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경지하다… 지경하다 <1>

춤이 절로 나왔다. 그림을 보는 순간 크게 웃었다. 태어난 지 22개월 된 아이가 세상에 와서 처음한 황칠이었다. 당장에 밑 칠해 두었던 하얀 캔버스를 벽에 세워 두었다. 두발로 직립하고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아이는 왔다 갔다 하면서 찌르고 긋고 두드렸다. 열흘 남짓 되었을까 상상 밖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감동이었다. 의식과 도식이 흉내 낼 수 없는 본성과 본능의 향연, 무아의 경지였다. 아이가 의식의 통제를 받으며 선을 긋거나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고 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지만 헤아릴 길 없다. 10년 전의 일이다. 손녀의 황칠은 경지(境地)와 지경(地境)에 대한 절절한 화두가 되었다. “벽에 똥칠하기 전에 죽어야지!” 노망을 예비하는 노년의 시린 독백이지만, 생에 대한 강한 의지의 역설이다. 무아의 경지 황칠과 지경의 표정 똥칠은 닮았다. 둘 다 의식의 통제밖에 있다. 아이의 황칠은 인문의 시작이며 창의적 본성의 싹이다. “그냥”하는 예쁜 짓이다. 어른의 “그냥”은 멀쩡한 의식이 허하지 않지만, 아이는 단박에 해치운다. 똥칠은 슬픈 해프닝이다. 우주를 방황하는 혜성이다. 인간은 황칠에서 그림으로 진화하여 꽃이 되었다가 의식의 경계에서 추방되어 똥칠로 생을 마감한다. 본래로 돌아간다. 황칠과 똥칠, 여기가 화양연화의 실경이다. 35년 전, 정신병원에서 정신이 마실 나간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무쏘의 불처럼 의지가 의식에 앞섰던 살 불 살 조의 시절, 인간의 정신을 보겠다고 덤벼들었다. 융과 프로이트의 의식과 무의식의 텍스트가 미덥지 않았던 터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지경을 위로하는 비감한 말이다. 다빈치의 후예들이 있다. 칸딘스키다. 피카소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들의 붓질도 결국은 경지를 탐하는 여정이다.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피카소의 고백이다. 황칠처럼 마음 가는 대로 칠한 것 같지만, 잭슨폴록도 바스키야도 산발한 의식의 패치워크다. 치밀하게 의식을 제어한다는 말이다. 변기를 예술로 둔갑시킨 뒤샹은 서명 하나로 의식을 개념으로 만들었다. 회화의 외연을 캔버스 밖으로 확장한 혁명적 사건, 회화의 파앤드어웨이다. 하지만, 뒤샹의 서명도 의식의 변주다. 서명은 문명사회에서 성문화된 자의식의 아바타이다. 경지와 지경을 가늠하는 일은 제정신으로는 불가하다. 양자역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피카소의 고백도 “아이처럼” 황칠하고 싶은 희망 사항이듯 경지와 지경은 스스로 자기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유가 스스로 자유라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유라 말하는 순간 자유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는 길 없는 경지다”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과 어순만 다를 뿐 같은 맥락이다. 분명한 것은 습(習)에 물든 어른은 황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신줄을 놓아야 한다. 용맹정진, 기적처럼 그 경계를 넘어서면 그 순간, 벽에 똥칠하게 된다. 일장춘몽이다. 그 얄궂은 위치가 경지와 지경이다. 경지와 지경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밖에 있다. 돌아갈 수 없다. 건너뛸 수 없다. 둘 다, 제정신이 완벽하게 디가우징된 불가역적 세계다. 어찌하오리까? 무애(無㝵)다. 원효의 화쟁(和諍)터로 간다. 의식과 무의식, 경지와 지경, 황칠과 똥칠, 모든 정체들의 화해가 화쟁의 참모습이다. 씨 뿌리는 일, 쌀 씻는 일, 설거지하는 일상이 무애다. 그냥 하는 막춤이 무애의 춤이다. 이를 넘어설 재간은 없다. 순간을 경배하는 일, 여기가 화양연화의 진경이다. 생의 모든 순간이다. 춤이 절로 한다. 김아타 사진작가

[법률플러스] 소멸한 저당권에 기하여 개시된 경매의 효력

타인으로부터 금전을 차용하고 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사람이 그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면 근저당권자는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해 그 매각대금에서 법정 순위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그런데 근저당권에 기한 임의경매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채무자가 그 채무를 변제해 근저당권이 소멸됐음에도 불구하고 경매취소 신청이 없어 경매가 그대로 진행된 경우, 경매신청의 근거인 담보권이 없어졌음에도 그대로 진행된 경매를 유효한 것으로 보아 낙찰받은 매수인을 보호해야 할까? 아니면 근저당권부 채권을 변제해 근저당권을 소멸시킨 소유자(채무자)가 억울하게 부동산을 뺏기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까? 