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록'에선 1인자 JP…"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향년 92세를 일기로 23일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오랜 정치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 나는 표현들을 적절히 구사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자연스레 능변가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김 전 총리는 정치판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풍부한 은유와 비유, 고사성어를 이용한 간접화법을 이용해 정치상황이나 자신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촌철살인'에 능했다. 다음은 생전에 고인이 남긴 주요 어록. ▲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납니다(1963.2.25.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한 외유에 나서면서) ▲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 ▲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1987.11.3. 관훈토론회) ▲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노태우 정부 시절에 한 말) ▲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진다. 5·16은 역사 발전의 토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그 계승자이고,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전환에 해당된다(1993.5.16. 5·16 민족상 시상식) ▲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1.1. 민자당 대표시절 민주계의 대표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덕담하자) ▲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6.13.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 ▲ 요즘 세대교체를 자꾸 말하는데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는 74세에 총리가 돼 4차 중동전을 승리로 이끌었다(1996.5.18. 대구 신명여고 강연) ▲ 줄탁동기(1997년 자신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에 사용한 신년휘호로 중국 송나라 선종의 대표적 전적인 벽암록에 나오는 글귀.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고자 알 속에서 두드려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고 어미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줘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으로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해석이 나옴) ▲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5.29.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 ▲ 이인제 후보가 우리를 늙었다고 하는데 나와 함께 씨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결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다(1997.12.3. 충북 괴산 정당연설회에서) ▲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6.27. 총리 서리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덜어질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 시인 프로스트가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앞으로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겠다(1998.10.16. 동의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 ▲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총리의 위치라는 게, 아무리 공동정권이라지만 '델리키트'하다(1998.10.25. 총리가 안다고 앞장서거나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1998.11.18. MBC 시사매거진 인터뷰) ▲ 미리 왕성한 상상력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행보를 좁히거나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1998.12.15. 김대중 대통령의 내각제 약속 불이행 우려 관련 자민련 중앙위원회 연수에서) ▲ 백날을 물어봐, 내가 대답하나(2000.5.2. 일주일만에 당사에 출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다(2001.1.9.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4·13 총선 때 자신을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 것을 두고) ▲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2004.4.19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박 대통령이 기반을 굳건히 다져 그 위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2005.10.28.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 ▲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2011.1.6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 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나.(2013.12.10 운정회 창립총회에서) ▲ 국민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겠다고 그러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2015.2.23 부인 박영옥 여사의 장례 사흘째 빈소에서 조문객과 만나) ▲ 미운사람 죽는 걸 확인하고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있다가 편안히 숨 거두는 사람이 승자다. 대통령하면 뭐하나. 다 거품같은거지. (2015.2.23 부인 박영옥 여사의 장례 사흘째 빈소에서 조문객과 만나) ▲ 애석하기 짝이 없어. 신념의 지도자로서 국민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분이야.(2015.11.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 죽어도 안 한다. 누가 뭐라도 해도 소용 없다. 5천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2016.11.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하며) 연합뉴스

JP 별세로 5·16 정치군인들의 역사무대 퇴장 마침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작고와 함께 현대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던 5·16 세력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5·16에 대한 평가가 '구국의 혁명'에서 '군사쿠데타'로 극명하게 엇갈렸던 만큼 5·16 쿠데타의 주역들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영욕의 세월을 겪어야만 했다.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와 중령 김종필을 비롯한 육사 8기생 중심의 쿠데타 세력은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을 붕괴시켰고, 이후 제3공화국과 유신체제로 불리는 제4공화국까지 장관, 국회의원, 주요 국가기관장 등을 지내며 권력의 정점에 섰다. 하지만 1980년 이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집권, 민주화와 정권교체 과정을 거치며 대부분 정치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이들은 집권 기간 급속한 산업화 정책을 추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군의 정치개입, 장기 독재와 민주화의 후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 유산을 한국 정치사에 남겼다. 5·16으로 권좌에 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으로 종신집권체제를 구축하려 했으나, 18년의 장기독재 끝에 1979년 10월 26일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스러졌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5·16을 주도했던 김 전 총리는 40여 년의 정치인생 동안 초대 중앙정보부장, 공화당 의장, 국무총리, 9선 의원을 지냈고, '3김 시대'의 한 축이자 '충청권의 맹주'로 활약했으나, 2004년 4·15 총선 참패 이후 정치무대에서 퇴장했다. 김 전 총리는 그러나 이후에도 은퇴한 원로정치인의 '훈수정치'를 간혹 선보이다 끝내 23일 세상과 작별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5·16 당시 육사 8기생 연락책)은 유신 선포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반(反)박정희 운동을 펼쳤고,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돼 사망 처리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수공작원에 의한 피살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대위 신분으로 5·16에 가담했던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김재춘(5·16 당시 육군 제6관구 사령부 참모장) 씨는 중앙정보부장, 8·9대 의원을 지냈고, 지난 2014년 작고했다. 내무부 장관과 3선 의원을 지낸 오치성(당시 육군본부 장교계장) 씨는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정계를 떠났으며, 지난 2017년 별세했다. 농림부 장관, 5선 의원 출신인 장경순(육군본부 작전교육처장) 씨는 80년대 중반 이후 기업가로 변신한 뒤 2003∼2005년 헌정회 회장을 지냈고, 김윤근(해병 1여단장) 씨, 박치옥(공수특전단장) 씨는 공기업 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주일 전 감사원장(군사령부 참모장), 구자춘 전 내무부 장관(군단포병대대장), 이종근 전 의원(군사령부 작전과장), 김용태 전 의원(JP와 친분으로 5·16에 가담한 유일한 민간인 출신)은 작고했다.연합뉴스

