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기억나?” 과거를 공유하는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는 불씨가 돼 우리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 시절 우리는 조그만 것에도 웃음 지었고 사소한 것에도 즐거워 했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는 순간조차 행복하다. 여러 이유로 과거를 외면하고 살았던 지금. 기억의 한 조각을 자극하는 것들이 일상에 속속 등장하며 우리를 추억에 젖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일깨워 새로운 추억으로 만들어주는 뉴트로(New Retro) 열풍을 느껴보자.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해석해 재창조된 상태를 일컬으며, 기존 복고풍(레트로)과의 차별성을 부여한다. 뉴트로는 패션, 음악, 방송, 명소, 상품, 공연과 전시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 “패션은 돌고 돌아”...‘프리미엄’까지
일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패션 분야에도 뉴트로 열풍이 깊게 스며들었다. 1980~1990년대 하이틴 영화 주인공의 패션을 반영하는 원색의 옷이 유행하는가 하면 큰 집게핀, 곱창밴드, 비즈 액세서리 등 과거 유행했던 액세서리도 사랑받고 있다. 유명 브랜드도 뉴트로 열풍에 발맞춰 로고가 큰 의류, 가방, 신발 등 과거 유행했던 인기 모델을 재출시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스테디셀러인 에어 조던 1로우는 재발매 이후 매장에 오픈런 대란까지 발생해 전량 매진됐고 프리미엄 가격이 붙어 판매되는 등 초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 음악도 과거로... 감수성 자극하는 뉴트로 뮤직 인기
이런 뉴트로 행렬은 우리가 보고 즐기는 방송과 음악 등 문화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과거 가수들의 영상과 음악을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탑골공원’이 반짝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초반 음악 방송 영상을 송출하는 온라인 탑골공원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통해 ‘그때 그 시절 음악 방송’을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 무빙에서부터 과거 무대에서 나오는 촌스러움 속 세련된 분위기 등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스타들이 입은 무대 의상과 아이템 등이 인기를 얻는 파급 효과도 발생했다.
■ 포켓몬빵 사려고 줄 서봤니?
이런 뉴트로 열풍은 보고 즐기는 문화를 넘어 식품업계에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식품업계 뉴트로의 대표 주자로 볼 수 있는 포켓몬빵은 재출시된 지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SPC삼립 포켓몬빵은 지난 2월 재출시 이후 40여일 만에 약 1천만개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시중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 포켓몬빵 판매처에서는 빵을 구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대기하는 일명 ‘포켓몬런(포켓몬빵+오픈런)’이 발생했고 지금까지도 편의점 곳곳에는 ‘포켓몬 빵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여전히 붙어 있다. 포켓몬빵의 인기는 단순히 빵이 아닌, 포켓몬이 주는 상징성과 향수에서 비롯됐다. 현재 국내 경제의 주축인 생산 인구층이 과거 초등학생 시절 즐겨봤던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와 그 인기에 힘입어 판매된 포켓몬빵 속 띠부띠부씰(띠었다붙였다 하는 데서 유래)이 빵의 유행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제품에 동봉된 159종의 띠부띠부씰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여전히 웃돈이 붙어 판매되고 있으며 이를 모으는 20~30대 인구 역시 급증했다.
■ 술도 취향... 힙한 술 찾아라
획일화된 녹색 소주병 사이 은은한 하늘빛으로 이목을 끄는 진로소주도 뉴트로 트렌드의 주축이다. 하이트진로는 소주 원조 브랜드 진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진로소주를 2019년 4월 선보였다. 하이트진로는 다양해진 소비자 입맛과 뉴트로 트렌드를 반영해 정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소비자층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로 진로소주를 리뉴얼했으며, 출시 2주년 만에 6억5천만병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와 함께 간단한 심벌과 브랜드 이미지로 뉴트로 대열에 합류한 강자는 대한제분의 곰표 브랜드다. 밀가루 판매사인 대한제분은 곰표 브랜드를 활용해 맥주, 막걸리는 물론 가방, 화장품 등을 연달아 출시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십분 활용했다. 귀여운 북극곰에 군더더기 없는 상표가 소비자를 사로잡았고 과거 한 달 판매량이 20만개에 그쳤던 곰표 맥주의 경우 하루 판매량이 15만개를 넘어서는 등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 여기에 이런 곳이 있어?
낡은 외관이 뉴트로로 재해석되며 발길을 사로잡는 인기 명소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원특례시 화성행궁 일대 ‘행리단길’(행궁동+경리단길)에서는 마치 90년대로 돌아온 듯한 좁은 골목과 담장을 만날 수 있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나오는 한옥 모습을 한 카페, 음식점 등이 유행하는 업종과 합쳐져 MZ세대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깔끔한 구조가 아닌 낡은 것조차 하나의 뉴트로 매력으로 꼽히면서 청년들의 방문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이처럼 생활 곳곳에 자리잡은 뉴트로에는 현재 생산인구로 꼽히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잘 반영돼 있다. 과거의 것을 좋아하거나 동경했던 어린 시절의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적 활동을 통해 과거의 아쉬움을 해소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과거에 사로잡혀 추억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투박함이 특징인 아날로그에 새로움이 더해지며 뉴트로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불안정한 개인 심리가 과거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잠시나마 안정을 찾아가는 심리적 동요도 뉴트로의 유행을 촉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레트로는 기성세대들에겐 추억을 회상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고, MZ 세대들에겐 색다르고 독특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최근 물가 상승세도 가파르고 불황이 이어지면서 위로받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돼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진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