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산하는 온통 연둣빛 초록빛이다. 벚꽃이 푸른 산허리 곳곳을 환하게 수놓고 있다. 아, 산에도 벚꽃이 피었네! 그러나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해지면, 다시 봄이 찾아올 때까지 산에 벚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에 들어서면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유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비로소 떠올리게 된다. 그래, 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 배웠지. 직립하면서 털 없는 원숭이로 진화가 시작이었지. 맞아, 인류의 조상들은 돌을 깨트려 도구를 만들었지. 코로나19로 휴관 중이라 박물관에 미리 협조를 요청해 둔 덕분에 학예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 탐방에 나섰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전곡리 윗마을 사람들이란 전시가 열리는 1층을 지나 2층 상설전시실에 들어섰다. 순간 수백만 년 전 인류가 출현했던 아득한 시절의 유물과 낯선 풍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상설전시실 중앙에 전시된 주먹도끼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선사박물관은 석기시대의 유물들이 간직한 이야기로 인류 탄생의 비밀을 풀어가는 상상력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선사박물관은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곳이다.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설을 듣다 보니 일상에서 사라졌던 호기심과 감동이 되살아난다. ■ 주먹도끼와 대화를 나누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라 불리는 유리관 속의 유물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옆에 약 700만 년 전의 투마이로부터 1만 년 전까지 북한의 평양에 살았다는 호모 사피엔스 만달인까지 인류 진화를 보여주는 14가지의 정교한 화석인류 모형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이다. 그러나 유리관 속에 들어 있는 주먹도끼 앞에서 반드시 감사의 예를 표해야 한다. 1978년 전곡리에서 만약 이 돌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멋진 전곡선사박물관은 세워질 수 없었다. 가만히 돌을 바라보면 돌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만약 돌이 말을 걸지 않는다면 당신이 먼저 돌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바로 돌과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에게 연천 전곡리를 기억하게 만들어준 주먹도끼를 찬찬히 살펴보자. 날카롭게 깨진 부분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주먹도끼를 만든 원시인의 솜씨가 정교하다. 1978년 전곡리 유적이 발굴되기 이전, 하바드 대학의 저명한 선사고고학자였던 모비우스 교수는 동아시아에는 양면을 가공하여 잘 만들어진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유리관 속에 전시된 다섯 개의 주먹도끼는 서구 중심의 왜곡된 시각을 교정해 준 유물이기도 하다. ■ 두 발로 서다-인간 진화의 과정 전곡선사박물관은 20세기 고고학의 빛나는 성과를 전시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들이 제작하고 사용한 석기는 물론 발굴한 다양한 화석을 통해 천지창조 때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두 발로 걷고 손을 사용하여 도구를 만드는 원숭이들이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다원의 주장이 과학적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인류의 시작은 직립(直立)이다.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가 두 발로 땅에 서면서 앞의 두 다리는 손으로 진화되었다. 사자의 강한 이빨이나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지 못한 인간이 손으로 돌을 깨트려 날카롭고 뾰쪽하게 도구를 만들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원숭이 무리들이 협력하여 동물을 사냥하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잘랐다. 도구를 발명한 인류의 조상 호모 엘렉투스는 어느 순간 털 없는 원숭이로 진화하였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최초의 인류로 알려진 호모 에르가스터가 출현했다. 왜 이들은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유용한 털을 벗어버렸을까? 많은 이점 중의 하나가 털을 없앤 덕분에 피를 빨아먹는 이 같은 기생충에게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 털 없는 원숭이 곧 인류의 조상은 돌칼과 돌도끼로 짐승을 사냥하여 살을 잘라 먹고 그 가죽을 벗겨 마름질하고 바느질하여 옷을 만들었다. 이처럼 인류의 조상은 도구를 사용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확장시켰다. 전시실 안쪽에 맘모스가 있다. 맘모스는 인류의 발달과정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설명한 인류 모형과 함께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이다. 엄청난 크기의 상아와 반짝이는 쇠로 찾지 못한 뼈를 대신한 것도 재미있다. 맘모스는 공룡과 함께 지금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동물이다.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자주 동원되는 공룡이 인간의 역사와는 무관한 동물인 반면 맘모스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던 동물이기에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 무덤에서 찾는 인간에 대한 예의 박물관 바닥에 털옷을 입은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 있다. 그렇다. 선사시대의 무덤을 재현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묻는 행위, 곧 매장하는 풍습에서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다. 종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고급한 문화가 아닌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원시인의 주검은 뜻밖에도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그만큼 무덤 속에서 소년이 입고 있는 가죽옷이나 매장품은 현대인들의 옷과 장난감 못지않게 정교하다. 이미 수만 년 전에 바늘과 실로 가죽 조각을 잇고 기워 옷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지녔으며 장난감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던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동굴 탐사를 시작하자. 비바람을 막아주는 동굴은 인간의 문화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원시인들의 생활공간으로 활용된 동굴은 예술의 공간,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사실을 확인한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보았던 알타미라 벽화도 볼 수 있다. 실재 유적과 같은 크기와 모습을 재현했으므로 굳이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동굴 벽화를 본 피카소가 감탄했다는 말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선사박물관에 들어서면서 돌에게 말을 걸지 않았는가. 동굴 벽화를 보면서 원시인과 몇 마디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면 반성할 일이다. 원시인들이 만든 작은 인형을 보라. 풍요의 상징 비너스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읽을 수 있는 부적과 같은 것들이다. 유물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유물도 입을 닫으니 주의할 것. ■ 박물관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치 은빛 애벌레처럼 보이는 박물관 주변에도 선사시대의 움집을 비롯해 아이들과 체험하고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설물이 곳곳에 있다. 박물관에서 가까운 한탄강은 풍광이 수려한 곳이니 함께 둘러볼 일이다. 최근에 전곡선사박물관을 방문하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이 출판되었다.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라는 책이다. 전곡선사박물관장이 알려주는 인류 진화의 34가지 흥미로운 비밀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우리가 궁금해하는 선사시대의 여러 가지 궁금한 사항을 친절하게 들려준다. 학예팀장의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3년 전 박물관을 탐방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그것은 경기도 북부의 외진 곳에 자리한 박물관이기에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만족과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박물관 사람들의 정성 때문일 것이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아이들과 부모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에 썩 좋은 곳이다. 별일이 없으면 5월 중순쯤에 개관할 것이라 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려는 부모라면 선사박물관 탐방을 아이와 미리 약속해 두시라. 코로나19로 휴관 중인 선사박물관은 현재 시설물의 보완 수리 및 단장이 한창이다. 새롭게 단장한 선사박물관은 이전과 얼마나 달라질까 사뭇 기대된다. 내년이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선사박물관은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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