'JP 고향' 충남 애도 물결 "지역서 난 큰 인물이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별세한 23일 그의 고향인 부여군을 비롯한 충남지역의 주민들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 JP와 같은 규암면 외리에서 태어났다는 김모(67)씨는 "어릴 때부터 JP 얘기는 동네 어른들께 하도 많이 들어서 마치 이웃집 삼촌이 돌아가신 것 같다"며 "도로포장도 해주고 다리도 많이 놔 주는 등 지역을 위해 일을 많이 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부여 토박이 이재만(59)씨는 "지금 와서는 사람들이 JP가 한 게 뭐 있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숙원사업 해결에 공이 많았다"며 "정치적 평가야 엇갈릴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어쨌든 큰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정계도 한목소리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정현 부여군수 당선인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큰 별이 졌다. 삼가 조의를 표한다"며 "특히 고인 고향인 부여군민은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청권 기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서 JP가 총재로 지낼 때 부여군정을 책임졌던 유병돈 전 군수는 "한 달 전쯤 자택으로 찾아뵀을 때 반갑게 맞아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부여군민에겐 늘 꿈과 희망이셨던 분이 돌아가셔서 무척 안타깝다"고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 당선인도 인수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충청 대망론의 한 축을 이뤘지만, 제2인자라는 그의 삶이 충청에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우리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의 별세를 도민과 함께 애도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김종필 전 총리는 고향인 부여군 선산(외산면 반교리)에서 영면에 들 예정이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의 장지에 대한 뜻을 생전에 유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누차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선산에는 김 전 총리의 아내 고 박영옥 여사의 묘소도 있다. 반교리 장찬순(64) 이장은 "(김 전 총리는) 아주 옛날에 큰아버지와 친구셨기도 할 만큼 저와 세대가 다른 분이기도 하다"며 "마을 주민으로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1926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과 김대중 정부 시절 등 국무총리에 두 번 올랐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하고 총재를 지내면서 '충청의 맹주'라는 별명을 얻었다.연합뉴스

외신도 JP별세 보도…"정보기관 창설자·쿠데타 군인"

외국 언론도 23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AP, AFP, dpa 통신 등은 고인을 한국의 전 국무총리, 한국 정보기관 창설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등으로 소개하며 그의 별세를 전했다. AP통신은 이날 '한국의 전 총리이자 정보기관 창설자인 김종필씨가 숨졌다'는 제목의 장문의 기사로 그의 사망 사실과 정치 이력을 상세히 소개했다. AP는 김 전 총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에서 중심인물이었으며, 박 전 대통령 집권 이후 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창설했다고 설명했다. 또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데 이어, 중앙정보부가 납치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하에서도 훗날 총리를 지냈다고 덧붙였다. 부패 혐의로 기소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 정계에 복귀한 뒤에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라 불리는 한국 정계를 지배했다고 AP는 보도했다. 그러나 그가 대권에 도전한 적은 없고, 대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킹메이커'가 됐으며 '영원한 2인자'로 불렸다고도 전했다. AFP통신은 김 전 총리에 대해 한때 한국 보수정치의 1인자였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1980∼1990년대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여겨진다고 언급했다. 1961년 박 전 대통령의 군사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박정희 독재 정권의 억압 도구로 활용된 중앙정보부를 창설함으로써 박 전 대통령의 권력 강화를 도왔다고도 전했다. 독일 dpa 통신도 연합뉴스 보도를 인용,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이었던 한국의 김 전 총리가 92세를 일기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영욕의 정치거목 스러지다"…JP 별세에 애도 잇따라

