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코로나 이후 학생선수 위한 정책 아쉽다

전국 고교 3학년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79일 늦은 20일 등교 개학했다. 이를 계기로 6월8일까지 각급 학교가 학년별 일주일 간격을 둬 단계적인 개학을 한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수 차례 미뤄졌던 학교 개학은 정부가 고교 3학년생들의 입시 일정, 취업 준비와 관련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고3 학생들의 진로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로, 비교적 입시와 취업에서 자유로운 고교 1,2학년과 초ㆍ중학교 학생은 차등 개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고3 학생들의 입시, 취업을 위한 등교 개학에도 운동을 통해 진학과 취업 진로를 모색하는 학생 선수, 학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3개월 넘도록 팀 훈련이 아닌 개별 훈련을 해온 데다 시즌 개막이 지연되면서 대회 출전과 관련된 여러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개별 훈련으로 실전에 임할 만큼의 몸을 만들지 못한 선수들은 이제부터 출전을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쌓아야 한다. 구기 종목은 팀웍 다지기와 전술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각종 대회가 미뤄지면서 7~9월에 대회가 집중될 수밖에 없어 혹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입상 실적을 내기 위한 무리한 대회 출전 강행에 따라 부상 위험과 함께 심리적인 압박감이 가중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학년별 단계 개학에 따라 종목 특성상 합동 훈련으로 팀웍과 전술을 다져야 하는 구기종목은 더욱 차질이 우려된다. 이같은 상황에도 교육 당국은 최근 운동선수들에 대한 현실과 거리가 먼 지침을 내려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각종 대회 재개와 관련된 방역 당국의 지침이 늦어지면서 체육단체들은 학생들의 개학에도 불구하고 일정을 잡지 못한 채 정부 눈치만 살피고 있다. 막연히 6월 중순부터는 각종 대회가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뿐이다. 여기에 최근 교육부의 학교 운동부 운영 가이드라인은 일선 지도자들과 학생 선수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개학 후 학생 선수들의 훈련을 학년별로 요일을 달리하는 격일제 훈련과 학년별 훈련시간 차등을 둔 시차제 훈련, 구기종목의 포지션별 훈련시간을 달리하는 내용 등이 담겨져 있다. 신체 접촉이 잦은 종목은 개별 훈련 위주로 하고, 구기 종목의 전술 훈련은 온라인을 활용하라고 한다. 원칙적인 기숙사 합숙훈련 금지와 팀간 합동훈련도 금하도록 했다. 일선 학교 운동부 주체들은 이 같은 교육 당국의 지침에 대해 코로나19로 부터 학생 선수를 보호하고 감염 예방을 위한 방안이라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성이 너무 결여됐다는 반응이다. 지침을 준수할 경우 현실적으로 선수들의 기량 저하에 따라 진로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각종 대회 운영과 특기자 입시 선발규정, 최저 학력제, 대학 수시모집 방안 등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같은 선행 요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 속에 학생 선수와 학부모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정부의 체육정책 기조가 국민 건강과 복지를 위한 생활체육으로 바뀌어 가면서 상대적으로 전문체육이 등한시 되고 있다. 학교체육은 더욱 그러하다. 전체 학생 수에 비해 소수이지만 운동 특기를 매개로 진로를 탐색하는 학생 선수들에게 있어 최근 코로나19로 빚어진 상황은 매우 중하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일반 학생들을 위한 정책 못지않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불안해 하고 있는 학생 선수들을 위한 방안 마련에 힘써야 한다.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정책을 마련해 주길 많은 체육인들은 바라고 있다. 황선학 체육부 부국장

안산 중앙동 양미숙 미용실 원장, 25년간 ‘사랑의 가위질’

