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문화융성과 컬처노믹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마지막 편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며 문화강국을 만들고 싶어 했다. 1947년 ‘나의 소원’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글이다. 21세기에 이른 지금 세계 각국은 문화융성에 방점을 찍고 산업을 개발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과거처럼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세계 주류에 진입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1990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페테르 두엘룬 교수가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를 합성한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를 주창했다. 문화와 산업의 융합, 문화 예술을 산업으로 개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 질서 만들기 등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 문화를 접목하는 작업이 21세기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실제로 지금 세계 각국은 컬처노믹스의 꽃을 피운다. 전자제품에서부터 일상 도구까지 문화의 서사(敍事)를 접목하지 않은 상품은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철강과 조선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면서 쇠락하던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있는 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을 세워 도시를 다시 살렸다. 또한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 피게레스는 달리 미술관 하나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광복 77년이 지나 오늘에 이른 우리는 광복 직후 다시 일으켜 세울 우리나라를 문화가 융성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외친 백범 김구 선생의 선견지명이 어느 정도 이뤄졌을까.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문화를 융성시켜 문화강국을 만들려면 먼저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역사·철학이 바로 세워져야 문화가 융성할 수 있다. 문화는 스스로 움직이며 세포분열로 확산하는 생명력이 있다. 이 살아 움직이는 문화를 창조하고 누리는 원천(源泉)이 인문학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이 1년에 책을 4.5권 읽는다고 한다. 이 숫자에는 중요한 의미 하나가 숨겨져 있다. 이 수치는 이보다 더 많이 읽은 분들과 아예 한 권도 안 읽는 분들을 섞어서 평균 낸 것이다.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왜 이런 건 밝히지 않는지 한번 새겨보고, 1년에 나는 책을 몇 권 읽는지 남들이 한껏 높여 놓은 통계를 얼마나 삭감하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라는 의미가 이 수치에 숨겨져 있다.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경기인터뷰] 변권철 ㈜모꼬지 대표

고고다이노·콩순이… 경기도 콘텐츠, 亞 넘어 세계로 간다 한국의 출산율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지만 캐릭터와 장난감 등 유아·아동을 위한 ‘키즈(Kids) 콘텐츠’ 시장은 그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부모를 비롯한 조부모까지 한 아이에게 지출을 아끼지 않는 식스포켓 현상의 영향인데, 바야흐로 ‘키즈 콘텐츠’ 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대 흐름에 발맞춰 ‘경기도 콘텐츠의 힘’을 아시아 전역에 뻗치고 있는 변권철 ㈜모꼬지 대표를 4년 만에 다시 만났다. Q. 어떻게 지금의 ㈜모꼬지가 탄생하게 됐나. A. ㈜모꼬지는 다양한 키즈 콘텐츠를 기획 및 제작하는 기업으로 지난 2009년 부천시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저를 포함한 창립 멤버 3명이 모두 경기콘텐츠진흥원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출신으로, 경콘진에서 키즈 콘텐츠 중심의 애니메이션 산업 기반을 마련하면서 경기도와의 깊은 인연이 시작됐다. 2015년에는 대표작인 TV애니메이션 ‘고고다이노’가 중국 로타 스튜디오와 공동 제작해 탄생했으며, 이듬해인 2016년부터 국내 TV 채널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지난해 ㈜모꼬지의 대표작 ‘고고다이노’의 다섯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고 현재 새로운 애니메이션 ‘상상꾸러기 꾸다’를 방영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키즈카페’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해에는 키즈 콘텐츠에서 더 나아가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의미로 ‘스튜디오모꼬지’라는 이름에서 ‘㈜모꼬지’로 사명을 바꾸기도 했다. ㈜모꼬지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창업 이후 고정비용, 인건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경콘진의 도움을 받아 안정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덕분에 ‘고고다이노’, ‘엉뚱발랄 콩순이’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참여하게 되면서 ‘우리’만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었다. 