인 사회’도 ‘아버지’라는 단어가 없다. ‘모서인 사회’에서는 옛부터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어미 곁에 살았다. 모서인에게는 서구적인 의미의 혼인계약제도에 기초한 가족이 없다. 남녀는 ‘방문’을 통해 후대를 잇는다.남자의 방문은 상호 애정에 기초하며, 사랑이 식으면 헤어진다.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어머니 곁에 머무른다. 그리고 외삼촌과 이모 그리고 마을 전체가 아이를 돌본다. 그러니 ‘가정해체’란 게 있을 수 없다. 혈통을 중요시해서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만 유대인으로 인정했던 유대인들도 19세기 말부터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뉴욕사회의 경우 유대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이 결혼하여 한국계 유대인이 되는 것이 이젠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또, 일본인이 유대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랍비가 되어 활동하는 사례까지 있을 정도로 유대인 범주는 점차 관대해지고 있지만 ‘유대인은 하나의 공동 운명체’라는 그 소속감과, 공동체를 지켜야한다는 유대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것 같다.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를지라도 유대인을 돕기 위해 막대한 돈을 선뜻 내놓는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다. 대표적으로 1991년 5월 에티오피아 내전 격화로 집단 학살위기에 놓인 흑인 유대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국 유대인들이 불과 며칠만에 3천5백만달러란 거금을 모아 몸값을 냈고, 이스라엘군이 ‘솔로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이틀만에 이스라엘로 공수해 온 사례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우리도 전통적으로 혈통을 중요시하고 살아 왔지만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변화의 쓰나미를 우리 스스로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혈통에 기반되는 ‘사회적 유대’란 서로 쓰다듬고 돌보는 데서 비롯한다. 사회적, 집단적 유대가 결여된 혈통은 의무만 남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정길배 경기도문화의전당 공연사업본부장
현대 사회에서 경제, 산업, 그리고 과학기술은 떼어 놓을 수 없는 하나의 사슬로서 과학기술의 기반 없이는 경제와 산업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진국들의 모든 공산품들은 임금이 싼 저개발국가에서 생산하고 개발국가들은 판매와 기본기술을 전수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생산의 기본이 무너지고 궁극에 가서는 다시 과학기술의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절차를 밟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NASA나 첨단연구소에서 많은 초정밀과학 기재들이 일본이나 독일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예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선진국들은 그들의 기본 과학기술과 산업구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기술 이전 등을 잘 조절하고 있다. 계속해서 우주과학이나 기초 핵물리연구 등 첨단과학기술 발전에서 얻는 부산물을 가지고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개발도상국이 따라올 수 없는 고급기술에 의한 산업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NASA와 같은 ‘묻지마’ 식의 첨단연구는 이 연구를 통한 부산물들이 미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산업경제를 뒷받침하는 대학들의 첨단과학기술연구이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기초연구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에서 기초연구는 20~30년 계속해온 연구실에서 깊이와 폭이 넓은 연구를 꾸준히 한 연구들로서 이 연구결과는 물론 연구과정에서 얻어지는 많은 과학기술은 산업계에 새로운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특히 군수 산업과 같은 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기반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특수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선진국들의 대학과 첨단연구기관(NASA, 유럽의 핵물리연구소 등)은 ‘반짝’ 아이디어나 값싼 기술로는 할 수 없는 뿌리깊은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들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의 전문성과 많은 투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오늘날 후진국들은 수백억씩 하는 F-35 전투기를 미국에서 사들일 수밖에 없는 궁지로 점점 더 몰리는 형편이다.그러면 왜 우리는 F-35 전투기를 만들고 스텔스기를 만드는 것을 하지 않고 있는가? 틀림없이 5년, 10년 후에는 더 복잡하고 더 하기 어려운 어려운 기술이 필요할 텐데,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의 ‘과학기술 노예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대답은 명확하다. 우리가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이러한 첨단기술을 우리가 하겠다는 의지와 결심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발전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연구와 개발에 돈과 인력을 투자해야 한다. 이 투자는 우리한테 언젠가는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몇 십조의 돈을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주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헤매고 있다. F-35나 스텔스기는 ‘우리가 만들 수 없다’라고 미리 단정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부재이다.이들 첨단과학의 원천기술은 외국에서 수행하게 하면서 우리나라 대학들은 연구비가 없어서 젊은 대학원생을 전부 외국으로 유학시키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 공대에 대학원생이 정원 미달이라는 보도가 난 적이 있다. 이공계 대학의 상징이라고 하는 서울공대가 이 지경이면 다른 곳은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학생당 월 100만 원의 학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5만 명의 대학원생을 지원하는 데 연 5천억 원이면 충분하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의 1/10도 안 되는 액수다. 정부와 기업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이렇게 인색할 수가 있는가. 청년실업도 문제지만 우리의 미래는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남의 연구개발 성과만 베껴 올 것인가, 아니면 우리 원천기술개발로 당당히 우리 고유의 첨단산업을 키울 것인가. 미래를 보고 오늘을 참아야 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투자해야 우리 청년들의 미래가 보인다. 오늘도 중요하지만, 내일도 중요하며 내일이 없는 나라는 희망이 없는 나라다. 조장희 차세대융기원 특임연구위원·캘리포니아대학 명예교수