제 손길을 통해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매력적인 모습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행복하죠, 이러한 재능기부를 할 수 있어 더 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25년째 안산시 중앙동 중심 상업지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양미숙 원장(57). 양 원장은 어릴 적부터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난히 뷰티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미용실을 운영하던 중 아미(아름다운 미용협회)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환자의 머리 손질은 물론 마음도 함께 어루만져 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양 원장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은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져 행복하다고 말했다. 양 원장은 봉사에 대한 매력을 재능기부에서 찾고 있다. 그는 최근 6년여 동안 직원 3명과 함께 매월 한 차례 군부대를 방문해 군인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해주고, 노인정을 찾아 어르신들의 개성에 맞게 헤어스타일을 연출해주는 등 황혼기에 접어든 어르신들에게 멋을 선사하고 있다. 누군가를 아름답게 표현해야 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함을 느낀 양 원장은 관련 분야 공부를 시작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봉사활동에 공부까지 열정을 불사른 끝에 미용 예술학 석ㆍ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안산에 소재한 대학에서 뷰티아트과 겸임교수로 강의하며 후배 양성에도 한몫하고 있다. 양 원장은 엄마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뒤를 이어 딸과 아들이 뷰티아트학 분야 등을 전공하고 있어 무엇보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특히 미용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후배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15년 가까이 한국미용예술경영학회 수석부회장으로 일하면서 학회 등재지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기억된다고 말하는 양미숙 원장. 언젠가 교육사업(아카데미)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꿈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안산=구재원기자

경기도교육청, 경기 솔솔~독서바람 송 ‘팔랑~♬’ 영상 배포

경기도교육청이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속 거리 두기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생활의 활력을 찾도록 하기 위해 경기 솔솔~독서바람 송 팔랑~♬ 영상을 제작공개했다. 경기 솔솔~독서바람 송 팔랑~♬은 학생들이 종이책을 팔랑 넘기면서 오감을 통해 독서를 즐기고 하루 10분, 20분으로 시작한 독서 활동 생활화로 독서의 기쁨을 느끼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음원과 영상은 도교육청 홍보대사이자 랩 하는 초등교사 달지 이현지 선생님이 직접 참여해 학생들이 따라 부르기 쉬운 음원과 랩으로 제작했다. 이번 독서 송 제작에 참여한 이현지 선생님은 36만여명의 유튜브 팔로워가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최근 도교육청과 함께 제작한 손 씻기 노래는 1달 만에 조회 수 144만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유튜버다. 경기 솔솔~독서바람 송 팔랑~♬은 도교육청 유투브채널 및 메인 홈페이지 화면, 도서관정책과 통합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교육청은 경기 솔솔~독서바람 송 팔랑~♬을 독서교육정책 포럼, 학부모 연수, 학생자치회 등을 통해서도 홍보해 나갈 예정이다. 구향애 도교육청 도서관정책과장은 이번 경기 솔솔~독서바람 송 팔랑~♬이 학생들의 독서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생활 속 책 읽는 문화 활성화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현숙기자

파주 문산고등학교, 이색 온라인 교육활동 ‘눈에 띄네’

파주 문산고등학교(교장 백안영)가 온라인 개학 이후 디지털 아트 전시회, 마스터 양성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교육활동을 진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21일 학교 측에 따르면 문산고는 지난달 27일부터 온라인 디지털 아트 전시회를 개최하고 예술에 대한 재능과 흥미가 있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처음 열린 온라인 전시회에서는 △코로나19 극복 메시지 △꿈 △자아정체성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이 선보여졌으며,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도슨트 활동도 함께 마련돼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작품 이해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와 함께 문산고는 이달 6일부터 마스터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마스터 학생이 아두이노, 3D 프린터, 드론, 그래픽 소프트웨어 등 각종 분야의 교육과정을 직접 구상해 온라인 강좌를 만들어 배포하면 다른 학생들이 그 영상을 수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산고는 강좌를 수강한 학생을 대상으로 등교 개학 후 분야별 마스터의 소양을 갖추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어 8일에는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고취시키고 과학적 탐구 능력과 창의적 해결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문산과학축제한마당 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교내 과학동아리 학생 40여명이 서로 피드백을 받아 개인별로 직접 제작한 방구석 과학쇼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하고, 제작자가 쇼호스트가 돼 영상 속 실험에 대한 시청 학생의 질문을 해결하는 활동이었다. 시청 학생은 게시된 영상 중 일부를 재연하며 과학축제를 즐겼다. 백안영 교장은 학사 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미래핵심역량을 함양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다양하고 참신한 교육활동을 개발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아울러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여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연우기자

