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원인으로 ‘우레탄폼’이 지목되는 가운데 우레탄폼으로 인한 화재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매번 관련 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유가족대책위원회 역시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번 화재가 인재(人災)라고 질타했다. 이에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급하게 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 유가족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레탄폼과 같은 단열재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필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건설현장에서 기술근로자의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음에도 정부의 관리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며 “정부는 이 사고에 대해 변명하지 말고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과거 2008년에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도 정부는 지금과 같은 변명을 하며 법을 개선하지 않아 또다시 우리의 가족이 희생됐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소방당국은 단열재인 우레탄폼에 발포제를 첨가하는 작업과 승강기 설치를 위한 용접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 것이 화재의 원인이 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소방당국은 우레탄폼 작업으로 유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상황에서 용접 시 발생한 불꽃이 반응해 발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스가 가득 흐르는 공간에서 라이터로 불을 켠 셈이다.
우레탄폼은 저렴한 가격에도 단열성이 뛰어나 단열재로 주목받고 있으나, 불에 잘 타는 가연성을 지녔고 발화하면 한 모금만 삼켜도 실신할 정도의 유독가스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우레탄폼의 비용은 난연재의 절반 수준인 탓에 많은 공사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도내 한 시공업체 관계자는 “대략 비교할 때 면적 1㎡ 기준으로 일반 우레탄은 1만5천원 정도, 난연 자재는 3만원 정도 하니 2배가량 차이가 난다”며 “따로 규제도 없는 상황에서 경제성과 단열 효과가 뛰어난 우레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우레탄폼으로 인한 대형화재가 다수 발생한 바 있다. 지난 1999년 6월30일에는 화성 씨랜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했고, 2008년 1월7일에는 이천 냉동창고가 불에 타 40명이 숨졌다. 2014년 5월26일 고양 터미널 배관공사 중 발생한 화재는 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처럼 같은 이유로 화재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우레탄폼과 같은 단열재에 별도로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인 난연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현행 건축법에는 건축물 내ㆍ외부 마감재의 경우 난연재를 반드시 쓰라고 정하고 있지만, 단열재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고 때마다 문제를 키웠던 우레탄폼, 샌드위치 패널 등은 화재에 취약하기 때문에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계속해서 벌어지는 화재 참사에 경각심을 갖고 법과 제도를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단열재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 성능이 미흡한 자재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사고의 재발과 인명피해를 방지하고자 건축물 마감재ㆍ단열재의 화재안전기준을 빈틈없이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오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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