민사집행법 제267조(대금완납에 따른 부동산 취득의 효과)는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은 담보권 소멸로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경매절차의 안정성과 공신력 보호를 위해 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 등으로 경매절차가 취소되지 않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경매는 유효하고 매수인은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의경매 신청으로 인한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이미 소멸하거나 그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었는데도 그에 기초한 경매가 진행되어 매각됐을 경우에도 그 경매는 유효한가? 예를 들어 A 소유 부동산에 B가 근저당권을 설정한 후 여러 건의 가압류가 경료되자, A가 B에 대한 채무를 모두 갚았음에도(또는 아예 B에 대한 채무가 전혀 없이 허위로 근저당을 설정했을 수도 있다) B가 임의경매를 신청해 매각대금을 선순위로 모두 배당받고 가압류 채권자는 배당받지 못하게 한 뒤, 배당받은 금원을 다시 A에게 반환하는 편법으로 경매절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때에도 그 경매를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8다205209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음과 같이 보았다. 임의경매의 정당성은 실체적으로 유효한 담보권의 존재에 근거하므로,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다면 그에 기초한 경매는 원칙적으로 무효이고, 특히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할 당시 실행하고자 하는 담보권이 이미 소멸했다면, 그 경매개시결정은 아무런 처분권한이 없는 자가 국가에 처분권(즉 경매절차를 통한 처분권)을 부여한 데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서 위법하다. 반면 일단 유효한 담보권에 기하여 경매개시결정이 개시됐다면, 이는 담보권에 내재하는 실체적 환가권능에 기초해 그 처분권이 적법하게 국가에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담보권의 소멸은 그 소멸 시기가 경매개시결정 전인지 또는 후인지에 따라 그 법률적 의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민사집행법 제267조는 경매개시결정이 있은 뒤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만 공신력 보호를 위해 적용되는 것이고,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 그 담보권에 기한 경매의 공신력을 인정한다면 이는 소멸한 담보권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와 현재의 등기제도와 조화된다고 볼 수 없다. 요컨대 이미 소멸한 근저당권에 기해 임의경매가 개시되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그 경매는 무효다. 심갑보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양평군 기관장 협업체계 구축 한 목소리…“함께 위기 대응하자”

양평군 기관장협의회가 16일 각 기관들의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자며 매월 지역안전 대책회의를 열기로 했다. 기관장협의회는 이날 오후 6시30분 군청 4층 소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이처럼 결정했다. 회의에는 전진선 군수, 고영주 소방서장, 백승언 경찰서장, 유승일 교육장 등이 참석했다. 협의회는 회의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 피해 ▲이태원 참사 ▲예고 없이 발생하는 각종 자연재해 ▲사회적 재난에 대비한 위기 대응 매뉴얼 등에 대해 논의했다. 재난사고를 방지하고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실시간 도시데이터 융합서비스’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이와 함께 ‘군 위기관리 매뉴얼’을 공유해 재난재해와 사고 등에 대비하고 각 기관들이 협업체계를 구축해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양평군은 앞서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이후 500명 이상이 모일 수 있는 행사에 대해 자체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키로 했다. 전진선 군수는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와 이태원 참사 등 재해와 사고 등이 이어지면서 위기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각급 기관들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주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백승언 경찰서장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조직의 일원으로서 안타깝다. 사회적 재해와 재난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한 ‘인파관리대책TF팀’을 지난 2일 발족했다”며 “인구밀집도가 높은 행사나 위험한 행사 등에 대해선 장소적 특징을 고려하고 밀집도를 분산시키는 등 선제적으로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평=황선주기자