[2020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

한 장의 흑백사진이 책 한 권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기도 한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이 강화도 광성보를 점령한 후에 찍은 처참한 풍경, 서울로 압송되어가는 녹두장군 전봉준, 31만세 운동의 현장을 찍은 사진은 우리 역사의 생생한 장면들이다. 50~60대라면 올림푸스라는 카메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카메라에 얽힌 추억을 더듬다보면, 소풍날 사진관에서 빌린 카메라로 온갖 폼을 잡으며 찍고 나서 필름을 감아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무심코 카메라 뚜껑을 열었다가 한 장도 건지지 못해 욕을 먹었던 쓰라린 경험도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후반이 되면 가정에서도 카메라 한 대는 소유하게 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니콘 혹은 캐논을 어깨에 메고 자랑스레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들이 수두룩했는데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가까이 하던 카메라가 슬슬 사라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고급 카메라야 팔리고 있지만 그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카메라의 역사는 곧 사진의 역사다. 1836년 프랑스 사람이 감광물질을 발견하여 최초의 사진이 탄생되면서 카메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는 독일제 콘탁스와 라이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59년에 일본광학에서 카메라 역사의 기념비적 모델이 된 니콘 F를 출시하면서 카메라 시장은 독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기술의 발전을 거듭하여 디지털 카메라까지 탄생시켰다. 카메라만큼 극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물건도 찾기 어렵다. 이러한 카메라의 변천사를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카메라박물관이 과천에 있다. ■ 눈앞에 펼쳐지는 카메라 변천사 전철 4호선을 타고 대공원 역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한국카메라박물관이 있다. 2007년에 개관한 박물관의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의 몸체와 렌즈를 연상하도록 만들어진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180년 이어진 카메라의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전쟁 중에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용카메라, 지포라이터 카메라, 손목시계 카메라, 방아쇠가 달린 권총 카메라, 나이가 백년은 훌쩍 넘은 목재카메라 등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법한 희귀한 카메라를 직접 볼 수 있다. 박물관에는 카메라 3천여 대를 비롯해 렌즈 6천여 점, 유리원판 필름과 초기 환등기, 사진 인화기, 액세서리 등 1만5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안내하는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실재 전시되고 있는 카메라는 500여 점이라고 하니 전체 소장품의 15프로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내부 전시 공간은 층별로 3개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1전시실은 카메라와 렌즈, 부속 기자재들을 테마와 이야기를 담아 주제별로 기획 전시하는 공간이다. 2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실은 카메라가 최초로 등장한 1839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단위로 카메라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카메라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그러니 카메라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부터 둘러보는 것이 좋다. 처음 만나게 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카메라의 시조이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 한쪽 벽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와 반대쪽 벽에 구멍 밖 풍경을 거꾸로 나타내는 원리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최초의 카메라 옵스큐라는 1839년에 프랑스에서 제작한 것이지만, 이곳에는 1890년 무렵 독일에서 교육용으로 제작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 카메라 루시다 역시 주의해서 살펴야할 물건이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콘탁스Ⅱ 라이플이다. 이름처럼 총의 개머리판 위에 장착된 카메라를 방아쇠를 당겨 셔터가 동작되도록 만든 것으로 히틀러 나치 정부의 주문으로 단 4대가 제작되었으나 현재는 오직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카메라다. 게다가 제작한 해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1936년이다.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는 손기정 선수 당당한 모습과 이를 보도하는 신문사가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어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운 일장기말소사건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인 유물이다. ■ 박물관을 열기까지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설립자인 김종세 관장의 헌신과 열정의 산물이다. 젊은 날 그는 광고와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면서 카메라에 빠져 카메라 수집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카메라 박물관 설립을 계획하던 1993년 당시에 그가 소장하고 있던 카메라가 400대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박물관을 만들기로 계획하고 꼭 필요한 카메라들을 의욕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대해서도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을 드나들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120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패망 후, 아르헨티나는 나치 전범들의 주 도피처였던 까닭에 희귀한 독일제 카메라를 많이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지금까지 필요에 의해 카메라를 교환하는 일은 있었지만, 팔아서 돈을 만든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기에 우리나라 최초로 카메라 전문박물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 체험으로 배우는 카메라의 원리 지하에 위치한 제3전시실은 다양한 사진전시, 스튜디오, 암실 등 다목적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카메라 교육과 같은 문화강좌, 카메라를 직접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만들어 보는 체험, 카메라의 원리, 사용법, 촬영방법들을 간단하게 배운 뒤 촬영한 필름을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작업을 해보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역시 아이들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손으로 만지며 체험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사실 오묘한 카메라의 원리를 말로 설명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재미도 없다. 박물관에서 마련한 카메라 옵스큐라, 바늘구멍(핀 홀) 카메라 만들기 체험 학습은 카메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박물관에서 제작한 바늘구멍 카메라는 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매년 4~6회 특별전을 통해 세계 카메라 발전사에 크게 기여한 명작 시리즈나 역사적인 명기, 희소가치가 큰 카메라 등을 기획 전시하고 있다. 그 동안 라이카 카메라 특별전, 펜탁스 카메라 특별전, 옛날 카메라로 찍은 사진전, 입체카메라 특별전, 군용카메라 특별전, Rolleiflex & 세계 이안반사식 카메라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 좋은 사진을 찍는 비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진은 일상이 되었고,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적지 않다. 작가가 아니라도 DSLR로 불리는 고급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고급 카메라를 가졌다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마 모를까. 필자 주변에도 거금을 들여 고급 카메라를 샀다가 채 1년도 되지 않아 흥미를 잃고 장롱 속에 보관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거금을 들여 고급 카메라를 장만하는 것은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잠재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어떤 카메라건 늘 손에 들고 다니며 많이 찍는 것이야말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비결 아닌 비결이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박물관을 만든 주인공은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며 어떤 작품을 찍고 있을까. 마침 박물관 지하 전시실에는 박물관장 김경세 작가의 다랑이논을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하늘에서 찍어 지도의 등고선처럼 보이던 다랑이논을 다시 쳐다보니 카메라의 조리개를 닮았다. 이번 주말에는 집 어딘가에 처박아둔 카메라를 찾아 렌즈라도 닦아야겠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사진=윤원규기자