당시 경기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지금의 ‘모꼬지’가 존재한다. Q. 체질 개선으로 급격한 매출 신장을 이뤄냈다고. A. ㈜모꼬지는 2017년부터 5년간 경콘진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원 수가 15~20명가량 되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변모하기 위해 현재는 직원을 39명으로 늘리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체질개선에 들어갔다. 작년까지 모든 인력이 제작에 투입되는 제작회사였던 반면 지금은 제작 인력보다 관리·사업팀 인력이 더 많다. 7명의 PD가 프로젝트의 주축이 되고, 제작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등 제3국으로 아웃소싱을 보내고 있다. 현재 ㈜모꼬지의 자체 인력은 39명 밖에 되지 않지만 외부 협력 업체 등의 인력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 해외로 아웃소싱을 보내면서 이전보다 더 방대한 콘텐츠 제작이 가능해졌다. 국내에서만 제작했을 경우 1년에 만들 수 있는 애니메이션 분량이 200분 정도였다면, 해외로 아웃소싱을 보내게 되면서 연간 1천200분 분량을 서비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모꼬지의 지난해 매출은 약 42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3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하반기까지 더하면 올해 매출이 약 60억~8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지난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4년 전보다는 7~8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Q. 최근에 NFT까지 출시했다고 하던데. A. 최근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를 출시하면서 더 넓은 범위로 확장을 꿈꾸고 있다. 이제는 방송권료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산업의 다각화가 이뤄져야 한다. ㈜모꼬지가 IP(지식재산권)산업에 최적화된 캐릭터 사업을 하면서 완구·출판 등 오프라인 공간사업까지 진행하고 있던 중 ‘메타버스’의 시대가 열렸다. 가상인물과 세계관을 만들어 재밌는 스토리를 보여주는 게 메타버스 공간인데, 이에 최적화된 것이 바로 IP산업이다. NFT가 메타버스 유저들의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고고다이노’ 이후 ㈜모꼬지가 만들어낼 다양한 캐릭터들의 세계관을 NFT를 통해 담을 예정이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직접 소비하는 유·아동의 NFT 접근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에도 불구하고 NFT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모꼬지의 콘텐츠가 유아·아동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까지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이를 통해 어른들까지 NFT에 접근할 수 있어 확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릴 때 경험했던 것들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20여년 전 방영한 ‘포켓몬스터’가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10~20년 후 지금의 어린이들이 ‘고고다이노’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때가 오길 기대한다. Q. 향후 콘텐츠 산업에 있어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OTT 플랫폼의 증가 등 콘텐츠 산업 환경에 변화가 찾아오면서 지속가능한 콘텐츠로 거듭나기 위해 애니메이션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고민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IPTV가 성행했던 시절에는 적정한 금액을 주고 콘텐츠를 구매하는 판매처가 있었기 때문에 매출이 증가했지만, 콘텐츠 구매단가가 낮은 OTT로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 현재 OTT 시장에서 애니메이션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조금 더 성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OTT가 애니메이션에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데, 세계로 뻗어나갈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와 꾸준한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이 게임 산업 분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인 데다 ㈜모꼬지 역시 해외로 콘텐츠 제작을 보내는 것이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대신 국내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 정부에서 세금 혜택을 주거나 인력을 보조해주는 등 애니메이션을 위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애니메이션을 영화산업처럼 만들어나가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은진기자

[이슈&경제] 세계화의 종언?

