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길을묻다] ‘바람의 딸’ 한비야 “대한민국은 계속 진화 중… 다시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양평 청운인성수련원에서 열린 제7기 ‘세계시민학교 지도밖행군단’ 캠프에는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있는 50명의 고등학생들이 진지한 자세로 집중하며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사는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각종 구호활동으로 세계를 누빈 한비야씨(53).
특히 올해 초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에 취임하기도 한 그는 외교통상부 개발협력 자문위원,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CERF) 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씨는 새로이 ‘한비야 키드’가 된 학생들에게 그간의 현장경험을 살려 세계의 식량 위기를 설명하고,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길을 제시했다.
어느새 학생들과 하나가 돼 강의와 열띤 토론이 이어졌지만, 그 속내를 듣고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전 네팔에서 막 귀국한 그는 심한 배탈로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 그럼에도 ‘다시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한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누가 아프냐는 듯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의 일과 신념에 대한 열정을 풀어 나갔다.
인터뷰 이후 밤 10시가 넘게 이어진 ‘꿈이야기’라는 주제의 강의와 함께 조별 토론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에는 각종 구호활동으로 10년 넘게 세계를 누빈 그의 저력이 느껴졌다.
한씨는 “우리나라는 바깥에서는 정말로 뻑적지근한 나라”라며 “국제적인 평가와 위상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스스로는 너무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있다”며 “잘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고, 못하는 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난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달라진 우리나라의 위상에 대해 국민 스스로가 이같은 사실을 체감하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현했다.
특히 그는 10대부터 40대까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은 ‘한비야 키드’만큼은 한반도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만날 때 이같은 기상을 떨칠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구호활동에 대한 지난 10년간의 변화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그는 “내가 처음 월드비전에 들어와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2000년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도 도울 사람 많은데 왜 바깥에 눈을 돌리냐’는 비난이 더 많았다”며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급한 곳에 써달라고 돈을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며 의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10년만에 너무 많이 바뀌었기에, 앞으로의 10년간 얼마나 큰 변화와 혁신이 일어날지에 대한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지도로 보면 한 없이 작은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는 용광로와 같다. 활활타는 에너지인 불을 갖고 있다”며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하다. 우리가 국내에서 느끼는 것보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우리나라는 정말로 대단하다”고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 한씨는 “우리나라는 6ㆍ25전쟁을 겪으면서 전 세계에서 구호를 받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어떤가”라며 “당당히 주는 나라로, 그것도 아주 많이 주는 나라 중 하나”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실제 한씨가 9년간 NGO 활동을 했던 월드비전만 놓고 볼 때 한국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어느새 구호활동을 펼치는 100여개의 나라 중 네번째로 자리매김해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다음으로 많은 원조를 하고 있고, 영국 등 유럽 여러 선진국가들 보다 더 많은 원조를 하고 있다.
한씨는 “단순히 많이 도와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 도와주는 것은 특별하다”며 “도움을 주는 나라 중 식민지 경험, 전쟁, 가난, 군사독재를 겪은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구호활동 당시 미얀마에 가서는 우리나라도 군사독재 시대를 겪었다고 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겪고 이를 극복한 얘기를 하면 그들의 눈빛과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
묘한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고, 한국인들을 접하며 뭔지 모를 희망을 가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그러기에 이제는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잘 도와줘야 한다”며 “우리가 겪은 아픔을 승화시킨 마음을 담아….”
■ 글로벌 시대 맞아 세계시민으로 거듭나야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후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그는 “이제 우리들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세계 시민은 무엇인지, 또 글로벌 리더는 어떤 상일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진정한 세계화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며 “생활의 소소한 일에서부터 실천한다면 이미 세계 시민이다”고 말했다.
그는 “컵에다가 물 받아 양치질을 한다거나 밥을 남기지 않는 등의 행동은 세계시민으로서 매일 하는 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며 “나는 이를 실천하기 때문에 세계시민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자기는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사람들한테 얘기하면서 퍼져나간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그게 불을 지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리더’에 대해 한씨는 “영어 잘하고 외국 많이 나간 것이 세계화를 만들고 글로벌리더가 되는데 하드웨어는 된다”면서도 “이게 전부는 아니다”고 말을 이어갔다.
한씨는 “자기세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다같이 나가도록 행동을 독려하는 것,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게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 또 다시 길을 가다
한국을 대표하는 구호활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에게 “정치권 등 외부에서 러브콜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반문하며 말을 이어갔다.
한씨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싶은가는 개인의 결정으로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며 “내가 하는 일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다른 분야는 정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질문을 바꿔 “정치권 등 좀 더 영향력 있는 자리로 간다면 더 빠른 시간에 좀 더 큰 것을 바꿀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위로부터 시작되는 움직임과 변화가 내가 하는 일이랑 과연 잘 맞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방식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 아직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한씨는 2001년부터 9년동안은 현장에서 죽어라 뛰었다.
지난 2002년에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경기일보 최종식 편집국장과 15일간 동고동락하며 함께 구호활동을 펼쳤던 인연도 소개했다.
NGO 활동을 할 때는 모금과 홍보에 주력했다.
그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정말로 치열하게 현장을 누볐다”며 “순간순간은 힘들었을지언정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그에게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는 “언젠가 수단에 갔다와서 방송에 나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몇억원이 걷혔다”며 “그때 내가 사람들을 자극하고, 사람들은 반응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에 교육을 통한 실천에 목표를 두고, 2년간 공부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는 현장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또다시 앞을 향해 나가고 있다.
현재 그는 1년에 6개월은 NGO를 통해 현장에서 활동하고, 나머지는 이론을 만들고 정책을 제안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과 실제 이를 실행하는 정책 기구와 연계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국가와 국제기구가 구호 활동의 동맥과 정맥이라면 NGO는 실핏줄”이라며“그들 간의 업무조정이 잘 돼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10년간은 지치지 말고 후회없도록 열심히 나아갈 것이라는 한씨의 올해 행선지는 아프리카이다. 그는 유엔이 설립한 CERF 자문위원 자격으로 지난 5일 6개월의 일정으로 남(南)수단으로 떠났다.
자신의 길을 찾아 또다시 길을 떠나는 한비야의 뒷모습은 세상을 품은 작은 거인의 모습이었다.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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