이재명 “재난기본소득 부당 거래 2주 만에 111곳 적발”

경기도재난기본소득을 부당하게 차별거래한 점포들이 2주 만에 111곳이나 적발됐다. 수수료 명목으로 최대 20%까지 추가 금액을 요구한 업주들에 대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세무조사ㆍ형사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이재명 지사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기도 재난기본소득과 현금을 차별거래했다고 신고된 383개 점포를 현장점검한 결과 20일까지(6일부터) 111건(기존 15건 포함)의 부당행위를 적발했다며 현금결제를 유도해 매출을 속이거나 부가세 수수료 등 명목으로 10% 더 받아 이득 좀 보려는 것인데 카드가맹점 등록취소, 지역화폐(재난소득) 거래금지, 세무조사, 형사처벌까지 받으면 결국 100% 손해라고 밝혔다. 이어 초기 적발된 15곳은 기 조치했고, 추가 적발한 96곳 역시 똑같이 조치하고 향후 발각되는 것도 예외 없이 조치할 것이라며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재난기본소득은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민 세금으로 실시하는 긴급 경제정책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무 데서나 못 쓰는 불편을 감수하고 지역경제 살리자며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일부러 찾아온 도민들께 법률 어기고 탈세해가면서 실망을 안겨서야 되겠는가라며 경기도는 불공정 앞에서 결코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극소수 상인의 일탈이 상권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해 성실하게 가게 운영하는 대다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피해보지 않도록 강력조치를 이어갈 것이다. 일부 꼼수 영업하는 분들 제발 소탐대실하지 마시고, 우리 공무원들이 세무조사, 형사고발, 가맹 취소에 매달리지 않고 다른 일 전념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강조했다. 한편 도는 419건의 민원(SNS, 콜센터, 소비자권익센터 접수) 중 111건을 최종 적발했다. 적발 사안 중에서는 부천 한 식료품이 5천 원짜리 물건을 1천 원에 결제하라고 요구, 수수료로 20%나 주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승구기자

“푸른 꿈 키우는 맞춤 진로교육 ‘멘토링센터’ 설립을”

