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태풍 걱정에 취임식 취소는 잘 한 일이다 / 하지만, 취임사 생략은 생각해 볼 일이다

민선 7기가 취임식 없이 시작됐다. 제7호 태풍 쁘라삐룬 때문이다. 이재명 도지사의 선서는 휴일인 1일 이뤄졌다. 재난 본부에서 재난복을 입고 했다. SNS를 통해 취임식 연기 계획을 알리면서 “기대하셨을 도민과 애쓴 관계자분들께 송구합니다”라고 밝혔다. 시장 군수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시장은 상황실에서 선서했고, 어떤 시장은 시 출입문에서 선서했고, 어떤 시장은 간부 회의 자리에서 선서했다. 태풍은 한반도를 빗나갔다. 다행히 피해도 크지 않았다. 정작 인명ㆍ재산 피해는 장맛비에서 왔다. 2일 용인 217mm, 양평 233mm, 광주 159mm 등 폭우가 쏟아졌다. 광주에서 하교 중이던 중학생이 곤지암천에 휩쓸려 실종됐다. 장마도 재난이긴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손뼉 치고 환호하는 취임식이 있었으면 어찌할 뻔했나. 잘한 일이다. 민선 7기 시작이 보여준 애민 정신을 높이 산다. 이 초심이 4년간 이어지길 바란다. 다만, 취임식이 없는 것과 취임사가 없는 것을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단체장들은 후보 시절 수도 없는 공약을 했다. 선택하지 않고 뿌려댄 백화점식 약속이었다. 그렇게 당선자가 됐고, 단체장에 취임했다. 이걸 다 할 순 없다. 그래서 주민들이 취임사를 궁금해한다. 과연 어떤 시정에 강조되고 추진될지 듣고 싶어 한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나라 경제를 뒤흔든다. 주식시장이 출렁이기도 한다. 그런 취임사가 생략됐다. 연임하는 단체장들은 그래도 좀 낫다. 지나온 행정을 통해 미래가 예측되어서다. 문제는 새로 취임하는 단체장들이다. 이재명 도지사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기도’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 슬로건의 대략적 가닥을 보여줄 출사표가 바로 취임사였다. 경기도 내 경제계, 문화계, 교육계 등의 눈길이 취임사에 쏠렸었다. 그런데 그게 태풍 앞에 생략됐다.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큰 허탈함이 도민에게 남았다. 공직사회에 대한 도리를 보더라도 그렇다. 시장 군수들이 갖는 조장 행정의 권한은 막강하다. 앞선 시정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추진되던 신도시 계획을 백지화할 수도 있다. 대형 기관의 유치 계획도 없앨 수 있다. 복지와 개발의 우선순위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런 방향을 현장에서 끌고 나갈 게 공직사회다.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3천 명 가까운 시군 공무원이다. 이들에게 방향을 줄 선언이 없었다. 아쉽다. 그래서 권하려 한다. 이제라도 취임사를 밝혀두길 바란다. 굳이 그 선언의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취임사라 해도 좋고, 약속문이라 해도 좋다. 자체 방송을 통해도 좋고, 편지 형식을 통해도 좋다. 행정을 시작하는 결정권자가 시민과 공직사회에 전하는 공개적이고 불가역적인 약속이면 그걸로 넉넉하다.