정치권은 23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숙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우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 전 총리의 별세를 국민과 함께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5·16 군사쿠데타, 한일 국교 정상화, 9선의 국회의원, 두 차례의 국무총리, 신군부에 의한 권력형 부정축재자 낙인, 자민련 창당, 3김 시대 등 고인의 삶은 말 그대로 명암이 교차했다"고 회고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그러고는 "고인의 정치 역경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후대에 미루더라도 고인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원내대변인도 추모 논평을 내고 "고인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 발전을 통해 10대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같은 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보수정당의 절체절명 위기에 김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접해 너무나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와 배고픔을 이겨내고 오늘의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그분의 족적이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추도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풍운아였고 각박한 정치 현장의 로맨티스트였다"고 고인을 회고한 뒤 "큰 어른을 잃어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자민련 시절 'JP의 대변인'으로도 활약한 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걸출한 지도자였고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공히 공헌한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고인을 평한 뒤 "보름 전 문병을 가서 손만 꼭 잡아드리고 왔는데 비보를 접하니 가슴이 먹먹하다"고 슬퍼했다. 김 전 총리와 가까웠던 같은 당 정우택 의원도 "항상 여유와 위트가 있는 정치를 추구하셨던 분으로, 정치가 각박한 데도 불구하고 항상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후배들에게 인상적이었고 모든 것을 원만하게 타결해가는 성품을 갖춘 분이셨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인제 전 한국당 충남지사 후보는 "김 전 총리는 5·16을 주도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도와 산업혁명을 성공시켰고 민주화 과정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셨다"고 평가하고 "대통령은 되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셨다"며 "이제 편히 잠드시라, 따뜻한 거인이시여!"라고 조의를 표했다. 최근 한국당을 탈당한 8선의 서청원 의원은 "우리 정치에 큰 족적을 남긴 어른이셨다"고 고인을 회고한 뒤 "정말 안타깝다"며 애도를 표했다. 서 의원은 "이제 '3김 시대'는 역사속에 사라졌다. '대의'와 '정'이 공존하던 시대였다"면서 "지금 한국 정치는 위기다. 더욱 그분들의 뜻이 새롭게 다가온다. 남은 후배들이 '온고이지신'할 때"라고 말했다. 8선의 서 의원은 국회 최다선 기록을 갖고 있는 9선의 김 전 총리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국회 의정생활을 함께 했다. 상도동계 출신의 김무성 의원은 "한국 정치의 풍운아 시대가 막을 내렸다"며 "조국 근대화를 위해 많은 공을 세우신 한국 정치의 큰 거목이 가신 것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유의동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축이었던 3김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이는 역사의 단절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미래로 연결된 하나의 출발점"이라며 "고인이 생전에 바라왔던 대한민국 정치발전과 내각제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발전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출현한 민주자유당(민자당) 시절 부대변인으로 JP와 인연이 있는 손학규 전 의원은 "나와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3김 시대를 이끈 거목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 시절 경제개발계획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우리나라 산업화에 큰 역할을 했던 분"이라고 회고하며 "아까운 분이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20~30대 시절 반유신 운동을 했던 그는 "개인적으로 그분의 정치이념과 정치철학과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거목이 떠난 데 애석함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평화당 장정숙 대변인은 논평에서 "고인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DJP 연합을 통해 국민의 정부 출범에 크게 기여했다"며 "산업화·민주화 시대로 이어지는 세월 동안 고인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정의당 추혜선 수석대변인은 "JP는 5·16쿠데타의 주역으로 부상해 3김 시대를 거쳐 DJP 연합까지 영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질곡마다 흔적을 남겼던 고인의 기억은 사료와도 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인들은 이날 오후부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쌈디, 2년 만의 방송 '나혼자산다' 통해 최초 일상 공개…"앨범 준비에 성욕 없어져"

사이먼 도미닉(쌈디)이 2년 만에 지난 22일 방송된 MBC 예능 ‘나혼자산다’에 출연해 방송 최초로 일상을 공개했다. 이날 방송은 술병이 가득한 진열대와 쌈디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영상으로 시작했다. 쌈디는 피곤한 얼굴로 아침을 맞으며 앨범 고민 탓에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6개월간 앨범 준비만 하면서 식욕, 물욕 심지어 성욕까지 없어졌다”며 “원래 62㎏인데 지금 57㎏이다”라고 줄어든 체중을 공개하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작업실 밖으로 나온 쌈디의 모습도 담겼다. 쌈디가 많은 인파 속을 지나가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자 ‘나혼자산다’ 출연진들이 “공백이 너무 길어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냐”며 놀라워했다. 쌈디 역시 민망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쌈디는 소파에 누워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 했지만 결국 잠에 들지 못했다. 배달 음식을 시키는데 결정장애를 보이며 선택을 못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쌈디는 “(음식을 시키는데)보통 한 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쌈디가 머무는 집에 로꼬가 찾아왔다. 사실 쌈디의 집이 아니라 로꼬의 집이었던 것. 집주인인 로꼬가 귀가하기 전에 쌈디가 먼저 들어와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쌈디는 “전에 살던 집의 계약이 만료돼 이사해야 했다”며 “새로 계약한 집이 6월 중순부터 들어갈 수 있어 로꼬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쌈디는 로꼬에게 무욕상태라는 고민을 토로, 이에 로꼬는 자극적인 것을 차단하는 ‘로꼬 프로젝트’를 전했다. 로꼬는 체력이 좋아지고 인상도 바뀐다고 추천했지만 쌈디는 자신은 자극적인 것을 봐야 건강해진다며 ‘로꼬 프로젝트’를 멀리했다. 쌈디는 2년간의 공백 후 음원을 공개한 속내를 그레이에게 전하기도 했다. 쌈디는 “곡 당 다 울었다”며 “가사가 슬퍼서 운 게 아니라 음악이 재미가 없어서 슬펐다”고 말했다. 쌈디는 방송을 통해 음악을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나 기다려준 팬들이 있어 다시 재밌게 음악을 하며 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채태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