획일화되고 일회성에 그치는 진로교육 대신, 학생들의 다양한 흥미와 적성에 맞춘 개별화 진로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일환으로 진로 멘토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광역 단위의 경기도진로멘토링센터를 설립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21일 경기도교육연구원(원장 이수광)에 따르면 연구원은 지난해 5월20일부터 31일까지 도내 초ㆍ중ㆍ고교 306개 학교 학생, 학부모, 교원 등을 대상으로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요구에 대한 온라인 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수는 학생 3천1명, 멘토 대상자 1천236명(학부모 80.4%), 교원 1천425명 등 총 5천662명이다. 먼저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묻는 질문에서 세 집단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생 40.4%, 멘토 대상자 55.1%, 교원 54.8% 등 절반 이상이 진로 멘토링에 대해 효과적이라고 답했으며, 매우 효과적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학생 18.0%, 멘토 대상자 26.9%, 교원 27.6%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진로 멘토링의 목표에 대해서도 꿈 발견이라고 같은 답을 꼽았다. 프로그램 내용 중에서는 학생층이 꿈 찾기(34.6%)에 관심이 높았고, 멘토 대상자와 교원 등 성인층이 흥미ㆍ적성 발견(각각 50.7%, 49.7%)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멘토를 선발하는 요건을 묻는 질문에서 학생ㆍ멘토 대상자ㆍ교원은 모두 전문성(재능) 있는 멘토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다만 인원 수에 따른 멘토:멘티 구성 방식은 학생의 경우 1멘토:1멘티를, 성인의 경우 1멘토:소그룹 멘티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응답자 모두 멘토와 멘티 구성이 적은 인원일수록 선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원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활용, 학교 및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재구성돼 학교 현장에서 탄력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적으로 진로교육 정책이 출범한 지 10년 차를 맞았는데 그 사이 단위학교 진로교육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단기성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학생들의 꿈이 유튜버, 소믈리에 등 각종 분야로 확장돼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진로 멘토링 환경을 재분석하고 제도권 내로 유인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경기도교육연구원 관계자는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지역인재 풀을 구축하고 학교가 필요로 하는 멘토들을 상시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며 아울러 멘토 풀 관리를 위해선 지역 단위의 진로 멘토링 센터를, 광역 단위의 진로 멘토링 협회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진로 멘토링이란 멘토링을 진로교육에 결합시킨 개별화 및 지속화한 프로그램으로 1990년대 이래 학교 밖에서 산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청소년 멘토링을 학교 제도권 안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방안이다. 멘토링은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1:1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이며 기업이나 사회단체 등에서 이미 그 효과성을 입증한 바 있다. 이연우기자

[학생 칼럼] 잊어서는 안 될 ‘n번방 사건’

2020년 3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n번방 사건이다. n번방 사건은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 n번방과 박사방에서 있었던 성 착취 사건을 말한다. n번방과 박사방을 개설운영한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성 착취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고, 해당 영상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서 판매하는 잔인한 행각을 저질렀다. 많은 국민들이 이 사건에 대해 울분과 분노를 터뜨렸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관심이 다소 사그라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관심이 식을 순 있지만 그 사건에 연관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식으면 안 된다. 국민들이 잊으면 수사도, 처벌도 소홀해질 것이며, 똑같은 유형의 사건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 될 사건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 또는 수입ㆍ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한다. 또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n번방의 추악함, 여성을 그저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도구로 보는 최악질의 일부 남성들, 수많은 가해자 중 소수에게만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나머지 가해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유독 우리나라가 성범죄란 죄목에 대해 처벌이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법이 강화되길 바란다. 그 모든 방에 존재했던 사람들은 방관자다. 그 방을 만든 사람, 지켜본 사람, 공유한 사람,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사람 그 모든 사람은 방관자이고 범죄자다. 호기심이라는 명목으로 범죄자를 솜방망이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호기심, 실수라는 그 얄팍한 핑계로 여성들의 삶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오롯이 그 시간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건 피해 받은 여성들, 그 자신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그들이 받을 벌은 그 어느 벌보다 무거워야 하며 평생을 자신이 저지른 그 실수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더욱 냉철해져야 하며 사건의 과정, 결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 과정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모조리 부서진 것이다.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 수 있는 여성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이 파렴치한 범죄자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하는 벌들을 주는 것이다. 박사방 주동자인 조주빈이 잡힌 것이 끝이 아니라 벌을 받아야 할 모든 사람이 잡힐 그날까지 우린 끊임없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부 몇몇 사람들의 피해가 아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며,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파주 봉일천고 서가형