[지지대] 항공사와 권력

대한항공 창업자(인수자)는 故 조중훈이다. 서울 출신으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5ㆍ16 군부 세력이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다. 권력의 배려 없이는 공사(公私) 인수가 설명 안 된다. 아시아나 항공의 모체 금호그룹 창업자는 故 박인천이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나주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3남이 현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 박삼구다. 두 항공사의 배경을 영남과 호남으로 나누는 출발 조건이다. ▶물론 아시아나 항공의 출현을 보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8년에 제2 민간항공이 됐다. 사업권 허가를 받은 날이 1988년 2월 23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퇴임 하루 전이다. 2007년에는 이른바 ‘전두환 공짜 비행기표’ 논란이 일었다. 77회 생일을 앞두고 미국으로 출국한 전 전 대통령 일행에 아시아나 측이 왕복 티켓을 제공한 사실이 알려졌다. 군사 정권과의 연을 따지면 아시아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작 두 항공사에 정치적 색깔을 입힌 건 대통령 전용기 역사다. 영남 출신 노태우ㆍ김영삼 대통령이 대한항공 전용기를 썼다. 호남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바꾸었다. 영남 출신ㆍ호남 지지 노무현 대통령은 두 항공사를 교대로 이용했다. 영남 출신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항공과 5년 계약을 맺었다. 이어진 영남 출신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항공과의 이 계약을 2020년까지 연장했다. 대통령과 항공사의 묘한 역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조현아 물벼락 사건이 터졌다. 경찰 수사, 국세청 조사, 관세청 수사가 파상적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이명희씨의 욕설 파문도 터졌다. 연거푸 두 번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급기야 사정 칼날은 조양호 회장에까지 향했다. ‘있는 자’의 갑질에 대한 여론의 분노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시아나 키워주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씨 일가의 혐의가 구속영장을 청구하기에는 과하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이런 때, 아시아나 항공의 대형 악재가 터졌다. 협력사와의 문제로 기내식이 공급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협력사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재계약 과정에서 무리한 투자 압박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살인 갑질, 조사 요구합니다’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대한항공의 업체 관계자 물벼락, 사모님 기사 막말 등에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일부 여론이 빈정댄다. ‘정부가 봐주려던 아시아나가 사고를 쳤다’. 정부로서는 그대로 둘 수 없는 일이다. 사실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대한항공과 똑같은 강도로 수사하면 된다. 사무실 압수하고, 총수 집 뒤져야 한다. 회사 돈 횡령, 총수 일가 비자금, 총수 가족 외국 계좌 등을 다 조사해야 한다. 혐의자가 드러날 때 구속영장 청구는 기본이다. 김종구 주필

[인천시론] ‘지역 일꾼’ 목민관에게 바란다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 지난 1일자로 민선 제7기 지방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지자체장, 지방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됐다. 인천은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국정지지도를 바탕으로 박남춘 인천시장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10곳 중 9곳, 시의원 37명 중 34명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교조 인천지부장 출신 진보 성향의 도성훈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됐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6·13 지방선거 이후 처음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돌이’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문돌이’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 당선자들을 일컫는 말로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 덕분에 당선됐다”는 뜻에서 따왔다고 한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대거 당선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탄돌이’라고 불렀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과연 문 대통령이 참석하고 주재하는 공식 회의석상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그 적절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여권 일각에서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는 평화 블랙홀이라는 초대형 이슈 속에 후보 자질론은 모두 실종되고 야권은 맥없이 끌려다녔다. 이처럼 후보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지방정부가 단체장과 지방의회 모두 민주당 일색으로 재편되면서 앞으로 발생할 각종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지방의회를 특정 정당이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어 지방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민정수석이 악역을 맡아 달라”고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조국 민정수석은 “하반기에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상대로 감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방 비리를 중앙정부가 나서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지방분권이라는 지방자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인천으로 눈을 돌려보자. 과거 민선 5기 송영길 시장 비서실장이 재임 중 5억 원의 뇌물을 받고 구속, 실형을 선고받았고 민선 6기에는 자유한국당 소속 현역 시의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의원직을 상실했다. 교육감 역시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나근형, 이청연 교육감 모두 비리로 재판을 받고 수감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권력은 집중되기 쉽고 집중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영국의 정치가 액튼(Acton)의 말처럼 지방정부 비리에는 여·야,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 특정 정당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진 민선 7기 시정부가 비리와 부패를 근절하고 청렴한 지방정부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유권자인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상황으로 지자체장, 지방의원들의 기본 자질과 자정 능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00년 전인 1818년에 완성된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지방행정의 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 12부 중 제2부 율기(律己) 편에서 지방관리의 바른 몸가짐 칙궁(飭躬), 청렴한 마음 청심(淸心), 그리고 청탁을 물리치는 것을 뜻하는 병객(屛客) 등에 대해 잘 이야기하고 있다. 다산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목민관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옛 선현의 지혜가 담긴 ‘목민심서’, 이번에 취임한 당선자들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일독을 권한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천자춘추] 지방선거 이후에 남겨진 숙제