[시흥시 ‘도시농업 천국’] 아파트 숲속 ‘힐링 텃밭’… 농사 재미 쏠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는 고층 건물과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로 벼가 자라고 각종 엽채류 식물들이 파릇한 향기를 한껏 뽐내고 있다. 도시농업이라고 말하지만 마치 도심 속 농촌마을을 연상시킨다. 시흥 배곧신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농업공원 ‘배곧텃밭나라’ 이야기다. 이곳에는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주말을 가리지 않고 농작물 재배에 땀을 흘리고 있다. 세대를 넘어 소통하고, 계층을 넘어 함께하며, 나눔의 실천까지 도시농부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도시농업 산업으로 진화 코로나19를 지나며 식물을 통해 위로를 얻는 ‘반려식물’이나 ‘홈가드닝’, ‘플렌테리어’ 등 원예에 정서가 가미된 개념의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시흥시는 지난 2011년부터 도시농업을 시작해 자연 친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취미, 여가, 체험학습 등 작물 재배 활동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현재는 50개 단체와 개인을 포함해 3천10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도시농업공원 텃밭 3개소를 포함해 일반 텃밭 80여개소, 주말농장 16개소, 도시농업공동체 58개소가 활동 중이다. 도시농업 관련 6개 단체 107명이 소속돼 있다. ■ 식물 기르며 힐링, 초보 농부들 모여라 시는 지난 2013년부터 아파트 텃밭 조성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34개 아파트에서 주민 스스로 자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정왕동 보성아파트는 아파트 내 단풍나무, 느티나무에서 떨어지는 풍부한 낙엽을 재활용해 퇴비를 만들고 이듬해 봄 작물재배에 활용하는 생명순환텃밭으로 운영하고 있다. 재배되는 농작물과 수확물을 활용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생대회, 요리만들기 등 행사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주민 주도적인 새로운 아파트 텃밭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 시민이 만드는 배곧텃밭나라 배곧텃밭나라는 원형으로 조성된 광장을 중심으로 시민공동체텃밭, 어린이농부학교, 실버텃밭, 시범텃밭 등이 안쪽으로 배치돼 있다. 원형 광장의 외부에는 야생화, 초화류, 약초 군락, 튤립 군락지, 흑보리 군락지, 시민쉼터 등이 조성돼 있어 공원의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해마다 풍성한 농작물 수확과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민들은 공동체 텃밭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텃밭 활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높아지고 있다. ■ 월곶시민행복텃밭 친환경 농업 월곶시민행복텃밭에는 모두 200여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월포초등학교, 월곶풍림아파트 노인정 등 공동으로 텃밭농사를 짓는 공간과 월곶동에서 연세가 가장 많은 어르신이 짓고 있는 텃밭 등 개인 참여자들이 텃밭을 가꾸는 곳도 있다. 비닐과 화학농약, 화학비료가 없는 3무 친환경농업과 시니어를 위한 무장애 텃밭이 특징이다. 상자 위에 텃밭이 설계돼 허리를 굽히기 힘든 어르신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경작이 가능하다. ■ 함줄도시농업공원, 도시농업 허브 역할 ‘톡톡’ 지난 2017년 함줄도시농업공원은 모습을 바꿨다. 보는 공원에서 가꾸고 나누는 공원으로 새단장하며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인생2막 도시농업교육, 시민대상 프로그램, 학교연계 창의 체험, 여름방학을 활용한 체험학습장, 도시농업 관련 일자리 창출, 나눔과 기부를 실천하는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체험활동을 위한 나비체험관, 치유정원텃밭, 수생연못, 소동물농장, 반딧불이 인공사육장 등 다양한 도시농업 활동 공간이 마련돼 있다. 특히 아이들의 관심이 높은 나비체험관이나 반딧불이 인공사육장은 어린이집 아이들의 현장학습장으로 인기가 높다. ■ 도시농업, 이제 교육과 경제다 도시농업이 경계를 허물며 보다 다양한 생산성을 도출하고 있다. 