국난에 대처하는 정치인의 자세

2020년 대한민국은 국난이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국민이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리학적 특성상 반만년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외부의 침략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국난의 연속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국난에 대처했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치 지도자의 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다. 그 중 중요하다 생각되는 정치인 혹은 지도자의 자세에 대해 몇 가지 예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번째, 정치 지도자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처해야 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문제 파악이나 대비책 마련 없이 북으로 도망가기 급급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며 어려움에 직접 맞서 싸웠기 때문에 우리가 왜의 침략을 극복할 수 있었고 세자 책봉에 이어 왕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두번째로 정확한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경향신문은 1950년 6월 27일자 1면 머리기사로 아군 용전에 괴뢰군 전선서 패주 중이란 머리기사를 실었다. 이는 국방부 발표문을 인용한 기사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새벽 2시에 서울을 빠져나갔고 북한군은 바로 서울로 진입하게 된다. 물론 최고 지도자가 전쟁의 최전방에서 지휘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혼란을 방지한다는 핑계로 서울을 사수한다는 방송을 하며 도강 후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 버리고 서울 수복 후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잔류할 수뿐이 없었던 잔류파를 부역자로 처단한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지도자는 정확한 정보 공유를 통해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세번째로 타 정파까지 이해하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2010년대 초반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의 문제로 유로존 위기가 터지자 독일 총리 메르켈은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와 속칭 메르코지 체제를 구축하며 각국의 긴축 정책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2012년 사르코지가 재선에 실패하고 올랑드가 당선되며 이에 따른 위기설이 퍼졌지만, 메르켈은 포용력을 가지고 올랑드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통해 긴축정책 및 유로의 구조 조정 필요성을 역설한다. 자신과 노선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자세야말로 큰 정치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코로나19를 극복했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국민과 공유하며 어려움을 피하지 않으며 모든 정파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도 국가에 또 다른 어려움이 발생 시 이러한 교훈을 밑거름 삼아 잘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양외국어고 진동현

폐차 유감

며칠 전 20년을 넘게 탔던 차를 폐차업자에게 넘겨주었다. 아직은 주행하는 데에 별문제가 없는 차였기에 폐차장으로 보내는 마음이 섭섭했다. 견인차에 매달려 가는 모습을 보자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경기□□마 □□86. 나도 어느덧 환갑을 넘긴 나이. 생각해보니 꽤 긴 세월을 차와 함께 보냈다. 대개 차를 5년 정도 탄 후 새 차로 바꾸는 게 흔한 경우인데, 이에 비하면 아주 오래 탔다고 할 수 있다. 문득 20년을 함께 했던 추억들이 밀려왔다. 처음에 1천400여만원의 거금(?)을 들여 산 차였다. 20년 전 교사에서 전직해 지역교육청의 장학사 생활을 새 차와 함께 시작했다. 이 차로 먼 거리에 있는 교육청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다녀야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출장으로 지역의 학교는 물론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다. 긴 장학사 생활을 마친 후 고등학교 교감 시절도, 승진 후 교장과 교육청의 장학관 생활, 그 이후 두 학교의 교장 시절을 이 차와 함께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 친척 집 방문과 가족 여행을 하기도 했다. LPG 연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연료비도 경제적이었고 대기 환경에도 도움이 됐다. 게다가 가끔 먼 거리 자전거 타기를 했던 내게 차 뒷공간의 여유는 자전거를 싣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몇 년 전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출입할 때도 이 차를 이용했다. 아버지는 병원을 오가며 2년여를 버티셨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셨다. 어느 날 담당 의사는 내게 아버지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아버지 모르게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차를 몰고 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른 새 차가 있어 아내는 자주 폐차를 종용했는데 선뜻 폐차하지 못했던 것은 이러 저러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가 폐차를 종용할 때마다 나는 연료도 다른 차보다 덜 들고, 아직은 멀쩡해 자전거를 싣고 다니기에 좋은 차라고 둘러대며 폐차 종용을 피하곤 했다. 폐차 당일 차를 세차하고 차 안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곳을 찾아 아버지께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폐차장으로 보낼 마음이었다. 그러나 밀려오는 바쁜 일들로 인해 계획대로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차를 폐차장으로 보내고 말았다. 폐차는 내가 한 일이었지만 막상 폐차하고 나니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폐차 말소 확인증을 받고 나서야 폐차했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폐차로 인해 차와 함께 했던 추억들까지 잊혀질까 두렵다.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정든 내 차야 잘 가거라. 그동안 고마웠다. 20년을 넘게 함께 했던 나의 사랑하는 차 카렌스. 감사하다. 내 차야 안녕! 김유성용인 죽전고 교장