지난달 끝난 전국지방선거에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광역 및 기초의회 여성 진출 확대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적으로 광역의회 여성비율이 2014년 14.3%에서 2018년 19.3%로 증가하였고, 기초의회 여성비율도 25.3%에서 30.8%로 증가했다. 경기도의 경우 광역의회 여성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은 22.5%이고, 31개 시ㆍ군의 기초의회 여성비율도 전국 평균보다 높은 39.5%로 4년 전에 비해 모두 증가하였다. 지방의회 선거가 처음 시작된 1991년 경기도의회 여성비율 0.9%, 31개 시ㆍ군의 기초의회 여성비율이 0.9%이던 것과 비교하면 광역의회는 25배, 기초의회는 43배 정도 증가했다. 지방의회 제도의 도입 초기,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가부장적 문화와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의 토대가 부족한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할 수 있도록 여성단체들은 생활정치의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고, 경기도는 지역의 여성정치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무엇보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공직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서 광역 및 기초의회 비례대표제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각 정당에게 공직후보자 여성추천보조금과 같은 방식으로 여성공천 비율을 할당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여성의 정치 진출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광역의회에 50% 여성할당과 교호순번제도가 의무화된 2006년 경기도의회 여성의원 비율은 4년전 7.7%에서 14.3%로 두 배 증가했고, 기초의회 여성할당 및 교호순번제도가 의무화된 2010년 기초의회 여성비율은 4년전 15.6%에서 27.1%로 증가했다. 이번 선거에서 좀 더 흥미로운 것은 경기도내 31개 시ㆍ군 의회에서 선출된 비례대표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으로, 비례대표의 홀수번호에 여성을 공천하도록 함으로써 비례대표의 경우 1번을 받은 각 정당의 후보가 다수 선출되면서 비례대표 의원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것 뿐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정당이 기초의회에 진출하게 됐다. 지방의회의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과 다양성을 확대하는데 있어 선거제도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를 위한 노력은 지방의회에 머물러 있었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여성 진출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17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여성은 한명도 없었고, 226개 기초자치단체장 중에서 여성은 8명인 3.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여성자치단체장이 이끄는 지역의 경우 여성친화도시 정책이 활성화되는 등 지역의 성평등 정책의 견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지만 이에 관한 논의와 공론화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논의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 4년 이후 있을 지방선거를 바라보며 모두에게 새로운 숙제가 던져졌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선출직 자치단체장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추진하고 관련 제도를 고민할 때다. 임혜경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연구위원

[특별기고] ‘넛지 행정’, 시민에게 행복을

지난 5월부터 수원시 곳곳 횡단보도 앞에 파라솔(parasol) 형태의 대형 그늘막이 하나둘씩 설치되고 있다. 시민들은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시원한 그늘에서 땀을 식힌다. 짧은 시간이지만 땡볕을 피할 수 있어 이용자 만족도는 무척 높다. 지난해 처음으로 8개소에 그늘막을 설치했는데, “다른 곳에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6월 안에 100개소에 그늘막을 설치할 계획이다. 단지 그늘막을 설치한 것인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비용도 그다지 많이 들지 않고, 한 번 설치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보기도 좋아 도시 미관에도 도움이 된다. 그늘막 주변에는 어떠한 안내문도 없지만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늘로 모여든다. 수원시의 횡단보도 앞 그늘막 설치는 이른바 ‘넛지 행정’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넛지(nudge)’의 사전적 의미는 ‘(특히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이다. 행동경제학자인 미국 시카고대 교수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이 공저한 책 「넛지(nudge)」(2009년)가 유명해지면서 널리 알려진 단어다. 리처드 탈러는 넛지 이론으로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넛지」를 쓴 두 사람은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을 유도하는 힘을 ‘넛지’라고 정의했다. 금지ㆍ명령이 아닌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권유로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것이다. 넛지에는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흔한 말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남자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이는 아이디어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줄인 게 대표적인 넛지 활용 사례다. 행정에도 넛지 이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도 시민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수원시도 ‘넛지 행정’을 펼친 사례가 많다. 장안문과 팔달문을 잇는 도로 양 옆에 심은 가로수는 모양이 여느 가로수와는 다르다. 세로가 긴 직육면체 형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바(bar) 형태 아이스크림 같다. 어차피 해야 하는 가지치기를 이색적인 모양으로 한 것이다. 수원시의 ‘직육면체 가로수길’은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올림픽공원 내에 조성한 반려견놀이공간(쉼터)과 구도심의 벽화 골목도 넛지 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개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싶어 하지만,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 중에는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한 갈등도 있다. 인적이 드문 공원 한편에 울타리를 치고, 반려견 놀이 공간을 만들어 놓으니 반려인, 비반려인 모두 만족도가 높아졌다. 수원시의 대표적인 구도심인 행궁동과 지동에는 벽화 골목이 있다. 벽화를 그리기 전 담장은 무척 우중충했다. 때가 잔뜩 끼어있었고, 페인트칠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낯뜨거운 낙서로 가득 찬 담장도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후 마을에는 생기가 돌고, 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났다. 쓰레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낙서하는 사람도 없어졌다.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낙서 금지’라는 경고문구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훨씬 큰 효과를 낸 것이다. 넛지 행정의 가장 큰 장점은 ‘계도’를 하지 않아도 시민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추가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행정 전반에 넛지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넛지 이론은 그동안 경제 분야에서 주로 활용됐지만, 이제는 행정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넛지 행정이 성과를 거두려면 시민 참여가 필수적이다. 시민이 넛지 행정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행정전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들도 기존에 해왔던 행정을 반복하기보다는 효율적이면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넛지 행정을 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유도시’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수원시가 넛지 행정도 선도하는 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한규 수원시 제1부시장