얼마 전 소셜커머스 환불규정을 악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소비자가 있었다. 소셜커머스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취소하면 반품전에 환급받는 점을 악용해 1억 5천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다. 최근 이와 같이 규정을 악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억지주장을 하는 소비자들을 ‘블랙컨슈머’라고 한다. 악성을 뜻하는 블랙(black)과 소비자란 뜻의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한 말로 기업, 상담기관, 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개인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가리킨다.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되는 사례를 보면 블랙컨슈머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본인이 피해본 사실을 과하게 주장하는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정도를 넘는 보상을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상담원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하기도 한다. 통신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다짜고짜 폭언하는 소비자, 제품을 사용하다가 다른 곳보다 비싸다며 반품하겠다는 소비자, 음식물에 이물질이 들어갔다며 상식이상의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동일한 내용으로 소비자상담센터나 행정기관에 수개월간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반복민원을 제기하는 악성민원인도 있다. 악성민원인은 대다수의 기업 담당직원들이나 소비자상담원, 행정기관공기업 민원담당 직원의 근무의욕을 떨어뜨린다. 선량한 소비자나 정당한 시민에게 돌아갈 유용한 상담정보와 행정서비스를 빼앗는 행위다. 심각한 경우 담당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치료를 받거나 심지어는 조직을 위해 부당한 징계를 받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도 있다. 이제 소비자 스스로의 의식 개선, 행정기관이나 기업의 대응방법 개선, 그리고 악성소비자로부터 서비스 종사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 등이 필요할 때다. 지난해 한 외식업체에서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라는 것으로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라는 것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응을 받기도 했다. 행정기관이나 공기업의 민원처리도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윗사람 바꾸라고 큰소리치면 적당히 부당한 요구까지 들어주고 현장의 담당자들이 오히려 질책을 받는 지금까지의 응대방식은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 제도적으로도 감정노동자보호를 위한 법안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나 경기도에서 감정노동자 관련 조례를 시행하거나 제정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의식이 악성소비자, 갑질고객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비자냐 사업자냐를 떠나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고, 소비자 스스로도 소비자기본법에 명시돼 있듯이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소비자가 돼야 할 것이다. 지난 1일 갑질 횡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찰청장의 취임사가 있었다. 악성, 갑질 소비자는 단호하게 퇴출시키고자 하는 이런 흐름을 기업이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며, 선량한 소비자의 정당한 소비자권리 행사는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소비환경과 기업문화를 기대한다. 손철옥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수원) 상임이사
오빠생각 폭풍 감동.
이번 추석 민심은 어느 때보다 싸늘하고 또한 무거웠다. 5일간이나 되는 추석 연휴에 민족 대이동은 있었지만 고향에서 오랜만에 부모·형제, 친지들과 만나 나눈 대화는 과거에 있었던 추석 때의 대화와는 달리 상당히 우울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많았던 것 같다. 우선 추석 직전에 있은 북한의 제5차 핵실험으로 안보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이번 추석 민심에서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사드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여권은 대체부지 선정이니 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가 하면, 야당은 대안없는 반대를 하고 있어 국민은 안보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대표들은 미국에까지 가서도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민심은 정치권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국익 우선의 확고한 안보정책을 추진하기를 요망하고 있다. 경제문제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일자리 창출은 안 되고 수출도 부진,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인데 한진해운 사태로 물류대란이 계속 발생하고, 삼성 갤럭시 7 리콜사태까지 겹치어 수출로 살아야 하는 한국경제 앞날에 대한 국민적 염려가 크다. 이미 예견된 물류대란에 대한 강구책을 마련할 콘트롤타워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서로 ‘네 탓’ 공방만 해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내 탓’으로 돌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물류대란을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무역입국의 한국경제가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해야 할 판·검사들의 몰염치한 부정부패 행태를 보면 과연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법치국가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일반서민들은 염려하고 있다. 사회정의의 최후 심판자가 될 판·검사들이 돈에 유혹되어 잘못된 법집행을 한다면 돈 없는 서민들은 어디에 억울한 일을 하소연할 수 있단 말인가. 사법개혁이 없이 법치국가는 유지될 수 없음을 법조인 스스로 깊이 인식, 개과천선해야 할 것이다. 경주 일원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한 국민적 공포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역대 최대 진도를 나타낸 이번 지진으로 한국은 지진 예외지대가 아니다. 원전시설이 밀집된 지역임에도 관계기관의 긴급상황 대처는 허술했고 국민안전처 역시 대처 능력이 아주 미숙했다. 전국에 산재한 고층아파트와 빌딩에 대한 내진강도는 철저하게 조사,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대풍임에도 쌀값 하락으로 농심은 허탈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내년 대선에만 관심을 가지고 정책대결보다는 서로 비방만 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라는 것이지 권력만 잡으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경구를 정치권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추석 민심은 천심임을 새삼 정치권이 인식, 정치에 반영하기 바란다.
