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기(國旗) 태극기는 국가를 상징하며 국민의 존엄성을 나타낸다. 대한민국의 이상과 전통을 구현하고 국내외로 국권을 표시, 애국심이 강한 민족은 국기를 존중히 여겨야 한다. 태극기는 국기로서 충분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국가와 민족의 단결된 표상으로서 경조(慶弔)를 같이 한다. 국가 이념에 따라 국기를 바라보며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국은(國恩)에 감사한다. 국기 게양은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받들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1945년 8월15일 광복 이래 격렬한 변화와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비바람이 치면 칠수록 그 격류를 헤치고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해 민족사회 발전에 의지를 굳혀왔다. 지금껏 이어져 온 태극기 변천사를 살펴보면 각기 다른 모양일지라도 저마다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현재 가장 오래된 태극기를 기증한 인물 데니와 대한제국 때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운동의 상징이었던 다섯 점의 태극기가 국가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태극기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국인 데니(1838~1900)의 태극기다. 그도 그럴 것이 1882년 9월에 제작해 사용했다는 최초의 태극기 실물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금으로선 데니의 것이 가장 오래됐기 때문이다. 데니는 외교 고문으로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업무를 수행했다. 1890년 4년간 임기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고종이 태극기를 만들어 선물했는데 이를 데니 후손이 1981년 대한민국 정부에 기증했다. 다음은 고광순(1848~1907) 의병장이다. 그는 전남 담양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순절한 고경영 의병장의 12세손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 시해자를 처단하기 위해 각 읍에 격문을 띄우고 해당 의미의 불원복(不遠復)태극기를 만들어 의병부대 입구에 게양했다. 영국인 베델(1822~1907)은 러시아 전쟁이 일어나자 1904년 3월 특파원 자격으로 대한제국에 왔다. 일제 침략을 낱낱이 취재해 본국 신문을 통해 신랄하게 비난했으며 양기탁과 함께 매일신보를 창간하면서 태극기를 손수 만들어 신문사에 걸었다. 김구(1876~1949) 임시정부 국무회의 주석 시절 1941년 광복운동을 돕던 벨기에 신부 미우수 오그가 미국에 간다 하니 독립운동 자금을 호소한 글을 태극기 흰 바탕에 친필로 쓰고 서명해 줬다. 스님 백초월(1878~1944)은 1919년 11월 의친왕과 함께 제2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1920년 진관사에서 항일운동을 결심하고 일장기에 덧칠해 태극기를 그렸다. 우리는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 태극기를 봤다. 실로 온 국민이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통일된 하나의 민족으로 새로운 한국의 시대로 열어 갈 것이다. 이명수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 연구소장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 용진진은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됐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101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개소, 총좌(총을 놓는 자리)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석축 대부분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을 이루는 출입문 2곳만이 남아 있었는데, 1999년 그 위로 누각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됐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제공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민족주의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의 남긴 명언이다. 단재는 언론인, 역사학자, 계몽활동가, 독립운동가, 아나키스트 등 민족해방운동 선구자로서 일관된 인생 항로를 걸었다. 실증에 바탕을 둔 과학적 역사학을 주창하며 우리 근대역사학을 정립한 역사가로서 자리매김했다. 그가 열정을 불태운 역사학 연구는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적인 영역을 넘어 한민족의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했다. 외세 침략에 맞서 잠재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시대적인 사명감이 목적이었다. 단재는 박은식ㆍ정인보ㆍ문일평 등과 함께 붓으로써 대쪽 같던 민족 절개를 지킨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해박한 지식에 의한 객관적인 고증은 물론 현장 답사에서도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독자적인 민족사관 정립은 주체적인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결정적 첫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국주의 침략이 강화하는 상황은 현실 인식을 심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선언은 이를 방증한다. 우리 역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냉철한 역사인식은 여기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단재는 우리와 함께 호흡한다. ■ 항일언론 이끌며 민중계몽 가열 단재는 1880년 12월8일(음력 11월7일)에 충남 대덕군 산내면(현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고령, 필명 금협산인ㆍ무애생, 호는 단재ㆍ일편단생ㆍ단생 등 다양하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본향인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로 이사했다. 