특히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아이들의 환경교육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시흥시는 지난 2012년부터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텃밭교육을 시작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생태계 순환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특히 2020년부터는 관내 중학생을 대상으로 코딩을 접목한 실내원예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직접 기르는 작물의 성장을 위해 미세먼지 제거 장치를 직접 만들며 효능감을 높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인터뷰 박경자 도시농업관리사 “안전한 먹거리·나눔·체험 일석삼조” 박경자 도시농업관리사(60)는 배곧텃밭나라에서 시민정원사 단체가 운영하는 105명의 텃밭 참여자들에게 도시농업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삭막한 신도시 아파트 숲에서 텃밭이 이웃 주민들과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며 “안전한 먹거리와 나눔, 체험, 농업교육 등 도시민들로부터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배곧텃밭나라에는 440명만 참여할 수 있지만 해마다 텃밭 추첨에 1천500여명이 몰린다. 도시농업관리사들은 쌈채류로 치커리 쑥갓 상추와 엽채류 시금치, 근대, 아욱, 김장 채소로 배추 무 파 등을 재배하고 봄철에는 오이, 호박, 토마토, 고추, 가지를, 구황작물로 감자, 고구마까지 없는 게 없다. 청소년 농부학교 행사를 통해 모내기, 연근 재배 등 체험활동도 진행한다. 참여하는 도시농부들을 위해 씨앗이나 모종 등도 공동구매해 나눠준다. 봄에는 팜파티를 열고 가을에는 김장체험 행사도 한다. 그는 “해마다 봄·가을로 각자 재배한 배추 몇 포기씩을 내어 푸드뱅크에 300여포기를 기부한다. 고추나 쌈채소류도 조금씩 뜯어서 내어 놓으면 푸드뱅크에서 가져다가 취약계층에 나눠 드린다”며 “각자 재배한 농작물을 조금씩 모아 함께 팜파티를 열고 비빔밥을 해먹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시 조례로 만들어진 도시농업관리사 교육 90시간을 이수했다. 종자, 병충해 등 농사에 대한 이론과 실기 등 도시농업에 대한 기본교육을 마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수입이 따로 없다. 순수한 봉사로 도심 속 농부를 길러내고 있다. 박씨는 “시흥시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시에 재능을 환원하는 차원이다. 젊은 부부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치고 잘 키워내는 것을 보면 너무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낀다”며 “서로 작은 정을 나눌 때 더 큰 보람이 있다”고 했다. 시흥=김형수기자

[강송화 작가 ‘루페’] 제주 4·3사건, 장편소설로 피어나다

1947년부터 7여년간 일어났던 제주 4·3사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들’만의 아픔이었고 ‘그들’만 알고 있던 사건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었던 이 사건을 긴장감 넘치는 서사로 풀어낸 장편소설이 발간됐다. 2007년 미주 한국일보 공모전 소설부문에 등단해 2010년 단편소설집 ‘구스타브쿠르베의 잠’(2010년), 중편소설집 ‘빨간 연극’(2019년) 등을 발간한 강송화 작가의 장편소설 ‘루페’(도화 刊)다. 책은 6·25이후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일상과 사랑, 이들이 이룬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주 4·3사건으로 가족과 마을을 송두리째 잃고 생존을 위해 독일의 광부로 간 차혁, 그가 탄광에서 발견해 낸 블루스톤이 국제 테러 조직과 연계되면서 이야기는 거침없이 흘러간다.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차혁이지만 차혁은 끊임없이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잊지 못한다. 블루스톤을 팔아 고향에 있는 가족과 몰살된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려 하면서 비극의 소용돌이로 휩쓸린다. 이 과정에서 독일 경찰과 미국 CIA가 연계되고 블루스톤은 그의 이란성 쌍둥이 딸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소설은 강송화 작가 특유의 사물에 대한 오랜 응시와 차분한 묘사, 긴 호흡으로 벼린 언어가 투명하고 강렬하다. 특히 제주 4·3사건을 독자들에게 알리면서도 흡입력 있게 새로운 이야기의 구성을 덧붙여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몰입감이 압도적이다. 제주 4·3사건을 여러 겹의 경계를 통해 다루고 주인공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끊임없이 확장되는 서사는 치밀하고 정교하게 호흡을 끝맺는다. 여러 장치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들이면서도 책은 본질적인 질문을 잊지 않는다. ‘제주 4·3사건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은 무엇인가, 또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사건의 중심에 있는 보석에 관한 세밀한 묘사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보석을 전공하면서 이와 관련된 장편을 쓰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는 저자는 비극적인 역사를 대중이 알게 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나가면서 보석과 접목해 글로벌한 이야기로 서사를 끌고 나간다. 남성적이면서도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 펼쳐지는 세밀한 구성이 흥미롭다. 