세계화만큼 나라와 시대, 그리고 개인에 따라 애증이 엇갈리는 현상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 세계화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세계화는 그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현상이다. 학자에 따라 세계화의 시초를 달리 잡지만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준은 세계화가 19세기 중후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 시기에 증기선이 보급돼 운송비가 낮아지고 통신이 발달하면서 국제무역이 크게 확대됐다. 19세기 후반에서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이르는 이 기간의 세계화를 흔히 1차 세계화라고 부른다. 그 뒤 1차 세계대전에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30여년간은 전쟁과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세계화가 크게 후퇴한 시기였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주도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성립하면서 세계화는 다시 시작됐다. 이때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을 2차 세계화라고 부른다. 세계화의 지표로 흔히 세계 총생산 대비 국제무역의 비율을 사용하는데, 2차 세계화하에서 이 비율은 1차 세계화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특히 2차 세계화는 1990년경 이후 중국과 인도, 동구권도 세계화에 참여하면서 용어의 의미에 진정 걸맞은 세계화가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2차 세계화도 금융위기 이후에는 동력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총생산 대비 국제무역의 비율은 금융위기 이후에는 더 이상 상승 추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위기 직전에 비해 소폭 낮아진 상황이다. 이 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기존 세계화 주도국의 이해관계와 인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세계화의 적극적 주창자는 미국과 서구 선진국이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이들은 세계화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에서 세계화가 저가 제품 수입의 급증을 통해 일자리 감소와 임금 부진을 초래했다는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간 헤게모니 분쟁이 진행되면서 미국은 세계화가 중국의 부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인식하에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통해 블록화된 국제경제 관계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자국경제의 대외의존을 줄이고 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양대국이 서로 관계를 단절하고 적대적인 방향으로 치닫는다면 세계화는 후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계화가 가져온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와 애증이 엇갈리지만 2차 세계화가 저소득국가의 경제성장 기회를 넓혀줌으로써 빈곤 퇴치에 기여한 부분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세계화가 크게 확대된 지난 40년간 세계인구 중 극빈층의 비율은 42%에서 9%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이제 저소득국은 아니지만 2차 세계화라는 우호적 환경 속에서 수출주도형 전략을 통해 성장해온 대표적 수혜자이고, 자원빈국이라는 특성상 앞으로도 무역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국가 간의 자유로운 무역과 교류라는 이념과 그것을 위한 제도는 소중한 세계 공공재다.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더불어 이 공공재를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천자춘추] 다양함이 일상이 되도록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딸이 게이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같은 반 친구와 우연히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온 아이를 본 남자아이가 ‘게이’라고 놀렸단다. 함께 놀림 받은 친구는 몹시 기분 나빠 하며 선생님에게 일렀다. 후에 딸이 그 친구에게 게이의 의미를 물으니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거라고 했다. 두 아이의 지정성별은 여성이다. 정확한 단어의 의미를 모른 채 일단 뱉고 본 친구의 놀림은 아이의 궁금증에 꼬리를 물며 다음과 같은 물음을 일으켰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게 왜 나쁘지?’ 학생들에게 인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깨너머로 성소수자나 취약계층을 빗댄 혐오나 비하의 말을 듣는다. ‘틀딱충’이나 ‘맘충’ 같은 혐오 표현 사례를 들면 어디선가 쿡쿡거리는 웃음이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 새어나간 기분은 바람 빠진 과자봉지처럼 눅눅하다. 혐오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언어 중 하나다. 보편성과 정상성이 만연한 사회 구조 속에 힘없는 사람들은 여러 모양으로 난도 당한다. ‘혐오와 수치심’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비합리적 집단 편견의 원천이 돼 특정집단 배척을 위한 사회적 무기가 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악취, 불결함 등의 이미지를 취약계층에 부과함으로 그들보다 나은 인간임을 과시한다. 사회적 편견은 강자와 집단의 언어로 구성돼 작동한다. 혐오는 사회적 편견과 문화적 구성, 분위기로 공기 중에 떠돈다.