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하는 천사들이 있다. 혹자는 장기기증을 두고 ‘생의 끝에서 벌어지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말한다. 비록 장기기증자들은 먼저 하늘로 떠나지만, 이들의 사랑과 희생은 누군가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고, 영혼을 뛰게 하는 심장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장기기증은 기증자 본인 못지 않게 기증자 가족에게도 크나큰 결단이다. 본보는 창간 34주년을 맞아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어린 천사 ‘기영이’의 어머니를 만나 장기기증의 숭고한 가치를 되짚어봤다. [편집자주]
새 삶 주고 떠난 기영 군(4)
“어디선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을 내 아들 기영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고마웠고, 사랑해”
장미숙씨(41)는 첫째 아들 기영 군(4)을 가슴에 묻었다. 2009년 5월22일. 이날은 공룡을 좋아했던 기영이가 30개월이란 짧은 생을 뒤로 한 채 하늘의 별이 된 날이다. 사고가 난 날은 생후 100일 된 동생 태영 군이 아파 병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장씨와 기영이가 함께 탄 차량은 송탄 IC 부근에서 마주오던 음주운전 차량과 크게 부딪쳤다. 이들이 탄 차량은 논으로 곤두박질쳤고, 장씨 옆자리에 탔던 기영이는 머리 부분을 크게 다쳤다.
■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난 기영이
사고 이후 장씨와 기영이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장씨보다는 기영이의 상태가 더 심각했다. 사고 당일 새벽부터 오전까지 송탄의 한 병원에 있던 기영이는 오후에 급하게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어린 나이에 버거웠을 병마와의 힘겨운 사투 끝에 기영이는 20일 뒤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장씨는 먼저 떠난 아들의 장기를 누군가에게 기부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망설이던 장씨를 설득했다. ‘기영이는 비록 짧게 생을 마감했지만, 이식을 받는 누군가는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고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어딘가에선 또 다른 우리 기영이가 살아가는 것 아니겠냐고’. 남편의 따뜻한 위로에 장씨는 큰 위안을 받았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새 삶을 선물한 기영이는 하늘의 천사가 됐다.
■ 어디선가 살아가는 ‘또다른 기영이’에게
이후 기영이에겐 태영 군 외에도 동생이 두 명 더 생겼다. 장씨는 종종 아이들에게 ‘큰 형, 큰 오빠’ 이야기를 해준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기영이의 신장을 이식 받은 ‘또다른 기영이’를 만나보지 못했다. 장기이식법상 비밀유지 조항으로 인해 장기기증자와 이식인은 관련 정보가 교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 가족과 사랑으로 이어진 이식 가족들이 잘 사는지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장씨는 “당시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도 기영이와 비슷한 또래라고 들었다”며 “지금쯤이면 고등학생이 됐을 텐데 몸은 건강해졌는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다시 장기기증을 선택할 것 같다는 장씨. 그는 “가족을 먼저 보낸 것은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다른 생명을 살리고 하늘로 간 것에서 더 큰 위안을 받았다”며 “첫 결심이 힘들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기영이 같은 기증자에게 장기를 받아 건강해지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장기기증이 더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기영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리다 보니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해줘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김동엽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이사 : “장기기증은 숭고한 생명 나눔”
“장기기증은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생명 나눔입니다”
지난 1991년 한국에 처음 설립된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는 장기기증을 통해 대국민 국민사랑실천운동을 전개하며 생명나눔문화 확산과 건강증진에 기여해 오고 있다. 본부에 소속된 김동엽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이사도 20년 가까이 장기기증의 숭고함을 알리는 데 힘써 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장기기증은 꼭 세상을 떠나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김 이사.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를 국내에 처음 세운 박진탁 이사장이 지난 199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신장을 ‘살아서’ 기증하며 이 ‘생존 기증’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김 이사는 “생존 기증과 사후 기증은 모두 숭고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오히려 살아 있는데 자신의 장기를 떼내 누군가에게 새 삶을 선물한다는 게 더 대단한 사랑이 아닌가”라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장기기증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민 인식, 인프라 등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 기준 장기기증 서약을 맺고 있는 사람은 약 160만명에 그치고 있다. 그는 “이 때문에 본부에선 지난 2010년부터 꾸준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명존중 및 장기기증 교육 등을 통해 숭고함을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앞으로 본부 차원에서 장기를 기증한 분들을 예우하는 데 더욱 힘쓸 계획이다. 그는 “장기기증인 가족들은 아이의 기증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고마움을 느낀 뒤 자연스럽게 장기기증 운동의 숭고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있다”며 “이러한 따뜻한 영향력이 모인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규·박병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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