저자가 제주 4·3사건을 다룬 것은 5년여 전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참가한 제주 4·3 심포지엄에서 그날의 역사적 비극을 전해 들으면서다. 그는 “우리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에 대한 엄숙주의와 이념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대중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그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자,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책은 오랜 집필 과정을 끝낸 이후 4년 만에 나왔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한풀 가라앉은 지금, 그래서 더욱 반갑기도 하다. 정자연기자

[경기도 독립운동단체를 조명하다] 14. 경기도 독립운동의 역사적 성격을 말하다

■ 인문지리적 조건이 사회·경제·문화 발전의 토대가 되다 경기도는 행정구역상 서울을 제외한 근방 지역이다.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중앙정부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떤 부분은 서울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반면 어떤 문제는 서울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한국 근대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서울 변화와 밀접한 관련성은 경기도의 근교 도시 발전과 더불어 역사 발전에 중요한 거점이 됐다. 인천 시흥 과천 수원 개성 광주 고양 양평 의정부 등지는 한국사 발전이나 정변‧전란 등이 있을 때마다 관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개성 수원 인천 등지는 다른 배후지역보다 사회·경제적, 문화적으로 발달한 고장이었다. 강화도와 인천은 출입구로 일찍이 서구 문물이 유입되는 주요한 통로였다. 또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조계지 설정은 ‘침략의 최전선’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항일독립운동사도 그대로 반영됐다. 서울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통감부와 조선총독부가 군림하고 있었다. 이들 기관은 항일독립운동 세력의 궁극적인 공격 대상이었다. 경기도에 소재한 항일세력을 중심으로 이러한 목적을 수행한 경우가 많았다. 역사적 조건도 경기도를 항일운동 중심적인 위치에서 역할을 하게 했다. 항일운동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됐다. 근대민족운동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계승하는 밑거름이었다. 실학은 당시 사회경제적 변화와 개혁사상을 아우러는 근대성을 지닌다. 이는 성호 이익(안산 출신)과 다산 정약용(양평 출신) 등 근기학파에 의해 개혁적인 근대사상으로 접목됐다. 항일운동의 선구적인 지도자 배출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족주의 선구자 김택영 이건창 등과 교육계몽운동 및 기호흥학회를 이끈 수많은 인사들이 이곳 출신이었다. 독립협회 지회인 인천 박문협회는 이곳뿐만 아니라 경기도 교육계몽운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 지회나 개성교육회 등도 근대의식을 각성시켰다. 의병전쟁에서 강기동 김수민 민긍호 연기우 등은 반봉건적 의병장이었다. 이와 달리 구시대적 위정척사 사상에 기초한 인물도 있었다. 이항로 학통을 계승한 최익현 이춘영 이필희 심상희 이인영 등은 전통 유교에 기반을 둔 의병장으로 독립운동사를 빛냈다. 유교 의리의 모범으로 자결 순국한 이한응 조병세 민영환 홍만식 등은 국운에 따라 온몸을 민족제단에 기꺼이 바쳤다.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자 조소앙 형제들, 여준 여운형 신익희 박찬익 안재홍 이봉창 조봉암 등은 다양한 이념으로 항일운동을 이끌었다. 합법과 비합적인 활동은 항일운동 역량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 경기도는 항일운동의 선구이자 중심지다 서울에서 전개된 항일운동은 경기도 항일운동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뤄졌다. 일제의 식민정책 변화에 민감해 다른 지역 반응과 매우 달랐다. 다른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은 경기도를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서해안이나 임진강‧북한강‧남한강의 수로가 발달했다. 서울과의 연결이나 경기도와의 정보 교환이 매우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배경은 의병전쟁이나 근대교육운동‧계몽운동 등이 일찍부터 활발하게 일어나는 요인이었다. 통감부나 조선총독부에 대한 공격은 의병전쟁에서 시작됐다. 다른 지방의 의병부대는 지방 관아나 일본군의 지방 주둔군을 상대로 싸웠다. 반면 이천수창의소에서 시작된 의병부대는 남한산성에 웅거하며 서울 진공작전을 세웠다. 서울에 소재한 각국 공사관에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상세하게 알렸다. 유홍석의 가평의병도 서울 진군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초기 의병부대가 해산된 뒤 각지로 해산한 일부 의병은 러일전쟁의 원활한 수행을 방해하고자 전신선 절단을 감행했다. 