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공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본능적으로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안다. 눈치는 약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시트콤 ‘프렌즈’는 레즈비언 커플이 서사의 한 축을 차지했다. 가까운 예로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ABC 채널에서 방영된 시트콤 ‘모던 패밀리’는 다양한 인종과 동성애, 입양으로 구성된 가족 형태가 당연하게 등장한다. 우리나라도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이전보다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지만 인물 대부분이 맞닥뜨린 현실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벽이다. 2000년도에 시작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올해도 7월15일에서 31일까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무사히 진행됐다. 행사 기간에 쏟아지는 비도 ‘흠뻑쇼’라 부르며 자축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코로나로 인해 못 보거나 숨겨졌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반가움으로 뒤섞여 있었다. 한정된 해방감은 여전히 갇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린 시절에 각인된 사회적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편견과 혐오의 시선 안에 고립된 존재들이 여전히 숨은 그림처럼 살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일상을 축제처럼 살아갈 날을 앞당기는 것은 그들과 더불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참여하는 우리의 몫이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기고] 기다림과 때

어느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몇 번의 좌절과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좌절에 발목 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준비를 잘해 기회를 잡은 사람. 사람의 살아가는 궤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돌아가는 사람, 질러가는 사람, 뛰어가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등 선택의 폭은 다양하다. 성공 지향점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에 합격해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 분야의 정상(Top)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부분 자신의 꿈을 꾸고 이루는 자기 주도적인 성취가이기보다 이를 뒷받침하는 참모로 보좌 역할을 한다. 흔히 모범생이라 불리며 굴곡(屈曲)없이 평탄하게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사람들은 큰 좌절을 겪지도 않지만 큰 성취도 얻기 힘들다. 반면 학창시절에 공부는 뒷전에다 사고뭉치로 선생님과 부모님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성공한 이면에는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을까?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보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을 자각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철없던 애벌레의 껍질을 탈피하지 못하면 영원히 나비로 우화(羽化)하지 못한 채 벌레로 죽을 수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보호망 속에서는 무서운 것 없이 설치던 이들이 제정신을 차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비상을 한다. 대붕(大鵬) 장자(莊子) 내편 소요유(內篇逍遙遊)에 나오는 상상의 큰 새는 북극 바다의 곤(鯤)이란 큰 고기가 변하여 되는 새인데, 날개를 한 번 펴면 물결을 3천 리나 튀게 하고 9만 리를 올라가며 6개월을 날아야 쉰다. 육도(六韜)병법서를 쓴 주나라 개국공신 강태공은 미끼를 끼우지도 않은 채 곧은 낚싯바늘을 물에 드리우고 80년 동안 낚시를 하며 자신을 알아줄 군주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특장점이 있다. 공부를 잘해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 모험을 즐겨해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등 자신의 소질을 잘 살리면 된다. 그리고 기회를 놓친 사람에게는 또 다른 몇 번의 기회가 있다. 이번에 놓쳤으면 다음에 열심히 준비해 잡으면 된다. 조급해 할 일이 아니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정의돌 육영재단어린이회관 사무국장

[인천의 아침] 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은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고 한다. 그 뜻은 나는 오직 만족할 줄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길이 오래도록 편안할 수 있으리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끝없는 욕망으로 서로 간에 경쟁하며 싸우고 있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 끝은 종말이라는 단어가 정답이라고 본다. 국가 간의 이익과 분열로 인한 과도한 욕망이 전쟁으로 나타나 분노가 서로를 죽이는 악마의 모습으로 변한다. 또한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부의 창출로 만들어낸 자연 파괴의 소비문화는 지구 자연환경의 파괴로 우리끼리 서로 싸우며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를 죽이는 대변혁의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3차 대전의 전초전이라도 보듯이 강대국 간 갈등의 폭이 커 가고 있다. 