집안은 전통적인 학문과 아울러 신교육을 수용하는 등 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어릴 때부터 학문적인 재능이 출중해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았다. 16세에 풍양 조씨와 결혼해 아들을 두었으나 조씨는 곧 요절하고 말았다. 아들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던 단재는 일시적으로 인생 비애를 느끼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고자 활동 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신기선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가 성균관 박사로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등 약관에 자자한 명성을 얻었다. 학문에 정진하는 가운데 날벼락 같은 을사늑약에 크게 분노해 관직을 그만뒀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무언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순간을 맞았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위원과 주필을 맡아 항일언론인 표상이 됐다. 일제 침략에 대한 날카로운 논조는 식민당국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국난 극복에 앞장선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통한 민족의식 앙양은 자신의 책무로 인식했다. 통감부는 단재의 언론활동을 억압하는 등 감시와 회유를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지향한 바를 실천으로 옮겼을 뿐이다. 또 단재는 대한제국기 최대 비밀결사체인 신민회에서 활동하는 등 국권회복에도 앞장섰다. 나랏빚 청산을 위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함으로 근대적인 시민운동에도 관심을 보였다. 1908년 한글로 된 가정잡지 발행에 동참하는 등 여권 신장에도 관심을 보였다. 또한 대한협회회보와 기호흥학회월보 등에 논설을 발표하는 한편 일진회 성토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활동은 역사 속에서 한민족의 저력을 재발견하는 중요한 토대였다. ■ 해외로 망명, 독립운동 선봉장으로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대한제국은 식물 정부와 같은 존재였다. 일제는 합법적인 계몽운동조차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단재는 신민회 동지들과 협의 후 중국 칭다오로 망명해 그곳에서 안창호ㆍ이갑 등과 향후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했다. 이어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권업신문에 우리 역사 관련 글을 통해 한인사회에 민족정체성을 일깨웠다. 신문이 강제 폐간되자 중국 동북지역(만주)와 백두산 등 한민족의 고대 활동 무대를 답사했다. 사적지를 돌아보던 단재는 고구려에 대한 역사를 기록해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역사서도 발간했다. 웅장한 서사시를 통해 한민족 자존심을 고취하려는 의도였다. 답사 중 안타깝게도 돈이 없어 일본인이 파는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을 가격만 물어보고 사지 못했다고 한다. 단재의 역사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서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하이로 활동 근거지를 옮겨 신한청년회에 참가하면서 박달학원의 설립ㆍ운영에도 힘썼다. 장차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려는 목적이었다. 3ㆍ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의정원 의원과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성임정 정통론과 이승만 배척운동 등 내분으로 공직을 사퇴하고 주간지 신대한을 창간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맞서기도 했다. ■ 독립운동자금 조달 중 체포 독립은 쟁취하는 것 단재의 애국에 대한 일념은 이승만을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으로 인식한 대목이다. 이완용 등 이른바 을사오적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라고 외치며 임시정부를 박차고 나와 외로이 독립투쟁에 전념했다. 이후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 신대한청년동맹 부단주 등에 피선됐다. 1923년에는 민중의 직접 폭력혁명으로 독립 쟁취가 가능하다는 조선혁명선언을 기초함으로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임시정부 창조파의 주동적인 역할을 하다가 다시 베이징으로 옮겨 다물단을 지도했다. 와중에도 중국과 본국의 신문에 논설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는 등 실천적인 지식인으로서 전범을 보여줬다. 이회영ㆍ류자명 등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를 신봉, 무정부주의 동방동맹에 가입해 1928년 잡지 탈환 발간에 앞장서기도 했다. 국제적인 연대를 통한 민족혁명을 쟁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동지들과 합의를 거쳐 외국환을 입수해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고자 타이완으로 가던 중 지룽항에서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뤼순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2월21일에 갑자기 옥사했다.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동안 독립이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그의 역사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돼 고조선과 묘청의 난 등에 새롭게 해석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단재는 우리 역사에서 주체적이지 못한 역사적인 사실을 비판했다.