군대 해산 이후 양주에 집결한 13도창의군은 선봉장 허위를 필두로 서울 진공작전에 나서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출했다. 이듬해 1908년 5월 임진강에서 활동하던 허위‧연기우 의병부대도 서울 탈환작전을 전개했다. 의병전쟁 등으로 항일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농민들도 구국운동에 동참했다. 1904년 9월에는 경인선과 경부선 부설로 많은 피해를 입은 시흥군 농민들은 서울로 진격하려다 봉쇄 당한 일도 있었다. 당시 농민들의 저항은 김포 용인 파주 장단 가평 등지로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 국채보상운동에서 아낙네의 존재감을 드러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비에 적 힌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 목록사회 변화에 부응하려는 인식은 여성들 스스로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인천 국미적성회(掬米積誠會)는 인천지역 기독교 부인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조직됐다. 발기인은 박우리바, 여누이사, 정혜스터, 장마리아 등으로 초기 회원만 80여명에 달했다. 선발된 권고위원 20명은 2명씩 1개조로 편성해 여성들의 동참을 권고하는 등 여론 조성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김포군 검단면 고잔리에 거주하는 한씨, 노씨, 김씨 등은 국채보상의무소를 조직한 후 각 동리를 방문해 취지서를 배포했다. 주요 내용은 ‘충효의 윤리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고 국채보상은 국가 흥망과 직결됨’을 강조했다. 나라가 위급한 때 부인들이라고 편안하게 있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일임을 지적하는 등 애국심을 일깨웠다. 출연 방법은 돈만 의연할 것이 아니라 패물은 물론 곡식까지 출연하자고 설득했다. 이는 경제적인 곤궁 속에서 전개되는 국채보상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는 일환이었다. 여주군 근동면 흔바위 개신교도 여성도 단체적인 성격을 띠고 참여하는 등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참여자는 ‘흔바위 예수 믿는 김씨 부인 50전, 고씨 부인 20전, 조씨 부인 40전, 류씨 부인 40전, 권씨 부인 20전, 김씨 부인 10전, 박씨 부인 10전’ 등이었다. 비록 구체적인 단체 명칭은 알 수 없으나 기독교회를 통해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등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에 소홀하지 않았다. 화성군 화척지면 보흥여학교 교사 이리사벳안, 찬성원 신덕김, 미시다홍, 이뱃가홍과 학부모 및 학생 등 33명은 9원71전5리를 모았다. 이러한 과정은 학생들이 일제 침략 실상을 인식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김희경, 김혜경, 안마리아 등은 부인의성회를 조직해 모금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들 활동은 여성의 사회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초래하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했다. 이는 여성교육회로 전환하는 등 대한제국기 화성지역 여성교육을 확산시켰다. 가정부인의 참여는 학생과 유대를 강화하는 든든한 밑거름이었다. ■ 부문별 항일운동을 견인하다 의병전쟁, 애국계몽운동, 국채보상운동 등을 거쳐 3‧1운동 이후 항일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활동, 부문별로 분화‧진전되는 가운데 다양하게 전개됐다. 학생운동, 청년운동, 여성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신간회운동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개성 수원 인천 등은 항일운동을 이끄는 중심지로 부상했다. 3‧3개성만세운동과 수원 구국민단은 여성 항일 의지의 ‘상징’이 됐다. ‘조선인 본위 교육’을 요구한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은 민족교육과 문화운동을 주도하는 중심 단체였다. 특히 여성운동은 여성들의 자아를 각성시키는 촉매제와 같았다.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을 창출한 공간도 경기도였다. 일제 침략에 맞선 갑오농민군 활동은 배일적인 민중의식을 일깨웠다. 각지에 설립된 계몽단체 지회는 강연회를 통해 공화주의와 근대적인 사상을 널리 알렸다. 3‧1운동을 거쳐 보편화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아나키즘(자유주의)과 사회주의 유입은 대중운동을 진전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1940년대 건국동맹이나 농민동맹 활동은 멈추지 않은 경기도 항일운동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광복 직전 조문기 등 대한독립청년단의 부민관 폭파 의거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항일운동이 치열한 경기도에 대한 일제의 잔인한 반격으로 피해도 엄청났다. 의병전쟁의 중심지는 마을 전체가 불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3‧1운동의 제노사이드로 널리 알려진 제암리학살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도 경기인들은 조국 광복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글=김형목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종구 칼럼] 공동체論, 이재명 무혐의면 박근혜 무죄