[기고] 북한 나무심기와 이산가족 은행나무

남북분단의 아픔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 나라에도 남북으로 갈라져 버린 이산가족이 있다. 강화도 외포리 항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서해의 외진 섬 볼음도의 한적한 바닷가에 자라는 수은행나무 고목 한 그루는, 북한 황해도 연안 땅에 자라는 암은행나무와 부부사이로 알려져 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었지만 직선거리는 8㎞에 불과하다. 나이는 800년, 고려 중엽 쯤 북한 연안에는 암수 두 그루의 동갑내기 은행나무가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한다. 어느 날 연안평야를 휩쓴 홍수에 암나무는 잘 버티었지만 수나무는 뿌리째 뽑혀서 서해바다로 떠내려가 버린다. 운 좋게 어부들의 눈에 띄어 건져다가 심은 것이 자라 지금의 보름도 은행나무가 되었다 한다.사연을 전해들은 볼음도와 연안의 어부들은 생이별한 은행나무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쓰다듬어 주고자 합동 풍어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때 어부들이 메신저가 되어 암수나무의 소식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북이 갈라져 소식이 끊겨 버린 지가 올해로 73년에 이른다.세월이 지나면서 불음도의 수나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수위가 높아져 바닷물이 너무 나무 가까이까지 온 것이 큰 이 이유지만 볼음도 사람들은 북한의 암나무를 잊지 못한 탓으로 해석한다. 다행히 바로 옆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민물 공급을 충분히 받아 지금은 조금씩 몸을 추슬러 가고 있다.그래도 북한의 암나무를 향한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바닷바람이 좀 센 날이면 ‘우~웅 우~웅’ 하는 나뭇가지 사이의 바람소리가 북쪽을 향한 울부짖음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한편 갑작스런 수나무와의 별거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연안 주민들은 뜻을 모아 바로 옆에다 젊은 수은행나무 한 그루를 새로 심어주었다. 볼음도로 떠내려가 버린 옛 수나무는 이제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연안 암은행나무는 볼음도 수은행나무를 여전히 잊지 못했던 것 같다. 남북분단으로 풍어제를 통한 볼음도의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된 후부터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다.최근의 북한 자료를 보면 이 암은행나무는 줄기 굵기에 비하여 가지 뻗음이 약하고 열매도 제대로 달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두 은행나무가 단 한번이라도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 보름도 수은행나무의 꽃가루를 가져다 연안의 암나무에 수정 시키는 행사라도 치른다면 800년 이별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줄 수 있을 터이다.지난 4월27일 남북정상이 만나 일궈낸 판문점 선언은 남북화해의 새 지평선을 열고 있다. 합의 이행의 첫 사업으로 산림분야가 선정되었다. 북한 산림을 분석한 자료에는 산림 면적 32%가 황폐화됐다고 한다. 우선 시급한 과제가 나무심기임을 말해준다. 무슨 나무를 어디에다 어떻게 심을 것인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첫 출발을 뜻 깊게 시작하여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도 중요하다.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필자는 새로 출발하는 북한 나무심기의 상징목으로 볼음도와 북한 연안의 은행나무 고목을 제안코자 한다. 이 두 고목나무 아래서 남북한 산림협력 사업의 첫 삽을 동시에 뜨고 고유제라도 지낸다면 애절한 전설과 함께 북한나무심기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두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이의 바다는 이번 남북선언에 포함된 서해 평화수역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상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수면위 오른 ‘잠재적 부채 5조’ 실체 파악 나선다