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된다.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해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김형목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수원 삼성의 왼발의 마법사 염기훈(39)이 FA컵 최다 출전의 기록을 세웠다. 염기훈은 11일 오후 춘천송암스포츠센터서 열린 2021 하나은행 FA컵 8강전에서 강원FC를 상대로 선발 출장했다. 염기훈은 이날 경기가 통산 FA컵 43번째 출전으로 과거 포항과 대구 등에서 뛰었던 노병준(42경기)을 제치고 최다 출장자로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또한 염기훈은 김광석(인천), 김영광(성남) 등과 함께 K리그 최고령 선수로서 리그 16경기에 출전했다. K리그서는 통산 421경기에 출전해 77골, 110도움으로 통산 득점 18위와 도움 1위에 올라있다. 올해 3골만 더 추가하면 전인미답의 80-80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권재민기자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2천2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백신접종을 마치고도 감염되는 돌파감염 추세가 무섭다. 특히 요양시설 입소자와 종사자들의 집단 돌파감염이 인천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 추가접종 등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돌파감염자 추정 사례는 1천540명(8월5일 기준)이다. 돌파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2명은 80대와 90대 각각 1명씩이며. 위중증 환자 15명 중 80%인 12명이 60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감염률이 높은 델타변이가 상대적으로 면역 항체 형성이 낮은 고령층을 파고 들면서 요양시설 내 돌파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1개월간 인천지역 요양원, 요양병원 등 노인 관련 시설에서 29명의 돌파감염 확진자가 나왔다. 김해 요양병원에서 최근 발생한 집단감염 확진자 17명 중 14명이 돌파감염이며, 부산 요양병원에서도 환자 44명, 종사자 5명 등 49명에게서 발생했다. 인천 남동구 노인시설의 한 입소자는 코로나19 백신 2차접종까지 마쳤지만 돌파감염으로 사망했다.현재 노인시설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 중 일부는 백신 1차 접종에 그치고 있으며, 남동구 요양시설의 최초 확진자인 요양보호사도 1차 백신만 맞은 상태였다. 또 요양시설의 신규 취업 요양보호사는 백신 접종을 안해도 코로나19 검체 검사만 받으면 근무가 가능하다. 감염 취약지대인 노인시설 곳곳이 오히려 방역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방역당국도 이같은 심각성을 인지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지역의 요양병원시설은 방문 면회를, 3단계 이하 지역은 접촉 면회를 잠정 중단하고 요양병원시설 종사자의 선제검사도 재개했다. 하지만 면회 중단과 선제검사 수준의 방역 강화로 집요한 델타변이를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요양시설 내 고령층 입소자들은 기저질환자가 많고, 항체 형성 가능성은 낮다. 이에 따라 집단감염 우려가 크고 감염 시 위중증과 사망 등으로 치닫는 치명률도 높다. 여기에 가족 면회까지 중단되면서 입소자들은 의학심리적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요양시설의 돌파감염 차단을 위해서는 종사자의 백신 의무 접종과 노령층 시설 입소자에 대한 3차 추가접종 등의 강력하고 신속한 방역 대책이 급선무다. 지방자치단체도 자체적인 요양시설 입소자 및 종사자 전수조사와 짧은 주기의 진단검사 등 두터운 방역망을 구축해야 한다. 방역당국이 백신 수급 상황 등을 감안해 9월 이후로 검토하고 있는 위험군 3차 추가접종 시기도 서둘러 앞당겨야 한다. 항체 형성이 더디고 감염 시 증상 악화 속도는 빠른 고령층에게는 신속한 추가접종이 곧 생명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이 3상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국내업체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 막바지 단계인 임상 3상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GBP510에 대해 3상 임상계획의 안전성과 과학적 타당성 검증을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고 10일 밝혔다. GBP510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항원 단백질을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재조합 백신이다. 표면항원 단백질을 체내에 투여, 면역세포를 자극해 항체 생성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인체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바이러스를 중화해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임상시험은 이미 승인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효과를 견줘 입증하는 비교 임상 방식으로 진행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내년 상반기 백신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측은 원활한 임상 3상 진행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의 기존 네트워크 활용 등 국제협력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임상 3상에서 중화항체 형성과 안전성만 확인되면 생산과 유통은 시간 문제라고 한다. 연간 수억 회 물량의 대규모 상업 생산이 가능하다. SK바이오사이언스 본사연구소가 인천 송도국제도시로 둥지를 옮긴다. 연구소와 연계한 생산시설도 들어선다. 송도 바이오 클러스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의약계 발전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국산 1호 백신이 탄생해 하루 빨리 상용화 되기를 기대한다. 