때마침 1심 유죄 판결이 나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다. 요양병원 급여 횡령 사건이다. 윤 전 총장을 공격할 기회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나섰다. “검찰총장 사위가 사라지자...정의가 밝혀졌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의 책임을 설명했다. 그때 쓴 논리가 경제공동체論이다. ‘윤 전 총장의 부인과 장모의 관계에는 사실상 경제공동체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윤 전 총장과 김건희씨는) 사랑해서 결혼하셨겠지만...경제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보이지 않나 생각한다.’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애초부터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2021년 7월2일의 얘기다. 결과적으로 송 대표의 논리와 전망은 틀렸다. 출가한 딸(김건희)과 친정 엄마(최은순)는 공범이 되지 않았다. 그 딸의 남편(윤석열)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최씨는 지금도 재판 받고 있다. 그의 유무죄를 여기서 따질 필요는 없다. 요는 경제공동체論으로 윤 전 총장이 엮였느냐다. 문재인 검찰이고 추미애·박범계 검찰이었지만 엮이지 않았다. 대통령도 됐다. 그런 ‘공동체論’이 또 등장했다. 이번에는 검찰의 압수영장·공소장이다. “2005년부터 이 대표와 정 실장이 정치적 공동체가 되었다.” 정진상 실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의 한 부분이다. 여기서 ‘이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를 엮으려는 논리다. 검찰의 이런 의지는 다른 곳에도 나와 있다. 구속 기소된 김용 부원장 공소장에 더 장황한 설명이 있다. 이 대표와의 정치적 인연, 행적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문장도 적혀 있다. ‘이들은 정치공동체다.’ 검찰이 이 대표 턱밑까지 온 듯하다. 그런데 이 대표 반응은 의외다. 검찰 비난 수위를 전보다 높였다. 그냥 구호가 아니다. 구체적인 반박을 담고 있다. ‘설정 오류로 가득 찬 창작물’이라고 하고, ‘작성 시기가 이상한 남욱의 메모’ ‘설명이 뒤바뀌는 가방·종이상자’라고 했다. 수척한 모습으로 침묵하던 한 달 전과 다르다. 뭔가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공교롭게 정치공동체가 등장한 시기부터 이랬다. 수사의 허점을 본 것일까. 검찰 무기가 정치공동체뿐이라고 보고 역공에 나선 건가. 검찰 패를 정확히 알긴 어렵다. 어쩌면 정치자금 수사가 변죽일 수 있다. 대장동 배임죄로 가는 기법일 수 있다. 그런 셈법이라면 수사는 가파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정말 정치자금법 범죄를 노리고 있다면- 전세는 바뀔 수 있다. 8억4천700만원과 1억4천만원은 현재까지 김용과 정진상의 범죄다. 이 대표 쪽으로 흘렀음이 증명돼야 공범이다. 그 증거도 없이 정치공동체論으로만 엮으려 한다면 수사는 실패할 것이다. ‘윤석열-장모’ 공동체論이 헛발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쯤되면 생각나는 또 다른 공동체論이 있다. 형법에 경제공동체 이론이 어색하던 때, 경제공동체 얘기를 못 듣던 때, 난데없이 등장한 공동체論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박영수 특검이 신의 한 수처럼 꺼냈다. ‘삼성이 최순실 딸 정유라에 말 세 마리를 사줬다→박근혜 피고인에 이득이 된 건 없었다→하지만 최순실과 박 피고인은 경제공동체다→그러므로 말 값 34억원은 박 피고인의 뇌물 액수다.’ 결국 이 논리로 기소했다. 대법원의 최종심도 징역 22년, 유죄였다. 반쪽이 빠진 재판이었다. 박 피고인은 법정에 안 나갔다. 정치 재판이라고 선언했다. 끝까지 한마디 항변도 안 했다. 궐석재판이니 판결은 공소장대로 갔다. 그 재판 어디서도 경제공동체論에 대한 토론은 없었다. 이게 공동체論의 정확한 현 위치다. 제대로 된 다툼이 없었고, 여전히 법 밖에 머물러 있는 실험적 논리에 가깝다. 이런 엉성한 이론을 유일한 정황으로 밀어붙인다면 그 결말은 뻔하지 않겠나. ‘이재명-측근’은 무혐의다. 같은 이유로 ‘최순실-박근혜’도 무죄여야 했다. 2016년, 이재명 시장이 ‘박근혜 구속’을 선창했다. “박근혜가 청와대 나오는 순간 수갑 채워라.” 그의 구호를 실현시킨 게 공동체論이었다. 2022년, 검찰이 이 대표를 구속하려 하고 있다. 같은 공동체論이 이번엔 그를 파멸로 떠밀고 있다. 이 대표가 말한다. “검찰이 조작 수사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말했다. “검찰이 모든 걸 엮고 있다.” 뭐가 다른가. 바뀐 정치와 흐른 시간만 빼면 둘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主筆

[천자춘추] 성남시의료원, 시민 위한 필수 의료기관인가?