미·중·러시아 유럽연합 등이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중동 지역의 긴장된 화약고들, 특히 한국도 남북 간의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일본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헌법을 바꾸려고 공식적으로 진행 중이다. 또한 모든 나라가 무기를 사들이는 등 국방력 강화에 혈안이 돼 가고 있다. 여기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 지금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발표했다.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핀란드가 5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59위였다. 첫째, 핀란드인은 정직하다. 핀란드인이 타인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믿음 또는 신뢰성이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지갑을 떨어뜨려 놓고 회송된 비율을 따져 봤더니 핀란드 헬싱키가 1위였다. 둘째, 이런 사회적 신뢰는 정부와 국민의 상호신뢰로 이어진다. 셋째, 타협문화다. 핀란드의 타협문화는 정치나 노사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넷째, 교육이다. 핀란드는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공교육이 무상이다. 다섯째, 우수한 사회보장 제도와 양성평등이다. 끝으로 핀란드의 자연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에는 18만 개가 넘는 호수가 있고, 인구는 550만명으로 인구밀도가 유럽에서 세 번째로 낮다. 이 모든 조건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체제이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뒷받침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좋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고 국가의 의료제도, 사회서비스 등 좋은 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믿음과 신뢰도 정직성이 떨어지는 것이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정직성과 신뢰성을 잘 지킨다면 대한민국도 행복한 나라로 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진 나라가 곧 되리라고 믿는다. 미광선일 법명사 회주

[지지대] 노란봉투법

21대 국회에서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이 새롭게 발의된다. 노동조합의 파업 등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사측이 노조에 청구하는 손해배상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으로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노조원을 돕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낸데서 유래했다. 당시 4만7천여명의 시민이 14억7천여만원을 모금한 ‘노란봉투 캠페인’을 본떠 노란봉투법이라 했다. 이 법은 2015년 처음 발의됐지만 7년이 지나도록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발의된 법안은 그대로 폐기됐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파업으로 인한 약 8천억 원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과 관련한 손실에 대해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노란봉투법을 재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TF는 국회에 조선업 구조혁신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조선업과 관련한 구조적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는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조항을 새롭게 추가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실질 사용자인 ‘원청’과 대화를 요구하며 50여일간 투쟁을 벌인 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원청 사용자는 하청 노동조합 등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가 생긴다. 노조는 교섭 결렬로 쟁의행위를 벌이더라도 ‘불법’이 되지 않는다. 10년을 근속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에게, 그것도 조선업 불황이 닥쳤을 때 상생의 약속으로 삭감에 응했던 임금을 호황기를 맞은 지금 원상회복이라도 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그 노동자들에게 8천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는 사측의 횡포다. 늦었지만 노조 상대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을 입법이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노란봉투법이 이번엔 반드시 결실을 맺길 바란다. 헌법은 경영권이나 재산권 문제보다 노동자의 권리를 더 중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사설] 서울행 출퇴근 승차난 해소책 시급히 마련해야