국산 백신의 자급화가 시급하다. 절실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갈수록 거세져 11일 신규 확진자 수가 2천223명이나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등 정부의 고강도 방역 조처에도 4차 대유행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전파력이 더 강한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 우세종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광복절 연휴, 초중고교 개학 등 위험요인이 남아 있어 확산세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백신 접종 계획도 계속 어긋나고 있다. 11월 말 집단면역을 이룬다는 정부 장담이 어려워 보인다. 거리두기 등 통제 위주의 방역에만 매달려 백신 확보에 소홀했던 게 문제다. 접종 계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더나 백신은 벌써 4번째나 공급 차질을 빚고 있다. 이는 접종 차질로 이어져 국민들의 불신,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정부가 한국을 글로벌 백신 허브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현이 쉬운 게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국내 임상시험이 신속하게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전방위로 지원해야 한다. 한편으론 백신 접종에 차질이 없도록 수입에도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바이오사이언스
수원 삼성의 유스팀인 매탄고가 2021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결승에 진출했다. 매탄고는 11일 오후 남해공설운동장서 열린 대회 4강전서 멀티골을 합작한 구민서와 류승완의 맹활약에 힘입어 제주 유나이티드 U-18에 5대2 대승을 거뒀다. 매탄고는 전반 3분만에 류승완의 중거리슛이 제주 골키퍼 임준섭의 펀칭 실수로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행운의 골로 앞서나갔다. 류승완은 전반 16분에도 20m 단독 드리블 후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전반 18분에는 구민서가 오른쪽에서 올라온 이성호의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한 뒤 20분에도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이 골키퍼를 맞고 나오자 다시 차넣어 4대0으로 앞서갔다. 매탄고는 전반 42분 상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상민이 강한 왼발 슛으로 5번째 골을 기록했다. 제주는 전반 추가시간 지상욱과 후반 33분 김대환이 만회골을 넣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매탄고는 오는 13일 오전 10시 같은 장소서 전주 영생고(전북 현대 유스)-서울 오산고(FC서울 유스)간 승자와 결승전을 갖는다. 한편, 구민서는 5경기서 10골을 넣는 득점력을 뽐내며 득점왕을 예약했다. 권재민기자
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끼지만 바랬던 금메달을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 올림픽서는 더 큰 목표를 이루고 싶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전웅태(26ㆍ광주광역시청)가 종목 올림픽 출전 57년 역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따내고 시상대에 오른 순간, 경기장 한켠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친 최은종 국가대표팀 감독(53ㆍ경기도청)은 만감이 교차했다. 11일 오후 만난 최 감독은 내심 금메달을 목표로 했었는데 아쉬웠다. 또한 첫 메달을 일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4위로 메달을 놓친 (정)진화에 대한 미안함과 4월 월드컵시리즈 참가 후 코로나19 확진을 딛고 역대 최고 성적을 내준 여자 선수들과 코치들에 대한 고마움에 짧은 시간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난 100년 동안 유럽국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근대5종서 한국선수 최초의 메달리스트를 키워낸 숨은 공로자다. 최 감독은 5년전 리우 때는 첫 올림픽 참가라서 두려움도 많았고 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많이 미숙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준비서부터 현지에서의 선수관리와 훈련스케쥴 등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면서 경험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에 우리 선수들이 좋은 결실을 맺어준 것은 평소 선수ㆍ지도자간 신뢰 구축과 인성을 우선으로 하고, 다음으로 운동을 강조했는데 모두 잘 따라줬다면서 정말 좋은 선수들을 만난 나는 행복한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또한 최 감독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항저우아시안게임서 사상 첫 남녀 동반 우승을 이끌고 싶다. 그 이상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 다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대표팀 감독을 겸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경기도와 근대5종 대표팀의 훈련을 아낌없이 지원해준 국군체육부대에 감사드린다며 체육부대는 우리에겐 제2 선수촌과 같다. 아마도 요즘같은 코로나19 시대에 부대의 배려가 없었다면 메달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선수들과 함께 뛰며 지도하는 삼촌 리더십으로 대표팀을 7년동안 이끈 최은종 감독은 지난 2015년 독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이어 2017 이집트 세계선수권서 정진화(LH)의 한국선수 첫 개인전 금메달, 2018 월드컵 3차대회 김선우(경기도청)의 여자 첫 개인전 동메달, 2018 월드컵 파이널 남자 첫 개인전 정진화ㆍ전웅태의 금ㆍ은메달 석권 등 한국 근대5종의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 같은 지도력으로 아시아 국가 지도자 최초로 2017년과 2018년 2회 연속 국제근대5종연맹(UIPM) 선정 최우수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근대5종은 유럽과 한국의 경쟁 구도가 됐다는 최 감독은 유럽 선수들의 훈련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낫지만 이번 메달 획득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황선학기자