시급하고도 심각한 문제는 지진을 아는 공무원이 없다는 것이다. 12일 경주 울산 일대를 강타한 지진은 규모 5.8이었다. 지진 관측 사상 가장 강한 규모였다. 경험하지 못한 재앙이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터져 나온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중에도 가장 기본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 공무원 조직의 지진 대응 능력이다. 지진 발생 때마다 공무원들은 우왕좌왕했고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실상은 지진 발생 하루 만인 13일 열린 울산시 긴급 대책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50여 분을 사이로 5.1과 5.8의 강진이 발생했지만 공무원들은 없었다고 분석됐다. 시민들이 대피한 학교운동장에도 역할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후 대처 능력이 이 지경이다. 지진 자체에 대한 분석 능력은 더 형편없다. 국민안전처의 안내가 늦었다는 비난은 폭주한다. 하지만, 지자체 안내 문제는 거론 안 된다. 아예 없어서다. 울산시가 내린 긴급 처방 중에 전문직 공무원 채용 요청이 있다. 시는 지진 전문직 공무원 2명을 채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들을 통해 지진가속도계측기를 자체 분석하겠다고 했다. 이 요청을 바꾸어 말하면 4천600명에 달하는 울산광역시 공무원 가운데 지진 전문직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얘기다. 경기도도 지진 발생 직후 발 빠른 대책을 내놨다. ‘지진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규모 5.0 이상 지진이 발생하면 기상청이 발령하는 지진 경보를 도청 연계 서버로 받아 도내 18개 소방서 경보시스템으로 보내 즉시 대피 경보를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재난관리기금 3억2천600만원을 다음 달에 우선 투입기로 했다. 지진 발생 10초 이내 도민에게 경보를 한다는 이른바 ‘10초 경보 시스템 구상’도 밝혔다. 그런데 이 구상 역시 지진 전문직이 투입돼야 하는 전제가 깔린다. 기상청과 공유하겠다는 지진 분석을 수행할 전문직 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전문 인력이 공무원 조직 내에 상주해야 한다. 경기도에는 없다. 도(道)에 없는 인력이 시군에 있을 리 없다. 시군 공무원들이 숙지하고 있는 매뉴얼은 시민 대피용 사후 조처다. 이번처럼 350여 차례 여진이 지역을 뒤흔들어도 지역 공무원들은 TV를 지켜보는 것 외 할 일이 없다. 이제 지진을 아는 공무원을 뽑아야 한다. 지진 관련 전공자를 공조직에 상주시켜야 한다. ‘수도권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말은 이제 초등생도 귀담아듣지 않을 식상한 경고다. 이제 말해야 할 것은 대책이다. 우리는 그 대책의 하나로 지진 전문직 공무원 채용을 권한다. 지진 공포 24시간도 안 돼 울산시가 내놓은 첫 번째 목소리도 ‘지진 전문직 공무원 필요하다’였다. 규모 5.8 강진에 묻혔던 ‘깜깜이 행정’이 내놓은 현장의 소리다.
추석 연휴가 끝났다. 이번에도 명절 후유증이 만만찮은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이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통과의례로 바뀐지 오래다. 명절이 배우자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멍절’로 전락해 버렸다. 설이나 추석 명절을 지내고 난 뒤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들의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가 및 처가와의 갈등이 부부 불화로 이어지고, 깊어진 갈등의 골은 이혼 증가로 이어져 ‘명절 이혼’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명절 이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얼마 전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통계’에 따르면 설 명절인 2월과 그 다음 달인 3월, 추석 명절인 9월과 다음 달인 10월 사이 이혼건수를 분석한 결과 전달 대비 평균 이혼건수가 11.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법원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설 연휴인 2월 접수된 이혼 소송 건수가 2천540건인데 반해, 다음 달인 3월 접수된 이혼 소송 건수는 3천539건으로 무려 39.3% 증가했다. 설 연휴만큼은 아니지만 지난해 추석연휴가 끼었던 9월에서 10월 넘어가는 사이 이혼 소송 건수는 3천179건에서 3천534건으로 소폭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지난 10년간 이혼 소송 증가율 통계에서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명절 연휴에 서로의 가족을 만나며 화목을 다지기보다 서로 만나지 않으며 감춰왔던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불신과 불만 등 해묵은 감정들이 명절을 지나면서 회복하기 힘든 앙금이 되고, 결국 파국적 결말로 나타나는 것이다. 명절 이혼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사 노동과 이로 인한 고부갈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최근엔 처가와의 갈등 등으로 남성이 먼저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명절이 화합의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가족에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평소 갈등이 생길 때 충분한 대화로 문제를 풀고, 매년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상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우리 사회의 남녀 성평등 의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명절을 남성 위주, 시가 위주로 지내는 관습은 여전하다. 명절 직후 부부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미리 합리적인 명절 계획을 수립하고 서로에게 많은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간의 대화와 소통, 배려는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