2003년부터 시작된 성남시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을 둘러싼 논쟁은 20년이 되는 2022년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어쩌면 이 논쟁은 성남지역사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영원한 핫-이슈(hot issue)’로 남아있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성남시의료원이 성남시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기관인가?」라는 의료수요자(성남시민) 측면에서 논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의료)자원은 유한하다’라는 경제 측면이다. 즉 성남시 재정은 유한하기 때문에 만약 성남시의료원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재정이 투입된다면 그만큼 성남시민을 위해 다른 곳에 쓰일 돈은 부족해 질 수 있다. 둘째, ‘사회의료보험(social health insurance, 우리나라 제도 명칭은 건강보험)’ 제도 아래에서 공공의료기관이나 민간의료기관 모두 ‘공공의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수요자 입장에서는 의료기관을 공공이냐 민간이냐로 구분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측면이다.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가 공공과 민간 중 어느 곳에서 생산되든 간에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법 제42조 제5항에 따른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으로 그 의료서비스를 구매(법 제45조 제1항에 따른 ‘환산지수 계약’, WHO나 OECD 보고서는 purchasing이라고 표현)하여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WHO(사회의료보험제도 개발 지침서, 2009)는 우리나라처럼 사회의료보험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가에게 “사회의료보험이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는 굳이 국가 소유의 공공병원을 설립할 필요가 없다”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립고등학교(2022년 약 40%)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사교육(또는 교육민영화)이라고 하지 않고 공교육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사립학교 교사의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를 국가가 부담(구매)하여 국민에게 제공). 이제 논쟁의 핵심을 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성남의료원은 이미 2016년에 설립되었지만 다시 한번 ‘설립’의 의미를 톺아보고자 한다. ‘설립’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병상(bed)이라는 의료자원이 성남시민에게 부족한가 아니면 넘쳐나는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이 성남지역사회에서 전개되던 2004년의 성남지역은 병상공급과잉지역으로 분류되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4). 또한 2019년말 현재 통계청 등의 자료에 따른 성남지역의 ‘인구천명당 병상수 지표’는 10.4개이며, 이는 경기도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성남시 인구 규모와 비슷한 도시인 수원시(9.6개), 고양시(11.8개), 용인시(7.9개) 등과 비교할 때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요양병원 등의 병상을 제외한 급성병상기준 지표는 용인 2.5개, 수원 5.3개, 고양 5.6개, 성남 7.1개). 다음은 성남의료원의 ‘운영’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의료서비스 제공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의료의 질(quality)’이며 그밖에 조직(의료기관 설립 형태), 진료비 등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WHO보고서(네덜란드 의료개혁, 2021)는 좋은 참고가 된다. 의료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료인력이다. 즉 명의(名醫)라고 불릴 수 있는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성남시의료원은 유능한 의료인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남의료원이 아무리 첨단 의료장비를 잘 갖추고 다른 민간의료기관보다 진료비를 조금 더 저렴하게 한다 하더라도 의료의 질이 확보되지 않아 의료수요자(성남시민)에게 외면을 받으면 운영의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설립의 의미도 없다. 서두에 말했지만 성남지역사회에서 성남의료원에 관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어쩌면 앞으로 영원하게 진행될지 모른다. 끝없이 진행될 이 논쟁이 좀 더 생산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이 되기 위해서는 성남시민(의료수요자)의 의료이용 실태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사·분석할 필요가 있다. 성남지역사회의 의료자원(병상, 의료인력 등)에 관한 현황과 성남시민(의료수요자)의 의료이용실태(장애인, 의료급여수급자, 건강보험수급자 등으로 구분하여 의료기관 이용 현황(성남지역 및 성남외지역), 교통수단 및 교통비, 진료비(비급여진료비 포함))를 매년 조사·분석하여 공개하는 것은 논쟁자 간에 서로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김정덕 대한아동병원협회 정책연구실장·보건학박사

화성시장, ‘반도체 산업’ 미래…“ASML·삼성 등 기업 상생이 관건”

정명근 화성시장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밝은 미래를 위해 화성지역 기업들의 상생을 당부했다. 정 시장은 16일 동탄2신도시에서 열린 ‘ASML 화성 NEW CAMPUS’ 기공식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화성에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많은 기업이 있다”며 “ASML이 그들과 협력한다면 우리나라 반도체산업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ASML의 투자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시와 ASML 코리아는 앞서 지난해 11월 2천400여억 원을 투입, 동탄2신도시 부지 1만6천㎡에 ASML 화성 NEW CAMPUS를 조성하는 내용의 투자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곳에는 심자외선(DUV)·극자외선(EUV) 트레이닝 및 리페어센터, 재제조센터 건립, R&D 센터, 과학 캠프 및 반도체 체험 센터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준공 목표일은 2024년이다. 시는 ASML 화성 NEW CAMPUS가 들어서면 일자리 창출과 세수 확보, 반도체산업 경쟁력 확보 등의 경제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ASML은 반도체 미세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 노광장비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반도체 제조기술 중 가장 중요한 노광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화성=김기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