뙤약볕이 내리쬐는 11일 오후 1시께 화성시 기안동의 한 건설현장. 폭염의 기세가 한 풀 꺾인 듯한 이날에도 낮 최고기온은 30도, 체감온도는 34도를 웃돌았고 더위를 참지 못한 근로자 10명은 모두 마스크를 벗어던진 상태였다. 연면적 2천㎡ 부지에선 지상 4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건축이 한창이었지만, 안전모를 착용한 근로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위험한 장비까지 마구 널브러진 현장의 모습은 안전 베테랑은 현장 정리부터라고 적힌 현수막을 무색하게 했다. 오후 2시가 되자 경광등을 번쩍이며 패트롤카가 나타났다. 강금식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을 필두로 한 산업안전감독관들이 불시 점검에 나선 것이다. 특별사법경찰단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차량에서 내린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현장 감독을 시작했다. 대형 자재의 이동이나 큰 움직임이 없는 비교적 작은 현장이었지만, 산재 사고의 70~80%가 중ㆍ소규모 현장에 집중되는 만큼 점검반은 구석구석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살폈다. 가장 먼저 걸려든 건 기본 중의 기본 안전모의 부재였고 현장에는 곧바로 전면 작업 중단이 선포됐다. 또 추락사고를 막기 위한 난간의 안전장치가 고작 두 줄로 묶인 로프가 전부라는 점에 대해 시정 권고가 내려졌고, 2~3m 깊이의 개구부에 덮개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권병택 경기지청 패트롤팀장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추락사고라며 위험한 장비들이 많은 건설현장에선 높이가 1m에 불과해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잇따르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전국 지방관서에 패트롤카 49대를 도입했다. 패트롤카는 도로교통법에 따른 산업안전 긴급자동차로, 특사경인 근로감독관의 산재예방 업무 등에 활용된다. 경기지청은 패트롤카 5대를 운용하며 올 상반기 건설현장 178곳을 점검, 161곳에서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또 지난 7월부턴 출동 횟수를 주 3회에서 매일로 늘렸고, 7월 한 달간 166곳에 출동해 119곳의 문제를 시정 조치했다. 강금식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은 건설현장에선 기본만 지켜도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많다며 패트롤카 출동으로 안전을 경시하는 산업현장을 엄중하게 관리ㆍ감독하고 산재 예방활동의 현장 대응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교육부가 올 2학기부터 단계적으로 등교수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본보 10일자 6면)한 가운데 교육현장을 중심으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개학을 앞두고 교사 2차 백신 접종 지연과 신규 확진자 2천명대 돌파 등 위험 요소가 속출하면서 관련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2학기 전면등교를 놓고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다음달 6일부터 거리두기 4단계에도 초등학교 1ㆍ2학년은 매일 등교하고 36학년도 2분의 1까지 등교할 수 있도록 했다. 중학교도 3분의 2 이하로 등교하며 고등학교의 경우 고3은 매일 등교하고 고1ㆍ2는 2분의 1 등교 또는 전면 등교가 가능하게 했다. 이런 가운데 2학기 개학을 앞두고 교사 2차 백신 접종이 지연된 데 이어 신규 확진자까지 2천명을 뛰어넘으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중심으로 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교사 백신 접종 지연과 관련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백신 수급에 차질이 생겨 대다수 교직원들의 2차 백신 접종이 2주 더 연기됐다며 교원 백신 접종은 개학 이후로 미뤄졌는데 전면 등교 계획만 발표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당국은 교직원들이 개학 이전에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그러지 못할 경우 전면 등교 일정을 연기ㆍ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11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가 2천223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학부모 A씨는 등교수업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확진자 수가 2천명을 넘고 교사 백신 접종일정까지 늦어진 상황에서 아이의 건강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등교 확대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전면등교를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이 꼬리를 물고 있다. 반면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열린 2학기 전면등교 단계적 추진 관련 방역 전문가 온라인 포럼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방역과 학습의 조화를 반드시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등교 확대를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후 6시 기준 국내 신규 확진자는 1천608명으로 집계됐다. 박준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