경기지역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출근은 물론 퇴근 시 버스와 택시를 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에 대한 해소책이 시급하게 요망되고 있다. 특히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광역버스는 무려 30분 이상 기다려도 타지 못해 버스를 환승하더라도 ‘환승요금’이 아닌 다시 ‘승차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사례도 자주 발생해 서울행 직장인들은 승차난에 요금까지 이중으로 부담,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도내 광역버스 이용객은 7천913만6천명으로,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상반기 6천638만3천명보다 1천275만3천명으로 19.2% 증가했지만, 오히려 도내 버스업체(마을버스 제외)의 운전기사 수는 2019년 2만3천명이었으나 최근 2만명 수준으로 15%에 해당하는 3천명 정도가 줄어 버스난을 가속시키고 있다. 버스기사의 감소 현상에 따른 광역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의 부족 현상은 경기도만의 문제는 아닌 전국적인 현상이다. 이는 많은 버스기사들이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인해 배달업종 등으로 이직, 운행버스 수가 감소했으며, 자연적으로 버스의 배차간격은 길어지고 있다. 반면 유가인상 등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버스와 승객 수 간의 수급 불균형 현상이 발생, 승객들은 승차난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구조가 됐다. 택시 역시 마찬가지로 부족 현상이 발생, 승차난을 겪고 있다. 직장인들은 지하철과 버스가 끊기거나 이동 수요가 몰리는 심야시간대 및 출퇴근시간대 택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택시 승차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경기도 법인택시 운전기사는 1만1천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 1만4천968명보다 26.5%에 해당되는 3천968명의 운전기사가 줄어들어 택시 승차난을 가속시키고 있다. 택시 운전기사들도 버스 운전기사와 마찬가지로 수입이 조금 나은 택배 업종으로 이직하고 있다. 또한 개인택시들의 경우, 기사들의 고령화로 인해 택시 운행시간이 과거보다 감소하고 있는 것도 요인의 하나이다. 버스와 택시 운송업계 관련 조합에 의하면 운전기사를 채용하려고 해도 지원자가 별로 없어 심각한 인력난 해소는 당분간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경기지역 운전기사들의 월 수입이 서울과 인천에 비해 50만~70만원 정도 적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우선 운전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해 운전기사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광역버스 등에 대한 지자체 지원도 확대하고, 전세버스 추가 투입과 증차, 제도 보완을 통한 중간 배차 도입 등도 검토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응급처방은 물론 국토부, 서울시,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등과 협의, 서울로 진입하는 ‘버스총량제’ 운용도 개선해 탄력적 수요와 공급이 가능하도록 장기적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설] 세월호 보고 수사는 마녀 사냥이었나/대법 판단으로 극명한 일단 드러났다

아주 간단하게 접근해 보자. 그래야 더 정확히 진실이 구별될 수 있다. 이번에 대법원이 다룬 사건의 피고인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세월호 상황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보고했다고 국회에서 보고했는데, 그 국회 보고 내용이 허위라는 혐의였다. 공소사실의 주체는 김 전 실장이고, 이 공소장에서 박 전 대통령은 ‘공소 외 3자’다. 이 공소사실이 대법원(주심 안철상 대법관)에서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세월호 당시 대통령 보고’ 문제로 함께 기소됐던 청와대 참모진이 두 명 더 있다. 김장수·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다. 이들은 원심에서 이미 무죄였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판시는 이렇다. “사실관계를 밝힌 부분은 실제 대통령비서실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부속 비서관이나 관저에 발송한 총 보고 횟수, 시간, 방식 등 객관적 보고 내역에 부합하기 때문에 사실에 반하는 허위가 아니다.” 검찰 수사가 오류라는 지적이다. 달리 평할 부분은 없다. 대신 주목할 것이 대법원 판시의 또 다른 부분이다. 대법원은 당시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 내용을 사실 확인 부분과 의견 부분으로 나누어 판단하고 있다. 앞선 판단은 ‘사실 관계에 대한 판단’이다. 나머지 ‘의견 부분’은 국회 답변 보고서에 ‘(박근혜 대통령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의 주관적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며 “사실 확인에 대한 대상 자체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지적하는 마녀사냥의 일단이다. ‘대통령께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은 누가 봐도 김 실장의 주관적 판단이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이는 형사법으로 처벌할 범위 밖의 일이다. 그런데 검찰은 이를 ‘거짓말을 했으니 형사범죄로 처벌해달라’며 공소사실에 넣었다. 과연 검찰의 오판이었을까. 김 전 실장이 판단한 ‘주관’의 상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김 실장의 주관이 틀렸다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론도 틀린 게 된다. 다시 말해 ‘박 전 대통령이 상황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이런 기류가 2017년 수사 이후 우리 사회의 정설이 됐다. 바로 이 부분을 대법원은 ‘기소의 대상도 아니다’고 선언한 셈이 됐다. 김기춘 전 실장이 기소된 사건이다. 기소로 인한 신체적·재산적·사회적 파탄의 피해도 김 전 실장이 받았다. 그렇게 모든 걸 유린당한 뒤 4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그리고 그 원인의 절반이 ‘마녀사냥식 기소’임이 확인됐다. 마녀사냥에 앞장섰던 검찰, 그를 냉철히 가려내지 못했던 1·2심, 무엇보다 이를 ‘참담한 국정 농단’이라며 부추겼던 문재인 정부 시절 특정 집단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보상할 생각이 있기나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