제8대 인천시의회가 민선7기 박남춘 시장의 새로운 인천준비위원회가 발표한 4조9천억원 상당의 잠재적 부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검토 중이다. 시의회는 3일 오후 의장단회의를 열고 새로운 인천준비위가 발표한 시 잠재적 부채 4조9천555억원에 대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용범 시의회의장은 이날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인천시 부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특별위원회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박 시장의 새로운 인천준비위가 발표한 잠재적 부채 4조9천555억원을 부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박 시장의 새로운 인천준비위는 “2017년 말 기준 인천시 총 부채는 15조 168억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의 총 부채가 당초 알려진 10조원보다 무려 5조원 더 많은 15조원대로 집계된 이유는 잠재적 부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시의 제도적 부채는 본청 2조2천449억원, 인천도시공사 6조7천834억원, 인천교통공사 1천630억원 등 10조613억원이다. 나머지 4조9천555억원은 제도적 부채는 아니지만, 반드시 갚아야 하는 잠재적 부채라는 것이다. 제도적 부채에 포함되지 않은 잠재적 부채 4조9천555억원은 법적·의무적 경비 미부담 5천664억원과 통합관리기금 및 지역개발기금 등 기금융자 9천846억원, 인천경제청 회계이관 토지대금 1조8천655억원, 도화구역 준공 정산 3천797억원, 도시공사 무수익자산 출자 2천214억원, 민간투자사업(BTO) 3천89억원, 도화 구역손실 2천719억원, 국립인천대 지원협약금 3천500억원 등이다. 잠재적 부채는 행정안전부의 ‘지자체 채무 기준’에 신고하지 않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으며 재정위기단체 지정 여부에도 포함되지 않다 보니, 일각에서는 사실상 부채로 봐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제시되는 등 논란을 불러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의회는 시의 재정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잠재적부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새로운 시 정부의 부채관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해결방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의장은 “재정상황을 자세히 검토 분석해야 향후 민선7기 시정부가 공약과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알려진 부채 10조원 말고도 약 5조원 가량의 잠재적 부채가 있다고 알려진 만큼,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라도 이를 면밀히 파악한 뒤 시민에게 투명하게 알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주영민·이승욱기자

비만 오면 고립… ‘육지 속 섬마을’ 양주 삼상리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한 마을이 비만 오면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다리가 물에 잠겨 주민들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마을에는 인가와 펜션 등이 있지만, 매년 장마 기간과 비가 오는 날이면 ‘육지 속 섬마을’로 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3일 양주시와 삼상리 주민 등에 따르면 장흥면 삼상리 108번지 앞에는 지방하천 공릉천을 가로질러 통행할 수 있는 세월교가 조성돼 있다. 공릉천 상류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넓이 3.5m, 길이 30m 규모의 이 세월교는 낮게 건설된 다리로 비만 오면 물에 잠겨 통행이 불가능하다. 세월교 서쪽 편에는 10여 곳의 인가와 휴가철이면 하루 100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펜션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지만 장마 등 비가 오면 다리가 잠겨 통행을 못해 며칠씩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이곳 주민들은 낮은 제방으로 인해 장마와 홍수 때면 수해 피해를 입는 등 비만 오면 항상 불안감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같은 불편을 호소하며 정식 교량 설치, 외부와 통하는 다른 길 마련, 현재 세월교의 높이라도 올려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3년 전 장마 때 집이 수해를 입었다. 나갈 길도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며 “현재 세월교의 높이를 1~2m만 높여도 비가 올 때 통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년 전 펜션 뒤쪽 산에서 불이 났지만, 한 곳밖에 없는 출입로 때문에 소방차 출동에 장애가 있었다”며 “수해나 화재 사고가 항상 잠재하고 있는 만큼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시는 교량 설치 비용과 이용자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개선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입장이다.시 관계자는 “정식 교량을 설치하려면 하천기본계획 등을 맞춰야 하고 주변 여건, 사업성 등을 따지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세월교를 단순히 높이는 것도 사업비가 많이 들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주=이종현ㆍ박재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